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아카데미 칼럼>

4강 이주를 선택하지 않은 이주인(김사강) (2025년 10월호)

아동이기 이전에 외국인 취급당하는 이주아동

[2025 늦봄 평화·통일 아카데미 칼럼] 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연구위원
 
◇지난 6월 10일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2025 늦봄 평화·통일 아카데미에서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이 ‘이주를 선택하지 않은 이주민’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우리 곁의 이주민들은 좀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선 나라인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본인의 선택이나 의지로 이주하지 않은 이주민들이 있다. 바로 이주아동들이다. 이주아동들은 부모가 한국으로 데리고 왔기 때문에, 부모가 한국에서 낳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물려받은 국적은 그들을 나고 자란 이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게 한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 국적이 없다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권리들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동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동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아동으로 대해야 한다는 명제가 무색하게, 이 땅에서 이주아동은 아동이기 이전에 외국인으로 취급당한다. 만약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면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안고 살아야 한다. 출생등록권, 보육권, 교육권, 건강권, 사회보장권 등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누려야 하는 권리는 이주아동들에게 보장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만 허락된다. 

늦봄 평화·통일 아카데미 4강은 그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장애 이주아동에겐 닿지 않는 활동지원 서비스

한국에서 이주아동들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권리는 교육권, 다시 말해 학교에 다닐 권리였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이주아동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 가운데 일부는 장애가 있는 이주아동이다. 

물론 이주아동이라도 장애가 있으면 특수교육 대상자가 되어 장애인학교나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서 교육받을 수 있다. 문제는 지체장애로 인해 거동이 심하게 불편한 경우 학교에 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인 아동이라면 활동지원 서비스를 통해 등하교와 이동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주아동들은 그러한 서비스를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장애인등록을 할 수 있는 외국 국적자는 일부 체류자격 소지자로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장애인등록을 하더라도 외국 국적자에게는 예산이 소요되는 장애인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생계와 체류 위협하는 이주아동 건강보험

건강권은 어떠한가. 2019년부터 모든 등록 이주민에게 건강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었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아동이나 난민신청자 아동 등은 여전히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다. 건강보험에 가입한 아동들도 제도가 이주민을 차별하고 있다 보니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이주민 지역가입자는 본인과 배우자, 미성년 자녀만을 가족으로 등록할 수 있다. 때문에 조손 가정에서 자라나고 있는 이주아동, 부모 없이 홀로 또는 형제자매와 살고 있는 이주아동들은 개개인이 세대주가 되어 각각 보험료를 내야 한다. 전년도 평균보험료 이상이 부과되는 성인 이주민들과 달리 미성년인 이주아동에게는 하한보험료가 부과되고 있기는 하지만, 보험료 납부 의무가 면제되는 한국인 아동들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게 되면 더 이상 체류기간을 연장받을 수 없으니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보험료는 내야 한다. 이주아동에게 건강보험은 건강권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생계와 체류를 위협하는 제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박탈당하는 ‘머무를 권리’

가장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이주아동의 권리는 체류권, 머무를 권리이다. 미등록 이주아동들도 학교에 다닐 수 있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강제출국이 유예되어 학업을 마칠 수 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한국에 머물 수 없는 모순적인 현실은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미래를 계획하거나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왔다. 2021년부터 법무부가 일정 기간 이상 국내에 체류했고 초·중·고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들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그러나 해당 조치는 한시적인 것으로 2025년 2월 말, 3월 말, 그리고 또다시 2028년 3월 말까지로 기한을 연장해 가며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다. 

미등록 상태로 국내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이주아동·청소년·청년은 최소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앞으로도 미등록 상태로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는 이주아동·청소년들은 계속해서 배출될 것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이들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정책은 한시적 조치가 아닌 상시적 제도가 될 필요가 있다. 인구가 감소한다고 매해 수십만 명의 이주노동자와 유학생을 유치하고 그들의 사회통합에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 한국 정부가, 기껏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교육을 시킨, 이미 사회통합이 다 되어 있는 이주아동·청소년들에게 안정적 체류를 보장하기를 꺼리는 것은 얼마나 큰 역설인가. 

대한민국이 1991년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당사국이 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아동에게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협약이 규정하고 있는 아동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부디 이 나라가 스스로 비준한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월간 문익환_<아카데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