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도덕

[1987.06.02]

 

어머님께

  

어제는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은숙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저의 생일을 축하라도 하는 듯이 저녁때부터 밤새도록 시원스레 비도 오구요. 어머님의 건강한 모습도 뵈올 수 있어서 얼마나 마음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옛 독립군 결사 대원의 기백이 아직도 살아 있어서 애매한 교무과장만 당황하게 만들었지만요. 앞으로 364일도 하루하루 우리 모두에게 보람찬 나날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 중에도 어머님 맏아들의 나날은 어느 누구 못지않은 꽉 찬 하루하루가 될 겁니다.

벌써부터 나를 고문으로 격상시켜 달라고 해도 젊은이들이 저를 현역에 묶어 두었는데, 이제 정말 고문으로 격상되었으니 일선에서 물러날 때가 된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제 건강에 관한 책이 출판되면 건강에 관한 강연 요청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글 풀어 쓰기 운동도 일으켜야 하겠구요, 구약 성서번역도 다시 면밀히 봐야겠구요. 굉장히 바빠질 것 같습니다. 즐거운 비명이죠. 정말 어제는 무사히 돌아가셨겠지요.

용길이도 그렇지만 동환의 건강을 잘 보살펴 주어야겠습니다. 밤에 율무를 많이 두어 먹도록 하면 좋을 것입니다. 율무가 이뇨제거든요. 할 수 있는 대로 생채소를 많이 먹도록 식탁 한가운데 샐러드를 맛있게 큰 그릇에 담아 놓고 주식으로 하고 다른 걸 부식으로 먹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집은 아마 생식 35%, 화식 65%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생식을 50%로만 올려도 건강이 훨씬 달라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안 박사도, 백기완 씨도 그 밖에 당뇨, 혈압, 간에 관한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께도 권했으면 좋겠어요.

7월에 어머님의 건강한 모습 다시 뵙기로 하고, 또 저의 건강한 모습 보여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총총.

 

1987. 6. 2. 큰아들 드림

 

춘희 형님

 

이거 동생이 똑똑지 못해서 형님이 몇 돌 생신을 맞으시는지도 모르고 생신 축하를 드립니다. 날마다 형님 건강을 위해서 세 번씩 기도드리고 있으니까 너무 노여워 마시고 제 축하를 받아주세요. 형님은 올해에는 특별한 축하를 받으셔야지요. 첫째로, 이제 아무의 부축을 안 받고도 걸을 수 있게 되셨으니. 둘째로, 그 긴 간호에 지칠 줄 모르고 짜증 한 번 안 내고 보살펴 오신 훌륭한 내조자가 옆에 언제나 붙어 계시니. 셋째로, 그리던 아들들 옆으로 가시게 되었으니. 넷째로, 이것은 꽤 큽니다. 이 아우가 진주에서 형님의 병을 완쾌시킬 수 있는 방도를 찾았다는 거, 이거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닉슨이 중국에 가서 침술을 보고 온 이후로 (침을 꽂고 수술하는) 동양의 침술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 침술의 이론적인 근거가 경락설이거든요. 사람의 몸에는 오장육부를 총 관장하는 14경락이 있습니다. 그 14경락이 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하고, 거기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14경락에 뇌 경락이 없습니다. 뇌 경락이라고 없을 수 없지 않아요? 반드시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게 뇌수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손을 들여다보며, “뇌 경락아, 넌 어디 숨어 있느냐?” 했더니, “나 여기 있지 않아요?”하는 소리가 손톱 밑에서 들려왔습니다. “난 너무 소중해서 이렇게 손톱으로 보호를 받고 있어요”라고 하면서. “그러면 그렇지” 싶어서 손톱들을 하나하나 지그시 눌러주었더니 금방 반응이 왔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용길에게 들으세요.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번, 열 손톱을 세 번씩 지그시 눌러주세요. 그러면서 머리를 골고루 눌러주세요. 그러다가 특별히 아픈 데가 생기거든 그곳을 잘 눌러주세요. 뇌 속의 안 좋은 것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깃이니까요. 그건 병이 나아가는 징후입니다. 저는 한 2-3일 전에 온 머리가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아프다가 지금 한 군데도 아프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아래윗니를 딱딱딱딱 부딪치세요. 머리에 좋은 자극을 줍니다. 이건 머리만 자극하는 게 아닙니다. 목으로 해서 등뼈 전체, 식도로 해서 소화기관 전체에 좋은 자극을 줍니다. 셋째로, 딱딱한 나무로 된 흔들의자에 앉도록 하세요. 앉아서 앞뒤로 흔드는 것이 등뼈에 더없이 좋습니다. 생기를 되찾은 등뼈는 머리에 좋은 자극을 줍니다. 주무실 때도 단단한 널빤지 위에 담요를 접어서 두세 장 깔고 주무세요. 푹신한 침대에서는 뼈들이 휘고 풀립니다. 그게 안 좋아요. 넷째로, 하루에 두 번 뜨거운 물에 장딴지까지 담그시고 기분 좋게 심호흡을 하세요. 몸에서 전기 작용이 강해집니다. 몸 안에서 전기 작용이 제일 많은 데가 뇌수이기 때문에, 몸의 자가발전을 최대한으로 올리는 게 뇌수의 회복과 건강에 더없이 좋은 겁니다.  다섯째로, 신선한 생채소를 많이 잡수시도록 하세요. 여섯째로, 오래지 않아 골프치러 다닐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세요. 그 확신이 뇌세포들을 아연 긴장시키면서 전기 작용을 활발하게 해줍니다. 저는 골프를 칠 줄 모르니까, 언제 탁구라도 같이 칩시다. 그렇지. 술잔도 땅 부딪치구요. 아들들 있는 데로 떠나실 때, 아우는 진주에서 손을 흔들어 드릴게요. 안녕.

 

아우 익환 드림

 

선희야

 

그동안 몇 번 편지, 생일 카드 고마웠다. 네 진정이야 어디 가서 다시 만나겠니? 나는 너같이 매사에 오직 진정인 사람을 동생으로 가지고 있다는 게 그리 기쁘구나. 네 진정이 내게 지성으로 와서 감천되어 드디어 뇌수의 병을 고치고 뇌를 강화시키는 길을 찾아냈구나. 이건 정말 엄청난 발견이다. 이제 나는 너 때문에 가슴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춘희 형에게 쓴 것 가운데서 이를 딱딱 부딪치는 것만 빼고 나머지는 그대로 해라. 반드시 완쾌된다. 정말 하나 빠뜨렸구나. 가운뎃손가락에서 일직선으로 손목에 이르면, 오목한 데가 있다. 거기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좀 미는 듯이 지그시 누르면서 올라가는 지압요법도 좋다. 이건 등뼈를 강화해주는 거다. 손톱을 지그시 누른 다음, 손가락 끝에서 안쪽으로 눌러주면서 손목 한가운데로 내려온다. 안쪽에는 살이 많으니까, 손등쪽 보다는 좀 세게, 손바닥은 더 세게. 이건 몸의 모든 기관을 골고루 활성화해주는 거다. 춘희 형은 이걸 꼭 했으면 좋겠구. 몸의 기를 한 바퀴 돌려주는 거니까, 누구에게나 좋은 거다. 영규가 의학 공부를 한다지? 서양 의학의 고도의 과학성을 가지고 동양의 경락이론을 밝혀주면 좋겠다. 네가 병을 고치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병을 고쳐서 나오게 될지 누가 아니? (기를 돌리는 건, 고혈압 환자는 앞뒤 다 손가락 끝에서 아래로 하는 것이 좋음) 부디 온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빈다. 영환이, 영금이네 소식을 늘 주어서 고맙다. 모두에게 사랑을.

 

오빠 씀 

 

호근아

 

네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구나. 한마디로 음악극연구소는 좋은 씨를 뿌린 거니까, 인제 당분간 땅에 묻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제 싹이 나올 거다. 모두가 얼마나 뜻있는지를 알았으니까, 없어지면 모두들 다시 살리자고 할 거다. 그때에는 모든 사람의 지원을 받으며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누가 봐도 그건 네 왕국이거든. 다른 사람들은 들러린 거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소극적이라고 해서 서운해하지 말아라. 그들은 그들대로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하는 일들이 있으니까. 사람은 벽을 문이라고 밀고 나가야 할 때도 있지만, 깨끗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더군다나 씨가 이미 심어졌고, 싹이 돋기를 기다려야 하는 마당에서랴. 나를 봐라. 일흔에도 새 일들을 개척하고 있지 않니? 네 생애는 아직 시작이야. 업적을 서두르지 말아라. 너야말로 요가로 느긋이 숨 쉬는 수련을 쌓아야 할 것 같구나. 이번엔 아버지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으면 기쁘겠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지금부터 숨이 턱에 닿게 뛰지 않아도 되지 않겠니? 지금처럼 네 몸을 혹사하다가는 쓰러질까 봐 걱정이다. 쓰러져서 쉬는 것보다는 쓰러지기 전에 쉬는 게 좋은 일이다.

네가 예술과 도덕의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한 일을 흐뭇하게 생각한다. 내가 요새 양심을 주제로 계속 시를 쓰고 있는데, 어쩌면 부자의 마음이 이렇게 통할 수 있나 싶어서. 그것은 예술 행위의 도덕성과 예술 작품의 도덕성이라는 문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네 편지에서도 이 양면성이 다 문제가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네 예술이 상당히 진지해졌다는 방증이라고 생각되어서 나는 정말 기쁘다. 예술 행위의 도덕성을 문제 삼기 전에 행위의 도덕성이 문제되어야 하겠지.

그런데 요새 나는 건강의 문제를 몸의 측면과 마음의 측면에서 쓰면서, 마음의 도덕적인 의무 가운데 최우선은 제 몸의 건강에 책임 있게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제 몸이 소중한 걸 아는 만큼, 남의 몸의 소중함을 알아주는 것이거든. 여기 모든 윤리의 알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예술 행동의 윤리성을 문제 삼기 전에 예술을 살아가는 데 네 몸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부터 질 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윤리의 치외법권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예술가들과 과학자들 (특히 자연과학자들)이 아니었을까? 예술가들에게는 부도덕한 생활이 미덕이요, 특권처럼 인정되기까지 했던 것이 아닐까? 특히 남녀의 애정 문제는 예술적인 영감의 원천으로 선망의 대상마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예술가들에게 기대한 것은 도덕군자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예술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일 아니겠니? 도덕군자에게서 어설픈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그 생활이야 도덕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든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사람들은 그것으로 박수를 치는 것이거든. 도덕군자에게 기대하는 것이 선이라면, 예술가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름다움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행위의 도덕성을 왜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느냐고 하면, 인류가 지금 워낙 윤리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도덕의 재건만이 인류가 살아남는다는 절체절명의 자리에 인류는 몰려 있다고 생각되거든. 이 일에 예술가라도 논외일 수가 없다는 말이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건 그것이 다 도덕의 재건에 이바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역사의 지상 명령에서 예술가라고 제외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지. 도덕의 치외법권 지대에 있던 자연과학자들은 일찍이 자기들의 도덕적인 책임을 느끼기 시작했거든. 도덕적인 사람이나 부도덕적인 사람이나, 하나에 하나를 보태면 둘이 된다는 과학적인, 부도덕적인 객관성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이 원자탄을 만들어 놓고는 양심의 가책, 도덕적인 책임을 절감하는 거거든.

예술가나 과학자가 오늘의 윤리적인 상황에 책임진다는 것과 예술 행위 자체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두 다른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 이 이원성의 문제는 과학자들보다도 예술가에게 더 심각하고 미묘하다고 생각하지 않어? 아무리 미묘해도 이 이원성은 극복되어야 해. 여기서 우리는 선과 미를 성급하게 통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어? 그러다가는 도덕을 목적으로 예술은 수단이 되는 함정에 빠지기 십상 아니겠어? 우리는 선의 본질과 미의 본질을 다 같이 ‘참(진실)’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해. ‘참’의 도덕적인 표현이 선이요, 예술적인 표현이 아름다움이라고. 선이 도덕의 성취이기 위해서는 수미일관(首尾一貫) 선이어야 해. 마음, 말과 행위에 위장된 선, 곧 거짓이 없어야 해. 참이어야 한다는 말이지. 예술가는 생활이나 예술 행위나 예술 자체가 수미일관 아름다워야 해. 그 어디도 위장된 아름다움이 있어서는 안 돼. 참이어야 된다는 말이지. 예술이 이렇게 참으로 아름다울 때, 예술가의 생과 예술 행동도 고도의 도덕성에 도달하는 것이지. 이렇게 해서 예술 자체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겠니?

꽃만 아름다운 조화가 아니라 뿌리까지 아름다운 생화라야 된다는 말이겠지! 작품이 ‘추’의 위장이 될 때, 그 예술은 ‘미’를 모독하는 일이 된다는 말이겠지. 작품이 도덕을 주제로 삼을 때, 선을 참으로 보고 그 작가가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작품이 작가를 만들어 간다는 면도 중시해야 할 거다. 자기의 작품이 말하는 ‘참’ 앞에서 작가 자신은 독자와 함께 머리를 숙이고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참’을 아름다움으로 보는 데서 시작해야 예술이 도덕의 수단으로 떨어지지 않는 거고. 지면이 다 됐구나. 건강해라.

 

아빠 씀 1987. 6. 2.

 

중풍을 앓고 있는 동서 강춘희와 파킨스병을 앓고 있는 동생 선희에게 자신이 발견한 치료법을 알려주고, 어머니에게도 건강에 관한 조언을 하는 내용.

아들에게는 예술과 도덕에 관한 생각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