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과 동주, 두 분이 나의 시간 안으로 들어왔다”
박영옥 『월간 문익환』 편집위원
◇윤동주 80주기를 맞아 찾아간 도쿄에서 고 정경모 선생의 장남 정강헌 씨를 만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
늦봄과의 인연을 맺어준 윤동주
문익환 목사님(늦봄)에 대한 기억은 TV 속에서, 신문에서, 잡지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모습으로만 알았던 것 같다. 목사님이 가까이 다가온 건 8년 전 윤동주를 찾아 떠난 용정 여행에서부터 시작이다. 학교 도서관을 퇴직 후 2017년 ‘동북3성 조선족학교 도서관 운영 교육연수’ 진행팀에 합류하면서 가본 ‘연변’. 그곳은 멀리 있는 곳이 아니었다. 우리 언어를 쓰는 한민족임을 피부로 느꼈다.
그곳에서 윤동주 생가를 찾아 명동촌을 가고, 윤동주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늦봄을 알게 되었다. 늦봄이 쓴 윤동주에 관한 글을 찾아 읽고, 윤동주가 늦봄에게 어느 만큼의 크기로 존재하는 사람인지 알면서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22년 7월부터 문익환 목사님 아카이브 수장고에서 시집 내용을 교정하는 봉사를 시작했다. 사계절에서 1999년에 발간한 『문익환 전집』 중 시집은 늦봄이 사용하는 방언이나 당시 맞춤법으로 쓴 글을 현재의 맞춤법으로 표기했다. 이를 원본 시집과 비교하며 원래대로 바꾸는 일이었다.
늦봄에 시에 녹아있는 동주의 시어
그런데 늦봄의 시에는 윤동주의 시어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기할 정도였다. 평생을 그리워하며, 시로 녹여내고, 시로 이야기 나누는 것 같았다. 늦봄이 70세 때 지은 「동주야」는 70세가 된 늦봄이 20대의 동주와 대화한다. 동주에게 보내는 편지인 셈이지만 나에게는 대화로 읽힌다. 늦봄은 “윤동주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나의 넋이 맑아짐을 경험한다.”라고 했다. 충분히 공감한다.
지금은 늦봄이 소장한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교도소에서 반입을 허락한 책이라는 표시인 ‘열독허가증’이 붙은 책들은 그 시대 어느 시점에 얼어붙은 채 무심한 세월을 견디고 있다. 내가 아는 책이 나오거나, 읽고 싶었는데 절판된 책들을 보면 반갑다. 공유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공간을 옮겨 다니며 만난 두 분이 나의 시간 안으로 함께 들어와 나이 먹음에 어질러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강북구 수유동 한신대 신학대학원 2층 수장고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박영옥 편집위원.
늦봄이 소장한 책들을 정리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박영옥 위원은 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다 퇴직 후 2022년 7월부터 늦봄아카이브 수장고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2023년 10월부터는 『월간 문익환』 제작에 참여하여
🔗‘늦봄의 서재’ 를 연재하는 등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