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 조선제유회사 및 삼정물산 면화공장
1919년경 목포의 조선제유회사(朝鮮製油會社)와 삼정물산(三井物産, 미쓰이물산) 면화공장 일대의 산업·항만 경관을 수록한 사진그림엽서로, 목포의 정굴소간물점(井堀小間物店)이 발행하였다. 엽서 전면 하단에는 木浦 朝鮮製油會社及三井物産綿花工場이라는 표제와 (井堀小間物店發行)이라는 발행표기가 인쇄되어 있어, 목포 해안의 제유·면화 관련 산업시설을 함께 소개하기 위해 제작된 자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전면에는 소나무가 자라는 높은 지점에서 내려다본 목포 해안의 공장지대와 항만이 펼쳐져 있다. 화면 중·하단에는 긴 지붕을 가진 여러 동의 공장·창고 건물이 밀집해 있으며, 건물 너머의 바다에는 연돌과 돛대를 갖춘 기선이 정박해 있다. 원경에는 목포 앞바다의 섬과 산지가 이어진다. 표제는 조선제유회사와 삼정물산 면화공장을 함께 지칭하고 있으나 개별 건물을 따로 표시하지 않으므로, 화면 속 각 공장동을 어느 회사의 시설인지 구체적으로 비정하기는 어렵다. 조선제유주식회사는 1918년 6월 목포 해안통에 설립되어 면실을 압착·정제한 면실유를 생산한 회사이다. 목포와 전라남도에서는 20세기 초 고하도 육지면 시험재배의 성공 이후 면화 생산이 빠르게 확대되었고, 목포는 생산지에서 집하된 면화를 조면하고 면실·원면을 가공·반출하는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목포근대문화자산아카이브는 조선제유회사를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식물성 유지공장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생산된 면실유는 조선 각지와 일본으로 판매되었다. 삼정물산 역시 이러한 전남 면화산업의 확대 과정에 진출하였다. 1917년 전라남도 당국과 총독부가 삼정물산 면화부에 전남 지역 조면공장 설치를 요청한 뒤 회사는 조선 면화사업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그 면화부문은 1919~1920년경 동양면화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본 사진그림엽서에 三井物産綿花工場이라는 명칭이 직접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도상의 시기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조선제유회사가 1918년에 설립되고 삼정물산 면화부가 1919~1920년경 동양면화로 분리되었다는 회사 연혁을 종합하면, 본 자료의 도상 및 표제가 성립한 시기는 1918~1920년경, 특히 1919년경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정굴소간물점에서 이후 기존 사진제판을 다시 인쇄했을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이는 정확한 인쇄일이 아니라 현재 확인되는 회사명과 산업시설의 존속관계에 따른 추정이다. 본 자료는 특정 공장의 건축물만을 기록한 자료가 아니라, 면화공장과 제유공장, 창고, 항구에 정박한 기선을 하나의 조망 안에 배치하여 목포를 면화의 집산·가공·수출이 이루어지는 근대 산업항구로 제시한 사진그림엽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면화를 조면하는 시설과 그 부산물인 면실을 이용해 기름을 생산하는 제유시설이 인접한 항만공간에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 초기 목포 면화산업의 생산·가공·유통 구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정굴소간물점(井堀小間物店)
#정굴
#정굴상점
#목포항
#목포조선정유회사
#조선정유회사
#면화공장
#면화
#목화
#삼정물산
#삼정
#목포
#조선제유회사
#제유회사
#남북면업주식회사
#朝鮮製油會社
#朝鮮製油株式會社
#三井物産
#미쓰이물산
#미쓰이
#Mitsui
#三井物産綿花工場
#綿花工場
#면실유
#東洋棉花
생산일자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