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월간 문익환_<현장탐방>

일본에 새겨진 동주와 익환의 흔적찾기(2-칸사이) (2025년 3월호)

[→(1)에서 이어짐]

 

사람과방재미래센터 방문

▲고베에서 
2월 24일 저녁 한국인 참가자 18명 중 반 이상은 도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고, 이철 선생님을 포함하여 8명이 신칸센을 타고 신고베역으로 향했다. 고베 한인 민박을 운영 중이신 이금휘, 정현식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시고 고베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셨다. 문익환 목사님과 박용길 장로님처럼 사이가 좋으신 두 분이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셨던 이야기를 들려주실 땐 내 마음이 다 설렜다. 또 고베의 사람과방재미래센터에 방문하여 95년 고베 대지진을 배울 때 고베대학 시절 정현식 선생님이 겪은 고베 지진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차별에 맞선 재일코리안의 강인함

▲우토로 평화기념관 
2월 25일 교토에서 방문한 우토로 평화기념관 김수환 부관장님이 우토로의 역사를 설명해 주셨다. 차별과 어려움에 맞써 싸운 강인한 우토로 마을 재일코리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울해지거나 슬퍼지는 기념관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살아 나갈 힘을 주는 박물관이고 싶다."는 김수환 부관장의 이야기는 모두의 가슴을 울렸다. 일반적으로는 1층에서부터 전시실이 있지만 사람들과 만남을 만드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모여 1층에 라운지 및 강의실을 만들었다. 기념관 바깥에는 농구 골대에 모여 공놀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생동감이 넘치는 장소였다.
 
◇2025년 2월 25일 우토로 평화기념관 ⓒ김수환.  
 
 

분단의 역사 보여준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

▲오사카에서 
2월 26일엔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에 방문했다. 고정자 관장님과 오광현 선생님, 김현태 코리아 NGO센터 사무국장님, 인근에 거주하시는 이철 선생님 그리고 재작년 한국에 함께 통일의집을 찾아주셨던 정경모 선생님의 손자 정현아 선생님과 그 친구분 총 6분이 맞아주셨다. 휴관일임에도 우리를 위해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지금은 츠루하시라고 불리는 코리아타운, 이카이노의 역사를 비롯하여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해 재일코리안 내에서 발생한 분단의 역사까지 두루두루 설명을 들었다. 역사자료관 방문 후에 김현태 코리아 NGO센터 사무국장님은 츠루하시 일대부터 텐노지 공원 내 통국사까지 함께해주시며 통국사와 제주 4.3의 연결고리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2월 26일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  ⓒ정현아
 
 ◇ 2월 26일 동국사 제주 4.3 추모비 ⓒ김아현  
 
 

“이제와서니까 웃을수 있지” 이철 선생의 웃음

같은 날 저녁에는 이철 선생님과 양심수 동우회 분들을 동우회 회원이신 유영수 선생님의 한식당 ‘샘터’라는 곳에서 만나 뵈었다. 유시경 신부님과 강종헌 선생님, 양심수 구원 운동을 하셨던 일본인 선생님들도 함께 참가하셨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철 선생님께서 한 분 한 분 소개의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이철 선생님, 강종헌 선생님, 유영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저 정신이 아득했다. 기쁜 마음에 찾은 조국에서, 그 젊은 나이에 사형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에서 보내셨을 시간을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니까 웃을 수 있지”라며 한 일본인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긴 시간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 2월 26일 오사카 유영수 선생님 한식당 <샘터>에서 양심수 동우회와 함께   
 
 

“기억과 기억이 손을 잡고 더욱 단단하게 이어지길” 

6일 동안 일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반도와 일본 내 정치적 상황과 힘의 균형이 한반도와 일본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관계하는 방식을 얼마나 교묘하고 또 긴밀하게 구성해 왔는지 조금이나마 배웠다. 한반도의 변화는 곧 일본의 변화이고, 일본의 변화 또한 곧 한반도의 변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변화의 소용돌이에서도 조금 더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살아남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이 있다. 조금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강한 희망을 품고 웃음으로 살아왔다. 아무리 세상이 넓고 크게 느껴져도 새삼 이 큰 세상은 얼마나 좁은가? 개인 간의 교류와 연결은 촘촘하게 이어져 국가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을 복원해 내고 지켜나간다. 민초의 힘은 함께할수록 더욱 커진다. 윤동주도, 문익환도, 우토로도, 오사카 코리아타운도, 재일교포 양심수도. 기억과 기억이 손을 잡고 이어져 더욱더 단단하게, 영원히 기억되리라.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윤동주 ‘별헤는 밤’ 중
 
 
한국의 민중, 억눌리고 짓밟혀도 땅속으로 힘줄을 뻗으며 돌 같은 땅을 뚫고 돋아나는 한국의 잔디 같은 민중이다. 이 땅을, 이 역사를 숨이 턱에 닿아 살아온 민중의 한이다. 모든 억압을 물리치고 기어코 우리의 세상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뜨거운, 뜨거운 뜻이다.
―문익환, 1988. 5. 12. 『해방의 논리와 자주 사상』(장기표 지음)에 대한 추천의 글 중

<글: 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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