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물음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 황보화
참가기
작성자 조진경 게시일 2024.02.05
  • 0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물음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황보화 신나는여성주의도서관 ‘랄라’ 관장

저는 학교에서 성교육, 성폭력예방교육,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을 하는 여성단체 활동가입니다. 학생들에게 이 험한 세상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하는 교육이라, 어른으로서 늘 미안한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처음 성교육을 시작한 몇 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는 주로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는 내용의 성폭력예방교육을 요청했습니다. 그 교육은 예방 차원에서 의미도 없을뿐더러 피해자를 스스로 탓하게 만들 수 있기에,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살다 보면 피해를 겪을 수도 있어. 말해도 괜찮아. 용기 내어 말하면 극복할 수 있어’라는 내용을 담아 교육을 진행했었습니다. 피해자를 향해 ‘왜 그랬어?’라는 질책을 내포한 ‘피해자다움’이 아닌, 그 피해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기에 주변의 도움과 지원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 기획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전시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를 둘러보며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희망을 품고 반갑고 고맙게 전시를 바라보았던 것 역시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성착취 범죄를 겪고도 끝내 무너지지 않고 용기 내어 피해 경험을 말하고, 그 곁을 지켜준 이들의 따뜻한 지지와 위로를 만나 생존자로 살아남고, 또 자신의 치유와 성장을 주변에 나누는 빛나는 존재로 변화해가는 여정이 전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착취 피해 경험 후 1년간의 심리 상담을 통해 자기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직면하면서 표현한 ‘마음의 지도’에서 마지막 지점에 그린 자신의 모습은 오롯이 두 발을 뿌리 내린 나무로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안정감이 엿보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일상을 회복하고 치유된 만큼 누군가에게 그 치유와 성장을 나눌 수 있는 각자의 ‘빛’을 표현한 작품에서 우리는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빛나는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동받게 됩니다. 살아주어서, 이야기해주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즘 제가 강사로서 주로 진행하는 교육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성범죄예방교육입니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할지를 강조하지만, 사실 무엇보다 중점을 두는 내용은 ‘왜 이렇게 많이 발생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한국 사회의 성범죄 비율은 ECD 국가 중 전쟁 중인 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최고 수준입니다. 왜 그럴까요?’ 학생들의 답은 주로 ‘성 욕구 해소’와 ‘성 산업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많아서’입니다. 사실 성범죄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성 고정관념입니다. ‘남성의 성욕은 강하고 충동적이고 참기 어렵다’는 편견, 남성의 성 욕구 해소를 당연시하는 성 통념이 어떻게 여성혐오와 폭력으로 연결되는지 나아가 그런 통념 속에서 남성 청소년들은 일찌감치 야동을 접하고, 여성을 친구나 동료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면서 외모를 품평하는 문화를 내면화하게 된다는 점들을 인식하면서 남학생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길 바라는 의도를 담은 강의입니다. 수업이 잘 풀리면 어느새 남성 청소년들은 이제부터 야동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다지기도 합니다. 아직 편견이 그리 단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른입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동을 성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만 보고, 접근해 길들이려는 파렴치한 ‘그놈 목소리’를 들으면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나이가 어려 힘이 약하기에 아동·청소년을 자기 맘대로 길들이고 착취할 수 있는 만만한 대상으로 여기는 ‘그놈’들이 한국 사회에 평범한 어른으로 버젓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법과 제도로 ‘그놈’들을 처벌해야 할 국가가 별다른 규제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기에 ‘어째서 구매한 놈이 당당한가’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절망에 가까운 심정이 되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실 이렇게 암울한 현실을 직면할 때,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없는 거 같아 착잡하고 무기력하게만 느껴질 때, 우리는 암울한 현실을 외면하고 모른 척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일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마음을 내어 결국에는 전시장을 찾은 우리는 십대여성인권센터가 10년간의 활동을 통해 아동·청소년이 더 이상 성착취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꿋꿋하게 걸어온 그동안의 여정을 마주하며 마음 한편에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나는 무얼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품게 됩니다. 전시는 끝났지만 질문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을 줄이기 위해, 피해를 겪고 힘들어하는 아동·청소년이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