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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76개의 기록물
  • 논산시장의 일부
    1920년대경 논산의 정기시장 장날 풍경을 수록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 전면에는 論山市場の一部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으며, 시장의 한 골목에 점포와 노점, 거래를 위해 모인 다수의 사람들이 밀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대정하토인(大正鳩印) 계열의 판본으로,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에서 제작한 자료로 판단된다. 기와지붕의 점포들이 좁은 시장길 양쪽에 이어지고, 점포 앞에는 천막과 차양을 치고 각종 상품을 진열한 노점이 형성되어 있다. 시장길에는 갓·삿갓·모자 등 다양한 쓰개를 착용한 사람들이 빽빽하게 오가며, 등에 짐을 지거나 물품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과 좌판에서 물건을 거래하는 상인들이 함께 나타난다. 특정 상품이나 점포를 중심으로 촬영하기보다 시장 전체를 가득 채운 인파와 거래 모습을 강조하여, 당시 논산장의 높은 집객력과 장날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논산장은 20세기 초 이전부터 충청남도 남부의 주요 정기시장으로 성장하였다. 1905년경의 조사기록에서는 논산천이 취락 중앙을 흐르고 수운 이용이 가능하여 상업이 매우 번성했다고 기술하며, 3일과 8일에 시장이 열려 약 3,000명에 이르는 사람이 모였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수많은 상인과 주민이 시장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본 사진그림엽서의 도상과도 잘 부합한다. 1911년 호남선 논산역이 개업하면서 논산에는 기존의 육로와 하천 수운에 철도 교통까지 더해졌다. 1923년 충청남도 시장자료에서도 논산은 강경 등과 함께 도내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언급되며, 특히 철도와 하천 교통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장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본 자료는 단순한 향토 풍속 장면뿐 아니라 철도·도로·하천 교통을 배경으로 지역의 농산물과 생활물자가 집산되던 논산의 유통 중심지 모습을 기록한 자료로 볼 수 있다. 본 사진그림엽서는 시장을 건축물이나 시설 중심으로 소개하기보다 장터를 이용하는 다수의 주민과 상인, 상품과 노점이 뒤섞인 생활공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논산시장을 지역의 경제적 활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행자가 접할 수 있는 조선의 대표적인 장시 풍경으로 재구성하여 유통한 사진그림엽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 #다이쇼 #논산시장 #논산 #논산시 #論山市場 #논산오일장 #전통시장 #재래시장 #오일장 #노점상 #노점 #보부상 #행상 #장터 #호남선 #논산역 #大正鳩印
    생산일자 미상
  • 목포명소 - 목포의 전경 02
    1930년대 초반경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가 제작한 목포명소 사진그림엽서 계열 자료로, 목포 시가지 배후의 고지대에서 항구와 시가지, 앞바다를 내려다본 연속 전경 가운데 제2도판이다. 엽서 전면에는 영문으로 GREAT MOPPO CITY SEEN AT BACK-HILL. PART 2., 일본어로 (木浦名所)米と棉花の港市、木浦の全景(其二)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다. 앞서 확인된 PART 1 / 其一과 직접 연결되는 2매 연속 파노라마이며, 외부에는 두 장의 파노라마를 두 조로 구성한 총 4매의 동일 판본군이 현존한다. 전면에는 높은 지점에서 내려다본 목포 시가지가 화면 아래쪽에 넓게 펼쳐져 있다. 기와지붕의 주택과 일본식·근대식 건물들이 구릉 사이를 따라 조밀하게 들어서 있으며, 시가지 사이에는 바위가 노출된 구릉과 비교적 규모가 큰 건축물들이 확인된다. 그 너머로는 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수면 위에는 여러 척의 소형 선박이 나타난다. 원경에는 낮은 도서와 산지가 겹겹이 이어져 1930년 무렵 목포의 시가지와 다도해 지형의 관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특히 바다에서 이어지는 세 개의 낮은 섬은 대삼학도·중삼학도·소삼학도로 이루어진 삼학도(三鶴島)로 판단된다. 삼학도는 이후 간척과 연륙으로 크게 변화했으므로, 본 자료는 세 섬이 독립된 도서 경관을 유지하던 일제강점기 목포 앞바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비슷한 시기 유달산에서 촬영된 목포 전경에서도 삼학도와 시가지·노적봉 등이 같은 조망권 안에 나타난다. 원표제는 목포를 米と棉花の港市, 즉 **‘쌀과 면화의 항구도시’**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당시 목포항의 경제적 성격을 반영한 표현이다. 개항 이후 목포항은 전남 지역에서 생산된 쌀과 면화를 일본으로 반출하는 주요 항구로 성장했으며, 특히 면화의 경우 1923년 조선 전체 조면 이출량 가운데 약 7할이 목포를 통해 나갈 정도로 목포의 비중이 컸다. 본 자료는 특정 명승이나 시설 하나를 보여주기보다 밀집된 시가지·항구·도서·산지를 하나의 넓은 전경으로 구성하면서, 이를 ‘쌀과 면화의 항구도시’라는 경제적 설명과 결합하였다. 따라서 목포의 자연경관을 소개하는 관광 사진그림엽서인 동시에, 쌀과 면화의 집산·반출을 통해 성장한 근대 항구도시 목포의 도시 이미지를 시각화한 자료로 이해할 수 있다.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 #다이쇼 #목포항 #목포 #유달산 #목포명소 #儒達山 #삼학도 #米と棉花の港市 #大正鳩印
    생산일자 미상
  • 목포명소 - 목포의 전경 01
    1930년대 초반경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가 제작한 목포명소 사진그림엽서 계열 자료로, 목포 시가지 배후의 고지대에서 항구와 시가지를 내려다본 전경을 수록하였다. 엽서 전면에는 영문으로 GREAT MOPPO CITY SEEN AT BACK-HILL. PART 1., 일본어로 (木浦名所)米と棉花の港市、木浦の全景(其一)이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으며, 목포를 ‘쌀과 면화의 항구도시’로 직접 소개하고 있다. 엽서 전면에는 고지대에서 내려다본 목포의 밀집된 시가지와 항구, 바다 건너의 산지와 도서가 넓게 펼쳐져 있다. 화면 전경과 중경에는 기와지붕의 주택과 일본식·근대식 건축물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고, 시가지 사이로 비교적 규모가 큰 관공서·학교 등의 시설과 넓은 공지가 확인된다. 해안 가까이에는 창고와 항만 관련 시설이 이어지며, 바다에는 선박이 떠 있다. 이러한 구성은 특정 건축물 하나보다 목포의 도시 전체와 항구의 공간적 관계를 한 화면에서 보여주는 전경 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대규모 장방형 건물은 위치와 건축형태상 1929년 건립된 목포공립심상소학교 강당과 부합할 가능성이 높다. 해당 강당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2층 건물로, 2층에 좁고 높은 아치형 창을 연속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 시설의 식별이 맞다면 본 도상의 촬영시기는 적어도 1929년 이후로 한정할 수 있다. 다만 본 자료에는 개별 건물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해당 시설의 식별은 추정으로 남긴다. 표제의 米と棉花の港市는 목포의 도시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표현이다. 1897년 개항 이후 목포는 전라남도에서 생산된 쌀과 면화를 집산하여 외부로 반출하는 항구로 성장하였다. 1914년 『木浦誌』에서도 각각 「米の木浦」와 「綿の木浦」를 독립된 편으로 설정하여 쌀의 이출과 면화의 생산·거래·조면업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두 상품이 목포 경제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보여준다. 1920년대에는 면화가격 상승과 관련 산업의 성장으로 목포항과 해안통의 상업·공업활동이 더욱 확대되었고, 1927년에는 조선면업공진회까지 개최되었다.  따라서 본 자료는 단순히 목포의 아름다운 전경을 소개하는 관광 사진그림엽서에 그치지 않고, 쌀과 면화를 집산·반출하는 식민지 항구도시라는 목포의 경제적 성격을 도시의 전경과 결합하여 시각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항구·시가지·근대적 공공시설을 하나의 화면에 배치하고 ‘쌀과 면화의 항구도시’라는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당시 목포의 성장과 번영을 관광객에게 전달하는 도시 이미지로 재구성하였다. 
    #목포명소 #목포항 #유달산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 #다이쇼 #米と棉花の港市 #木浦市街 #목포공립심상소학교 #大正鳩印
    생산일자 미상
  • 목포 - 조선제유회사 및 삼정물산 면화공장
    1919년경 목포의 조선제유회사(朝鮮製油會社)와 삼정물산(三井物産, 미쓰이물산) 면화공장 일대의 산업·항만 경관을 수록한 사진그림엽서로, 목포의 정굴소간물점(井堀小間物店)이 발행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木浦 朝鮮製油會社及三井物産綿花工場이라는 표제와 (井堀小間物店發行)이라는 발행표기가 인쇄되어 있어, 목포 해안의 제유·면화 관련 산업시설을 함께 소개하기 위해 제작된 자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전면에는 소나무가 자라는 높은 지점에서 내려다본 목포 해안의 공장지대와 항만이 펼쳐져 있다. 화면 중·하단에는 긴 지붕을 가진 여러 동의 공장·창고 건물이 밀집해 있으며, 건물 너머의 바다에는 연돌과 돛대를 갖춘 기선이 정박해 있다. 원경에는 목포 앞바다의 섬과 산지가 이어진다. 표제는 조선제유회사와 삼정물산 면화공장을 함께 지칭하고 있으나 개별 건물을 따로 표시하지 않으므로, 화면 속 각 공장동을 어느 회사의 시설인지 구체적으로 비정하기는 어렵다. 조선제유주식회사는 1918년 6월 목포 해안통에 설립되어 면실을 압착·정제한 면실유를 생산한 회사이다. 목포와 전라남도에서는 20세기 초 고하도 육지면 시험재배의 성공 이후 면화 생산이 빠르게 확대되었고, 목포는 생산지에서 집하된 면화를 조면하고 면실·원면을 가공·반출하는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목포근대문화자산아카이브는 조선제유회사를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식물성 유지공장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생산된 면실유는 조선 각지와 일본으로 판매되었다. 삼정물산 역시 이러한 전남 면화산업의 확대 과정에 진출하였다. 1917년 전라남도 당국과 총독부가 삼정물산 면화부에 전남 지역 조면공장 설치를 요청한 뒤 회사는 조선 면화사업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그 면화부문은 1919~1920년경 동양면화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본 사진그림엽서에 三井物産綿花工場이라는 명칭이 직접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도상의 시기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조선제유회사가 1918년에 설립되고 삼정물산 면화부가 1919~1920년경 동양면화로 분리되었다는 회사 연혁을 종합하면, 본 자료의 도상 및 표제가 성립한 시기는 1918~1920년경, 특히 1919년경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정굴소간물점에서 이후 기존 사진제판을 다시 인쇄했을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이는 정확한 인쇄일이 아니라 현재 확인되는 회사명과 산업시설의 존속관계에 따른 추정이다.  본 자료는 특정 공장의 건축물만을 기록한 자료가 아니라, 면화공장과 제유공장, 창고, 항구에 정박한 기선을 하나의 조망 안에 배치하여 목포를 면화의 집산·가공·수출이 이루어지는 근대 산업항구로 제시한 사진그림엽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면화를 조면하는 시설과 그 부산물인 면실을 이용해 기름을 생산하는 제유시설이 인접한 항만공간에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 초기 목포 면화산업의 생산·가공·유통 구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정굴소간물점(井堀小間物店) #정굴 #정굴상점 #목포항 #목포조선정유회사 #조선정유회사 #면화공장 #면화 #목화 #삼정물산 #삼정 #목포 #조선제유회사 #제유회사 #남북면업주식회사 #朝鮮製油會社 #朝鮮製油株式會社 #三井物産 #미쓰이물산 #미쓰이 #Mitsui #三井物産綿花工場 #綿花工場 #면실유 #東洋棉花
    생산일자 1919
  • 목포소항 조선우선회사 부근
    1920년대경 목포소항(木浦小港)의 조선우선회사(朝鮮郵船會社) 부근 항만경관을 수록한 사진그림엽서로, 목포의 정굴소간물점(井堀小間物店)이 발행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木浦小港 朝鮮郵船會社附近이라는 원표제와 (井堀小間物店發行)이라는 발행표기가 인쇄되어 있다.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에도 정굴소간물점이 발행한 「朝鮮木浦市街全景」 사진그림엽서가 복수 소장되어 있어, 이 업체가 목포의 시가지와 항만경관을 소재로 사진그림엽서를 제작·판매했던 지역 발행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면에는 목포소항의 잔잔한 수면과 그 양편에 정박한 다양한 선박이 넓게 나타난다. 화면 왼쪽에는 높은 연돌과 선실을 갖춘 기선 여러 척이 정박해 있으며, 오른쪽 해안에는 돛대를 세운 다수의 범선과 연안 운송선이 밀집해 있다. 중앙에는 작은 소형선 한 척이 수면을 가로지르고 있고, 항만 안쪽에도 여러 선박이 이어져 있다. 근대적인 증기선과 기존의 연안 범선이 한 공간에 함께 정박한 모습은 식민지기 목포항에서 서로 다른 규모와 방식의 해상운송이 병존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이 일대는 朝鮮郵船會社附近, 즉 ‘조선우선회사 부근’으로 소개되어 있다. 조선우선회사는 부산기선주식회사·목포항운회사·요시다회조점 등 기존 연안 해운업자들이 통합하여 1912년 설립된 회사이며,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연안항로를 운영하였다. 목포에도 1912년 조선우선 목포출장소가 설치되어 목포와 조선 연안 각 항구를 잇는 해상운송의 거점 역할을 하였다. 목포는 1897년 개항 이후 서남해 연안과 일본을 연결하는 항구로 빠르게 성장하였으며, 항만을 중심으로 운송·창고·정미·면화·수산업 등 여러 산업과 상업시설이 집중되었다. 조선우선 역시 이러한 목포의 해운망에 깊이 관여한 주요 운수회사 가운데 하나였다. 본 자료는 특정 회사 건물 자체보다 그 주변의 수면과 여러 종류의 선박을 화면 중심에 배치함으로써, 조선우선회사가 위치했던 목포소항 일대의 해상교통·화물운송 경관 자체를 목포의 대표적인 항만 이미지로 재구성하고 있다. 다만 화면 왼쪽에 정박한 기선들의 선명이나 회사 표지는 판독되지 않으므로, 이들을 조선우선회사 소속 선박이라고 직접 단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본 자료는 조선우선회사 부근의 목포소항에 정박한 기선·범선과 항만 활동을 기록한 사진그림엽서로 기술하는 것이 타당하다.
    #정굴소간물점 #목포항 #목포 #목포소항 #소항 #증기선 #해안 #井堀小間物店 #조선우선회사(朝鮮郵船會社) #연안항로 #朝鮮郵船木浦出張所 #정굴소간물점(井堀小間物店) #木浦航運會社 #汽船 #정굴상점 #井堀商店
    생산일자 미상
  • 밀양부문(密陽府門) - 밀양읍성 남문 공해루
    1910년대 조선총독부 철도국(朝鮮總督府 鐵道局)이 발행한 사진그림엽서로, 1902년 철거되기 이전의 밀양읍성 남문 공해루(拱海樓)와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수록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도판번호 (9), 영문으로 THE GATE LEADING TO THE TOWN MITYANG., 한문으로 密陽府門이라는 표제가 인쇄되어 있다. 영문표제는 이 문을 ‘밀양 읍내로 들어가는 문’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도상의 중층 문루와 현판, 밀양읍성 관련 기록을 종합하면 밀양읍성의 정문이었던 남문 공해루를 촬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석축에 홍예식 통로를 낸 성문과 그 위에 세운 대형 중층 문루가 화면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문루에는 공해루로 보이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성문 아래와 전면에는 많은 주민들이 모여 있다. 한복과 갓을 착용한 남성들을 비롯하여 여러 인물이 성문을 통과하거나 그 앞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나타나, 성문이 방어시설에 그치지 않고 밀양 읍내와 외부를 연결하는 주요 통행로로 기능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성문 좌우에는 경사진 성벽과 민가 또는 가설 구조물로 보이는 시설이 이어져 있어 구한말 밀양읍성 주변의 생활경관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밀양읍성은 1479년 처음 석축으로 축조되었으며, 이후 임진왜란으로 크게 파괴된 뒤 복구되었다. 후대 기록에는 동·서·남·북의 네 성문과 동·서 야문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며, 이 가운데 남문은 **공해루(拱海樓)**라 불린 읍성의 정문으로 중층 3칸의 규모를 갖추어 네 성문 중 가장 컸다. 공해루를 포함한 밀양읍성의 사대문과 상당 부분의 성벽은 1902년 경부선 철도 부설 과정에서 철거되었고, 성돌 일부는 철도공사에 이용된 것으로 전한다. 따라서 본 자료의 도상은 1902년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확정할 수 있으며, 오늘날 남아 있지 않은 밀양읍성 남문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반면 사진그림엽서 자체의 발행은 그보다 뒤이다. 조선총독부철도국은 1910년 설치되었으므로, 본 자료는 철거되기 전의 사진 원판을 총독부철도국이 후대에 다시 활용하여 제작한 사진그림엽서로 판단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 자료는 구한말 밀양의 사라진 도시경관을 식민지기 철도관광 홍보매체가 다시 선택·편집하여 유통한 사례이기도 하다. 조선총독부철도국은 철도망뿐 아니라 각지의 명승·고적·도시경관을 사진그림엽서와 관광안내물로 제작하여 철도여행의 목적지로 소개하였다. 1928년 여행안내서에서도 총독부철도국이 철도와 조선 각지에 관한 관광 인쇄물을 적극 배포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조선총독부 철도국(朝鮮總督府 鐵道局) #철도국 #밀양 #밀양부 #시장 #초가집 #초가 #초가지붕 #密陽府門 #공해루 #拱海樓 #밀양읍성 #密陽邑城 #경부선 #문루
    생산일자 미상
  • 마산역
    1920년경 마산의 마산역(馬山停車場)과 역전광장의 모습을 수록한 사진그림엽서로, 산성옥상점(山城屋商店)에서 발행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일본어로 馬山停車場, 영문으로 MABAN STATION, 발행표기로 (山城屋商店發行)이 인쇄되어 있다. 외부 자료에서도 산성옥은 마산 전경·마산부청·마산항·군사시설 등 마산 지역의 여러 경관을 사진그림엽서로 발행한 업체로 확인되며, 봉투를 포함한 10매 구성의 「馬山風景繪葉書」 세트도 현존한다. 엽서 전면에는 목조로 지어진 마산정거장 역사와 넓은 역전광장이 나타난다. 역사 중앙 출입구와 건물 주변에는 많은 인물이 모여 있으며, 광장에도 양복과 모자 차림의 남성, 한복 차림의 남녀와 어린이 등 다양한 인물들이 오가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제복과 모자를 착용한 철도 관계자로 보이는 인물이 뒷모습으로 서 있고, 역사 출입구 주변에도 여객과 방문객이 밀집해 있어 당시 마산역의 활발한 이용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개별 인물의 신분과 해당 장면이 특정 행사와 관련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마산역은 러일전쟁기에 일본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부설한 삼랑진―마산 군용철도의 종착역으로 출발하였다. 마산선은 1905년 개통하였으며 이후 통감부 철도관리국에 이관되어 여객과 화물 수송을 담당하였다. 철도의 개통은 마산항과 내륙의 경부선 철도망을 연결하면서 마산이 항만·상업도시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교통기반이 되었다. 동시에 삼마선 자체가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반도 군사·경제적 진출 과정에서 건설된 군용철도였다는 역사적 성격도 지닌다. 당시 마산역은 오늘날의 마산역과 다른 마산 시가지 남부의 월포동 일대에 있었으며, 항구와 일본인 거류지에 가까운 위치에서 여객과 화물을 연결하였다. 이후 구마산역과 북마산역이 추가되면서 마산의 철도시설은 확대되었다. 본 자료는 이러한 철도망 확대 과정에서 마산역이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사람들이 집결하고 도시와 외부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도시공간으로 기능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산성옥은 마산역뿐 아니라 전경·마산부청·마산항·군부대 등 당시 마산의 주요 시설을 반복적으로 사진그림엽서화하였다. 따라서 본 자료 역시 역사를 단순 기록하기 위한 사진이 아니라, 근대적 교통시설인 마산역과 역전의 활기를 마산을 대표하는 도시경관의 하나로 선택하여 상품화·유통한 사진그림엽서로 이해할 수 있다.
    #산성옥상점(山城屋商店) #산성옥 #마산역 #마산 #마산만 #기모노 #마산정거장 #정차장 #정거장 #마산선 #월포동 #군용철도 #馬山風景繪葉書
    생산일자 미상
  • 원산 중정통 풍경
    1930년대 원산회엽서조합(元山繪葉書組合)에서 발행한 원산의 주요 상업가였던 중정통(仲町通り)의 시가지 풍경을 수록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넓은 중정통을 중심으로 양쪽에 목조 및 근대식 상점들이 연속하여 자리한 모습이 펼쳐져 있다. 도로를 따라 전신·전등주와 가공선이 길게 이어지고, 한복과 양장 차림의 인물들이 거리를 오가며 상점 앞에는 여러 종류의 간판과 상품이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의 비교적 규모가 큰 상업건물에는 三中井라는 상호가 확인되는데, 이는 조선 각지에서 오복점과 백화점을 운영했던 미나카이의 원산점이다. 미나카이는 1914년 원산에 지점을 개설하였으며, 이후 원산 중심 상업가의 주요 일본계 상업시설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였다. 외부에는 봉투와 12매로 구성된 「조선 원산명소」 사진그림엽서 세트가 현존하며, 그 구성 가운데 元山銀座街仲町通り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당시 중정통이 원산의 대표적인 번화가, 이른바 ‘은좌가(銀座街)’로 소개·유통되었음을 보여준다. 현재 자료가 해당 완질과 동일한 세트인지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지만, 도판번호가 부여된 원산회엽서조합의 명소엽서라는 점에서 동일 또는 인접한 판본군일 가능성이 있다. 원산은 1880년 개항 이후 일본인 거류지와 상업시설이 형성되면서 동해안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하였고, 중정·본정 등 일본식 정명 아래 상업가로가 발달하였다. 본 자료는 이러한 원산 중심 시가지의 거리 폭, 점포형태, 전신·전등시설, 인물과 상업간판을 함께 기록하여 식민지기 원산의 도시생활과 상업공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전면에는 要塞司令部許可濟라는 군사적 허가표기가 확인된다. 원산 일대는 영흥만요새의 관할지역이었으며, 1930년대 자료에서는 실제로 원산부의 지도에 永興湾要塞司令部検閲済가 명시된 사례가 확인된다. 따라서 본 자료의 허가 역시 영흥만요새사령부와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표기는 원산이 상업·관광도시인 동시에 항만과 해안방어시설을 포함한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사진·지도 등의 시각자료가 군사적 검열 또는 허가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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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일자 미상
  • 평양명승팔경(平壌名勝八景) - 평양기생학교의 그림 수업
    1930년대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에서 발행한 평양명승팔경 사진그림엽서 8매 중 평양기생학교의 그림 수업 모습이 담긴 자료이다. 한복을 입은 두 여성이 실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각각 넓은 종이를 펼쳐 놓은 채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두 사람 앞의 종이에는 먹을 사용한 회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종이 아래에는 검은색 받침 또는 깔개가 놓여 있다. 화면은 두 학생과 작업 중인 그림을 가까운 거리에서 크게 포착하여 이들의 복식이나 외모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두드러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사진그림엽서에서 ‘평양기생학교’로 소개된 기관은 1926년 평양에 설립된 기성기생양성소이다. 기성은 평양의 옛 이름으로, 기성기생양성소는 기성권번과 같은 건물에서 운영된 전문 기생교육기관이었다. 3년제로 운영된 교육과정에는 전통적인 가곡·시조·가사·무용뿐 아니라 조선어·일본어·산술·음악·창가와 함께 **서화(書畵)**가 포함되었으며, 1934년 확인되는 교육과정에서는 서화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든 학년의 교육과목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본 자료의 도상은 기생에게 요구되었던 예능 가운데 그림과 서예를 포함한 서화교육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성기생양성소는 기존의 사적이고 비정형적인 기생교육과 달리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을 제도화한 근대적 전문교육기관이었다. 이곳의 졸업생 가운데에는 선우일선·왕수복처럼 전 조선에서 활동한 유명 예인도 있었으며, 전통 가무뿐 아니라 당대의 새로운 음악과 공연문화까지 교육하였다. 대정사진공예소 역시 학교 건물, 음악·무용·기타 교육장면 등 평양기생학교와 관련된 여러 사진그림엽서를 제작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듀크대학교 소장 자료에도 대정사진공예소가 제작한 기성기생양성소 사진그림엽서가 남아 있다.  동시에 본 자료는 이러한 교육활동을 단순한 학교 기록으로만 제시하지 않고 平壌名勝, 즉 ‘평양의 명승’이라는 틀 안에 편입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평양의 성문·누정·고적과 함께 기생학교와 그 학생들의 예능활동까지 관광객이 감상할 ‘평양의 볼거리’로 재구성한 것이다. 특히 일본어 표제는 이들을 彩筆にもその技豊かな妓生, 즉 그림에도 재능이 뛰어난 기생으로 표현하며 교육을 받은 여성 예능인의 능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기생 자체를 평양의 지역적 명물로 소비하는 당시 관광출판물의 시각도 함께 보여준다. 따라서 본 사진그림엽서는 1920~1930년대 평양의 기생교육과 여성 예능교육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인 동시에, 그 교육과 학생들의 모습을 관광 이미지로 재구성하여 유통한 식민지기 사진그림엽서라는 두 가지 성격을 함께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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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일자 미상
  • 평양명승팔경(平壌名勝八景) - 본정통에서 바라본 대화정의 풍경
    1930년대 대정사진공예소(大正寫眞工藝所)에서 발행한 평양명승팔경 사진그림엽서 8매 중 평양 본정통(本町通)에서 대화정(大和町) 방향을 바라본 중심 상업가로의 경관을 수록하였다. 전면에는 넓게 정비된 도로 중앙에 복선으로 보이는 전차 궤도가 놓여 있고, 한 대의 노면전차가 도로를 따라 운행하고 있다. 도로 양편에는 자전거와 행인들이 오가며, 연속된 2~3층 규모의 근대식 상업건물과 각종 일본어 간판·광고물이 늘어서 있다. 오른쪽의 대형 건물에는 日本ペイント라는 세로 광고가 크게 부착되어 있고 주변에도 시계점 등 여러 상점의 간판이 확인된다. 전신·전등선과 가로등, 노면전차, 자전거, 근대식 상점건물이 한 화면에 함께 나타나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 평양 중심 시가지의 상업·교통환경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평양의 대화정은 일제강점기 평양 중심부의 대표적인 상업가로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였다. 1930년대의 상업자료에서도 대화정에는 문상당·중촌서점·미나카이 지점 등 여러 일본계 상업시설이 소재한 것이 확인되며, 사진그림엽서 역시 대화정을 평양의 ‘번화한 거리’로 반복적으로 소개하였다. 대정사진공예소에서도 最も殷盛を極むる大和町라는 별도의 대화정 도판을 제작해 다른 평양명승 세트에 편성한 사례가 확인된다. 본 자료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노면전차이다. 평양의 전기전차는 1923년부터 운행되었으므로, 현재 도상의 촬영시기는 적어도 1923년 이후로 한정할 수 있다. 이후 전차는 평양의 주요 시가지를 연결하는 도시 교통수단으로 기능하였으며, 본 엽서에서는 전차와 복선 궤도를 화면 중앙에 배치하여 대화정의 근대적인 도시경관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전통적인 평양의 고적이나 자연명승을 수록한 다른 「평양명승팔경」 도판들과 달리, 상업가로와 노면전차, 근대식 건물, 광고간판으로 구성된 근대 도시 자체를 하나의 ‘평양명승’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대화정을 ‘번영한 거리’로 강조한 표제와 화면 구성은 식민지기 평양에서 새롭게 형성된 근대적 상업공간을 여행자가 감상할 도시명소로 재구성한 사진그림엽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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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일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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