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1호, 기계공업의 산실
인천기계산업단지를 기록하다
작성자 미추홀학산문화원 게시일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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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 총괄이사
유재경 (1969년생)
1991년 7월 입사해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 총괄이사로 근속 중이다. 조합수익사업, 기업 지원사업, R&D, 정부위탁사업, 원부자재사업 등 조합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에 입사하다

저는 1991년도 7월에 입사했어요. 군대 입대하기 전에 취업했던 회사가 있었고, 제대 후에 복직하려고 했을 때 회사가 부도났습니다. 이때 지인께서 추천을 해주셔서 입사하게 됐죠. 저는 원래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기계 분야에 대해서는 조합에서 행정업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됐어요.

입사 당시 맡은 직책이나 업무는 무엇이었나요?

입사 당시 조합의 직원 구성은 나를 포함해 남자 직원 2명, 여자 직원 2명으로 총 4명이었습니다. 당시 조합에서는 공무원 직급 체계를 도입해서 서기보, 서기, 주사 등의 직책을 사용했는데 내부적으로 주임 등의 명칭 사용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하며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본부장을 역임하면서 현재 총괄이사 직책에 이르렀습니다.
입사했을 당시에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모두 퇴사하고 현재 저밖에 안 남았어요. 그리고 한 1~2년 차 나는 직원이 있는데, 그 직원 같은 경우는 93년도 입사해서 현재 저랑 같이 오래 일한 직원입니다. 1993년에 입사한 한 여직원은 현재 부장으로 함께 오랜 기간 조합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근무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 따로 있었나요? 근무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입사 당시 조합의 근무 시간이 동절기에는 9시부터 5시까지로 당시 공무원들의 근무 시간 체계를 준용해서 조합이 준공무원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연장자 선배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사회 초년생으로서 성장했지요. 
조합 사무실은 공단 건물 내에 있었습니다. 공단 여직원들과 조합 여직원들이 함께 근무했어요. 3층에는 예비군 대대본부가 있어 회식 시 함께 어울리는 등 친밀한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사무 환경은 전동 타자기를 사용했어요. 1991년에 컴퓨터를 도입하면서 전산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큐닉스 프린터 한 대의 가격이 약 300만 원, 삼성컴퓨터는 16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였는데 프린터나 컴퓨터를 구입하면 제조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교육은 1992년에서 1993년경에 이루어져 조합의 전산화와 업무 효율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받으셨던 월급 혹시 기억하세요?

잘 알죠. 1991년 7월 입사 당시 첫 월급으로 30만 원을 받았습니다. 입사 첫 달에 근무일을 한 달을 채우지 않아도 조합의 규정에 따라 5일 이상 근무 시 한 달 치 급여를 지급해서 30만 원을 받았습니다. 당시 상여금은 기본급의 800%인데 연간 총액이 약 960만 원에 달했습니다.
1991년 당시 최저임금이 시간당 820원, 월 209시간 기준으로 약 171,380원이었지요. 같은 해 삼성전자 신입사원의 월 급여는 65만 원에 상여금은 연간 800%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월급과 상여금 수준은 업계 평균과 비교해 적정한 수준이었지요. 조합의 재정적 안정은 주로 단체수의계약 제도를 통한 수익 창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익 구조 덕분에 조합은 직원들에게 좋은 처우를 제공할 수 있었고, 현재의 조합 회관을 마련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과 성과로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은 2022년 창립 60주년을 맞아 기념 현판을 제작했습니다. 

경기지역중소기업융합지원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 상징물
그 당시에도 직원들 처우가 좋았네요. 처우를 좋게 해줄 만큼 재원이 있었을 테고 그 재원은 협동조합의 성과일 텐데요. 협동조합에 가입했던 기계 업체들이 회비를 성실하게 냈다는 건가요?

조합원사의 월 회비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면 조합원사 사업장 종업원 수 기준으로 회비가 정해져 있어요. 회비는 1인에서 5인은 2천 원, 6인부터 12인은 3천 원, 11인부터 20인은 5천 원, 20인 이상부터 7천 원, 대기업이 1만 원으로 월 회비는 크지 않았습니다. 
반면 우리 조합의 주요 수익원인 단체수의계약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협동조합이 공공기관과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조합원사에 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조합은 이러한 계약을 통해 상당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한 해에 최고 1,500억 원 규모의 수의계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수익 구조 덕분에 조합은 직원들에게 좋은 처우를 제공할 수 있었고, 현재의 조합 회관을 마련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지요.

기억나는 단체수의계약 물품이 있으신지요?

조합은 단체수의계약으로 주로 취급했던 품목은 항온항습기와 공기정화기가 있었고, 이러한 장비들은 주로 한국통신본부(현 KT)의 기지국 전산실에 설치되어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수(水)처리 장비도 주요 계약 품목 중 하나로 하천이나 정수장에서 물을 정화하여 주택가로 공급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기계들이 포함되었습니다.
단체수의계약 제도는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특정 품목을 공공기관이 수의계약을 통해 우선 구매하도록 한 제도로 1965년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운영 과정에서 지역 연고를 중심으로 계약자를 선정하는 불공정거래 등 부작용이 발생해서 2007년부터 폐지되었습니다. 이 제도의 폐지는 중소기업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조합과 조합원사들은 새로운 판로 개척과 기술 개발로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이사회도 있었고요.

그렇죠. 우리는 문제는 없었지만 다른 업종에서 문제가 터지니까 따라갈 수밖에 없었어요. 제도가 없어지고 2007년부터 시행된 직접생산확인 제도는 중소기업이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이는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에 대해 공공기관이 중소기업과 계약을 체결할 때 해당 기업의 직접 생산 여부를 확인하도록 의무화한 제도이지요. 기업이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조합은 제출된 서류를 검토해서 적합 여부를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온라인에 결과를 등록해 다음 날 확인서가 발급되는 방식이지요. 
또한 조달청 우수제품 지정제도는 기술 및 품질이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을 대상으로 엄정한 평가를 통해 우수제품으로 지정하는 제도입니다. 우수제품으로 지정된 제품은 국가계약법령에 따라 각급 수요기관에 우선 공급할 수 있지요. 
신기술인증(NET)과 신제품인증(NEP) 제도도 운영했지요.  NET는 국내 기업이나 연구기관, 대학 등에서 개발한 신기술을 조기에 발굴해서 우수성을 인증하는 제도이고, NEP는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된 기술 또는 이에 준하는 대체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인증하고, 제품의 초기 판로를 지원하는 등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이러한 제도들은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을 통해 공공조달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서 발 빠르게 대응한 기업들은 초기 지정과 수의계약을 통해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이 로또와 같이 일부 기업에게만 큰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로 인식되는 점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 과거와 현재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의 이사 과정이 궁금합니다.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은 1962년 4월 설립되어서 경기·인천지역의 기계산업 발전을 선도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인천 중구 항동에 있다가 이후 인천기계산업단지로 이전했습니다. 또 1997년 4월 공단 본부에서 길병원 사거리에 있는 신세계투자신탁 빌딩으로 이전했지요. 같은 해 IMF 경제 위기로 신세계투자신탁이 퇴출되면서 1년 뒤 남동공단 본부 3층으로 다시 이전했습니다. 1998년 IMF 위기 이후 경매로 나온 현재 부지를 확보해서 자체 회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부지 전체가 기계공업협동조합 자체 건물인가요? 

그렇지요. 현재 자체 부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요. 임대 수익으로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정부 R&D 사업 등 다양한 지원 사업에 참여하여 회원사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이 기계산단 내에 같이 있으면서 사람과의 관계가 돈독했을 것 같아요. 62년에 협동조합이 설립되었을 때도 유대관계가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설립할 수 있었던 동기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인천기계산업단지는 1965년 인천 도심에 산재한 중소기업형 기계공장을 집단화해서 조성된 민간공업단지입니다. 이러한 집단화는 소음, 진동, 악취 등 도시 공해를 방지하고, 계열 분업화를 통한 경영 합리화를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조합은 이러한 산업단지 내 회원사들과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공동 사업과 협동화 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유대관계가 지역 기계산업의 발전과 회원사들의 복리증진에 기여한 배경이지요. 이런 유대관계가 있었기에 2022년 창립 60주년을 맞아 조합원사와 함께 기념행사를 하고,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현판식 기념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조합의 역사와 발전을 기념하는 중요한 상징물이지요. 
62년 협동조합 설립 당시 남아 있는 사진이 있나요?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의 1962년 설립 당시 사진은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사진 기록을 남길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합의 초창기 사무소는 인천 중구 항동에 자가 보유 건물을 갖고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시기의 건물 사진이나 관련 자료는 현재 찾을 수가 없어요. 
조합의 역사적 자료로는 공단 회관에서 회의하는 사진들이 일부 남아 있고, 설립 인가증은 누렇게 변한 사본 형태로 발견돼서 현재 액자에 보관 중입니다. 인천기계산업단지의 조성 과정이 상세히 기록된 앨범도 발견돼서 보관 중인데, 당시 산업단지 조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기계산업부문 협동조합 1호
산업 부분에서 협동조합 1호로 인가받았는데, 1960년대 초에 협동조합 설립 당시 배경을 자세히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1960년대 초 대한민국은 6·25 전쟁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산업화를 추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1961년 12월 27일에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은 중소기업인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해서 공동 사업을 추진하고, 경제적 지위 향상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각 지역에서 업종별로 협동조합 설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지요.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62년 4월 28일에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경기도지사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인천시는 경기도에 속해 있어서 조합의 주소지는 '경기도 인천시 중구 항동'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조합 설립의 주요 목적은 ‘기계공업 분야 중소기업들이 협력하여 공동 구매, 생산, 판매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술 개발과 정보 교류를 촉진’하는 데 있었습니다. 조합 설립으로 회원사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지역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조합의 정관에는 이러한 운영 목적과 사업 내용이 상세히 명시되어 있었어요. 조합 활동의 지침인 것이지요.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이 기계산업 부문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협동조합이 되었습니다. 협동조합 설립으로 1960년대 인천지역의 공업화와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셈입니다. 지역 중소기업들의 상호 협력과 발전을 위한 기반이 되었으니까요.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 78, 79년도 창립총회 관련 사진 앨범 및 인천기계공업관리공단 조성 초기 사진 앨범
이름의 변천사도 있었다고요.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은 설립 이후 지역 행정구역이 바뀌고, 조합원 구성에 따라 여러 차례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1962년 조합 설립 당시 인천시는 경기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경기도기계공업협동조합'이었습니다. 1981년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조합의 명칭도 ‘인천경기기계공업협동조합’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015년 조합원 수의 지역 분포를 고려해서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으로 다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이때 경기도 지역의 조합원 수가 인천지역보다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이 이루어졌지요. 2021년 경기도 북부 지역에 개소했던 본사를 폐쇄하고, 본점을 다시 인천으로 이전했습니다.
명칭 변경 과정에서 ‘경인기계공업협동조합’이라는 이름도 사용되었으나 수도권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서울기계공업협동조합’과 구분하기 위해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명칭의 변천사는 조합의 역사와 지역적 변화를 반영하며 조합원들의 의견과 지역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결과입니다.

설립 당시 협동조합의 기능과 역할이 지금과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변화해 왔나요?

설립 초기(1962년)에는 주로 조합원사의 생산 제품에 대한 판로 개척과 원부자재의 공동 구매를 통해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였습니다. 관련 업종의 애로사항을 정부에 건의하고, 기업들을 대표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단체수의계약제도를 도입하여 조합을 통한 공공기관과의 계약 체결 및 조합원사에 대한 배정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조합원사들의 매출 증대와 기술 개발을 촉진하게 된 배경이지요.
2000년대 이후에는 정부 지원사업에 적극 참여해 조합원사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습니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는 중소기업청의 인력 지원 사업을 통해 재직자 교육 훈련, 사내 동아리 학습 지원, 현장 전문가를 통한 경영, R&D 컨설팅 등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청년 채용 패키지’와 ‘청년 성공 채용 패키지’ 등의 사업으로 인력난 해소와 청년 취업 연계도 지원했지요. 
이러한 변화를 통해 조합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조합원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과 공동 사업을 추진하며, 지역 경제와 기계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조합원사가 초기에는 150개에서 300개로 늘었다가 2023년도에는 많이 줄었는데 이유가 뭘까요?

91년도 기준에서 2023년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변화된 거는 단체수의계약제도가 없어지면서 협동조합이 분리된 부분이 있어요. 신규 가입이라는 것도 직접 조합을 소개하면서 가입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현재는 직접 생산 조사 업무를 안 하고 있는 부분에서 회원 수가 좀 줄어드는 부분이고요. 조합원사의 자격 기준을 보면 업무 구역이 있는데 ‘경기, 인천 지역 내에 기계 제조업을 영위한 자가 이제 조합원사의 자격이다.’라고 되어 있어요. 사업을 하다 보면 기존에 가입했던 분들이 본사를 지방으로 옮기고 하시잖아요. 그러면서 올해 14개 업체 정도가 탈퇴를 하게 된 거죠. 그래서 300여 개 조합 수를 계속 고수하고 있다가 200여 개 조합 수로 떨어졌어요. 경기도하고 인천하고 비교했을 때 300개를 기준으로 하면 220개가 경기도, 80개가 인천이에요. 현재 기계공단에 입주하고 있는 조합원사는 현재 3개 밖에 없어요. ‘태진기연’하고 ‘대금지오웰’이 원조 업체이고 그다음이 2016년도에 신규 가입한 ‘미래정공’이에요.

그렇다면 조합원사를 늘리기 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은 조합원 수 확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합원사 방문을 통해 직접 홍보를 하고, 조합의 활동과 혜택을 알리는 동영상을 제작해서 배포하고 있지요. 전시회를 통해 조합의 인지도를 높이고자 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어요. 
그럼에도 언론 매체를 활용한 홍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지요. 특히, 공공기관과의 계약을 원하는 업체들에게 조합의 추천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추천 제도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신규 조합원 가입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2022년부터는 이러한 추천 제도의 영향으로 조합에 가입하는 업체들이 증가하고 있어요. 
이런 노력들이 있어 지속적으로 조직을 강화하고, 조합원사 간의 네트워크를 확대하거나 상호 협력을 도모하고 있지요. 

위기를 돌파하다!
입주 초기에 협동조합 부지나 사무실, 창고가 좀 애매해서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조합은 1962년 설립 이후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특히 1971년에는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려던 고철 3천 톤이 운송 중 선박 고장과 선장의 이탈로 몬드라스 공화국에서 압류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 사건으로 조합은 물품을 받지 못하고, 한일은행의 지급 보증서에 따라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 선장은 잡혔나요?

당시 선장은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선박이 몬드라스 공화국에 정박 중이었을 때 선장이 배를 버리고 도주한 사건이지요. 선박은 현지에서 경매로 처분되고, 조합은 물품을 받지 못한 채 금전적 손실을 입었어요. 이 사건으로 조합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어요, 이 사건은 10년간의 소송 끝에 1981년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아 조합의 재정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조합은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중산동에 있던 건물까지 매각해야 했지요. 

2022년에 서고 정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양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1997년 4월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은 공단 사무실에서 신세계 투자신탁 빌딩으로 이전하면서 당시 보관 중이던 서류들을 박스에 담아 옮겼어요. 이후에도 남동공단 본부 등으로 여러 차례 이사를 했는데 서류들을 박스나 캐비닛에 보관한 채로 옮겼어요. 
2022년 지하실 바닥에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 지하실 방수작업을 새로 하고, 모빌랙을 설치해서 서류를 정리하게 되었지요. 이 과정에서 오래된 서류들을 정리하며 과거의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역대 이사장님의 사진을 정리하던 중 2대 이사장님인 장만순 이사장님의  사진이 누락된 것을 발견했지요. 이를 찾기 위해 주차장에 펼쳐놓고 과거의 내용들을 확인하며 필요한 자료들을 찾을 수 있었지요. 서류 정리 작업을 통해 조합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중요한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보관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 지하 문서보관함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 지하 문서보관함 자료 수집 현장 사진
인천기계산단의 옛 모습을 보다
입사 당시 기계산단의 모습이나 분위기는 어땠나요? 현재에 이르러 과거와 많이 달라진 점이 있는지요.
기계관리공단본부를 방문했었던 2017년도, 18년도 이때인데 주차장으로 사용됐던 부분이 지금은 창고로 바뀌었더라고요. 또 많이 노후가 됐고 제가 태어났을 때 지어진 건물이니까요.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는 1층 한 공간을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입사하자마자 5일 정도 있다가 2층으로 이사를 가게 됐어요. 공간이 너무 좁은데 외부에서 손님들이 많이 오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2층으로 올라갔던 거지요. 사실 그때도 건물 내부가 오래됐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주변에 공단 매점이 하나 있었고요. 주유소 삼거리 있죠. 그 바로 횡단보도가 있어요. 거기 건너면 그 코너에 구멍가게보다 작게 매점이 있었어요. 저희 사수는 500원짜리 즉석 복권을 많이 샀어요. 그리고 이사장님 결제받으러 갈 때면 자전거에 서류들을 싣고 매점을 통해 내려가는 길로 다녔어요. 이사장님이 오시면 하루 종일 결제하셔야 했는데, 서류를 갖다 놓고 다음 날 찾으러 가고 했었죠.

지금은 동구 운동장이나 고가대로가 있는데요. 그 당시에는 어땠나요?

1991년 입사 당시 인천기계산업단지 주변에는 공원이나 체육 시설이 없었습니다. 공단 본부 인근에는 작은 매점과 청소차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공터가 있었고, 주변 환경은 다소 낙후된 상태였습니다. 이후 도시 개발과 재생 사업을 통해 동구 지역에는 동구 구민운동장과 같은 공원 및 체육 시설이 들어서고, 도로망도 개선되었구요. 

과거 바닷물이 왔다 갔다 하는 갯골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땅이 염전이었다거나 그 당시 오래 계셨던 분들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인천기계산업단지가 위치한 도화동 일대는 과거 염전이었던 지역을 매립해 조성되었어요. 1965년 10월 19일 이 지역은 건설부 고시 제1915호에 따라 공업지역 및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되었지요. 이후 1967년 11월 23일 고속도로 연변 구획정리사업 시행령에 따라 본격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졌어요. 이런 개발의 배경에는 ‘인천 도심에 산재해 있던 중소기업형 기계공장들을 집단화하여 소음, 진동, 악취 등 도시 공해를 방지하고, 계열 분업화를 통한 경영 합리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천상공회의소와 기계공업 관련 기업들이 주축이 되어 민간 주도의 공업단지를 조성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혹시 본부장님 계실 때는 비 많이 오거나 태풍 오거나 이런 일은 없었나요?

인천기계산업단지 주변은 지대가 낮아 장마철에 일부 지역이 침수되는 경우가 있었지요. 특히 인천교 인근은 장마철에 침수 피해가 컸어요. 그러나 기계산업단지 내의 공단본부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공장들은 슬레이트 지붕을 사용한 곳이 많았어요. 비가 많이 오면 지붕에 구멍이 나기도 하고, 누수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지요. 지대가 낮은 지역에선 물에 잠겨 피해가 더 컸어요. 

일 끝나고 퇴근길에 매점 좌판에 모여 술 한잔 기울이고 하셨다는데 조합에서도 같이 어울리셨나요?

과거에는 직원들이 퇴근 후 경비원 아저씨와 함께 경비실에서 술을 마시며 친목을 도모하곤 했습니다. 겨울철에는 연탄난로를 피워놓고 경비견인 누렁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요. 경비실 옆에는 재래식 화장실과 수돗가 그리고 3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어요. 조합원사에서 회의나 업무로 방문할 때는 주차 공간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공단하고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고요.

과거 인천기계산업단지 내에서 조합 직원들과 공단 직원들은 함께 어울려 회식하고, 여직원들은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휴식 시간에는 간단한 놀이를 즐기곤 했지요. 사수분이 외출 시 매점에서 분식을 사 오기도 했지요. 회식 장소로는 인천우체국 옆에 있던 국일관 나이트클럽을 자주 이용했어요. 이런 친밀한 교류는 직원들 간의 유대감을 높였지요. 이사할 때 공단 직원들과 헤어지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이후에도 당시 함께했던 직원들과 종종 연락하며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대되는 기계산업 유망주와 앞으로의 계획
앞에 기계산단 인터뷰를 다녀본 결과 대다수가 어렵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협동조합에서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 있는지요.

기계산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분야로 지속적인 발전과 혁신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현재 여러 조합원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특히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합니다. 젊은 층이 기피하고 있고, 고령화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지요. 인력난은 생산성 저하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요. 특히 중국의 기계산업은 구조고도화와 기술 혁신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일부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이미 한국을 추월한 상황입니다. 국내 기계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더욱 시급한 과제예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협동조합에서는 여러 가지 방안을 고려 중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소기업중앙회의 인력 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해서 조합원사들의 인력 수급 문제, 특히 젊은 인재들의 유입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기술 혁신 및 고도화 지원을 위해 조합원사들이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생산 공정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지요. 조합원사들의 해외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필요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구요. 정부에 기계산업의 현안과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건의하는 등 산업 발전에 필요한 정책적 지원과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성장 토대가 기계인데 중국에서 또 잘 만들어요. 지금은 중기 제품으로 보호를 받고 있으니, 공공기관에서 중소기업 제품 육성을 위해 사줘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제도가 없어지면 이 시장이 무너져 중국이 다 장악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거의 동등한 수준에 와 있어요.

유사한 형태의 협동조합을 설립하겠다는 흐름은 없나요?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설립을 추진할 때 중소기업중앙회는 유사 업종의 기존 조합과의 이해관계 및 중복 여부를 검토합니다. 새로운 조합의 설립이 기존 조합과의 충돌이나 불필요한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요. 우선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과거 검단 지역에서 기계 부품 관련 협동조합이 있었는데 3~4년 후에 폐업했어요. 협동조합 운영이 쉽지 않은 것이지요. 
최근 인천 로봇랜드 조성은 2007년 국책사업으로 시작되었는데 17년간 지연된 사업이지요. 인천도시공사(iH)가 주도하고 있어요. 내년 상반기에는 청라국제도시 내 72만㎡에 대한 기반시설 공사가 착공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기계산업 분야의 협동조합은 로봇 및 드론 산업과 연계 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조합이 인천 로봇랜드 단지에 입주해서 협동화 사업을 추진하거나, 드론 산업의 성장에 맞춰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조합에 대한 입주 자격 요건, 조합원사에 대한 로봇 관련 제조업으로서의 명확한 사업 영역과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AI 알고리즘 시스템 개발 중이신데 이건 어떤 사업인가요?

조합원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부자재인 모터와 냉동 장비의 고장을 사전에 예측해서 AI 알고리즘을 활용한 예지보전 시스템을 개발 중입니다. 이 시스템은 장비의 상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분석하지요. 잠재적인 고장 징후를 조기에 감지합니다. 사용자에게 경고하고,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림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사전 조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지요. 
유사한 사례로 아하랩스의 산업용 AIOps 플랫폼인 LISA는 진동 센서 데이터를 활용해 모터의 이상을 조기에 감지하는 AI 모델을 제공하고 있어요. 성균관대학교 AI-PHM 연구실에서는 스마트 제조를 위한 진단 예측 기술과 주요 생산장비의 예지보전(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태를 미리 예상하고 적절하게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을 위한 핵심 알고리즘을 연구 개발하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 조합은 이러한 기술 개발로 조합원사들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장비의 신뢰성을 높이고 운영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교육이라는 걸 하고 계시는데요. 그건 어떤 내용인가요?

조합에서는 차세대 경영인들의 역량 강화와 네트워크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교육은 조합원사의 2세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지요. 2022년부터 시작했어요. 이 교육은 성공적인 가업 승계를 지원하고, 차세대 경영인들의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합니다. 주요 내용으로는 경영 선진사례 벤치마킹, 기업 방문을 통한 현장 학습, 세무 및 법률 관련 교육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세 경영인들이 가업 승계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지요. 
특히, 가업 승계 시 발생하는 세금 문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요.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 등을 상속인에게 승계할 경우 최대 600억 원까지 상속세 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인터뷰 소감도 부탁드립니다.

인천시는 노후 산업단지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다양한 구조고도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이런 사업은 산업단지 내 입주 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촉진하고, 기업지원 서비스 강화, 문화·복지·편의시설 확충으로 산업단지의 경쟁력을 높여 근로 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동스마트산단 조성 사업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지식서비스산업을 융합하여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해 제조공정과 제품의 첨단화를 이루고 있지요. 이 사업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근로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거 및 편의시설 확충, 기술 창업과 신산업 육성을 위한 미래형 산업단지 조성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력해서 추진 중인 '스마트빌리지 보급 및 확산 사업'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서 지역사회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균형 발전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혁신 거점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지요. 지역 경제 활성화와 기업 경쟁력 강화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기계공단과 협동조합이 협력하면 산업단지 경쟁력을 회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협의체 구성이 이러한 목표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고, 산업단지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을 함께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 전경
 
시민기록일지
* 면담일시 : 2023년 11월 3일 14시
* 면담, 원고정리 : 조연희
* 면담지원 : 정지선, 박인옥, 양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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