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아카데미 칼럼>
3강 이주와 노동(우춘희) (2025년 8월호)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까 더러운 데서 살아도 돼?"
깻잎에 담긴 이주 노동자들의 눈물
[2025 늦봄 평화·통일 아카데미 칼럼] 우춘희 이주인권 연구활동가
◇지난 6월 3일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2025 늦봄 평화·통일 아카데미>에서 우춘희 활동가가 '3강 이주와 노동'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1. 한 사회를 먹여 살리는 이주노동자들의 손과 말
안녕하세요. 저는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을 쓴 우춘희입니다. 저는 밥상에 흔히 볼 수 있는 깻잎 한 장에 실려있는 이야기들, 웃음과 눈물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깻잎 밭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우춘희 제공
2. 3년 7개월 치 임금을 받지 못한 쓰레이응 씨
고용허가제로 온 쓰레이응(가명) 씨는 한국에서 4년 8개월 일했습니다. 그런데 3년 7개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주인권단체의 도움으로 2020년에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체불임금 사실을 확인했고,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를 발급해 주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쓰레이응 씨는 사업주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나는 한국 정부를 믿고 일하러 왔는데 왜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합니까?”라며 쓰레이응 씨가 한국사회에 질문을 던집니다. 이주노동자는 비자만료 전에 출국을 해야 합니다. 쓰레이응 씨는 비자를 연장해가며 한국에서 법정 다툼을 벌이지만 임금을 받을 길은 요원합니다. 임금체불이 발생해도 사업주는 이주노동자가 출국하기를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고용허가제 안에 기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쓰레이응 씨. 우춘희 제공
3.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까 더러운 데서 살아도 돼”
고용허가제로 온 많은 이주노동자는 4년 10개월 머물면서 ‘임시 주거 시설’에 삽니다. 임시 건축물은 불법건축물이기 때문에 건물 밑에 정화조를 묻을 수 없어서 집 안에 화장실이 없습니다. 볼일을 보려면 집 밖에 이동식 화장실로 가야 합니다. 주거비용도 1인당 20~45만원으로 비쌉니다. 한국사람이라면 아무도 살지 않을 곳에 비싼 월세를 내며 이주노동자들은 살고 있습니다. 정책 밑에는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은 악조건의 집에서 부당하게 비싼 월세를 내도 된다는 인종차별적인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 우춘희 제공
4. “죽음 시간”에서 연대의 시간으로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능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저는 캄보디아어를 더듬어가면서 단어들, 잘 발음되지 않은 문장들을 늘어놓습니다. 캄보디아어로 “죽음”과 “휴식”이란 단어의 발음이 비슷합니다. “휴식 시간”이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어떨 때는 “죽음 시간”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캄보디아 노동자는 웃으면서 발음을 헷갈려 하는 나를 이해해줍니다. 그들은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하루 10시간 일하고, 한 달에 이틀 쉬고, “휴식 시간”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서 “죽음 시간”이 올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잘 통역되지 않은 말들을 더 잘 이해하고자 우리는 서로 귀를 더 기울입니다. 한 단어라도 잘못 듣지 않겠다고, 당신들이 들려주는 말들을 잘 이해하고, 한국사회에 들려주겠노라고 꼭 다짐하곤 합니다. 이야기들을 꾹꾹 눌러 담아 강의시간에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온 마음으로 듣고, 함께 아파하고, 현실에 분노했습니다. 함께 느낀 분노는 변화로 분명히 이어질 것입니다. 깻잎에 담긴 이주노동자의 눈물을 알게 된 이상, 깻잎 한 장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의 저녁식사. 우춘희 제공
※우춘희
이주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로, 사회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이화여대에서 여성학 석사 후, 아시아여성학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매사추세츠대 사회학 박사 과정 중이며, 이주, 젠더, 농업 노동을 연구한다. 한국과 캄보디아에서 현장 연구를 진행했으며, 2018년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주하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진전을 열었다. 『깻잎 투쟁기』(2022)와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2023, 공저)를 썼다.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월간 문익환_<아카데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