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집
나는 발에 착 감기는 착용감이 좋아서 구멍난 조깅화를 버릴 수 없었다. 이곳저곳 나와 함께 다니다 보니 바늘 구멍만 하던 것이 동전 크기의 구멍 2개가 되었다. 아쉽고 섭섭했지만 조깅화는 휴지통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가 사는 집도 낡은 조깅화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재개발이 진행 중인 구시가를 걷다보,면 나지막한 담장, 시멘트가 드러나는 벽체, 색이 바랜 낡은 집들을 보게 된다. 주거 생활의 편리함을 생각하면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맞겠지만 낡은 집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보기엔 낡았지만 주인의 살뜰한 관심 속에 세월을 견뎌낸 집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대문 한쪽에 서 있는 키 큰 나무는 주인이 입주를 기념하며 심었던 게 아닐까? 푸릇푸릇 풍성한 잎과 통통하게 살찐 나무 둥치, 허름한 담벽은 그 자체만으로 집 주인과 함께 살아온 집의 내력을 말하는 듯 하다. 낡은 집들 주변에는 신축된 건물도 있고 더 멀리에는 인기리에 분양되었다던 신축 아파트도 있다. 모든 새 것은 세월이 가면 헌 것이 된다. 낡은 집들도 예전에는 반짝이는 새집이었을 것이다. 구시가 골목을 걷다가 담장을 넘고 뻗은 호박 덩굴을 보니 날 보며 웃는 것 같아 반갑다. 재개발로 낡은 집이 허물어진다면 이 집을 그리워할 어떤 가족의 모습이 연상된다. 나도 담장 위의 푸른 호박잎을 그리워할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는 동그만 호박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할 것이다. 내가 소유한 집도 아닌데 섭섭한 마음이 든다. 촬영장소: 미추홀구 주안동 촬영일자: 2024년 8월 27일 사진장수: 1장 #. 해당 사진은 2024 특성화사업 기록물 수집 공모전 <사라져 가는 것들>을 통해 수집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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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일자
202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