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을 계승하며 세계로 나가다
인천기계산업단지를 기록하다
작성자 미추홀학산문화원 게시일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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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기연(주) 대표

이재장 (1959년생)

창업주인 고 이정열 사장의 뒤를 이어 2대째 주물 설비를 제작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공장 운영을 위해 시대 흐름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으며, 자녀들이 가업을 이어 3대 대물림할 계획이다.

 


태진기연의 시작

창업주인 아버님이 서울대학교 금속과를 나오셨고, 한국기계라고 예전에 대우중공업 거기를 61년도에 입사 후 일본 자동차 회사에 연수를 가셨어요. 그다음에 기획 관리부에서 개발과장을 하셨고, 그다음이 일본 ‘고마쓰’ 회사하고, 그다음에 ‘히타치’하고 같이 기술 제휴를 해서 지게차하고 지금 굴삭기들 있잖아요. 그거를 성사시켰죠. 그때 독일 디젤 엔진 공장 설립을 그때 하셨고, 여기 화수동에 두산인프라코어 공장 있죠. 거기에 주물공장이 있어요. 70년도에는 방위사업 그 부품에 대해서 개발하는 데도 참여하셨어요. 창업하실 때 금속 주물에 해당하는 기계를 만들었어요.

바로 입주하신 게 아니고 처음에 대유공업사에 2년 동안 임대했다고 하셨는데, 바로 들어오지 않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 당시 못 들어오게 된 이유가 경기 침체가 가속해서 관리공단에다가 임대를 줄 수밖에 없어 진행된 거죠. 원래 공단으로 하면 임대를 못 주게 돼 있을 거예요. 대유공업사도 기계 설비 분야였어요. 78년도에 입주하면서 태진기연으로 바꾼 거죠. 실제로 이 일을 하다 보니까 공업사로 하면 안 되고 법인으로 해야 혜택이 많다고 해요. 그래서 태진기연으로 이름을 바꾼 거죠. 태진기연 이름은 아버님이 지으셔서 의미는 잘 모르겠네요. 한자 풀이로 크게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지 않았나 싶어요.

언제부터 가업을 이어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가업을 이어야겠다기보다도 시작할 때부터 내가 일을 했으니까. 할 때부터 같이 일하고 그랬거든요. 전공은 기계 쪽이 아닌 인문계 나왔어요. 근데 기계 만드는 거를 좋아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이 적성에도 좀 맞았어요. 처음 시작할 때 너무 어렵고 그래서 도와주러 왔다가 이제 계속 발을 담그면서 가업을 잇게 됐네요.

아버님이 이렇게 물려받는다고 했을 때 반응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아버님은 ‘당연히 물려받겠지.’ 하고 생각을 하셨지. 저 역시 자녀들한테 물려 줄 생각이 있는데, 아직은 이르고 좀 더 있다가. 현장 일 배우러 들어왔다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죠. 자녀들도 가업을 이을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금 함께하는 직원은 몇 분 정도 계시나요?

한 20명 가까이 될 거예요. 기계산단에서 근무하는 분도 있고 경서동은 규모가 더 커요. 경서동 주소는 ‘서구 원전로 37번길 9’, 여기도 산업단지인데 주물단지로 되어 있죠. 아버님이 처음 설립했을 당시에는 직원이 12명 됐는데, 작년하고 올해는 20명으로 가장 많아요.
김종석 반장님이라고 지금은 전무가 됐는데, 근속한 지 40년 가까이 됐어요. 직원을 관리하는데 특별하게 어려운 부분은 없어요. 기본적으로 직원들하고 일용직을 같이 채용하거든요. 그래서 일용직은 인력 회사에서 채용해서 일정 시간 되면 이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가기도 하고 그래요. 직원 채용할 때 어려움은 없는데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죠. 외국인 직원은 아직 채용하지 않았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태진기연 성장과 발전 : 설비시설의 자동화와 환경 분야 특허 취득
인천기계산업단지에 입주할 때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아버님이 그 당시에 근무하셨기 때문에 돈 모은 거 갖고서 땅을 산 거죠. 76년 설립 당시 모습은 그 당시 제가 학교 다닐 때라 잘 몰라요. 개업식 사진이 있는데, 아버님이 영업활동을 하면서 아마 65년도? 64년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창원에 있는 업체에다가 납품해 주고 그랬어요. 옛날에는 설계를 캐드로 하지 않고 설계도를 직접 그렸죠. 이분은 이제 전무님이라고 설계 담당하시는 분이었어요. 한 5~6년 계셨나? 95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계셨던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IMF와 금융위기 때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기 운영에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2008년이면 리먼 사태 말하는 걸까요? 별로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IMF 때는 좀 어려웠죠. 공사를 하는데 이자율이 많이 올라가다 보니까. 그때 진흥주물이라고 주물단지에 있는 업체 거 공사할 땐데, 상당히 큰 공사를 받았는데 적자를 좀 본 것 같아요. 공사하고서 그래서 좀 어려웠지. 지금도 많이 어렵다고 하지만 저희는 그만큼 오래되니까 거래처들이 많이 늘어나서 조금 나아졌죠. 그때하고는 좀 달라요.

초기에는 다 수작업으로 작업하다가 점차 설비를 자동화하였는데 당시 바뀌던 상황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통상적으로 보면 주물 설비 공장들이 수작업들을 많이 합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물건들이 아니고 품종은 많은데 숫자는 작은 물건들이 많다 보니까 자동화시키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그런 것 때문에 수작업을 많이 했지요. 1996년도 이때는 우리가 서브 모터를 써서 로봇같이 조형 작업을 해줄 수 있는 믹스를 개발해 줘가지고 사람들도 좀 덜 들어가고 생산성도 많이 올라갔죠. 주물공장 캐스코드라는 공장에다가 설치를 해줬는데, 이 프로그램 믹서를 그때 개발했어요. 그때부터도 인건비 때문에 자동화에 많이 관심을 갖고 있었지요.

집진기 특허나 악취제거장치 특허는 환경 관련 분야인데요. 이런 환경 관련 분야 특허를 취득한 이유가 있으세요?

이런 부분들은 그렇죠. 이제 우리가 주물 설비 주물공장이니까 거기에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게 집진기가 같이 따라 들어가게 돼 있거든요. 이 당시만 해도 매출이 좀 줄어가는 추세다 보니까 환경 설비 특허를 취득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했죠.
ISO-9001 취득은 품질에 관련된 부분이니까 제품 등급을 좀 올리면서 균일하게 만들려고 취득했어요. 특허를 받고 벤처 등록하면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게 일부 있지만, 실제로 하려면 이제 벤처기업이나 이렇게 Inno-biz를 갖고서 본인들이 찾아서 신청해야 해요. 어드벤테이지가 좀 있다는 얘기죠.

해외 파트너와 협력 확대 
일본과 재생 설비 기술 제휴를 하셨는데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때는 주강 공장들이 CO2 공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CO2 프로세스라고 물유리를 갖고서 하는 공법인데 그 일이 상당히 손도 많이 가고, 일손도 많이 가고, 제품도 아주 지저분하게 나올 때 알파세트라고 하는 공법이 새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알파세트가 뭐냐 하면 주방에서 물건을 경화를 시키는데 알칼리 페놀 수질을 갖다 써서 몰드를 뜨거든요. 모래에다가 수지를 섞으면 딱딱하게 시멘트같이 굳어지는데 CO2는 물유리에다가 CO2 가스를 집어넣으면 굳어져요. 작업성이 좀 좋아져서 이 기술을 일본 업체하고 협정을 맺었죠.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다 만들지 못하고 일본이나 독일, 영국이나 이런 데서 이 기계를 수입했거든요. 그러다가 점점 기술력이 성장하면서 우리나라만 하기에는(공급하기에는) 시장 규모가 작으니까 일본에도 이제 팔 생각하고 카탈로그까지도 만들어놨죠.

2011년부터 수출을 생각하셨다는 건데요. 러시아 모스크바 기계 전시회를 나간 것도 수출을 염두에 뒀는지요.

그건 아니에요. 우리나라에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주물공장에다 발주를 많이 줬다고 그러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기계들을 잘 쓰는데 자기네 러시아 쪽에서는 기계가 자꾸 고장난다고 하면서 30년 전에 설비를 놔서(설치) 새로운 설비를 좀 검토하는 중이라 참여를 할 수 있겠냐고 그래서 참여하게 된 거죠. 러시아에서 영업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어요.
수출은 중국하고 러시아만 하고 있는데, 러시아랑 우크라이나랑 전쟁 중이잖아요. 그것 때문에 좀 문제가 됐죠. 일단은 경제제재 하면서 모든 은행 거래가 중지돼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새로 프로젝트를 하려고 해도 일단은 제약이 되고, 대신 견적 내달라는 요청은 자주 들어오죠. 그러나 실거래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죠. 물건 해주고 돈 받고 하는 거는 큰 지장은 없어요. 단지 이제 신용장 열어주고 우리가 뱅크 개런티 해주는 부분들이 좀 안 되고, TT로 해주는 거는 다 되더라고요. 물건 들어가는 건 상관없어요.

그러면 중국하고 러시아와 거래를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지, 어떤 장점을 보고 선택하셨나요?

정읍에 케스코라고 하는 주물공장이 있거든요. LS그룹하고 삼양사하고 두산중공업하고 같이 합작한 걸로 알아요. 그 세 회사가 투자해서 만든 회사가 케스코예요. 우리나라에서 이름이 있는 대기업 재벌들만 들어가 있는데 그 회사가 중국에 신공장을 지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중국하고 거래하게 된 거죠. 또 한 군데는 아까 얘기한 우리와 기술 제휴한 일본 업체가 중국에 공장 짓는다고 해서 자기네가 일부 기계를 대고, 우리가 기계 만들어서 집어넣고(공급) 해서 수출했고요. 또 일본의 도시바라고 하는 업체가 있거든요. 거기도 이제 일부 기계는 영국에서 들어오고 일부는 우리가 조인트 해서 설비를 집어넣었죠.
중국이랑 거래를 시작한 게 케스코 할 때니깐 2008년쯤인 것 같아요. 러시아는 2014년, 기계가 먼저 들어갔고 그 이후 전시회가 있다고 참여하면 좋겠다고 해서 모스크바 전시에 참여하게 됐죠.

해외 AS 같은 경우 어떻게 하시나요?

거기도 이제 AS 관련 부서가 있으니까 자기네들이 고칠 것은 고치고, 부품들은 우리가 공급만 해주고 있어요. 나가지는 않아요. 근데 나중에 아주 큰 문제가 생기든지 그러면 여기서 사람들 보내겠죠.

국내에도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있는데, 먼저 비즈니스를 맺었던 국내 업체는 어디인가요?

유성기업이 먼저 시작했죠. 신문에도 많이 나오잖아요. 노조가 아주 강성인 자동차 부품업체입니다. 거기에서(유성기업) 큰 프로젝트로 시작했죠. 지금은 아이템이 바뀌면서 좀 멀어졌어요.

파트너사를 확장해 가는 과정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어쨌든 AS도 잘해주고 그러면은 크게 문제는 없는데, 설비 산업이 얘기한 대로 써보고 본인들이 돈을 많이 벌고 그래야지 소개시켜 주지 고장만 자꾸 나면 소개시켜 주겠어요? 소개로 연결이 되는 부분이 처음에는 있었지만 중간에는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영업도 하고 기계적으로 좀 안정돼야지.
거의 내수가 많은데 간혹 큰 프로젝트가 걸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경우는 외국에다 수출하는 거죠. 2022년하고 2023년에 사우디에 수출하는 설비를 만들어서 하다 보니 경서동 공장도 얻게 됐죠. 설비를 수작업으로 하던 걸 로봇화시키는 과정이라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어요.

2019년도에 예산군하고 MOU를 맺으신 게 있던데요. 신소재 일반 산업단지라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예산에서 진행하게 되셨는지요.

우리 거래처들이 경서동 쪽에 많이 있거든요. 경서동서부터 김포 쪽에 업체들도 있어요. 그 업체 중에서 22개 업체가 모여서 주물공장은 될 수 있으면 오지 못하게 각 시도에서 막으니까. 예산에 그 땅을 알아보고 거기에다가 산업단지를 만들자 해서 설립이 됐어요. 그런데 충남도청하고 그 주민들 간에 소송이 걸리면서 표류가 돼버렸어요. 대법원까지 가니까 그때 한 7~8년 걸린 것 같아요. 처음 계약해서 시작하다가 소송 걸리고 나서 보니까 진행이 안 되고, 대법원에서 마지막 판결 받은 게 충남도청이 이겼어요. 그래서 다시 하라고 그랬는데 업체들이 처음에 시작할 때 상황하고 달라져 경기도 안 좋고 하여 못 하겠다고 다 빠져나가고 몇 개 업체만 남아 있어요. 우리도 땅만 사놓은 상태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주물시장의 변화와 대응
주물도 소재가 계속 바뀌었죠?

원래 주물은 그래요. 산업화가 될수록 주물 생산량이 많아요. 전 세계에서 주물을 제일 많이 쓰는 나라가 미국 그다음에 중국, 독일, 일본, 이태리 이렇게 쭉 순서가 되거든요. 우리나라도 주물 소비량이 한 세계 랭킹 8위 정도 돼요. 이태리나 프랑스 정도 수준하고 맞먹거든요. 주물이라는 게 원가 때문에 생기는 거거든요. 철판에 그 모양대로 만들려면 너무 힘드니까 생물을 뽑아 가지고서 하는 게 원가가 더 싸게 먹히니 하는 건데. 한 가지 안 좋은 게 지저분하고 먼지 많이 나고 뭐 이런 부분 때문에 선진국들이 잘 안 하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다 만드느냐? 그건 아니고 싸고 만들기 쉬운 거는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해오고 또 동남아시아에서 해오고. 어려워서 안 되는 물건들은 우리나라에서 하는 거죠.

그러면 하청을 따로 주거나 하지는 않으세요? 일부 부품이라든가 이런 거요.

하청도 해주는데, 지금은 일단 중국에서 들어온 거랑 우리나라에서 하면 단가가 안 맞잖아요. 결과적으로는 하청주고 싶어도 다 베트남이나 뭐 이런 데로 가는 거죠. 그래서 주물은 베트남이나 중국에서 상당히 많이 들어와요.
우리는 주문하는 건 아니고 거기에 들어가는 기계를 만들어 주는 거죠. 우리도 하청을 많이 주죠. 우리 도면으로 해서 다 외주 줘가지고 만들어서 하고 그렇게 하죠. 공장이 작으니까 5 대 5 정도 하청을 주고 있어요. 다 만들기도 어렵고, 또 그걸 하려면 가공도 해야 되고 열처리며 용접도 해야 되는데 그러면 규모만 커지니 실속이 없거든요. 그러니깐 그런 부분들은 외주 처리하는 게 더 싸죠.

기계산단의 현 상황과 앞으로의 대응 목표
기초 산업 분야가 어려워지면서 기계산업단지도 많이 위축됐다고 합니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으신가요?


일단 기초적인 부분은 인건비 때문에 못 하는 곳이 많거든요. 왜냐하면 사람이 없어요. 주물공장 가서 보시면 다 외국인들이예요. 근데 지금은 또 경기가 안 좋으니까 일감들이 다 떨어지고.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지저분한 데서 일을 안 하려고 그래요. 우리 같은 회사들은 사람을 덜 쓰도록 자동화 연구를 많이 하고 있죠.

그러면 정부에서 협력해 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물론 정부에서도 많이 지원도 해주면서 때로는 개발하는 아이템에 대해 지원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환경적으로도 지원도 많이 해주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중소기업들이 돈이 여유가 많지 않기 때문에 환경 설비 같은 경우 투자하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보통 90% 지원해 주고 10%만 자부담 식으로 많이 하고 그러는데 계속 지원해 줘야 되지 않나 싶어요.

가업을 계승한 기업으로 회사에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계신 걸 느꼈어요. 앞으로 계획이나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지금 주물공장 설비들이 소강상태 있어요. 우리가 오랫동안 경영을 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지명도는 있어요. 그렇다고 주물공장 설비가 아주 큰 시장은 아니고 틈새라고 보면 맞아요. 아무나 들어오지도 않고 우리 설비하는 업체들이 몇 군데가 안 돼요. 그중에서도 우리가 제일 규모가 크고 또 인지도가 좀 있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국내보다는 외국 쪽으로 발을 좀 넓혀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시민기록일지

* 면담일시 : 2023년 10월 12일 13시 30분

* 면담, 원고정리 : 조연희

* 면담지원 : 이혜숙, 양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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