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한 때, 아이였던 어른들에게
박지원 프리랜서 작가
영화 〈쁘띠 마망〉에서 8살 마리옹은 역할극을 함께하던 친구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사실… 비밀이란 숨기려는 것만은 아니에요. 그냥 말할 데가 없는 거지.”
영화 속 많은 장면이 좋았지만, 저는 한참 동안 이 대사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마도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전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서겠지요. 당신도 이 전시를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저와 함께 보지 못한 당신을 위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전시는 천들이 겹겹이 걸려 있는 공간을 건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들어서기 전에는 괜히 좀 겁도 났던 것 같아요.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게 꼭 우리들 마음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 속엔 아이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어른들의 악의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일하느라 너무 바빠서, 집 안팎에서 학대나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서, 도무지 마음을 둘 곳도 터놓을 곳도 없는 아이에게 그놈들은 다정한 목소리로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정하고 상냥한 목소리에 담긴 악의는 정말이지 끔찍했어요. 그놈들은 아이들에게 너와 친구가 되었고, 너의 비밀도 들어줬으니, 우리끼리도 비밀 하나를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아이였던 적이 있는 당신과 나는 압니다. 그 시절 비밀을 나누는 사이가 얼마나 절실하고, 소중한지를요. 그놈들은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 테니 벗은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꾸준히 돈을 벌 수 있게 해줄 테니 만나자고 합니다. 당신이 나와 이 공간에 함께였다면,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놈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비밀이라던 그 사진으로 협박을 하거나,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면서 아이들의 성을 무자비하게 착취했을 거라고요. 하지만 아이들은 쉬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버려지는 게 더 무서웠다’
홀로 두려워하며 이 일기를 썼던 어느 여고생처럼요. 전시장에서 이 일기를 읽어 내려갈 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건강한 관계와 위험한 관계를 구분 짓기란 아이들에겐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우리 어른들도 사람과 사람 사이, 서로 건강한 관계를 맺기란 얼마나 힘들던가요. 하물며 아이들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친밀하게 지냈던 그놈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홀로 보내야 하는 시간이 참 많아졌었죠. 그때 아이들은 메타버스를 이용해 자신을 대변한 캐릭터로 학교도 가고, 친구들도 사귀곤 했대요. 그렇게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 마음을 이용해 놈들은 더 교묘하고 악랄하게 아이들에게 접근했습니다. 네, 또 둘만의 비밀을 만들자고 하면서요. 그리곤 여지없이 아이들의 성을 착취하고, 협박했습니다.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리고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우리가 아청법이라고 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통과된 지도 이제 2년. 하지만 그 법은 여전히 아이들을 제대로 돕지 못합니다. 법은 아이들도 성구매자와 함께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가담했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이 법으로 아이들은 피해자면서 동시에 범법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당신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처음부터 어른과 아이가 동등한 입장에서 성을 사고 팔았을 거라고요. 그래서 이 전시에선 말합니다. 패러다임부터 바꾸자고요. 아동 성매매는 곧 착취라고 말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어른이었던 어른은 알지 못합니다. 어른이 되고 나면 자주 잊어버리지만, 우리들 모두 한때 아이였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잊는 만큼 더 자주 아이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작품에는 제대로 맺지 못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제대로 맺어지지 못하고, 그렇다고 끝맺지도 못하고, 이따금씩 마음에 걸려 내 속에서만 맺혀 버린 관계들에 관한 이야기들이요. 더불어 건강한 관계를 맺는데 서툴렀던 과거를 딛고 그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다짐들이 빛났습니다.
그래서 어른 대 어른으로 당신에게 우리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아이들이 비밀을 얘기하는데 안전하고 건강한 어른이 되어 주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