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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타향살이. 기록되기 전엔 알 수 없는 것들
우리들의 소풍 “ 기록되기 전엔 알 수 없는 것들(Things unknown before being recorded)” 공장과 농장과 선박과 식당은 일상에 있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 덕분에 우리는 상품이라는 결과물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정작 노동하는 사람의 시간은 잘 보이지 않고 기록도 찾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의 문제에서 소외를 해결하고자  실천의 현장으로 뛰어든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주체의 기록이 보존되어 서비스되는 사례들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흔치 않다.   민중사가 배제되거나 왜곡되고 지배계층의 문화와 기록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든 노동은 모든 사회 구조물을 이루는 기반이며 노동자는 한 사회의 다양한 경제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이다. 스피박(Spivak 1988)은 한 사회의 민중·소수자와 유의한 개념으로 서발턴(subaltern)을 사용했는데 서발턴은 자신을 재현하기 어려운 중심 밖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재현하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해서 대리 재현될 때 그 가치는 종종 온전히 인식되지 못하거나 변질된다. 우리는 국제연대의 경험과 기억을 가진 당사자로서 대륙간 연대, 아시아 지역의 사회운동 영역의 틀 안에서 지배계층의 시선이 아닌 서발턴의 시선으로 기록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을 향한 과제가 국제연대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와야 할 것을 제안한다. 그 범주 안에는 이방인으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애사도 포함된다. 2000년대 한국에는 노동 아카이브가 등장했다. 국내에서 노동기록을 수집, 활용하고 있는 곳은 ‘노동자역사 한내’와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민주화운동 사료관’ 이다. 위의 세 기관은 노동에 관련된 각종 기록을 수집하는 곳이지만, 주변부 노동자들의 참여와 이용률은 약하다. 이같은 문제의식은 기록될 이유가 명확한 인물, 조직, 사건 중심에서 벗어나, 기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한 참여 기반 기록화이다. 그것은 기관을 넘어 시대와 사회로 확장되고, 개인과 공동체가 진정한 해방의 주체이자 정치사회적 주체임을 인식하는 계기와 만나야 할 것이다.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의 기록화가 가져올 변화 한국 사회에서 주변부 노동자들로 살아가는 다수는 서발턴적 존재이다. 그들 자신은 기록으로 자신의 일상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웃나라에서 한국으로 이동한 이주노동의 역사는 30년이 지나고 있다. 국가는 필요하지만 필요하지않은 존재처럼 사람을 취급했다, 그러다가 공식적으로 1994년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도입했다. 2004년에는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니 ‘코리안 드림’을 좇아 들어오는 인원이 대폭 늘었다. 최근에는 농업계절노동자제도가 도입되었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빈번한 이주노동 현실에 대해 연구자들이 종종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화를 시도하지만, 지속적 관계가 단절되는 현상에 머물고 있다. 연구는 있지만 서발턴의 기록이 빈약하고 몇 안 되는 이유이다. 사회운동이 서발턴 재현에 기록이 기여하지 못한다면, 주변부 사회 재현에도 사회운동은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정의적 측면에서. 당대를 기록하고 시대를 재현하는 기록은 ‘온전한 개인’ 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록의 공백을 메꾸는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대안기록, 기록화 방안의 실천적 운동이 필요하다. 기록저장소는 미시적 생활사 기록이 축적되는 저장소이고, 국제협력과 연대의 입장에서는 국가를 뛰어 넘은 민과 민의 연대, 대륙간 연대에 대한 사회적 기억화가 진행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운동사적 필요성 기록생산, 수집, 축적, 관리 과정은  개인과 공동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역사가 담긴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에 의해 규정당하지 않도록 능동적인 아카이브를 준비한다. 그러려면 참여적 기반과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단 ‘참여’라는 방법 자체만으로 대안적인 아카이빙 전략이 완성될 수 없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에, 일터와 현장을 기반으로 개인이나 집단의 기억과 기록을 수집하고, 선택하고, 분류 선별한다.  그 결과, 통합적인 이야기가 사회기록으로 남도록 활동가, 연구자, 지역사회 관계자 등이 통합적(유기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상정한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참여와 자발성에 기초한 아카이빙이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어 지속적인 아카이빙 유지를 위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이 축적되는 시간이 형성되면  향후 아카이브는 기록의 이용도를 높이고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이 확보된다면, 민주주의와 경제체제의 기반인 노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교육자료 활용도 가능하다. 즉 일상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개인, 공동체, 지역사회, 더 나아가 한 사회의 진보에 더 다가서는 기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작성자, 차미경)  
  • 시드니코리안포스트를 소개합니다
    <시드니 코리안포스트>는  <호주소식>의 뒤를 이어 호주 한인 이민사의 황금기를 기록하고, 교민 사회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담아냈던 대표적인 한글 신문입니다.   시드니코리안포스트 창간호 1. 창간과 한인 사회의 성장기 (1989년) <시드니 코리안포스트>는 1989년 호주 시드니에서 창간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은 호주 정부의 다문화주의 정책과 한국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등이 맞물려 호주 한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던 역동적인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교민 사회의 정보 수요를 충족하고, 한인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민간 주도로 태어났습니다. 2. 매체로서의 특징과 역할 종합 한글 매체: 단순한 생활 정보 안내에 그치지 않고 호주 현지 정치, 경제, 사회 뉴스부터 고국의 소식, 문화, 이민 및 법률 칼럼까지 폭넓게 다룬 종합 신문이었습니다. 진보적 청년 및 민족민주운동과의 연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시드니 지역에서 활발했던 KRC(한국민족자료실) 등 진보적인 한인 청년·사회 운동가들의 목소리와 활동을 지면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주류 사회의 시선이나 보수적인 이민자 공동체의 틀에 갇히지 않고,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이나 한인 사회의 풀뿌리 현안을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문화적 가교: 호주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자칫 소외되기 쉬운 한인들에게 모국어로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정착을 돕는 동시에 한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3. 역사적 의의와 기록 보존 (Grassroots History) <시드니 코리안포스트>는 지면 광고, 한인 사회의 크고 작은 행사 기사, 교민들의 기고문 등을 통해 '1980~90년대 호주 정착민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1차 사료입니다. 당시 거대 언론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소수 이주민들의 일상과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중한 기록 자산입니다. 이 때문에 <시드니 코리안포스트> 역시 초기 호주 한인 이민사 및 아시아계 이주민 연구의 핵심 자료로 인정받아, 현재 **아시아태평양 메모리 아카이브(Asia Pacific Memory Archive, AMA)**를 통해 디지털 아카이빙(보존 및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덕분에 시드니 한인 사회의 소중한 풀뿌리 역사가 유실되지 않고 후대에 이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드니코리안포스트23호
  • 1980년대 민족민주운동과 KRC의 역할
    한민족자료실(KRC) 1990 정기 임시 회의록 계획표 및 연락망   1980년대 후반 호주 시드니 캠시(Campsie)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호주 한인 민족민주운동 단체 ‘한국민족자료실’(KRC, Korean Resource Centre)은, 1988년~1989년 무렵의 뜨거웠던 호주 한인 운동사(史)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단체입니다. 당시의 기록을 톺아보면 이들이 남긴 굵직한 궤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1980년대 후반, 호주 민주화·통일 운동의 거점 198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내부의 민주화 열기와 6월 항쟁의 흐름은 호주 이민 사회로도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당시 강병조 대표 등을 중심으로 캠시(14 First Avenue)에 자리 잡았던 한국민족자료실(KRC)은 단순한 도서 대여 공간이 아니라, 호주 내 진보적 한인 청년들과 동포들이 모여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도모하던 현장이었습니다. 광주항쟁 진실 알리기: 광주의 참상을 담은 비디오(이른바 '광주 비디오')를 동포들과 함께 상영하며 전두환 정권의 폭거와 광주의 진실을 현지에 알리는 데 앞장섰습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 방호 시위: 1988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이 시드니를 방문했을 때, KRC는 시드니한인회를 설득해 만찬 불참을 이끌어냈고, NSW주 의사당과 만찬장 앞에서 책임자 처벌과 조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격렬한 반대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1989년 역사적인 '남북 공동응원': 1989년 호주에서 열린 세계 남자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당시, 분단 이후 최초로 시드니 한인회와 협력해 남북 선수단 모두를 아우르는 남북 공동응원을 펼쳐 교민 사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임수경 평양 축전 참가 지원과 파장 한국민족자료실(KRC)이 국내외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사건은 1989년 전대협 대표 임수경 양의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를 막후에서 도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호주 연합교회(Uniting Church)의 의료선교사로 부산 일신기독병원에서 근무하던 김진엽 선교사(KRC 활동가)가 임수경 양의 북한 방문을 도왔다는 혐의로 국내에서 1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KRC의 강병조 대표 등 한인 대표단 역시 북한을 바르게 알리는 운동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목적으로 평양 축전에 직접 참가한 후 호주로 돌아와 시드니 시티 연합교회(Pitt St Uniting Church)에서 북한 방문 보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후 KRC는 체계적인 청년운동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준비 과정을 거쳐 '재호한국청년연합(재호한청련)'을 출범시켰고,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호주본부 등과 연대하며 호주 내 대표적인 민중·통일 운동 세력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비하인드 한 토막: KRC의 출범과 활동에는 호주의 대표적인 진보 성향 아시아학 학자이자 《한국전쟁(Korea: The Unknown War)》의 저자인 호주국립대(ANU) 개빈 맥코맥(Gavan McCormack) 교수 등 현지 진보 지식인들도 깊이 연대하며 지지를 보냈습니다. 척박했던 이민 사회 속에서도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목소리를 냈던 '사람 중심의 역사(민중사)'가 담긴 단체입니다. 
  • [연대성명서] 일문스님의 팔레스타인 연대 메시지
    [아친성명서] 팔레스타인 연대를 위한 메세지(2024-04-13) [연대 성명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인종 학살은 당장 멈춰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인종 학살은 당장 멈춰야 합니다   (1)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민간인 학살은 전 세계 민주시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로써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적극 지지합니다   (2) 대한민국도 권위적인 대통령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했고,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잘못 가는 정치를 심판한 민심을 보았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하려면, 생명, 평화, 공존, 인권의 가치가 존중되는 국제연대 활동에 더 많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3) 한국에는 현재 130만 명이 넘는 외국인, 이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종교와 문화. 관습이 다 다르지만 이웃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팔레스타인들의 고통은 우리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고통에 연대하며 평화로 하나 되는 세계인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4) 그런 마음으로 아시아의친구들은 전쟁 피난민들을 돕는 모금활동도 시작했습니다.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 사는 여러 나라의 청년학생들, 시민들의 마음이 전해지도록 합시다. 팔레스타인에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024년 4월 13일   일문 스님 (실천승가회, 아시아의친구들 공동대표)
  • 한내초등학교 인권교육과 다문화교육
    한내초등학교 인권교육과 다문화교육 11월8일, 11월12일 한내초등학교 교육   고양 한내초등학교에서 인권교육과 다문화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11월 8일과 12일에 이틀에 걸쳐 4학년 4개반의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다문화교육은 '카자흐스탄의 날'로 카자흐스탄의 위치와 기후, 자연, 전통의상과 가옥을 알아보고 인사말과 인사하는 법도 함께 배워봤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하기에 카자흐스탄의 도시 사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어린이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들어본적도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커다란 면적이라는 것도 이렇게 현대적인 도시가 있는 나라라는 것도 어린이들에게는 새롭습니다.   인권교육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푸른눈 갈색눈' 이라는 책 내용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차별에 관한 실험을 내용으로 한 책으로 편견이 얼마나 쉽게 생기는지 그런 편견에 의한 차별이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하는지에 대해 어린이들과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존중 받기를 원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이렇게 일년에 한번 인권과 문화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받는 것은 신선한 경험일 것입니다. 안 하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가끔이라도 하는 것이 다행입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항상 인권과 문화다양성 교육이 진행되어 더이상 신선한 교육이 되지 않길 바래봅니다. 지역사회의 다문화교육 다각화를 위한 효과적 접근 방법 모색
  • 아태지역 주요 사건과 사회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