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는 현실

그 놈 목소리



한글을 떼기 전부터 스마트폰이 익숙한 세대들이 등장했다. 10대들에게는 손 안의 온라인 공간이 오프라인 대화보다 익숙하고 편하다. 익명성에 기댄 온라인 공간은 미처 타인과의 경계와 관계의 윤리를 습득하기도 전에 낯선 타인을 만나는 주요한 매개가 되었다.

주의 깊게 관찰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아동·청소년의 손바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 나오는 끔찍한 뉴스를 보며 혀를 끌끌 차면서도 정작 내 주변의 아동·청소년들이 숨 쉬듯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온라인 공간에 대해서는 기가 찰 정도로 무지하다.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 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무지한 아동·청소년이 타인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온라인 공간에서 시작된다. 무명 천 조각이 겹겹이 늘어져 시야를 가리고 있는 답답한 터널을 지나다보면 실제 온라인 공간에서 성적 목적을 가지고 아동·청소년들에게 접근하여 길들이는 성인 남성 성착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떻게 아동·청소년들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힌다. 그 놈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불쾌해져 이 답답한 터널을 빨리 빠져나가고만 싶다.

그러나 우리는 들어야 하고 알아야 한다. ‘온라인 그루밍’이라는 평범한 말이 얼마나 끔찍한지. 아동·청소년들의 일상을 보내는 환경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런 환경에서 우리 아동·청소년들은 얼마나 상처받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