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펴내며(두번째 시집 『꿈을 비는 마음』 서문)
시집을 펴내며 여기에 실린 시들은 거의가 차디찬 골방의 마루바닥을 맨손으로 파서 기록한 것들이요, 빠끔히 내다보이는 철창가 하늘 저편에 피맺힌 목청으로 부조한 아우성이지 붓으로 골라 쓴 시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여기에 실린 것들은 한 시인의 의식의 분비물이 아니라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심장, 혈관이 터져 쏟아져 나온 핏발들이어서 보고 듣는 이의 가슴을 섬짓하게 한다. 그러나 웬일인가, 행동하는 문익환, 싸우는 문익환의 현실과 그의 시세계는 또 이처럼 엄청 난 괴리감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때문에 이 시집은 시인 문익환의 영적 작업의 또 하나의 쌓임이기 전에 차라리 백발을 휘날리는 그분을 감히 백주대낮에 한오라기도 남기지 않은 채 발가벗겨 놓은 나상일지 모르겠다. 그렇다. 이제 시인 문익환은 이처럼 발가벗은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마구 다가섰으니, 이 한 권 시집은 책장이나 장식하는 것이 되어서는 절대 안되겠다. 이 한 권 시집은 일하는 일꾼들의 땀으로 흠뻑 젖어야 하며 인간적 삶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의 핏방울에 얼룩지고 그리고 배우는 사람들의 눈초리로 활자가 마멸될 때까지 그 순수, 그 열정, 그 엄청난 민족통일에의 갈구는 민족사와 함께 전진해야 할 것으로 믿고 떳떳히 세상에 펼쳐 보인다. 1978. 3. 15. 펴낸이
문익환
1978.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