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교수(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 도록 추천사
작성자 조진경 게시일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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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교수(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추천사
 

나는 2018년 첫 번째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展의 감격을 여전히 기억한다. “여기 우리가 있다 Here I am”이라는 10대 성착취 피해 여성의 당사자 선언에 관람자들은 “여기 우리가 있다 Here We are”라며 ‘연대’와 ‘지지’로 응답했다. 성착취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과 이런 구렁텅이에 수많은 10대 여성을 밀어 넣었다는 미안함, 그리고 함께 이런 현실을 변화시켜내자는 각오들이 빽빽하게 포스트잇에 채워졌다. 이렇게 첫 번째 ‘오늘’展은 전시자와 관객 모두를 정치화된 감정으로 연결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상황의 여성들의 삶은 더 깊은 고립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서로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무관심의 세계에서 살았다. 그 사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니다. 십대여성인권센터를 중심으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매우 어려운 싸움이 있었고, 이제 아동과 청소년은 성착취 피해의 보호 대상이 되었다. 동시에 우리가 목격한 것은 더 정교해진 착취와 유혹의 기술이다. 이제 집 밖의 거리뿐만 아니라, 내 방의 컴퓨터에서, 손에 쥔 핸드폰에서 이뤄지는 ‘접속’은 놀랄만한 집요함으로 아동과 청소년의 몸을 탐닉한다. 가해자들은 저기 먼 곳에 있을법한 이탈자나 성적 공격자가 아니라, 또래 오빠이며, 알바업체 사장이며, 옆집 아저씨다. “그 놈”은 목소리로, 돈으로, 몸으로 어디서나 존재한다. 십대 여성은 우리 모두처럼 ‘성적’인 존재다. 신체적인 변화에 민감하고, 성적으로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고, 성적 욕망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원하는 안전하고, 쾌락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성인 됨의 과정에 도달하기도 전에, 10대 여성은 성적인 것은 고통이며, 착취라는 것을 먼저 배우고,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며 삶의 선택권을 박탈당한다. 자기 삶의 다른 선택지들이 나름 많다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혼란과 고통에서 많이 아파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4년간 놓치고 있던 또 다른 현실은 성착취를 당한 10대 여성의 성장이다. 이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수호천사 인형을 만들며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그리고 또 다른 피해를 막아낼 결연한 행동가가 되어, 성착취 해결 방안을 제안하며, 자신의 방황과 고통에 마음 아팠을 부모와 친구들을 위로한다. 또한, 이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희망을 직조해 가는 예술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展에서 이런 오늘을 맞기 위해 숨죽이고, 흐느끼고, 자해했던 10대 여성의 모습을 본다. 숙연함과 희망은 동시적 감흥이다.

성착취에 맞서 싸우는 운동은 한, 두 명의 정치 지도자나 운동가에 의해 이뤄낼 수 없다. ‘오늘’展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정말 많은 시간, 정성, 참여의 과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10대 당사자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경험 나누기와 창조의 과정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들의 치유 여정에 함께 한 어머니와는 손을 잡고 싶었다. ‘오늘’展에는 헌신적인 예술상담치료사이며 심리지원단장인 김동심 선생님의 넓은 품이 있었다. 어려운 성착취와의 싸움을 뱃심 두둑하게, 의연하고 맹렬하게 해 온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조진경 대표와 활동가들은 언제 봐도 든든하고, 동시에 안쓰럽다. 그리고 2022 ‘오늘’展을 이 시대의 가장 의미 있는 전시로 승화시킨 이영주 기획자와 박준석 설치작가가 있었다. 기획자, 예술가, 상담가, 활동가, 그리고 당사자 10대 여성과 부모들이 끌어모은 힘, 신념, 신뢰, 감정, 소통, 참여가 ‘오늘’展을 가능하게 했다. 

세대를 연결하며, 활동과 예술, 힘주기와 힘내기를 횡단하며 이뤄낸 ‘오늘’展이 단기간의 전시로만 끝나지 않고, 도록 발간을 통해 기록되고, 공유되고, 확산될 수 있어 정말 기쁜 마음이다. ‘오늘’展의 도록이 전국의 도서관에 배치되고, 학교, 공공 기관, 기업에서 교육 교재로 활용되기를 고대한다. 

‘오늘’展은 성착취 없는 미래가 도래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제 한국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천 개의 마음으로 천 가지의 미래를 상상하며 살게 하자.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불온한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 아닌, 우리 사회의 활력있는, 수많은 미래를 그려나가는 존재로 존중받게 하자. 이들이 끔찍한 폭력과 돈벌이의 수단으로 성을 경험하게 하지 말자. 그리고 성산업과 성착취가 사라질 수 있게, 말하고, 소리치고, 감시하고, 단결하자. 2022년의 ‘오늘’展은 생존자들이 열어가는 저항과 희망의 세계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우리 모두, 더는 숨을 곳이 없다. ‘방관자’도 될 수 없다.

‘오늘’展 은 한국 사회의 ‘오늘’의 모습이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로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성찰하며, 용기를 내어보자. ‘오늘’展은 성착취 없는 새로운 공동의 세계를 열어가자고 제안한다. 도록은 이런 세계로 인도하는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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