꿈꾸는 대로,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권주리 십대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
10년간 40번의 계절이 바뀌었고, 제게는 32번의 계절이 십대여성인권센터와 함께였습니다. 2023년 11월, 현재 저는 36번째 계절을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 맞이하고 있습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10주년 사업보고서를 준비하며 그 간 앞만 보고 달려오기만 했었지 이후 뒤돌아 볼 겨를이 없던, 그 시간을 들춰보았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복이 많은 편입니다. 일복과 인복. 2015년, 출근하자마자 업무 파악 시작과 함께 2014년의 사업을 정리하면서 운영위원회 보고를 준비했고, 6기 사이버또래상담원을 모집하면서 양성교육을 준비하는 동안에 관악구 모텔에서 14세 아동·청소년이 성 매수자에게 목이 졸려 살해당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여 <관악구 성착취 십대여성 살해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행동>의 공동주관 단체 활동도 동시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평온한 날은 거의 없었습니다. 성매매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매일 매일 사이버 공간에서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겠다는 글을 굳이 찾지 않아도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피해를 경험한 아동·청소년은 어디에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며 피해가 확대되고 있었고 심지어 피해 아동·청소년이 성범죄에 연루되었다고 처벌을 받는 경우(대상아동·청소년)들을 계속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는 아동·청소년을 보호할 책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고 피해 아동·청소년들은 성비행 일탈 행동의 ‘그런 아이들’로 불리우고 있었습니다. 성매매를 한 성인의 경우에도 보호해야 할 피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있었지만, 아동·청소년에게도 같은 잣대를 대고 있다는 것에 분노가 일며 놀라울 뿐이었고, 성인 성매매 피해지원 현장에 6년간 있었지만 피해 아동청소년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 어른으로서도 이런 현실이 부끄러웠습니다.
2008년, 꼬꼬마 신입으로 다시함께센터에서 일을 시작할 때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라는 조 대표님의 말씀이 마음 속의 울림으로 남아 6년을 의미있게 일했던 것처럼, 2015년 당시 대표님이 제게 십대여성인권센터의 비전을 말씀하실 때, 대상 아동·청소년의 문제점과 피해 아동·청소년 전담 체계가 없어 성인 피해자 중심이 아닌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 상담소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아청법’ 개정 활동 중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다시 제게 그 때의 울림이 있어서 오늘까지도 이는 제 원동력입니다.
우리 센터는 묵묵히 그러나 확실한 목표를 꿈꾸고, 말하고, 행동하며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칠 때도 많았고, 제자리걸음이라 느낄 때도 많았지만 제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아동·청소년들도 “Here I am”으로 자신을 드러냈고, 성착취 피해 실태를 알리는 과정에서 실태를 모르고 피해 아동·청소년을 비난했던 혹은 실태를 몰라서 손을 내밀지 못했던 많은 분들이 “Here We are”로 응답하며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우리 센터의 활동도 응원과 힘을 받았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사회적 안전에 대한 내용이 골자인 ‘아청법’ 개정안에 이견이 있어 이를 설명해야만 하고 설득해야만 하는 지난한 시간은 8년이나 걸렸지만 드디어, 2020년 11월 20일 개정된 ‘아청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아청법’이 개정될 때까지 지난하고 힘든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이버상담으로 건강상 도움이 필요하다고 연락했던 아동·청소년이 번번히 대면 약속에 잠수를 타고 바람을 맞춰도 우리는 정기적으로 그 아동·청소년의 안부와 건강을 1년을 챙겼고, 그 아동·청소년은 1년 만에 센터에 나타나 피해 지원을 받은 뒤 사이버또래상담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센터에 들어오며 눈도 못 맞추던 아이들이 이제는 먼저 와서 인사를 하고 일상을 종알거리기도 하고, 식사를 아무거나 먹겠다던 아이들은 센터에 올 때 먹고 싶은 메뉴도 생각해 옵니다.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아이들은 ‘피해 지원’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센터 공간과 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믿고 회복해 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피해 아동들이 회복한 사례가 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회복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아동이 성착취자와의 연락을 끊는 순간이 회복일수도 있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 신고를 하는 것부터가 회복일 수도 있다는 답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지켜봐주면 더디더라도 반드시 각자의 모습으로 회복하고 각자의 일상을 사는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어떤 아이에게는 우리 센터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어른과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려고 합니다.
글을 쓰는 오늘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대상 아동·청소년’ 개념이 삭제되고 성착취(성매매 등)에 이용된 아동·청소년은 모두 피해 아동·청소년으로 보호하게 된 지 3년이 되는 날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간에도 아동·청소년에게 성착취 피해가 발생하고 있고, 놀랍게도 여전히, 아동·청소년과 만나는 현장에서도 법 개정을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당사자인 아동·청소년들도 법이 개정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직도 아동·청소년은 우리사회에서 안전하지 않고 할 일은 많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성착취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서 우리가 할 일이 없다면 기쁘게 백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사람을 살리는 일을 꿈꾸고, 말하고, 행동해 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