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늦봄의 서재>
고정희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2024년 4월호)
“고정희의 시를 읽는다는 건 이 시대를 사는 정보특권” 늦봄은 고정희 시인과 관련된 내용의 편지를 아내 봄길과 맏아들 호근에게 여러 번 보낸다.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지 1년이 되는 1992년 6월 9일, 아들 호근에게 보낸 편지에서 늦봄은 고정희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고정희의 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의 구절을 되뇌이며, “우리들의 슬픔과 서러움을 여백의 아름다움으로 감싸줄 모양”이라고 전한다. 그러면서 ”창비시선(『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창비)으로 묶어 나왔나 본데, 꼭 사서 들여 보내달라”고 한다. 이어 “고정희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특권”이라며 ”너도, 은숙이도 읽어라”고 당부한다. 1992년 6월 24일에 보낸 호근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시 제목이 번역 투의 겉멋이 담겨 있다는 호근의 지적에 대해, “공감하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의 허술함과 미숙함은 오히려 미덕이 될지도 모른다”고 슬며시 옹호한다. 이외에 1986년 9월 1일 봄길에게 보낸 편지에는 “고정희는 마음의 빗장을 내리고 서로 닫힌 문을 여는 데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걸 기가 막히게 읊조리고 있다”고 전하고, 1982년 2월 10일 봄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고정희의 두 번째 시집 『실낙원 기행』을 읽고 “한국 어느 시인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근원적 슬픔이 스며있다”며 첫 시집도 읽고 싶다고 전한다. 고정희(1948~1991.6.9. 해남)는 1975년~79년까지 한신대를 다녔으며, 1학년인 1975년 을 통해 등단한 후 10권의 시집을 냈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등 우리나라 초기 여성운동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여성, 민족, 민중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10권이나 시집을 낸 천생 시인이다. 고정희는 한신대를 다니며 수유리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여러 번 떠나려 했지만 결국 수유리를 떠나지 못하는 내력을 ‘다시 수유리에서’, ‘수유리의 바람’ 시로 써내고 있다. 이외에도 시의 곳곳에서 수유리와 한신대를 만날 수 있다. 수유리란 장소와 공기와 정서적으로 긴밀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정희는 안타깝게도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중 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참고 자료] 문익환 옥중편지 1982. 2. 10(두엄더미 속의 삶), 1986. 9. 1(사랑한다는 생각없이 사랑하는 길) 1992. 6. 4(예술도 사람의 일, 허술한 데가 있어야 미덕) 1992. 6. 9(고정희의 시를 읽는다는 건 이 시대를 사는 정보특권) 월간 문익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