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
정도상 작가(2) 전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상임이사 (2023년 9월호)
[(1)에서 이어짐] 문익환은 ‘평화를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일을 한 사람’ 사랑, 생명, 평화, 여성 위에서 통일 추구 ◇ 서로 다른 것이 하나로 되는 '통이(通異, 統二)'를 강조하는 정도상 작가 문익환의 행동과 사상 남측이나 북측을 절대 비난하지 않아 문 목사님은 평양에 가서 단 한 번도 남쪽을 비난한 적이 없어요. 남쪽의 현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어요. 김일성 주석에게 끊임없이 노태우 대통령과 대화하라고 얘기했고, 서울에 와서는 평양에 대한 욕을 안 했어요. 통일맞이 사람들도 목사님의 그 원칙을 저절로 알고 따랐죠. 목사님은 남북 당국 간에 대화하는 다리를 놓으려고 간 것이었어요. 서로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북한과 합의서 등을 작성할 때 반드시 지켰어요. 북측에서 ‘반미 투쟁, 반통일 분자’ 같은 용어를 써 오면 남측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죠. 북측의 안을 수정하는 것이 무지 어려웠지만 합의서가 지연되더라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생각 달라도 함께 하는 것이 통일맞이 정신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함께 한다는 것이 통일맞이의 정신입니다. 통일맞이에서는 진보가 아닌 보수 교단에 계신 분을 모셔와서 이사직을 주었어요. 그런 것이 문 목사님의 태도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사전 편찬 특별법 추진 단계에서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후원회나 이사진에 참여하게 했는데, 이 덕분에 법을 신속하게 통과시킬 수 있었죠. 겨레말큰사전이 ‘언어차별’ 극복에 기여할 것 통일되면 매우 심각한 언어 차별이 발생할 겁니다. 독일 통일 이후에 동독 지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서독 지역어를 사용하는 사람보다 급여가 30% 낮았어요. 언어로 인해 이런 차별이 생기고 심해지게 됩니다. 겨레말큰사전을 만드는 것은 언어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부산 사람은 사투리를 듣고서 부산 사람임을 알게 되는 것처럼, 사투리를 쓰는 행위에 대해선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다음으로 우리 민족이 식민지로 떨어져 좌우 이념이 들어온 후부터 우리 안에 강력하게 자리 잡은 이분법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문 목사님은 명동촌에서 어린 학생들이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과 공산주의 추종 세력이 기독교와 민족주의를 죽이는 것을 눈으로 본 분이죠. 광복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전면적 투쟁과 분단체제는 우리 역사와 삶을 옭아매 온 이분법주의입니다. 서로 다른 것이 하나로 되는 통이(通異, 統二)가 매우 중요합니다. 문 목사님이 “통일은 다 됐어”라고 하셨지만 통일은 ‘통이’를 얘기한 것 같아요. 방북은 서로 통하게 하려는 몸부림이지 목사님이 영웅이 되려는 것이 아니었어요. ◇ 통일맞이 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문익환 목사(1993) 목사님은 여성주의와 생명 평화 추구 ▶문익환의 시와 편지에 나타난 사상은? 문 목사님의 편지들을 잘 보면 생명 평화 사상을 누구보다 먼저 말씀하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편지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여성주의, 즉 여성이 어떻게 삶의 주역이 돼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고요. 또 하나가 바로 생명 평화 이야기입니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모든 생명이 서로 어우러져 잘 살게 하자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죽음을 보셨죠. 북간도의 삶 자체가 그렇고 전쟁과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끊임없이 죽음과 맞닥뜨리고 대면해 온 삶이었어요. 목사님은 감옥에서도 ‘반독재투쟁을 해야 한다’ 같은 말, 없었습니다. 사랑, 생명, 평화, 여성 이런 얘기만 주로 하고 계셨어요. 문익환 사상의 핵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목사님이 추구한 기독교 사상이기도 한 거죠. 예수님 믿고 회개하면 된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구체적인 행위가 사랑, 평화, 생명, 여성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사상이죠. 민주화 운동가 아닌 생명주의자 문익환 ‘문익환은 어떤 사람이다’를 말한다면, ‘평화를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일을 한 사람이다’가 맞죠. 사람들이 민주화 투쟁 운동가로 보고 있는데, 사실은 통일이라고 하는 것에 문 목사가 있지 않아요. 평화, 생명, 사랑, 여성, 이걸 통해서 통일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이 측면에서 문익환 새로 읽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민족의 진정한 생명주의자로서의 문익환을 찾아내야 합니다. 부자들의 생명이 아니라 히브리 민중의 생명이잖아요.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이고 같이 사는 생명입니다. 이걸 잘 봐야 하는 거예요. 목사님과 장로님은 대중교통 사랑 목사님은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세요. 택시는 안 타셨죠. 늘 지하철, 버스를 타고 다니셔서 그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언론에 기사도 났었죠. 박용길 장로님과 함께 대중교통 많이 사랑하셨어요. (정 작가는 겨레말큰사전이 종이 사전의 모습에만 그치지 않는 발전된 형태들을 보여줄 것이라며 기대를 보였다. 작품 활동으로는 윤동주를 소재로 한 작품이 완성 단계에 있다며, 향후 문익환, 윤동주, 송몽규가 함께 한 어린 시절을 소재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 정도상 작가는 - 정 작가는 고2 때부터 문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전라도 작가들이 신춘문예를 휩쓰는 것을 보고, 저 지역으로 가면 문학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삼수 끝에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호남의 국립대 진학을 선택했다. 1987년 등단한 이래 수십 편의 소설과 동화를 창작해 왔다. 17회 단재상, 25회 요산문학상을 받았고, 2020년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꽃잎처럼』(부제:1980.5.27 그 새벽의 이야기)을 펴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통일위원장을 역임했다. 언제든, 누구와 함께든, 사람과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어디든, 걷기를 즐겨 합니다. 월간 문익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