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입사한 회사는 88년도 부천 내동에 있는 대청금속이라고 제가 금속과를 나오다 보니까 거기는 알루미늄 중력 주조하는 업체예요. 자동차 매니폴드 이런 금형주조를 하는 업체죠. 거기 근무할 당시 대우종합기계 협력지원팀이라고 있어요. 그 과장님이 대금지오웰(이후 대금이라 칭함)을 소개시켜 주셔서 대금에서 오랫동안 일했죠. 금속 쪽에 있던 사람이 기계 가공이라는 업체를 처음으로 면접을 봤는데 사장님이 일주일 만에 저를 선택해 주시더라고요.
사실은 금속 쪽에 있을 때 제가 도면도 못 봤어요. 원가절감, 원가 분석하는 거 이런 거 전혀 몰랐어요. 기계 가공 쪽에는 전혀 몰랐으니까 면접 볼 때도 쉽게 보지는 않았죠. 왜냐면 내가 협력업체인 대우종합기계 직원한테 소개를 받았는데, 당신이 와서 뭘 할 수 있어 딱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할 말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한번 써보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말씀하십시오. 제가 스스로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입사를 했죠. 처음에 구매로 들어갔다가 한 5~6개월 됐는데 영업 쪽 인원이 확보될 때까지 당신이 두 가지 하시오. 그래서 밖에 나가면 영업사원이고 안에 들어오면 구매 사원이고 그렇게 했었죠.
영업은 주로 신규 아이템 개발이나 신규 업체 개발 그리고 대우종합기계 쪽 유지 관리 이런 업무를 했고요. 상황에 따라서 납품도 했습니다.일하면서 업적이랄 수도 있는 거는, 대우종합기계보다 큰 업체는 개발한 건 없고. 관련된 협력업체 몇 군데 제가 했었는데 주종은 대우종합기계죠. 그리고 구매는 무슨 업무를 했냐면 원가 분석 또 경쟁력 있는 하청업체 개발, 주로 그런 업무였어요. 사실은 제가 대금에 들어가서 도면을 못 봤어요. 우리 대학교 때 4년 동안 알루미늄을 이론적으로 공부를 많이 했는데 알루미늄 소재를 폴리싱 해갖고 현미경으로 조직 보고 하는 실습이었어요. 그러니까 전문대 친구들보다 오히려 실무 쪽으로는 훨씬 떨어졌어. 입사하고 유한공전 나온 친구하고 같이 근무를 했는데 너무 창피하더라고. 진짜 그 친구들은 많이 알더라구요. 그 친구들은 주조 설계도 가능하더라구요. 우리는 주로 이론 쪽으로 공부만 하다가 실질적인 업무에 투입이 되니까 너무 창피하더라고. 그러니까 사실은 지식 기술 이런 것들은 회사에서 배워요. 도면 해독하는 데 한참 걸렸어요.
꿈이 있었어요. 어릴 때 저희가 부유한 집안도 아니고 평범한 집안도 아니고 어머니가 난전을 하셨어요.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소원이 제가 대학 가는 거였기 때문에 머리는 나쁜데 대학 가려고 무지하게 노력했어요. 근데 어머니마저 고3 때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학업을 거의 포기했죠. 그런데 형, 누나가 어머니 소원이 너 대학 가는 거였는데 포기하면 안 된다 해서 그 해 시험 보고 인하대를 가게 됐어요. 인하대 금속과를 왔는데 어릴 때 꿈이 뭐냐 하면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내가 사장 한번 해보고 싶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대한민국에서 죽기는 너무 억울하다. 해외여행을 한 번 하고 싶다. 대금에서 일을 많이 배웠죠. 원가 분석하는 방법, 영업하는 방법 신규 업체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어떤 제품을 생산할 때 그 업체에서 한꺼번에 모든 공정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지 않습니까? 공정이 다르니까. 도금이라든지 연마라든지 여러 가지 공정이 있으니까. 그 업체가 어디 어디 있고 단가 구성은 어떻게 돼 있고. 그러니까 제품을 보고 공정을 짤 수 있는 그런 기술을 대금에서 배운 거죠. 그리고 영업하면서 그 대우종합기계 협력업체들 사람들하고 인맥을 많이 쌓았죠. 거기서 구매 영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제가 기계 사업부를 총괄하게 됐어요. 직원들 관리도 조금 해봤고 거기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고민 고민 끝에 과감하게 나왔죠. 과감하게 나왔던 거는, 우리 집사람이 그때 부동산을 했어요. 그러니까 당장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나와서 뭘 해야 되는데 저는 도면을 볼 줄 알고, 원가 분석할 줄 알고, 견적 낼 줄 알고, 그런데 기계는 못 만집니다. 그러니까 집사람하고 약속했던 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대신 집사람은 “절대 집에 있는 돈은 가져가지 마라. 그리고 기계 사지 마라.” 그러더라고요. 그래갖고 아웃소싱을 했어요. 그걸 했는데 누가 나한테 물건을 줘요? 안 주죠. 고민 많이 했어요. 사실은 제가 승용차 화물차 방석도 판 적도 있어요. 그러던 중 대금에서 일할 때 알던 대우그룹 종합기계 구매 차장들이, “뭐 해?” “준비하고 있는데 잘 안 돼요.” 협력업체 사람들을 모아놓고 “여기 그 대금에 있었던 안 부장 알지? 도와줘, 도와줘.” 그러더라고요. 너무 고마운 거예요. 근데 어느 순간에 나한테 한 업체가 처음으로 PIN을 30개씩 줘요. 세 가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제가 기계가 있어요? 없잖아요. 그 제품을 아웃소싱을 해서 처음으로 내 사업자로 거래명세를 끊었었죠.
제가 거의 13년 5개월 동안 대금 얼굴로 영업을 했잖아요. 근데 대금 아이템을 건드린다는 게 상당히 보기 안 좋더라고요. 그리고 두 번째, 대금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기지도 못하는데 앞에서 찝쩍거리는 게 싫다 보니 저만의 아이템을 구상했죠. 찾아보니 다품종 소량은 누구든 싫어하잖아요. 그런 연유로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다품종 소량의 제품으로 경쟁력을 갖추자고 계획을 세웠죠. 그러다가 소개로 오카다아이언이라고 어태치먼트로 일본에 한 2위 정도 되는 업체예요. 거기에 샘플로 처음에 시작을 했죠. 샘플하고 AS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커지더라고요. 맨 처음 거래는 아까 얘기했던 핀 세 가지 줬다던 국내업체 ‘썬엔쉴드’였었고. 그러면서 업체들이 조금씩 늘어나는데 지금도 우리 주종은 오카다아이언 어태치먼트 부품이죠.
실상 오카다와 거래하기까지는 고생 많이 했어요. 처음에 샘플과 AS부터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그러면서 아이언 그분이 당신 공장 가보자. 근데 그 당시 제 공장이 없잖아요. 그래서 협력업체에다 부랴부랴 인정테크라고 간판을 바꿔 붙였어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희가 오카다아이언을 다이렉트로 하는 건 아니고 상사가 끼어 있습니다. 상사 사장하고 오카다아이언 직원하고 왔더라고. 20~30초 보셨을까요? 근데 들켰어요. 너무 창피한 거예요. 자존심도 상하고. 샘플이 나오고 제품이 나오니까 “그 사람 공장에 가보자.” 이렇게 된 거였어요. 이 사람들한테 꾸준히 맡기는 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공장에 직접 와 본다고 한 거죠. 근데 그쪽에서 여태까지 기계 없이 자기 공장 없이 물건을 조달한 게 신기하다. 대신 앞으로 우리하고 거래를 하려면 당신 공장을 갖고 있어야 되지 않겠냐. 그래서 부랴부랴 남동공단에 30평짜리 임대 공장을 계약했죠. 계약을 하고 공장이 있으면 기계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CNC 2대를 샀어요.돈이 지원이 안 되니까 은행을 갔는데 업력이 없으니까 대출이 안 되더라고요. 마이너스 통장 5천만 원을 갖고 시작했는데 사정을 했죠. 신용보증기금에서는 남동구청 가서 국내 업체 인증서를 받아오라 그래요. 구청에서 그걸 받아가지고 신보에 제출했더니 신용장을 써줘 갖고 그때 기업은행에서 5천만 원을 더 받았죠. 그걸 가지고 중고 기계 하나하고 리스하고. 어쨌든 기계는 있는데 돌릴 사람은 없고 오더는 계속 들어오니까 계속 아웃소싱을 한 거예요. 소재를 내가 사다가 가공업체에 주고 가공을 하면 열처리를 내가 하고 직접 제가 뛸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마이너스 통장이 거의 바닥나고. 기계까지 리스하다 보니까 쩔쩔맸죠.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 친구가 대금에 반장으로 있던 직원. 지금 우리 회사 공장장에 있다가 독립한 친구인데 “나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그러더라고요. “나 너 월급 못 줘.”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에이 부장님은 그럴 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CNC 2대를 책임지고. 근데 두 대 갖고 안 되잖아요. 기존에 했던 대로 아웃소싱 계속 했죠. 그러면서 기계가 한두 대씩 더 늘어난 거고 공장장 같은 그 직원은 혼자서 일하니까 너무 심심했던 거예요. 어느 날 “사장님 나 친구 좀 하나 만들어 주세요.” 그러더라고요. “무슨 친구?”, “라디오 하나 사주세요. 혼자서 너무 심심해.”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라디오가 들어온 거죠. 그래서 현장에서 가끔 음악 소리가 들립니다. 재미있는 전통이 생긴 거죠.
해외는 가장 큰 데가 오카다 일본이고 그리고 미국 쪽에 금형 핀을 납품하는 데는 킴코라는 업체가 있고. 많지는 않고 한 13군데에서 15군데 정도.거기에 대금도 들어가 있고.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주종이 핀과 부쉬인데 지금 보시는 아이템들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브레이커입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부품들 카타, 앤드, 플레이 여러 가지 유압 부품들 이런 것들은 거의 저희가 생산하고 있죠.
(인터뷰 중 오더 건으로 전화가 옴)
네. 제가 직접 업무를 보다 보니까 재고가 몇 개 있는지 바로바로 파악이 되니 주문도 바로 받을 수 있죠.
직원들의 출퇴근 거리라든가 거래 업체가 가까운 데 있다는 거는 굉장히 큰 장점이죠. 또 업체 간 이동 거리가 짧으니 탄소 배출도 적고요. 열처리 업체, 연마업체와 외주가공업체 등이 다 근처에 있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일하기 훨씬 편하고 고마운거죠.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 대금에 근무했을 때는 인력이 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 주변에 식당 이런 게 꽤 많았거든요. 회식을 하러 가든가 끼리끼리 모여서 술자리를 갔는데 그때만 해도 이쪽에 호프집이라든지 좀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어요. 그리고 분위기도 복잡, 복잡한 게 좀 줄어들은 것 같아요.
수작업으로 하던 공정들이 자동화시스템 요인이 크다고 볼 수 있죠. 퇴근 후 술 한잔이 낭만였었는데 월급봉투 가져가는 거, 그때가 더 가장의 권위를 인정받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통장으로. 그렇게 큰 변화는 없는데 단 업체들이 약간씩 규모가 커진 거죠. 그러면서 전문화가 많이 됐고.
사실은 덩치가 작았기 때문에 버텼을 수도 있어요. 그때 무리하게 투자를 안 했던 문제. 저희도 몇 개월 고생을 했죠. 그 당시에는 직원이 한 6~7명 됐는데, 불안해할까 봐 일부러 정상 근무를 시켰어요. 진짜 재고 확보도 한계가 왔다 싶었을 때는 공장을 좀 깔끔하게 해보자 해서 일주일 내내 유리창 청소해 본 적도 있어요. 덩치가 컸다면 직원 감축도 해야 했을 텐데 규모가 작다 보니 그런 힘든 점은 없었던 거죠.일본에 쓰나미 왔을 때도 오히려 기회가 됐었죠. 지금처럼 공장을 확장하게 된 게 쓰나미가 터지면서 여러 가지 부품이 개발되고 발주가 많아졌습니다. 일본이 원상 복구하기 위해서죠.
큰 상관은 없었지만 매출이 조금 떨어졌죠. 저희 회사 장점은 임가공 업체는 주로 소재라든지 모든 걸 사급을 받아요. 우리 회사는 작지만 도면만 주면 완제품으로 납품합니다.공장 운영하면서 제가 사고관이 딱 세 가지예요. 첫째, 남들보다 100원이라도 경쟁력이 있는 단가를 제출할 것. 두 번째 납기. 세 번째 품질. 납기 준수율은 현재까지는 95프로 이상. 그래야지 신뢰가 생기는 것 같아요.
긴급 발주 건이나 양산 발주에 대한 납기 준수를 위해 적정량의 재고를 비축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우리는 주 5일 근무제를 일찍 시작했어요. 우리같이 이렇게 소기업체에서 주 5일 근무를 예전부터 했다면 믿으시겠어요? 한 13년 됐을 거예요. 법적으로 한 건 얼마 안 되고. 그때 계도기간이었을 때 우리는 이미 시행을 했어요. 그거는 우리 직원들도 알고 이 주변에서도, 뭐야 이게 좋은 거야 뭐야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근데 이 업체들이 다 따라오고 있어요.
두 가지 다입니다. 잘한 거 그거밖에 없네.
10년 되면은 최소한 일본 일주 여행을 보낼라 그래요. 저 친구들이 오래 있게 하는 게 제 숙제인 것 같아요. 근데 젊은 친구들 너무 없어요. 제가 도화공고운영위원회 3년 동안 했는데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게 눈에 확 보여요. 저는 도제학교하고 연결이 돼서 도움을 받고 있는 실정이죠.
젊은 사람이 있으면 더 쓰고 싶은데 한계가 있죠. 내가 3명을 뽑고 싶다고 뽑을 수가 있는 게 아니에요. 학생들이 없어요. 저희 인원이 지금은 딱 정상화가 됐어요. 안정됐다 그러면 또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가 고만두고, 고민하다 보면 또 채워지고. 젊은 친구가 있다면 내가 아이템을 어디 가서 사정을 해서라도 더 받아올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일본에 갔더니 최고 어린 기술자가 70살이더라고요. 우리나라도 거의 근사치 왔습니다. 내가 공부해 갖고 얻은 지식, 내가 땀 흘리고 몸으로 체득했던 지식, 이 아까운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젊은 친구한테 물려주고 싶대요. 일본도 하고 싶은 사람이 없답니다. 한국도 거의 그렇게 됐어요. 지금 남동공단 같은 데 가면 우리도 영세하지만 환경적으로 도금업체 열처리 업체 공장이 다 외국인이에요.
대한민국은 땅을 파도 자원이 없는 나라, 오로지 인력이잖아요. 인력으로 승부해야 되는데 핵심은 뭐 반도체 쪽이지만 제조업 쪽도 뭔가 인력이 올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철학까지는 없고요. ‘인정테크의 가치는 여러분입니다’라고 제가 그 표어를 창립할 때 붙였어요.
직원들이 열심히 해주고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주니까 우리가 먹고 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가치가 우리 직원들하고 고객을 함축한다고 생각하는 거고. 우리 직원들은 더 좋은 자리를 찾아갈 겁니다. 안 보내기 위해서 내가 뭐를 해야지 그런 고민. 매출도 올리고 직원들한테 좀 노력을 할라 그래요. 그리고 나도 직원들하고 똑같은 업무를 본다는 걸 계속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말씀하신 그 지향이 직원들한테는 최고일 것 같아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진 지 오래됐는데 사장님만의 그런 운영 마인드로 직원들과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되길 바랍니다.
혹시 창립 멤버가 지금도 일하고 있는 사람은 있는지요, 퇴사하는 직원은 어떤 이유로 나가게 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첫째는 인정테크가 싫은 거고, 두 번째는 자기가 욕심이 있는 거고, 세 번째 경우는 너무 괜찮은 친구가 있었는데 붙잡고 몇 번 같이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사장님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하고 쿠팡일을 하는데 그만둔 지 2년이 됐는데도 아직까지 안 와요. 그러니까 다시 오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안이 있으면 그걸 한번 써보고 싶어요.
거의 없어요. 학교 지역운영위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점이, 부모님들이 우리 아들 군대 안 가는 건 좋은데 공장이라는 데가 우선 위험하다, 더럽다, 힘들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인정합니다. 제가 신경 쓰는 부분이 공장 정리 정돈입니다. 우리가 공장 기계와 기계 사이가 좀 넓잖아요. 물건이 크니까 행동반경이 넓게 안전하게 하려고 내가 일부러 저렇게 크게 했어요. ‘제발 다치지 마라.’ 그게 첫째고. ‘내가 하기 싫으면 상대방도 하기 싫다. 같이 가자.’ 내가 언제 생산성 따지냐, 오늘 안 만들어지면 내일은 만들어 줄 거 아닙니까. 좀 부담 안 주려고 하고 있죠.
사실은 제가 요새는 그런 생각이 들어가요. 아들이 옆에 있어 다행이다. 아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앞으로는 설비가 인력을 대체하지 않으면 힘들지 않겠냐, 그래요. 인정테크가 발전하려면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해 봐야 되겠죠. 기본에서 시작했던 인정테크 중장비 어태치먼트에 대한 색깔은 없어지는 거죠. 많은 고민을 하고 연구할 겁니다. 우리 세대보다 똑똑한 거 같아요.
종합적으로 공정을 파악해 가지고 유기적인 단지를 조성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소재, 열처리, 연마, 가공 이렇게 연관 분야끼리 집약해 있으면 효율적이죠. 두 번째는 주차난이 상당히 심각합니다. 출고는 해야 되는데 차 댈 데는 없고 공간이 없어 애를 먹어요.
예를 들어갖고 기계 산단 그러면 소재, 연마, 가공 과정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구상을 한다면 그 안에서 자급자족은 아니더라도 물류가 우선 가까워지잖아요. 거래 업체들이 가까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이동 시간이 짧고 환경 측면에서는 탄소 배출도 많이 줄어들어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면이 많은 것 같아요.다만 현재는 저희 공장이 좁아져서 이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여기서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이 2층으로 올리려고 그랬는데 공사 기간이 있다 보니까, 만약에 우리가 공사를 하면 저희 주변 공장들이 많은 불편을 겪는 거죠. 그러니까 2층을 포기를 했어요. 사실은 가까운 곳에 한 600평이나 700평에서 좀 깔끔하게 해서 복지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열심히 알아보고 있어요.
사실 저는 오카다아이언 모임이 있어서 많이 다녔어요. 독일의 바우마(BAUMA) 전시회 또 세계 3대 전시회가 있잖아요. 인터메토(INTERMAT), 코네스코(CONEXPO-CON/AGG), 근데 저는 바우마 갔다 왔어요.비록 규모는 작지만 한국 업체들 영업이 해외 업체를 영업하는 것만큼 치열해요. 여기는 인맥, 혈연, 지연이 들어가야 돼요. 아무리 내가 물건이 좋아도 혈연, 지연, 학연이 없으면 너무 영업하기가 힘들어요. 다만 장점은 말이 통한다는 거, 거리가 가깝다는 거, 문제가 생기면 빨리 조치를 한다는 거, 이런 장점이 있는데 업체를 뚫고 아이템을 개발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딸이 사실, 능력은 안 되더라도 그 녀석하고 전시회가 있으면 가고 싶어요. 가서 부스 설치는 못 할지언정 “인정 테크는 이러이러한 제품이 가능합니다. 당신네들이 그 작은 수량 갖고 고민하시는 거, 우리는 특성이 다품종 소량 생산이므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영업을 하고 싶어요. 근데 지금 가장 심각한 게, 작년에 디트로이트 중장비 전시회(SAE World Congress & Exhibition)가 있었어요. 거의 중국에 다 뺏기고 있습니다. 인건비와 물가에서 밀리고 기술력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독일 바우마 전시회 갔을 때 중국 굴삭기 포크레인 전시회는 너무 조잡하더라고요. 지금 엄청 따라왔어요. 우리가 뭔가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부에서도 반도체, IT 쪽에 투자도 좋지만 우리 같은 풀뿌리 제조업은 어떡하나 이거 고민해야 합니다.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요. 집사람한테 잘해주고 싶더라고요. 황창연 신부님이 나보다 어려요. 이 양반이 얘기하는 거를 몇 번 들었거든요. 우스갯소리도 잘하고 그러는데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첫째, 나이가 들면 자식 버릴 것. 두 번째, 부동산 버릴 것. 나이 들어갖고 부동산 해봐야 자식한테 가. 세 번째, 의지하는 거 버릴 것.” 우리 집사람은 나보고 자기가 처음에 안 도와주고 돈 안 내줘갖고 너무 미안해 하는데, 나는 진짜 일하는 게 좋아요. 견적 내고 물건이 나가면 내 자식 나가는 것 같고 진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제가 대금에서 배운 것처럼 저희 직원들도 잘 성장해서 제2, 제3의 인정테크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시민기록일지
* 면담일시 : 2023년 11월 16일 14시
* 면담, 원고정리 : 표기자
* 면담지원 : 이혜숙, 최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