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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3개의 기록물
  • 밀양부문(密陽府門) - 밀양읍성 남문 공해루
    1910년대 조선총독부 철도국(朝鮮總督府 鐵道局)이 발행한 사진그림엽서로, 1902년 철거되기 이전의 밀양읍성 남문 공해루(拱海樓)와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수록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도판번호 (9), 영문으로 THE GATE LEADING TO THE TOWN MITYANG., 한문으로 密陽府門이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다. 영문표제는 이 문을 ‘밀양 읍내로 들어가는 문’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도상의 중층 문루와 현판, 밀양읍성 관련 기록을 종합하면 밀양읍성의 정문이었던 남문 공해루를 촬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석축에 홍예식 통로를 낸 성문과 그 위에 세운 대형 중층 문루가 화면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문루에는 공해루로 보이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성문 아래와 전면에는 많은 주민들이 모여 있다. 한복과 갓을 착용한 남성들을 비롯하여 여러 인물이 성문을 통과하거나 그 앞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나타나, 성문이 방어시설에 그치지 않고 밀양 읍내와 외부를 연결하는 주요 통행로로 기능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성문 좌우에는 경사진 성벽과 민가 또는 가설 구조물로 보이는 시설이 이어져 있어 구한말 밀양읍성 주변의 생활경관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밀양읍성은 1479년 처음 석축으로 축조되었으며, 이후 임진왜란으로 크게 파괴된 뒤 복구되었다. 후대 기록에는 동·서·남·북의 네 성문과 동·서 야문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며, 이 가운데 남문은 **공해루(拱海樓)**라 불린 읍성의 정문으로 중층 3칸의 규모를 갖추어 네 성문 중 가장 컸다. 공해루를 포함한 밀양읍성의 사대문과 상당 부분의 성벽은 1902년 경부선 철도 부설 과정에서 철거되었고, 성돌 일부는 철도공사에 이용된 것으로 전한다. 따라서 본 자료의 도상은 1902년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확정할 수 있으며, 오늘날 남아 있지 않은 밀양읍성 남문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반면 사진그림엽서 자체의 발행은 그보다 뒤이다. 조선총독부철도국은 1910년 설치되었으므로, 본 자료는 철거되기 전의 사진 원판을 총독부철도국이 후대에 다시 활용하여 제작한 사진그림엽서로 판단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 자료는 구한말 밀양의 사라진 도시경관을 식민지기 철도관광 홍보매체가 다시 선택·편집하여 유통한 사례이기도 하다. 조선총독부철도국은 철도망뿐 아니라 각지의 명승·고적·도시경관을 사진그림엽서와 관광안내물로 제작하여 철도여행의 목적지로 소개하였다. 1928년 여행안내서에서도 총독부철도국이 철도와 조선 각지에 관한 관광 인쇄물을 적극 배포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조선총독부 철도국(朝鮮總督府 鐵道局) #철도국 #밀양 #밀양부 #시장 #초가집 #초가 #초가지붕 #密陽府門 #공해루 #拱海樓 #밀양읍성 #密陽邑城 #경부선 #문루
    생산일자 미상
  •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 금강나루
    1915년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계기로 충청남도공주군협찬회(忠清南道公州郡協贊會)가 발행한 「조선 충청남도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계열 자료로, 공주 금강 연안의 경관을 수록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公州錦江ノ景이라는 원표제와 함께 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 忠清南道公州郡協贊會發行이라는 발행정보가 인쇄되어 있어, 본 자료가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와 관련해 공주군협찬회에서 발행한 기념 사진그림엽서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면에는 금강의 넓은 수면과 강변의 암벽 지형, 물가에 접안한 여러 척의 작은 배, 그리고 절벽 아래를 따라 이어지는 강변길이 함께 나타난다. 화면 오른쪽에는 높은 바위 절벽이 수직으로 솟아 있고, 절벽 아래 좁은 길과 수변 공간에는 몇몇 인물이 보인다. 중앙부 물가에는 소형 선박들이 정박해 있으며, 원경의 수면 위에도 작은 배 또는 뗏목 형태의 수상 교통수단이 보인다. 멀리 강 건너편에는 산지가 길게 이어져 금강 연안의 자연지형과 수로 경관을 함께 보여준다. 원표제는 단순히 공주 금강의 경관이라고 되어 있으나, 도상에는 정박선과 접안 공간, 수변의 이동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 금강 연안의 나루터 또는 나루 기능을 지닌 강변 공간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현재 실물만으로 그 지점을 특정한 고유 나루 이름까지 확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 자료는 공주 금강의 일반 경관을 소개하는 동시에, 금강을 통한 지역 교통과 수운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그림엽서로 파악할 수 있다. 금강은 공주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하천으로서, 조선시대 이래 공주의 생활과 교통, 상업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본 자료는 공산성·충청남도청·본정통·앵산공원과 같은 공주의 육상 경관뿐 아니라, 금강 수변의 나루와 수상 교통 경관까지 공주의 대표 실경 가운데 하나로 선별했음을 보여준다. 즉 공주군협찬회는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를 계기로 공주의 역사유적, 관공서, 상업가로, 근대적 공원 경관뿐 아니라 강과 나루의 풍경까지 포함한 지역 이미지를 구성하여 외부에 소개한 것이다. 또한 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라는 문구를 직접 인쇄한 공주군협찬회 발행 엽서라는 점에서, 단순한 향토 풍경엽서가 아니라 공진회라는 식민통치 기념행사의 지역 홍보체계 속에서 제작된 체제선전 성격의 사진그림엽서로 이해할 수 있다.
    #공주군협찬회(公州郡協賛會) #협찬회 #박람회 #전람회 #조선물산공진회 #공진회 #조선총독부 #관변단체 #금강 #금강나루 #금강교 #공산성 #공북루 #전막 #신관동 #나룻배 #공청가도 #始政五年紀念 #나루터
    생산일자 1915.08.00
  •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 공주 본정통
    1915년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계기로 충청남도공주군협찬회(忠清南道公州郡協贊會)가 발행한 「조선 충청남도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계열 자료로, 당시 공주의 중심 상업가로 가운데 하나였던 본정통(本町通)의 경관을 수록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公州本町通ノ景이라는 원표제와 함께 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 忠清南道公州郡協贊會發行이라는 발행정보가 인쇄되어 있어, 본 자료가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기념하여 공주군협찬회에서 발행한 사진그림엽서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면에는 넓게 정비된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상점이 연속하여 자리한 공주 본정통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도로 양편에는 기와지붕을 얹은 전통적 형태와 일본식 점포 구조가 혼재된 건물들이 늘어서 있으며, 좌측 상점가에는 여러 종류의 간판과 초롱형 표지가 걸려 있다. 도로에는 한복 차림의 인물들과 어린이가 오가며, 가로를 따라 전신·전등 시설로 보이는 목주가 이어진다. 자동차나 전차 등 대형 교통수단이 보이지 않는 비포장 상업가로의 모습은 1910년대 중반 공주 읍내의 생활경관과 상업환경을 보여준다. 당시 본정은 오늘날 공주시 중동 무령로 일대에 해당하며, 공산성 방면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던 기존 도로를 확대·정비하여 형성된 공주의 주요 상업가로였다. 공주학아카이브에 소장된 다른 본정통 사진그림엽서에서도 도로 양측으로 여러 상점이 밀집하고 멀리 공산성이 이어지는 모습이 확인된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이후 공주 시가지에는 일본식 정명인 본정·산성정·대화정·상반정·옥정·금정 등이 설정되었으며, 1918년 제작된 공주 지형도에서도 재민천 동쪽에 본정이 확인된다. 따라서 이 사진그림엽서는 행정구역과 가로체계가 식민지식 도시공간으로 재편되던 초기 공주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본 자료는 공산성이나 전통 누정과 같은 역사명승뿐 아니라 당시 실제 주민과 상점이 밀집한 본정의 상업가로 자체를 ‘공주 실경’으로 선정하고 있다. 이는 공주군협찬회가 조선물산공진회를 계기로 역사유적·행정기관·공원·근대건축·상업가로 등 서로 성격이 다른 장소들을 하나의 지역 이미지로 편성하여 소개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본 자료는 전면에 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라는 통치기념 문구를 직접 명시하고 있어, 공주의 일상적 도시경관을 식민통치 5주년 기념행사의 지역 홍보체계 속에서 재구성하여 유통한 체제선전 성격의 사진그림엽서로 평가할 수 있다.
    #공주군협찬회(公州郡協賛會) #조선물산공진회 #박람회 #협찬회 #전람회 #공진회 #공주시 #공주시가지 #시가지 #본정 #혼마치 #승려 #기모노 #앵산공원 #3.1중앙공원 #本町 #무령로 #신작로 #신사 #始政五年紀念
    생산일자 1915.08.00
  •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 앵산공원에서 바라본 선교사 가옥과 시가지 전경
    1915년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계기로 충청남도공주군협찬회(忠清南道公州郡協贊會)가 발행한 「조선 충청남도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계열 자료로, 공주 앵산공원(櫻山公園) 일대에서 금강 방향을 바라본 경관을 수록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公州櫻山公園ヨリ錦江ヲ望ム이라는 원표제와 함께 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 忠清南道公州郡協贊會發行이라는 발행정보가 인쇄되어 있어, 본 자료가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기념하여 공주군협찬회에서 발행한 사진그림엽서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면에는 앵산공원의 높은 지점에서 금강 방향으로 펼쳐지는 공주 시가지 외곽의 경관이 넓게 제시되어 있다. 화면 전경과 중경에는 경사진 지형을 따라 여러 동의 서양식 건물이 흩어져 있으며, 그 사이로 수목과 경작지·초지가 이어진다. 멀리에는 원표제에서 언급한 금강의 수면이 수평으로 나타나고 그 너머로 산지가 길게 이어져, 1910년대 중반 공주의 시가지 외곽과 금강 주변의 지형을 함께 보여준다. 화면에 나타나는 서양식 건물들은 당시 앵산공원과 영명학교 일대에 조성되어 있던 미국 감리교 선교부의 선교사 가옥군으로 판단된다. 공주학아카이브의 동시기 자료에서도 1912년 앵산공원 부지에 미국인 선교사 가옥과 영명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20세기 초 공주에 설치된 감리교 선교부는 선교와 함께 교육사업을 전개하였으며, 이 일대에는 영명학교와 선교사 주거시설이 형성되어 공주의 대표적인 근대 서양식 건축군 가운데 하나를 이루었다. 다만 현재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는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1921년에 건립된 건물이므로, 1915년에 제작된 본 사진그림엽서의 선교사 가옥들과 동일 건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본 자료는 현재의 등록문화유산 건물이 들어서기 이전에 존재했던 초기 공주선교부의 사택 및 관련 서양식 건축물을 보여주는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다. 원표제는 선교사 가옥 자체보다 櫻山公園ヨリ錦江ヲ望ム, 즉 ‘앵산공원에서 금강을 바라보는 경관’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공주군협찬회가 공진회를 계기로 공주의 관공서와 백제유적뿐 아니라 공원·하천·근대 서양식 건축이 어우러진 도시 주변 경관까지 ‘공주 실경’의 하나로 선택하여 소개했음을 보여준다. 앞서 확인한 산성공원 웅심각과 충청남도청 포정사가 각각 역사적 명승과 지방행정시설을 대표했다면, 본 자료는 앵산공원과 선교사 가옥, 금강 조망을 통해 근대 공주의 새로운 도시경관을 제시한 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본 자료는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5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의 지방 협찬조직인 공주군협찬회가 始政五年紀念을 직접 명시하여 발행한 자료이다. 따라서 지역경관을 소개하는 관광·홍보적 기능과 함께 식민통치 기념행사의 지역 홍보체계 안에서 제작·유통된 체제선전 성격의 사진그림엽서로 파악할 수 있다.
    #공주군협찬회(公州郡協賛會) #협찬회 #조선물산공진회 #공진회 #조선총독부 #앵산공원 #영명학교 #선교사 #선교사가옥 #미나리꽝 #연미산 #공주시가지 #시가지 #박람회 #전람회 #금강 #산성공원 #공산성 #영명고 #3.1중앙공원 #중앙공원 #로버트 샤프 #사애리시 #샤프 #감리교 #개신교 #선교본부 #기독교 #중학동 #영명학당 #始政五年紀念 #Sakurayama
    생산일자 1915.08.00
  •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 충청남도 도청 포정사
    1915년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계기로 충청남도공주군협찬회(忠清南道公州郡協贊會)가 발행한 「조선 충청남도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계열 자료로, 당시 공주에 자리했던 충청남도청의 정문 포정사(布政司)를 수록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忠清南道廳이라는 도상명과 함께 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 忠清南道公州郡協贊會發行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어, 본 자료가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기념하여 공주군협찬회에서 발행한 사진그림엽서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엽서 전면에는 기와지붕을 얹은 2층 문루가 정면으로 크게 배치되어 있으며, 문루 2층 중앙에는 忠清南道布政司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아래층 중앙의 문을 통하여 도청 구내로 이어지는 공간과 한 명의 인물이 확인되며, 문루 좌우에는 담장과 부속시설이 연결되어 있다. 건물 뒤로는 봉황산의 산자락이 화면을 가득 채워, 옛 충청감영의 전통적인 문루와 산지를 배경으로 한 공주 충남도청의 당시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포정사문루는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주재하던 충청감영의 정문이었다.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 이후 충청감영은 충청남도청으로 개편되었으며, 공주의 기존 감영 건물이 도청 청사로 전용되었다. 이에 따라 포정사 역시 충청남도청의 정문으로 계속 사용되었고, 본 사진그림엽서가 제작된 1915년에는 문루에 忠清南道布政司 현판을 걸고 도청의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충남도청은 현재의 공주사대부고 자리에 있었으며, 1932년 대전으로 이전할 때까지 공주는 충청남도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본 자료에서 주목되는 것은 옛 충청감영의 문루라는 전통적 건축물이 忠清南道廳이라는 근대 식민지 지방행정기관의 표제 아래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 조선왕조의 지방행정 공간을 식민지 통치체제의 도청 시설로 전용한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공주의 대표적인 ‘실경’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여 사진그림엽서로 유통한 사례이기도 하다. 공주군협찬회는 공산성·도청 등 공주의 역사경관과 행정시설을 일련의 지역 이미지로 구성하여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와 연계해 소개하였다. 조선물산공진회는 조선총독부가 병합 이후 5년간의 식민통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개최한 시정5주년기념 행사였으며, 본 자료는 전면에 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라는 문구를 직접 인쇄하고 그 지역 협찬조직인 공주군협찬회가 발행한 기념자료이다. 따라서 본 사진그림엽서는 공주의 지방행정시설을 기록한 자료인 동시에, 공진회를 매개로 지방의 경관과 시설을 식민통치 기념체계 안에서 소개·유통한 체제선전 성격의 사진그림엽서로 파악할 수 있다.
    #공주군협찬회(公州郡協賛會) #협찬회 #박람회 #전람회 #조선물산공진회 #공진회 #조선총독부 #포정사 #국립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사대부고 #정문 #始政五年紀念 #봉황산 #금남루 #충청감영 #문루
    생산일자 1915.08.00
  •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 공산성 웅심각
    1915년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계기로 충청남도공주군협찬회(忠清南道公州郡協贊會)가 발행한 「조선 충청남도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계열 자료로, 당시 산성공원으로 소개된 공산성의 웅심각(雄心閣, 現 광복루)을 수록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百濟古都公州 山城公園이라는 표제와 함께 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 忠清南道公州郡協贊會發行이라는 발행정보가 인쇄되어 있어, 본 자료가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기념하여 공주군협찬회에서 제작·유통한 자료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면에는 소나무가 자라는 공산성의 높은 언덕과 그 정상부에 자리한 2층 누각이 화면 중심에 배치되어 있다. 누각 상층의 난간에는 여러 명의 인물이 올라가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 모습이 확인되며, 주변에는 별도의 건축물을 거의 넣지 않고 소나무와 구릉, 누각을 중심으로 산성공원의 경관을 구성하였다. 엽서에는 누각의 이름이 직접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건축 형태와 위치를 다른 일제강점기 공산성 사진그림엽서와 비교하면 당시 웅심각으로 불리던 현재의 광복루로 판단된다. 웅심각은 본래 공산성 북쪽의 중군영에 있던 문루인 해상루(海桑樓)였으며, 중군영이 폐지된 뒤 일제강점기에 공산성 동쪽 높은 지점으로 이건되어 웅심각이라 불렸다. 이후 1946년 공주를 방문한 김구와 이시영 등에 의해 광복을 기념하는 뜻의 광복루(光復樓)로 개칭되었다. 따라서 본 자료가 제작된 1915년 당시의 역사적 명칭은 웅심각이며, 광복루는 후대 명칭에 해당한다. 특히 엽서는 공산성을 단순히 옛 성곽으로 표시하지 않고 百濟古都公州 山城公園, 즉 ‘백제의 옛 도읍 공주의 산성공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백제의 역사적 고도라는 공주의 이미지를 산성공원이라는 근대적 관광공간의 이미지와 결합한 표현이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전후하여 각 지방의 협찬회는 공진회의 관람객 유치와 더불어 자기 지역의 명승과 관광지를 홍보하는 각종 인쇄물을 제작했으며, 본 사진그림엽서 역시 공산성의 역사성과 경관을 공주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선택하여 외부에 소개한 지역홍보물의 성격을 지닌다. 한편 조선물산공진회는 조선총독부가 강제병합 이후 5년간의 식민통치 ‘성과’를 제시하기 위해 1915년 경복궁에서 개최한 대규모 전시행사였다. 본 자료는 민간 상업출판물이 아니라 그 공진회의 충청남도 공주군협찬회가 始政五年紀念을 직접 명시하여 발행한 기념자료라는 점에서, 공주의 지역 관광홍보와 함께 식민통치 기념행사의 선전체계를 구성했던 사진그림엽서로 파악할 수 있다.
    #공주군협찬회(公州郡協賛會) #협찬회 #관립단체 #관변단체 #공산성 #산성공원 #웅심각 #광복루 #김구 #테라우치 #총독 #조선총독 #누정 #중군영 #해상루 #누각 #백범 #백제고도 #백제 #웅진 #시정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공진회 #박람회 #전람회 #始政五年紀念 #公州實景 #百濟古都
    생산일자 1915.08.00
  •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봉투
    1915년 공주군협찬회(公州郡協賛會)에서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계기로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명승과 경관을 소개하기 위해 제작한 조선 충청남도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朝鮮忠清南道公州實景繪葉書)의 봉투이다. 갈색 계통의 종이봉투 전면 중앙에는 세로로 朝鮮忠清南道公州實景繪葉書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으며, 상단 중앙에는 내부의 사진그림엽서를 꺼내기 위한 반원형 인출구가 마련되어 있다. 별도의 그림이나 명승 도안 없이 세트의 지역명과 자료유형만을 간결하게 표시한 형태이다. 본 봉투와 함께 보존된 사진그림엽서에는 충청남도공주군협찬회가 발행하고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기념하여 제작한 자료임을 나타내는 표기가 확인된다. 조선총독부의 공진회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연구에서도 1915년 공진회를 전후하여 각지의 협찬회가 지역 안내서와 사진그림엽서 등 각종 홍보 인쇄물을 제작하였으며, 충청남도에서는 공주·논산·부여·천안·아산군협찬회 등이 지역별 인쇄물을 발행한 사실이 확인된다.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는 조선총독부가 병합 5주년을 기념하여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경복궁 일대에서 개최한 대규모 전시행사였다. 공진회는 각 지역의 산업·물산과 경관을 소개하는 동시에, 총독부가 식민통치 이후의 이른바 ‘진보와 발전’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선전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각 지방의 협찬회는 지역안내서·사진첩·기념엽서 등을 제작하여 공진회 관람객과 여행자를 대상으로 지역의 명승·산업·도시경관을 홍보하였다. 따라서 「공주 실경 사진그림엽서」 역시 공주의 특정 경관을 단순히 기록한 개별 관광엽서군이라기보다, 1915년 공진회라는 식민통치 기념행사를 매개로 공주 지역의 명승과 도시 이미지를 선별하여 외부에 소개하기 위해 제작된 지역 홍보자료로 이해할 수 있다. 공주군협찬회라는 지역 조직이 발행했으나, 제작의 계기가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시정5주년기념 공진회였다는 점에서 식민지 지역홍보와 체제선전이 결합된 자료라는 성격도 함께 지닌다. 현재 봉투에는 사진그림엽서 5매가 함께 보존되어 있으나, 이 가운데 3매와 2매가 서로 다른 하단 정보표시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현존 5매가 당초 이 봉투에 수록된 하나의 완질 세트였는지는 확정하기 어렵다.
    #공주군협찬회 #사진그림엽서 #봉투 #시정기념 #시정5주년 #조선물산공진회 #공진회 #박람회 #전람회 #조선총독부 #식민통치 #朝鮮忠清南道公州實景繪葉書 #공주군협찬회(公州郡協賛會) #公州郡協賛會
    생산일자 1915.08.00
  • 조선총독부 시정25주년기념 - 신장해가는 조선
    1935년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25주년을 기념하여 발행한 사진그림엽서 세트 가운데 「伸び行く朝鮮」을 수록한 자료이다. 엽서 전면 왼쪽에는 세로로 伸び行く朝鮮이라는 표제가 크게 배치되어 있으며, 한반도의 윤곽을 바탕으로 농산·공산·우편·전신·전화·철도·무역의 통계수치를 그림과 함께 비교하여 제시하고 있다. 화면 상단에는 始政當時 明治四十三年과 現在 昭和八年이 나란히 표기되어 있어, 조선총독부가 통치를 시작한 1910년과 1933년의 수치를 비교하는 구성임을 알 수 있다. 엽서에 제시된 수치는 농산액이 3억 3,037만 엔에서 9억 2,084만 엔, 공산액이 1,564만 엔에서 3억 6,723만 엔, 우편물이 1,026만 통에서 5억 6,502만 통, 전신이 406만 통에서 1,278만 통, 전화가 6,448개에서 36,229개, 철도 연장이 1,095킬로미터에서 4,310킬로미터, 무역액이 5,969만 엔에서 7억 7,281만 엔으로 증가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수치들은 본 엽서가 직접 제시하고 있는 통계이며, 각각의 통계 옆에는 쌀가마·톱니바퀴·우체통과 전신주·증기기관차·기선 등의 도안을 배치하여 산업과 교통·통신시설의 확대를 시각적으로 강조하였다. 특히 1910년의 수치와 도안은 비교적 작고 옅은 색조로, 1933년의 수치와 도안은 크고 강한 색채로 표현하여 단순한 수치 비교를 넘어 ‘확대·성장’이라는 인상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본 자료는 통계정보를 객관적으로 열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총독부가 선택한 산업·교통·통신 지표의 증가를 하나의 발전 서사로 시각화한 기념·홍보물의 성격을 지닌다. 현재 실물에는 일본의 「満州国皇帝御来訪」 3전 기념우표가 부착되어 있다. 이 우표는 1935년 4월 2일 발행되었으며 3전권에는 아카사카 이궁이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엽서 하단에는 특수기념인으로 보이는 붉은색 소인이 겹쳐 날인되어 있으나, 현재 제공된 전면만으로 소인의 지명과 날짜 전부를 확실하게 판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자료는 조선총독부가 시정25주년을 맞아 1910년과 1933년의 경제·산업·교통·통신 관련 통계를 선택적으로 비교하고 이를 ‘伸び行く朝鮮’이라는 제목 아래 시각화한 기록으로, 식민통치의 성과를 제시하기 위해 통계와 그래픽 디자인을 결합한 체제선전용 사진그림엽서의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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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일자 1935.10.01
  • 삼척개발주식회사 - 삼척 무연탄
    1939년 말경 삼척개발주식회사(三陟開發株式會社)에서 발행한 삼척 무연탄 개발·생산 홍보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 전면은 삼척탄전과 묵호항을 연결하는 탄광·수송시설 지도, 조선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 운송망 지도, 삼척무연탄의 생산·수송·하역 능력 및 탄질·용도를 설명하는 통계와 문구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 지도에는 삼척탄전의 점리갱(店里坑), 흥전갱(興田坑), 도계갱(道溪坑), 철암갱(鐵岩坑), 검천갱(黔川坑), 장성갱(長省坑) 등의 주요 갱구와 탄전, 전삭·운탄시설, 철도망이 표시되어 있으며, 북평의 북삼화학공업소(北三化學工業所)와 묵호항(墨湖港)까지 이어지는 무연탄 운송체계를 함께 나타내고 있다. 오른쪽 상단의 지도에는 조선과 일본의 주요 도시·항구 및 운송경로가 표시되어 있어 삼척에서 생산된 무연탄이 묵호항을 거쳐 일본 제국의 공업지역으로 공급되는 유통망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三陟開發株式會社 三陟無煙炭’이라는 표제와 함께 ‘國際收支改善’, ‘佛印炭輸入防遏’이라는 문구가 크게 인쇄되어 있어, 삼척무연탄의 개발을 외국산 무연탄 수입 억제와 국제수지 개선을 위한 사업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어 출탄량을 소화 14년도(1939) 60만 톤 이상, 소화 15년도(1940) 85만 톤 이상, 소화 16년도(1941) 100만 톤 이상으로 증산할 계획임을 제시하고, 수송능력은 1939년 10월 현재 연간 60만 톤 이상에서 1940년 하반기 이후 연간 200만 톤 이상으로, 하역능력은 연간 65만 톤 이상에서 150만 톤 이상으로 확충할 계획임을 강조하고 있다. 탄질에 대해서는 ‘佛印炭同質’이라 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산 무연탄과 동등한 품질임을 내세우고 괴탄 60%, 분탄 40%의 구성비를 제시하며, 괴탄은 공업원료·코크스 대용·가스 발생용, 분탄은 연탄원료·제철·일반 연소용 등에 이용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삼척개발주식회사는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무연탄 자원 통제와 1930년대 후반 일본 제국의 생산력 확충정책 속에서 설립·성장한 기업으로, 삼척탄광 개발과 함께 철도·항만 및 북삼화학공업소 등 연관 산업시설을 건설하였다.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는 1939년 11월 삼척개발주식회사의 사업안내에도 삼척탄광의 생산·판매·수송시설과 불령 인도차이나탄과의 품질 비교가 수록되어 있어 본 엽서와 같은 시기의 기업 홍보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자료는 1930년대 말 삼척탄전의 주요 갱구와 묵호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채탄·수송·항만·화학공업의 연계구조를 보여주는 동시에, 삼척무연탄의 증산을 외국탄 수입대체와 국제수지 개선이라는 제국 경제정책의 성과로 제시한 식민지 자원개발 선전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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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일자 1939
  • 조선의 현재 인구
    1935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식민지 조선의 인구구조를 조사하여 도식화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주인구 증가 추세와 지역별 인구밀도,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內地人)의 본적별 인구를 도표와 지도를 이용하여 시각화한 것이 특징이다. 상단에는 ‘朝鮮の現住人口’이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으며, 왼쪽의 ‘人口增加ノ趨勢’ 도표는 명치 43년 말(1910)부터 대정 3년(1914)·대정 7년(1918)·대정 11년(1922)·소화 원년(1926)·소화 5년(1930)·소화 9년 말(1934)에 이르는 현주인구의 증가 추세를 막대그래프로 나타내고 있다. 중앙에는 조선 13도의 지도를 배치하고 각 지역을 인구밀도에 따라 서로 다른 무늬로 구분하였으며, ‘人口ノ密度 昭和九年末現在(面積一方粁人口)’라는 설명을 통해 1934년 말 현재 단위면적당 인구분포를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의 녹색 막대그래프는 ‘現住內地人本籍別(昭和九年末現在)’ 통계로,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일본 내 각 부·현의 본적에 따라 구분하여 그 규모를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현주인구’와 ‘현주내지인 본적별’ 통계는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를 위해 지속적으로 작성한 인구·호구 통계의 주요 항목이었으며, 조선에서는 1925년 간이국세조사에 이어 1930년과 1935년에 국세조사가 시행되는 등 정기적인 식민지 인구조사 체계가 운영되었다. 본 자료와 함께 발행된 「조선의 무역」·「조선의 총생산액」은 인구 증가와 생산·무역 확대를 각각 도표화한 3매의 통계 그림엽서 세트를 구성한다. 특히 1935년은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25년을 기념하여 각종 통계와 사업성과를 ‘약진’과 ‘발전’의 지표로 적극적으로 제시하던 시기로, 본 자료 역시 증가하는 인구를 상승형 그래프로 강조하고 조선 전역의 인구분포와 일본인 이주 현황을 한 화면에 구성함으로써 식민통치 아래 조선의 변화와 확대를 통치성과로 시각화한 체제선전 자료의 성격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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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일자 193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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