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국회의원(정의당) 추천사
절망이 깊은 만큼 우리의 희망은 강렬하다.
안녕하세요.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입니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십대여성인권센터와 국회여성아동인권포럼, 권인숙 의원실이 함께 주최한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전이 열렸습니다. 전시의 개막을 축하해야 하는 자리이지만 저를 포함해 그 자리에 모인 누구도 쉽게 축하의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이 전시는 달라진 현재를 보여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법이 마련되었음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폭로하는 자리, 이토록 달라지지 않은 현실 앞에 함께 싸우겠다고 외쳤던 ‘당신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8년, 이화여대 대산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십대여성인권센터가
그러나 3년여가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묻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는 여전히 수많은 가해자들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새로운 수법을 동원해 아동·청소년들의 성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성착취 피해아동·청소년들은 아직도 강고한 사회의 낙인 속에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며 보호와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홀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로 집중되었던 아동 성착취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흩어질대로 흩어졌고, 정치권에서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없다’는 노골적인 주장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앞에 우리는 절망하고 분노합니다. 이 절망과 분노는 정당합니다. 이 이상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지 하늘에 주먹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 역시 정당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전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느끼는 절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일이고, 그런 절망 속에서도 어째서 우리가 희망으로의 전진을 포기할 수 없는지를 이야기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 하나하나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가해자들의 목소리는 지금껏 우리가 싸워온 상대가 무엇이었는지를 마음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나에게도 천 개의 마음이 있어요’를 비롯한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회복의 과정에서 만든 작품들은 사회와 언론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낙인찍힌 납작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온전하고 존엄한 인격체로서 이들이 가진 수많은 감정과 경험, 삶에 대한 바람을 전해옵니다. 이들의 더디지만 꾸준한 회복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따라가다보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절망과 좌절의 이유임과 동시에 우리가 주먹을 꼭 쥐고 더욱 열심히 함께 싸워나가야 할 이유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십대여성인권센터와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들의 두 번째 전시인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도록 발간을 맞이해 우리 사회의 동료시민이자, 한 여성이자, 정치인으로서 저는 다짐합니다. 그 어떤 절망이 우리의 무릎을 꺾이게 한다 해도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들의 곁에 있겠습니다. 우리가 끝없이 상처받으면서도 계속 싸우는 이유는 지킬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키는 것은 부당한 성착취 피해로 고통받는 아동·청소년들의 삶이자 우리 자신의 삶이고 이 사회가 그래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절망을 똑바로 들여다볼 용기를 주는 이 전시와 알찬 도록을 만들어주신 십대여성인권센터와 모든 관련자 분들, 무엇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준 피해 아동·청소년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깊이 절망하는 이유는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전시는 결국 우리의 강렬한 희망에 관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