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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문익환』 2023년 5월호

    아카이브 기반 콘텐츠 제작단 '콘텐츠플러스'가 기획·제작하고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에서 사료제공 및 제작을 지원하여 발간한 『월간 문익환』 2023년 5월호(통권 제13호). 시즌 2의 1년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하며 문익환과 사람, 장소, 사건(이야기)에 집중한다. <목차> - 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인터뷰) - 김형수 작가 - 그때 그곳 - 명동성당 - 과거에서 온 편지 - 박용길의 1979년 5월 8일 편지 - 시 속의 인물 - 민향숙, 이철 - 나와 늦봄 - 마당 봉사 장영직 목사 - 이 한 장의 사진, 이 달의 사건

  • 이철이 박용길에게 선물한 산타클로스 인형

    재일동포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12년간 복역한 이철 선생은 1988년 석방된 후 오사카의 장난감 공장에서 일했다. 1999년 문익환 목사의 『더욱 젊게』라는 책을 이철 선생이 번역하여 일본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게 되었을 때 박용길 장로에게 선물한 산타클로스 인형. 매년 12월에 문익환 통일의 집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 민가협의 양심수 석방촉구 팸플릿

    양심수의 석방을 촉구하는 팸플릿으로 구속된 양심수의 소개 및 그 가족의 메시지와 국민에게 보내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글이 수록됨   - 가족 메시지 이민영 모친, 김성만 모친, 이철 약혼녀 민향숙, 이해경 부인, 김진우 모친, 김근태 딸, 김영환 모친 등 - 양심수 명단 이철, 장기표, 김근태, 최민, 안재구, 김문수, 이민영, 이해경, 김성만, 서승, 서준식, 이태복, 박석률, 김영환  

  • 후기(네번째 시집 『두 하늘 한 하늘』 후기)

    이건 저의 네번째 시집입니다. 이 시집을 엮어놓고 보니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아픈 시대를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새 시대를 열려는 엄청난 몸부림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몸부림이 헛일이 아니었다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왜 줄줄이 뒤를 이어 꽃 같은 청춘을 민족제단에 번제불로 살라 바치는 걸까? 조성만 열사 장례식 준비로 정신이 없던 어느 날 오후, 저는 바로 이런 질문을 외신 기자에게 받은 일이 있습니다. 왜 그러는지 당신은 그 영문을 알겠느냐고 되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지구상에 많은 민족이 있지만, 한국의 젊은이들만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다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묻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왜 유독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렇듯 민주주의를 열망하느냐는 겁니다” 나의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44년에 걸친 분단을 더 참을 수 없는 겁니다. 길고 긴 분단의 비극, 지긋지긋한 분단의 치욕 말입니다. 분단을 거부하는 일은 그대로 분단수호세력·통일반대세력을 물리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반독재·민주화 투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이번 시집에 이런 거룩하고 아픈 죽음을 읊조린 시들이 꽤 무거운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이 예 있는 겁니다. 세번째 시집과 네번째 시집 사이에서 특기할 만한 일은, 그동안에 제 이름을 불러주시던 마지막 어른 제 아버님과 김재준 목사님 그리고 함석헌 선생님을 보내고 난 허전한 공간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아버님을 보내드리고 난 다음 무당이 무엇이냐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눈만 감고 앉으면 아버님의 넋과 끝도 없이 말을 주고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걸 적어 내려가다가, 너무 아버님만 돋보이게 하려는 불순한 저의라도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대로 그만 쓰고 말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겐 너무나 뜻밖으로 보일 「열두 달 아침」이라는 연작시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는 저의 첫 시집 『새삼스런 하루』(1973년)를 내 다음 일년 동안의 작품입니다. 저는 윤동주 앞에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나는 시와는 관계가 없이 신학이라는 산문의 세계를 저의 세계로 알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시가 40%인 구약성서 번역책임이 제 어깨에 지워졌습니다. 그때처럼 동주가 옆에 없는 것이 아쉬워진 때가 없었을 겁니다. 구약의 시를 시답게 번역 못할 바에는 구약 번역에 손을 댈 수 없다 이거였지요. 저는 궁지에 몰린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시를 열심히 공부하고, 습작으로 긁적거려 본 것이 그런대로 시가 된다고 해서 출판하기까지에 이르렀던 겁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말이 어떻게 하면 시가 되느냐는 걸 실험하다가 얻은 겁니다. 그 실험을 일단 끝내고 성서 번역에 몰두하면서도 저의 시적인 감성을 계속 닦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년 365일 날마다 아침이면 마당을 거닐며 얻은 시상을 원고지에 옮겨놓은 것이 바로 ‘오월의 아침’으로 시작되는 열두 편 아침 노래입니다. 그동안 적어 두었던 시들 가운데 이 열두 편이 어디 남아 있다가 불쑥 저의 눈에 띄더군요. 너무 반가워서 가지고 나왔다가 신경림 시백을 만나 보여 드렸더니 ‘창비’에 발표하자고 해서 용기를 내어 지난 봄호에 실리게 되었던 겁니다. 애교로 받아 주신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통일꾼이 되라는 아버님, 어머님의 분부를 듣고 쓰기 시작했던 「통일꾼의 노래」도 두 편만 쓰고는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가 통일을 노래하지 않은 시가 있으랴 싶어 자위하고 있습니다. 번번이 이게 나의 마지막 시집이지 싶은 심정으로 어설픈 시들을 묶어냅니다만 누가 압니까? 몇 해 뒤에 저의 다섯번째 시집이 나올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저의 시를 사랑해 주실 걸 빌면서. 통일염원 45년 3월 18일 무너미에서 문익환

  • (발문) 아름다움의 시, 맑음의 시, 통일정서의 시

    아름다움의 시, 맑음의 시, 통일정서의 시 申庚林(신경림) 1 문익환 목사와 나는 문학과는 상관없는 모임에서 비교적 자주 만나는 편인데, 둘이 이웃해 앉게 되면 으례 문학 얘기를 한다. 정치적·사회적 성격의 모임에서도 당장 걸린 문제는 제쳐놓고 문학 얘기를 하는 일이 더 많으니, 아무래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글장이인가 보다. 더러 그는 주머니에서 최근 쓴 것이라며 시를 꺼내 보여주기도 하고, 이때마다 나는 비교적 솔직하게 그 시를 읽은 느낌을 말해준다. 어쩌다 내가 좋은 시라고 칭찬이라도 하면 그는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그래서, 세상 보는 눈이 조금씩은 달라, 민주화라는 큰길을 함께 가면서 서로의 사이에 생기기도 하는 장막 같은 것이 쉽사리 걷히고 만다. 기실 나는 그의 지도노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 일로 해서 사이가 나빠졌거나 서먹서먹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그 인연으로 해서 이 발문도 맡게 되었지만, 그가 「열두 달 아침」을 내게 보여준 것도 한 운동단체의 북적거리는 집들이 자리에서였다. 그 시가 주는 신선하고 산뜻한 감동을 말하고 ‘창비’에 발표했으면 하는 뜻을 비치자, 그는 이 시가 구작임을 전제하면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다치고 하는 이 판국에 이런 한가로운 시를 발표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이겠는가 물었지만 몹시 좋아했다. 역시 그는 지도자이기 전에 시인이었던것이다. 그때의 느낌도 그랬지만 다시 읽어보아도 그의 시 가운데 「열두 달 아침」만큼 인간 문익환을 잘 보여주는 시는 드물다. 여기에는 세상을 보는 그의 어린애처럼 맑고 고운 눈이 있으며, 사람의 착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다. 이러한 맑고 고운 눈, 굳은 믿음, 이것이 오늘의 그의 힘의 샘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열두 대목 가운데 두 대목만을 읽어보자. 해바라기들이 고개를 못 든다 제 얼굴에서 금시 바래버릴 아침 노을 찬란한 빛깔 눈이 부시어 ― ‘구원의 아침’ 전문 더는 못 기다려 하나 둘 지는 감나무 잎사귀 소리에 떨떠름하니 익어오는 맛이야 막을 길 없다만 너무 알몸이 드러나 안쓰럽다 ― ‘시월의 아침’ 전문 여기서 철이 바뀌는 아름다움과 놀라움만을 읽는다면 이 시를 제대로 읽은 것이 못된다. 여기에는 착하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의 숨결이 스며 있으며, 그것을 보는 겸허한 눈이 있다. 물론 이 시를 문익환 시의 본령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문익환 시와 행동을 푸는 열쇠로서는 더없이 좋은 구실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의 시와 행동은 본질적으로 미움보다 사랑에서, 원한보다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자신이 얻기 위함이 아니라 남에게 주기 위함이 그 목적임을 이 시는 엿보게 해준다. 2 지난 3월 문익환 목사는 돌연 평양을 방문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국은 이를 민주세력 대탄압의 구실로 이용했으며, 그때까지 ‘5공비리’ 청산과 ‘광주 대학살’ 책임자 처단을 요구하며 노태우 정권의 퇴진투쟁에서 공세를 취하고 있던 재야민주세력은 아직도 공산주의라면 겁부터 먹는 분단체제 아래서 반공주의에 길들여진 소시민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 속에서 수세로 몰렸다. 조선대의 이철규군의 의문의 죽음 이후 상황은 많이 달라졌지만, 반독재 민주세력을 고립시키려는 당국의 의도는 일견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3,4월 임투를 시발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노동운동에까지도 문익환 목사 방북의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쳐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자 운동권에서조차 비판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령 같은 형제가 사는 북쪽을 방문하는 일은 정부의 허락 여부에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옳은 일이지만 이는 반드시 민중적 합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든가, 통일은 한 개인의 영웅적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든가, 시기적으로 노동운동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다음이었어야 맞지 않았겠느나라든가, 지도자의 행위는 그 동기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할 때 과연 그의 방북이 통일운동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등이 그것이다. 이와같은 비판들은 물론, 소영웅주의자니 감상적 통일론자니 유치한 낭만주의자니 하는 악의적인 욕설과는 달리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겠지만, 여기는 그것을 시비할 자리는 아니다. 다만 이 시집에 ‘서시’로 실려 있는 「잠꼬대 아닌 잠꼬대」는 그가 방북하기 직전에 발표를 부탁한 시로서, 그가 무슨 생각으로, 또 무슨 목적으로 평양에 갔었는가를 분명하게 설명해주는 시여서 흥미롭다. 이 시는 잠꼬대를 핑계대어 1989년이 가기 전에 평양엘 가서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하면서 북한의 주장에 덮어놓고 동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그는 그의 방북이라는 행위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역사를 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진다. 그 단단한 마음가짐이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나부끼는 일이라고/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라는 아름답고 다부진 절구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상식을 가진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도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하고 점친다. 그리고 이 구절과 함께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의 삽입구는 긴장된 시의 가락에 휴식을 주어 읽는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이 시는 형식이라는 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라 할 수 있겠다. 이 시의 절창은 역시 마지막 대목이다. 이 대목에서 이 시는 마침내 파란 불꽃으로 타오른다.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3 이 시집의 시들 중 많은 것들이 직간접으로 통일을 주제로 하고 있다. 「통일꾼의 노래」라는 시도 두어 편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통일노래꾼이라 부른다. 하지만 최근 일부 언론이 빈정대는 것처럼 그는 환상적 또는 낭만적 통일주의자는 아니다. 관념적·추상적으로 통일을 외치는 말만의 통일꾼도 아니다. 그나름으로 통일에 대한 진행표도 있고 과학도 있다. 가령 「양심이라고」라는 시를 읽어보자. 이 시는 전반부에서는 양심의 일반론을 가지고 너스레를 떨다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통일문제로 몰아간다. 88올림픽 남북 단일팀을 만들고 서울 평양 왔다갔다 하며 축구다 농구다 수영이다 육상이다 얼싸안고 목이 터지게 평양 이겨라 서울 이겨라가 아니라 우리 팀 이겨라 응원할 수 있다면 그거야 북쪽 사람도 좋고 남쪽 우리도 좋고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서는 통일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 그것은 손 가까이 있는 것이며 아주 쉬운 일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칠천만 모두가 천의무봉의 동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인 것은 그의 여러 시들을 읽어보면 분명해진다. 「비무장지대」는 무기를 가지고는 못 들어가는 비무장지대의 확대로 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으로, 북의 병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날씬한 허리 용수철로 튀었다 펴며 푸른 하늘 밀어올려라 아아아아아 비무장지대 너희는 백두산까지 밀어붙여라 우리는 한라산까지 밀고 내려가리라 비무장지대 만세 만세 만세 문익환 시의 미덕은 부드럽고 유연한 말과 유려한 그 구사에서도 찾아져야 할 것이다. 재야의 지도자요 더욱이 감히 아무도 해내지 못한 방북을 해낸 그는 자칫 강하고 억센 이미지를 갖기 첩경이겠지만, 이 시 속의 말들은 아름답고 깨끗하고 부드럽다. 또 그 구사도 빡빡하지가 않고 여유가 있다. 더러 과감히 사투리를 구사하고 속어나 구어를 채용하는 방법도 그의 시를 거부감 없이 읽게 만든다. 시집을 통독하면서 재야의 지도자 문익환이 아닌 시인 문익환이 새삼스럽게 더 좋아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 당신은 온몸으로 양심이었습니다

    김인한 선생 영전에 바치는 시 당신 앞에서 우리는 왜 슬픈 게 아니라 이렇게 부끄럽습니까 머리에 먹물이 든 글장이들 아는 게 좀 있다는 게 글을 남보다 잘 쓴다는 게 말을 그럴듯하게 감동적으로 잘 한다는 게 왜 이렇게 부끄럽습니까 말없이 육중한 몸매로 뒷산 숲속에 서 있는 이름없는 한 바위 앞에서 다람쥐고 토끼고 이렇게 부끄러울 건가요 어찌 다람쥐 토끼뿐이겠습니까 온몸으로 진실일 뿐인 바위의 커다란 침묵 앞에서 하늘인들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양심은 침묵일수록 진실이군요 거의 구십 퍼센트의 침묵으로 사신 당신 우리의 바위시여 당신은 지금 백 퍼센트의 침묵으로 누워 계시는군요 눈을 감으면 백 퍼센트의 양심 백 퍼센트의 신실로 서 계시는 당신이 아련히 보이는군요 조금은 수줍은 듯 너무 너무 의연하시군요 너무 너무 당당하시군요 저는 당신의 글을 한 줄도 읽어 본 일이 없습니다 몇번 동아투위 위원장이시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사람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걸 들은 일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한 이삼백 년 되는 고가의 기둥뿌리 아니면 대들보가 썩 좋은 일이 있을 때든가 아니면 썩 언짢은 일이 있을 때든가 아니면 썩 언짢은 일이 있을 때면 웅얼웅얼 뜻모를 소리를 내는 걸 듣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기둥도 대들보도 없는 집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당신은 그냥 마음만인 웅얼거림으로 살아주셨군요 슬픔도 기쁨도 오직 한 목소리 뜻모를 웅얼거림으로 우리의 가슴을 때리는 오직 진실일 뿐인 당신 온몸으로 진실일 뿐인 당신 앞에서 어찌 우리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이리하여 당신은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하며 우러르는 우리의 하늘이 되셨군요 아니 맑은 양심으로 오늘 이 땅에는 묻히시는군요 땅에 묻혀 풀이파리들의 양심으로 다시 돋아나시겠군요 목사님 너무 저를 치켜주시네요 아무리 마지막 가는 길이라고 너무 듣기 좋은 소리 하지 마세요 목사님답지 않게 속에도 없는 겉치레 찬사 그건 양심이 아닙니다 김인한 선생 제 말이 들리지요 당신의 그 겸손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진짜 양심입니다 당신은 너무 너무 부끄럽게 겸손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겸손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위는 바위면 되는 거니까요 하늘은 하늘이면 되는 거니까요 땅은 땅이면 되는 거니까요 풀은 풀이면 되는 거니까요 기둥은 기둥이면 되는 거니까요 대들보는 대들보면 되는 거니까요 당신은 온몸으로 양심이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이제 흙으로 돌아가 조국이 되면 되는 것니까요 조국의 넋이 되어 언론의 양심으로 살아나면 되는 거니까요 언론의 시뻘건 양심 민족사의 횃불로 치솟으면 되는 거니까요 역사의 횃불로 자유와 평등, 민족자주와 통일의 다리와 대로를 은은히 비추면 되는 거니까요 전술과 전략만이 진리와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에 당신은 온몸으로 일어서는 우리의 양심이면 다 되는 거니까요 그거면 다 되는 거니까요 님이여 잠들지 마소서 하루 스물네 시간 일년 365일 혹은 366일 십년이고 백년이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잠들지 마소서 뜻이야 더욱 깊어졌겠지만 오직 그 웅얼웅얼하는 소리로 우리의 가슴을 밤낮 흔들어주소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가물가물 깊은 잠에 빠져드는 우리들 온몸 양심으로 눈을 번쩍 뜨게 뒤통수를 한방씩 호되게 갈겨주소서 님이여 님이여 우리 모두의 그윽한 님이여  

  •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2월 8일, 함 선생님의 영전에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께 좋은 시를 지어 바치고 싶었습니다. 있는 정성을 쏟아 오늘 새벽 두시 반까지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나와서 보니까 이건 휴지같이 느껴져 그대로 살라 버리고 싶은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괜찮아, 읽어!” 이렇게 격려해 주시는 것 같아서 고함이나 질러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너무나 인간적이셨던 우리의 멋쟁이, 겨레의 어버이, 만인의 벗 함석헌 선생님, 그 멋진 수염 흩날리며 88년이나 쳐다보시던 당신의 하늘이 오늘따라 서러운 눈물 뿌리는데 저 북쪽 당신의 고향 고구려의 정기 아직도 태백산 줄기 타고 숨쉬고 있는데 당신이 우리를 떠날 수 있나요? 안됩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파란만장의 88년 민족사 오늘로 멈출 리 없어 끝없이 흐르고 또 흐를 이 땅이 있어 언제나처럼 우리를 먹여 살릴 텐데 우리는 흙의 문화를 세워나갈 참인데 우리가 당신을 보낼 수 있나요― 안됩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작년 11월 13일 어린 노동자 전태일 17주기였습니다. 연세대 노천극장을 꽉 메운 5만 명 노동자들의 함성에 묻히면서 우리는 태일이 스물두 살 난 어린 태일이 흰 머리 나부끼는 당신의 역사, 우리의 맥박 속에 폭발하는 힘으로 되살아나는 걸 우리는 보았습니다 선생님― 지난 1월 14일 어린 학생 박종철 2주기였습니다 명동을 휩쓴 대학생 노동자 시민들의 물결에 휩싸이면서 우리는 종철이 갓 스물 종철이, 두루마기 자락 펄럭이는 당신의 역사 우리의 숨결 속에 되살아나 소리 지르는 걸 우리는 들었습니다 선생님!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던 벗 장준하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 모든 통일은 좋다―”고 외치던 외로운 그 목소리가 이젠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온 겨레의 주장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선생님! 대견하지 않습니까 이 무더기꽃 같은 죽음들의 부활,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부활을 믿으셨죠? 그런데 그 부활이 이렇게 구체적이군요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온몸 떨며 가슴으로 발바닥으로 외칠 수 있는 생생한 역사의 현실이군요 우리 모두 모두 한몸, 한마음으로 부활의 역사가 되었군요 예수의 부활이 로마제국을 뒤엎은 갈릴리 민중의 부활이었듯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부활은 분단의 비극 분단의 치욕을 거부하는 민족의 하나됨입니다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이 겨레가, 이 씨ᄋᆞᆯ들이 무덤 돌을 굴려 내면서 걸어 나갑니다― 민주, 자주, 통일을 향해서 당신이 네 살 때의 일이었군요 1905년 우리가 일본놈들의 오라에 묶인 것이 당신이 아홉 살 때의 일이었군요 1910년 이 겨레가 멍석말이를 당해 맞아죽은 것이 당신이 열여덟 살 때의 일이었군요 1919년 죽은 줄 알았던 씨ᄋᆞᆯ들 꿈틀꿈틀하다가 덩더쿵덩더쿵 벌떡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그 후로 36년 당신은 매를 맞고 징역을 살며 옷깃으로 흐르는 뜨거운 눈물 씻을 생각도 없이 펼친 자주독립운동 이 씨ᄋᆞᆯ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걸 만천하에 보여 준 일 아닙니까 당신이 마흔네 살 되던 때의 일이었군요 1945년 마침내 우리가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난 것이, 그러나 그것은 해방이 아니었군요 그것은 조국이 두 동강 나는 죽음이었습니다 한겨렌데 둘로 갈라져 찔러 죽이고 죽는 절통한 곤두박질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역사의 반 토막 44년 그 무덤돌을 굴려 내는 데 당신의 반생이 걸렸군요 선생님! 마침내 씨ᄋᆞᆯ들은 한목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통일을 가로막는 외세를 물리치고 휴전선 철조망을 거두려고 일어났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씨ᄋᆞᆯ들을 믿으셨지요 씨ᄋᆞᆯ을 믿지 않음 누굴 믿어 그 믿음이 부끄럽기 그지없는 나의 생애 참담한 88년 수난사를 절망하지 않고 네 활개를 치며 살아오도록 지탱해 준 힘 아니겠어 선생님, 그 믿음이 바로 부활 신앙이었군요 씨ᄋᆞᆯ 땅에 묻혀 죽어야 움이 터지며 새싹으로 다시 살아나는 거 아니겠어 몇만년 전인지 모르지만 북극 얼음 속에서 숨도 못 쉬던 씨ᄋᆞᆯ하나 땅에 심었더니 거기서도 새싹이 나더란 말 못 들어 봤나 예, 들어 봤습니다 그렇게 씨ᄋᆞᆯ은 기다림이군요 희망이군요 깜깜한 절망 속에서 빛을 놓치지 않는 믿음이군요 그 믿음 포기하지 않는 저항이란 것도 잊지를 말게나 여기서 당신은 간디를 만나시는군요 아니 대영제국의 사슬을 끊은 간디가 이 나라의 씨ᄋᆞᆯ을 만난 거지요 당신을 만난 거지요 간디를 아프리카에서 불러들인 건 타골이었다지요 그 타골은 1919년 우리 씨ᄋᆞᆯ들의 만세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이고 눈이 열리고 목이 터졌으니까요 그런데 인도는 타골의 나라 간디의 나라 모하멧의 나라로 세 동강이 나 버렸군요 다시 하나로 되는 일 엄두도 못 내는구나! 이 땅의 씨ᄋᆞᆯ들이 44년 분단을 넘어서는 날 타골의 제자들의 귀가 다시 터지고 간디의 후배들의 눈이 열리고 모하멧의 신도들의 목이 터지며 하나로 어울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구나! 움이 터져서 새싹으로 돋아나 서른 곱 예순 곱 온 곱 즈믄 곱으로 불어날 씨ᄋᆞᆯ이 따로 있는 게 아니죠 씨ᄋᆞᆯ이 씨ᄋᆞᆯ일진대 어떤 씨ᄋᆞᆯ이든 가릴 게 없죠 씨ᄋᆞᆯ이면 새싹을 틔우게 되어 있는 거니까요 이렇게 씨ᄋᆞᆯ은 평등이군요 한 줌 푹 쥐어 땅에 뿌리면 그게 보리건 나락이건 콩이건 팥이건 오이씨건 호박씨건 참깨씨건 해바라기씨건 새싹으로 돋아나게 되어 있는 게 기막힌 자연의 이치거든 땅은 축축한 물기를 내주고 햇빛은 거기에 온기를 더해주고 허공은 바람을 불어넣어 주고 이것이 천지조화의 이치 아니겠어 그렇군요 당신은 씨ᄋᆞᆯ을 믿으셨으 뿐 아니라 씨ᄋᆞᆯ의 평등을 사셨군요 천지조화를 사셨군요 이리하여 모든 사람은 당신의 손과 입김이 닿던 온실의 화초들까지 스스럼없는 당신 앞에서 거드름을 피울 필요가 없었군요 도토리 키재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군요 목소리 색깔을 가리는 일이 목소리 경쟁을 벌이는 일이 부끄러워졌었던 거군요 이렇게 당신은 자연이셨군요 그게 바로 당신의 멋이었군요 그러니 설치실 까닭이 없으셨던 거죠 혁명의 깃발 치켜들고 역사의 앞장을 선다며 그건 정말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야 그렇군요 당신은 주춤주춤 미적미적 조금은 수줍은 듯 역사에 밀리며 사셨지요 그렇다고 당신은 그 흔한 기회주의적 먹물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역사의 주체인 씨ᄋᆞᆯ을 믿으셨으니까요 당신도 고만고만한 씨ᄋᆞᆯ의 하나라고 굳게 믿고 사셨으니까요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베옷을 입고 법정에 서시어 당신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난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 여기 이렇게 서게 되었어”라며 조금은 흥분하셨던 걸 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흰 수염 바람에 멋대로 나부끼듯 당신은 어디서고 매이지 않고 네 활개를 치는 자유인이었군요 당신에게 주의라는 말 어디 어울립니까 그래서 제도도 싫고 조직도 싫어 무교회주의자가 되시죠 그랬다가 성서의 글자풀이에나 열을 올리는 것이 싫어 무교회주의와 작별하시는군요 그리고 자유로운 마음만으로 모이는 퀘이커가 되시는군요 당신의 관심은 오직 겨레의 자유였죠 당신의 날개를 묶을 오라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요 어린 씨ᄋᆞᆯ들에게 불어넣으려고 우리의 역사에서 찾아낸 자유의 넋, 그건 역적들에게밖에 없다는 걸 간파하고 말았군요 이리하여 당신은 일찌감치 불온분자가 되셨군요 만주 벌판을 누비던 옛 고구려의 씩씩한 기개가 그리우셨죠 김춘추의 삼국통일에 가슴을 치셨고 묘청의 평양천도 실패에 분루를 삼키셨죠 박정희가 권좌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하이델베르그 안병무 박사 하숙방에서 통곡하셨다죠 계획된 여행을 중단하시고 허둥지둥 돌아오셔서 장준하와 같이 반독재 투쟁에 나서시는군요 민주주의가 그렇듯 소중한 줄 아시면서도 입을 열었다 하면 “난 정치가 싫어” 하셨죠 정치가 싫다는 건 “자유가 전부”라는 말이었죠 자주와 통일을 온몸으로 외치신 당신이 민족주의는 못마땅하셨죠 국가주의는 더욱 질색이었구요 그것은 평화의 적이었으니까요 당신이 자유만큼 사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평화였죠 주의가 싫어 무교회주의마저 떠나신 당신이지만 평화주의자라는 칭호는 미소로 받으시지요 신조 같은 건 코웃음을 치시던 당신이지만 비폭력 평화는 당신의 신조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우리의 멋쟁이, 겨레의 어버이, 만인의 벗이여, 자유와 평화의 넋이여 당신이 우리를 떠나신다고 우리가 당신을 보낸다고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고이 주무시려거든 우리의 가슴에서 주무세요 눈을 뜨시려거든 우리의 역사에서 눈을 뜨세요  

  • 흰 수염이시여

    함석헌 선생님을 우러르며 수염이시여 흰 수염이시여 서러웁게도 어쩔 수 없이 늙어만 가는 주름진 얼굴 환히 뒤덮고 흩날리는 우리의 자랑 흰 수염이시여 함박눈으로 쏟아지는 하늘도 하얀 솜꽃 송이 터지는 붉은 마음도 눈부시게 눈부시게 우러를 뿐인 수염이시여 넉넉한 흰 수염이시여 거의 한 세기에 걸친 민족사의 질척질척한 흙탕길 허둥지둥 넘어지며 엎으러지면서도 언제나 앞장 서 뚜벅뚜벅 걸어왔어도 여전히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 같은 고운 마음이시여 해바라기 큰 얼굴 알알이 영글어가는 씨들의 양심이여 봄바람에 나부끼는 당신은 자연입니다 부풀어오르는 앳된 젖가슴으로 와락 안아보고 싶은 당신은 땅의 기운입니다 생명의 율동입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흰 수염의 자유입니다 몸은 병들어 수술까지 받으셨지만 당신은 자유입니다 불사조입니다 이제 더 말을 하지 않으셔도 돼요 당신은 자연임으로 해서 또한 자유인 것입니다 아무것으로도 매이지 않는 수염 당신은 우리 가운데서 흐느끼시는 것만으로 억만 마디 말 이상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조국입니다 조국의 몸놀림이요 얼입니다 두 동강 난 조국 옴짝달싹 못하는 몸이건만 당신의 흩날리는 수염은 자유의 깃발입니다 겨레의 내일입니다 내일의 숨결입니다 인류의 믿음입니다 하늘 높이 저 구름 위 백두 영봉 당신이 만년 서 계실 그 자리에서 짙푸른 물 굽어보시면 고드름 주렁주렁 달린 수염 당신은 울음이군요 자연도 자유도 아닌 뜻을 찾는 역사의 울음이군요 얼어붙은 씨들의 울음으로 뻗어 내리는 태백산 줄기줄기 튼튼한 뚝심이군요 인위의 사슬에서 풀려나 오직 자연이고 싶은 자유이고 싶은 씨들의 눈보라이군요 잉 잉 잉 잉 소나무 박달나무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울리는 하늘과 땅의 함성이군요 부들부들 떨며 눈보라 휘날리는 흰 흰 흰 수염이시여 우리의 사랑이시여 우리의 마음이시여 89. 1. 9

  • (제7부 큰 스승이시여) 큰 스승이시여

    장공 김재준 목사님 영전에 스승이시여 큰 스승이시여 하늘 같은 땅 같은 스승이시여 당신이 가실 날이 이렇게 오고야 말았군요 구만리 장공 훨훨 날으는 마음으로 이 강산 굽이굽이 안 가는 데 없이 불어예는 슬픈 바람으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87년 긴 세월 당신을 떠메고 다니느라 늙어 버린 몸 마침내 벗어버리고 가셨군요 홀가분히 아주 아주 홀가분히 오늘 아침에는 나의 샛별도 숨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가셨다는 하늘 무너진 소식을 들으려고 그러나 지금 여기 청주 미평동 148번지 6사상 10방은 겨울답지 않게 온화하기만 합니다 자그만한 질화롯가에 둘러앉아 밤 새우며 정담 나누듯 따뜻하기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 오래 뜸하던 시정에 반짝 불 붙이며 저를 잠자리에서 깨워 주신 건 제 아버님만이 아니셨군요 두 분이 소리없이 성큼 들어서시어 나의 두 어깨에 오른손 왼손을 얹으시고 이마를 툭툭 치시며 일으켜주신 거지요 틀림없지요 저는 이제 여기서 아버님의 마음에 당신의 마음까지 만지며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 그리우면 볼을 비비며 소리없이 고마운 눈물도 뜨겁게 흘리는 거죠 뭐 뜨거운 눈물로 안개처럼 피어 오르는 허영심 같은 걸 지우는 거죠 뭐 스승이시여 우리의 큰 큰 스승이시여 죽어서 사는 길을 몸으로 가르쳐 주신 스승이시여 우리를 죽음을 사는 길로 몰아넣으시고 그 길을 앞장 서 가신 지독한 스승이시여 너무 나무라지 마소서 저는 벌써부터 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죽일 놈이지요 스승의 부음을 기다리는 후레자식이지요 그래도 저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늘 무너지는 소식인 줄 알면서도 당신의 몸은 이제 할 일을 유감없이 다 했으니까요 하고도 남을 만큼 해냈으니까요 날개 접힌 수리를 풀어놓아 높푸른 창공 유유히 날게 하고 몸은 조국의 거름이 될 때가 되었으니까요 카나다에서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시던 사모님 당신이 도착하시는 날로 쓰린 듯이 나아 이 방 저 방 분주히 들락거리시던 사모님이시지만 매여 있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당신의 날개는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요 우리의 마음이요 꿈이요 하늘이요 자유이니까요 우리 조국이요 사랑이니까요 아마 1975년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자리를 비우신 이 나라는 마치 기수를 잃은 군대처럼 갈팡질팡이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돌아오시라고 띄운 이 못난 제자의 편지에 당신의 회답은 불호령이었습니다 “너희 젊은 것들은 뭐냐? 다 늙은 내가 나가야 한다면 싸움은 이미 진 싸움이 아니냐?” “예, 알겠습니다” 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꽁지에 불이 붙은 호랑이처럼 우리는 온통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꼭 미친 놈 같았겠지요 그러나 어쩝니까 당신에게 배운 게 그것뿐인데 스승이시여 눈물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어버이 같은 아니 어버이보다 더한 스승이시여 당신은 함경북도 경흥에서도 전형적인 샌님 아니었습니까 머리는 좋아 글공부는 잘 하셨다지만 그 보잘것없는 몸매에다가 꾸물거리기는 왜 그리 꾸물거리는지 가는 귀 먹은 사람은 한참 귀를 곤두세워야 겨우 알아들을 소리로 웅얼거리는 못난이 그러나 그 작은 몸 속에서는 두만강 푸른 물 소리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백두 영봉에서 흘러내리며 쩌릉쩌릉 살아 튕기는 물소리였습니다 풀려난 죄수들 면천한 천민들이 땅을 파는 변방의 변방이었지만 당신은 거기선 드물게 선비의 끄트머리로 태어나셨습니다 그 덕에 샌님이 되셨지만 당신의 글에선 흙내음이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억울한 죄수들의 울분이 아우성치고 있었습니다 천민들의 뚝심이 불끈불끈했습니다 동신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하며 손끝만 까닥거리며 백성의 고혈로 살아가는 서울의 벼슬아치들의 좀상스런 모습을 껄껄 웃어주는 말갈기 휘날리며 대륙을 주름잡던 고구려의 기개가 있어 죽은 역사를 일깨우고 있었습니다 그 흙내음에서 절대로 절대로 정직한 땅의 양심이 고요히 번져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속이지 않는 남 속이느니 차라리 내가 속아주는 양심 속아주면서도 결코 결코 속지는 않는 시퍼런 땅의 양심이 봄바람 타고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모든 간사한 유혹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양심의 소리 따위 껄껄 웃어주며 짓눌러오는 검은 손을 가볍게 튕겨버릴 수 있는 순발력도 주셨습니다 그 흙내음으로 당신의 학문은 성리학이 아니라 실학이었습니다 가시덤불을 갈아엎고 씨를 부리는 농학이었습니다 감옥이란 감옥을 모두 허물고 그 자리에 아이들의 놀이터가 있고 즐거운 생활이 꽃피는 주택단지를 세우는 공학이었습니다 온갖 불의와 부정을 때려부수는 군사학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자유와 정의를 기둥으로 평화의 나라를 세우는 정치학이었습니다 그 울분으로 당신은 선친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자유가 좋아서 기독교인이 되셨지만 거기도 툭툭 끊어 버려야 할 사슬이 많았군요 되지 못한 우월감으로 콧대만 높은 서구인들의 전통과 풍습은 더 무거운 사슬이었습니다 공자왈 맹자왈에서 풀려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슬은 그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 문자주의였습니다 유교의 사슬을 끊어버린 당신의 울분은 다시 기독교의 사슬도 끊어버리고 자유를 선포하셨습니다 뼛속까지 길들여진 노예근성을 못 털어버리고 뒷걸음치는 우리를 이끌고 당신은 앞장을 서셨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자유의 황무지를 갈아엎는 보습이었습니다 그 뚝심으로 당신은 기라성 같은 예언자들과 지성들이 이천 년 걸려 쌓아올린 교리의 금자탑들을 허무셨습니다 이 겁장이들 세상이 무서워서 숨어드는 도피성을 아무 미련없이 무너뜨리시고 길바닥으로 내모셨습니다 박봉랑 박사 서남동 목사가 본회퍼의 비종교적인 기독교 해석을 현영학 교수가 하비 콕스의 『세속 도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당신은 종교적인 언어가 말끔히 가신 찬송가 가사를 지으셨습니다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이 빛 삶 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탑 높아간다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가지 솟을 때 가지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기독교 이천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지요 하늘과 땅 그리고 세계사를 울리는 그 격조 높은 가사는 두 절로 끝나 있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마음을 알아 3절을 붙여 완성해 주기를 바라셨던 거죠 그 메아리를 잡으려고 저는 몇 해 징역까지 살아야 했습니다 맑은 샘줄기 용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 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 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이 되어 타거라 권모술수로 온몸이 절어 있다는 같이 앉아 차만 마셔도 부정 탄다고 기피당해오던 정치인들과 민주수호국민협의횐가 뭔가를 만들고 의장이 되어 사회봉을 두드리시는 당신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지만 농담이라기에는 너무도 진지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당신은 내놓은 말이었습니다 이단이요 분열분자로 파문을 받았습니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정신으로 손수 세우시고 온갖 정성 다 바쳐 키우시던 조선신학교는 풍전등화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걸 두려워할 당신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적 기독교라는 기치 아래 동지들이 혁신교단이라는 걸 만들자 단신으로 이와 결별하고 나오신 ‘당신의’ 담력이 그 정도로 움츠러들 수야 없었지요 남이야 성서 파괴자라고 하든 말든 이단이니 뭐니 하며 칼을 빼들고 달려들든 말든 당신은 그냥 아무 일도 없는 듯 오던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이었습니다 속이 정 언짢으시면 며칠 잠적 정도는 하셨지만 송창근 박사님이 찾아내시어 신앙과 학문을 교회정치와 얼버무리지 않겠다고 한마디 하면 평온한 모습으로 당신은 다시 나타나시어 우리와 허물없이 섞이셨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당신의 말소리는 마냥 웅얼거림이었습니다 한번이라도 당신이 큰소리 치시는 걸 들은 사람이 있다면 천리길이라도 멀다 하지 않고 찾아가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고함소리 길바닥에 밖으로 나가는 일 없는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고 팔락이는 심지도 끄지 않는 야훼의 종의 모습이었습니다(이사야 42:2~3) 한국 신교 백년사에 당신만큼 많은 글을 쓰신 이가 없지요마는 그 글을 다 모아 저울에 달아도 당신의 그 고요한 침묵 당신의 그 웅얼거림에는 못 미칩니다 그것은 역사의 증언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 고요한 침묵과 웅얼거림으로 역사의 새 장을 여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역사의 실체가 되셨습니다 위선과 독선으로 독기를 뿜는 살인과 전쟁으로 피비린내 나는 오만불손한 기독교의 역사를 당신은 툭 꺾어 민족사 속으로 겸손하게 끌어들이는 만용을 부리신 겁니다 드디어 두 역사는 소리치며 하나로 어울려 도도히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는 분단의 찌꺼기를 깡그리 쓸어내고 통일의 대해에 이른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만년 청청하게 우리와 함께 서 계실 스승이시여 낙락장송은 정몽주의 것만은 아닙니다 당신도 낙락장송입니다 1987년 이 준열한 역사의 절벽에 온몸으로 버티고 섰는 버티고 서서 역사를 증언하는 낙락장송이십니다 정몽주가 옛 질서를 지키려다가 죽어간 고풍창연한 솔이라면 스승이시여 당신은 불어오는 바람과 맞서서 내일의 꿈을 휘날리는 낙락장송이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영웅은 아니십니다 당신은 우리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샌님이십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당신은 한국교육의 풍운아 ‘한신’의 정신이요 창설자이십니다 기독교장로회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보다 전에 당신은 분명 예수의 제자요 우리의 다시없는 스승이십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전에 당신은 우리의 형제이십니다 종로 네거리에 나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우리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분명 우리와 한겨레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한 조금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겨레입니다 겨레의 양심입니다 아― 당신은 저 두꺼운 역사의 벽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어렵잖이 무너뜨리시고 백짓장 뒤집듯 역사의 새 장을 여셨습니다 마치 똥강아지 코끝으로 사립문을 밀고 나서듯이 당신이 하신 일을 우리라고 왜 못하겠습니까 갓 풀려난 죄수들의 울분이 가슴에 살아 있고 갓 면천한 천민들의 뚝심만 있다면 당신이 지난 날 해낸 일 우리도 내일 또 모레 해보일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고마운 스승이시여 길이 우리와 함께 계시소서 청주에서 불초생 익환은 엎드려

  • 찢긴 마음

    몸만 남기고 훌쩍 떠나 버리신 아버님의 훈훈한 마음 만나 볼이라도 비비고 싶은 마음 까치가 되어 까까 날아간다 의정부 지나 소요산 중턱 아버님의 작은 무덤 위에 앉아 잠깐 숨을 돌리고 한탄강 건너 철원 지나 휴전선 철조망 위에 앉아 까까까 불렀더니 발바닥 밑에서 이게 누구 목소리지 낙환의 목소리 아니니 하는 소리가 나지 않겠어 그래서 발밑을 굽어보았더니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더군 당연한 이야기지 마음이 보일 리 없는 거니까 비록 보이진 않아도 아버님의 마음이 거기 있는 걸 안 다음에야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땅에 내려앉아 그 마음에 닿아나 보려고 했거든 두리번 거리는데 여기야 여기 하는 소리가 이번엔 위에서 나지 않겠어 그 소리에 눈을 쳐들어보았더니 아아아아아 아버님의 마음 찢어진 걸레처럼 철조망에 여기 한 점 저기 한 점 걸려 펄럭이고 있지 않겠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까까까 아버님의 마음 이리도 처참하게 찢어져 피투성이로 펄럭이고 있네요 그래 그렇단다 하면서 아버님의 찢어진 마음 조박들 철조망에서 훌훌 떨어져내려와 모이더니 생전에 아버지로 바위처럼 앉아 계시는 게 아니겠어 마음도 피가 있네요 나도 그럴 줄 몰랐다 피는 마음에 있던 거야 마음은 피에 있었던 거구요 아니 피가 마음인 거다 마음이 피인 거고 전 아버님의 마음 청진에 가서 문환이를 만나고 회령에 가서 문석이형님을 만나고 지금쯤은 용정에 가 계시는 줄 알았는데 철조망을 소리없이 빠져 원산에 가서 네 삼촌 무덤을 찾아 한참 숨을 돌리다가…… 이 원수의 철조망을 거두어버리고 싶어 되돌아오신 거군요 그래 맞다 그런데 그게 안되는구나 난 지금 마음뿐이니까 아버지 북쪽에 가서 사람들을 몰고 오세요 몸으로 숨쉬는 마음들을 전 남쪽에 가서 사람들을 몰고 올라올께요 아버님의 목을 안고 볼을 비벼보고 까까까 날개를 치다가 눈을 뜨니 여기는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병사 9호실 창밖의 가시 쇠줄에 까치 한 마리 앉아 까까까 울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