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형난제인 문익환과 문동환

당신께!

 

정말 우리에게 대경사가 났군요. 세상에 이렇게 큰 경사가 또 어디 있으리오. 서승 씨가 장가를 가게 되다니. 이건 정말 거룩한 일이군요. 서승의 남성미를 알아볼 줄 아는 여성이 어찌 이 나라에 없으리오! 나의 믿음이 확인된 셈이군요. 꼭 나의 주례로 혼인 예식을 치르겠다는 생각, 이해하고도 남는 일이죠.

내 생각에는 동환이가 형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5월이 되면 미국으로 갈 테니까. 본인들이 기어코 나의 주례를 받고 싶다면, 동환이가 약혼식을 해주어 가정을 이루게 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세상이 좋아져서 서승이 국내로 돌아올 수 있을 때, 멋진 혼인 예식을 올리면 되죠. 그날은 아마 내게 내가 장가가던 날보다 더 기쁜 날이 되리라 싶군요.

난 벌써 그 두 사람의 사랑의 열매들의 이름마저 지어 놓았다오. 아들이 나면 ‘이김’, 딸이 나면 ‘보람’. 아들은 서승의 위대한 인간 승리를 빛내며 사는 ‘이김’이 되고, 딸은 그 길고 긴 고생을 이겨 낸 보람, 엄마의 기다린 보람으로 빛나게 살아 달라는 뜻이죠.

계 선생의 발이 식어 간다는 방제명의 말이 꽤 마음에 걸리네요. 40도 되는 물을 양동이에 붓고 발을 장딴지까지 잠그는 소위 각탕 치료를 하는 것이 매우 좋을 테니까 전화로라도 알려 드리구려.

오늘 오랜만에 새누리 신문을 받아 보니, 정말 신선하다는 느낌을 또다시 받게 되네요. 북쪽 교회 대표들 환영 준비가 크게 되었는데, 좌절되었으니 안타깝군요. 나는 이 정부는 확고한 통일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인데도, 이런 걸 보면 머리를 갸우뚱하게 되거든요. 준비가 너무 거창해서 안기부를 긴장시켰던 거나 아닌지!

민주구국선언 서명자 아닌 사람으로 신부 외에 기소된 단 한 사람이 이해동 목사였지요. 이 목사는 선언문을 교회 등사판으로 등사하는 걸 허락했다는 그 사실 단 하나 때문에 기소되었죠. 이 목사에 비한다면, 선언문을 타자한 호근의 죄가 훨씬 더 컸죠. 그리고 낭독용을 붓글씨로 정서한 당신의 죄도 물론 더 컸죠. 은숙이 시집와서 며칠도 되지 않아서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이 몽땅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나는 성서 번역 관계로 빠지게 되어 있었는데, 경험들이 없어서 그 약속이라는 게 허술하기 그지없었거든요. “나는 관계없는 것으로 해다오”라는 것만으로 어떻게 들통이 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그러면 그 선언문이 어떻게 작성되었느냐는 경위만이라도 말을 맞추어 놓아야 했는데, 빤히 아는 사실을 숨기지 못하기로는 동환이와 나는 그야말로 난형난제라는 게 드러나지요. 동환의 입에서 모든 것이 술술 풀려나왔으니. 아무리 그래도 당신이 정서한 것까지 이야기할까? 나와 너무 같아. 나도 이야기하다 보면 꼭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술술 다 털어놓아 버리거든요. 조사를 받다 보면, 조사관이 나의 말동무가 되어 버린다구요. “문 목사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라며 엿새를 버틴 것은 홍일점, 이우정 씨.

1992. 2. 28.

 

 서승 씨의 결혼
소식을 기뻐하고,
『민주구국선언』서명에서 자신이 빠지기로 한 약속이 너무
허술하여 금방 탄로난 경위를 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