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가 닿기를
이영주 기획자
2022년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 두 번째 이야기 전시 기획을 제안 받았을 때 조금은 의아했고 조금은 막막했습니다.
2018년 첫 전시를 열 때만 해도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이란 말이 낯설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성착취 피해를 당하는 아동·청소년이 이렇게나 많다고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Here I am”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야 했습니다.
첫 전시로부터 4년이란 시간이 흐를 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사이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온라인 성착취 범죄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아청법 개정으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은 더 이상 범죄 가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전시를 준비하며 최근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의 양상과 실태를 살펴보며,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을 거란 막연했던 기대는 커다란 절망으로 변했습니다.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범죄의 기술 역시 교묘하게 발전시켰고, 아동·청소년을 향한 성착취 범죄의 마수는 아주 일상적인 공간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피해 아동·청소년의 존재를 세상이 모두 알게 되었는데도 왜 바뀌지 않은 걸까. 법 제도가 바꾸었는데 현실은 왜 그대로일까. 왜 오히려 더 악화되었을까. 질문하고 또 질문하며 얻은 답은 바로 ‘나’였습니다.
여전한, 오히려 더욱 악화된 아동·청소년의 성착취 피해 현실 뒤에는 사회면 한줄뉴스를 무심코 쓱 훑어보고 지나치는 내가 있었습니다. 피해 아동·청소년을 여전히 나와는 상관없는 특수한 조건의 누군가로 인지하는 내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현실에 대해 책임감은커녕 관련성조차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 방관자인 내가 있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피해 아동·청소년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든 없든 우리사회 아동·청소년이 처한 지금의 위기에는 온 마을, 즉 나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 두 번째 이야기는 그런 ‘나’들을 호명하고자 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두 번째 전시의 제목은 방관자로 숨어 있던 나를 부르는 목소리입니다. 이 목소리가 나에게 가 닿고 나를 움직일 수 있다면, 진짜 변화는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일주일 남짓한 전시를 꼼꼼히 기록한 이 책 역시, 당신에게 그렇게 가 닿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