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기도-5
비록 티끌 같은 것들이지만 저희더러 이 땅의 이 깜깜한 땅의 빛이 되라고 하십니까 주여 태백산 줄기를 굽이굽이 휩쓸다가 순식간에 동해바다 서해바다를 들끓게 하는 어두움에 숨소리도 없이 삼키울 한 대 촛불입니다 우리는 생겨날 때 이미 타 없어지기로 운명지워진 몸들이기에 아까울 거야 없읍니다 마는 절벽처럼 버텨 선 저 어둠 물러설 날이 있을 건가요 주님 착하고 어진 마음씨야 어차피 포악한 주먹에 박살나도록 운명지워진 몸들이기에 무서울 거야 없읍니다 마는 햇순 돋아나는 대로 짓밟아 버리는 저 구둣발들 물러설 날이 있을 건가요 주님 어차피 땅에 묻혀 썩을 피라면 차라리 흰 눈 위에 눈부시게 뿌리고 죽는 편이 백번 나을 줄 알기에 주저할 건 없읍니다 마는 우리의 피를 받아 삼키려는 스올*의 저 목구멍 닫힐 날이 있을 건가요 주님 당신만이 역사의 주라는 걸 믿으라고 하십니까요 이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정의의 태양이 불끈 솟아오를 날 사랑의 햇살이 황금빛 깃을 활짝 펼 날을 믿고 기다리라고 하십니까 기다리고만 있지 말아라 정의의 샘 구멍을 뚫어라 사랑의 샘 줄기를 터라 고 하십니까 정의가 한강 물처럼 흐르게 사랑이 대동강처럼 흐르게 어둠의 절벽이 아무리 높아도 그 앞에 무릎을 꿇 수야 없지 않느냐 구둣발 소리 아무리 무서워도 움츠러들 수야 없지 않느냐 스올*의 목구멍이 온 세상을 삼키려고 한대도 그 앞에 젯상을 차리고 엎드릴 수야 없지 않느냐 고 하십니까 그야 그렇지요 그러나 어쩌면 좋습니까 그날이 오기 전에 시들어 떨어지는 저 꽃송이들을 숨이 막혀 터지는 저 가슴들을 땅에 영영 묻혀 버리는 아름다운 꿈들을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스올>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생각하던 <죽음의 신>
문익환
198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