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깊이

당신에게

 

거의 날마다 만나기는 해도 글로 만나는 것은 또 다른 만남인 거 같군요. 더 그윽하고 더 여물린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바우는 일가의 종손으로 동생들을 잘 거느릴 거라는 거, 바우와 보라가 손잡고 다니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신앙, 아니 인생의 궁극적인 경지는 기쁨이기는 해도, 바우와 보라가 손잡고 다니는 것을 보는 할아비의 기쁨이기는 해도, 기쁨이라는 게 늘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나의 기쁨은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소. 웃으려다 말고 기쁘려다 마는 것이 인생인 거 같군요. 그러면 그러기를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 하면 ‘이 세상에 슬픔이 있는 한’이라는 말이 되겠는데, 이게 정말 마음을 깜깜하게 만드는 이야기죠.

첫 번 감옥 생활에서 기쁨을 인생의 본질, 우주의 뜻이라고 깨닫기는 했는데, 나의 마음은 끝내 ‘기쁨의 신학’을 발전시킬 심정이 되지 않았던 거요. 그러다가 두 번째 감옥에 가면서 나는 ‘눈물’을 주제로 하는 연작시를 지었거든요. 그러다가 세 번째, 이번에는 ‘슬픔’의 깊이를 언뜻 들여다보게 되었구려. 그것은 정말 순간이었소. 그러나 그 순간은 나를 아주 돌려세우는 순간이었소.

 

천 길 벼랑 끝에 버티고 서서 

절망해선 안 된다

 

아니 절망해서

차라리 떨어져야 한다

 

굳게 닫힌 임의 방문 앞에서 

절망해선 안 된다

 

아니 숨이 막혀

차라리 쓰러져야 한다.

 

이런 심정,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동주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느냐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은 심정이구려.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얼마나 눈물겨운 구절이오. 그의 「자화상」, 「참회록」뿐 아니라 그의 시에서는 온통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지고 있군요. 그래서 동주가 읽은 팔복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였소.

시편을 읽으면 “언제까지”라는 울부짖음이 자꾸 들려오지요. 히브리어로 ‘아드마타이’. 그런데 그 언제까지가 동주에게 있어선 ‘영원히’였구려. 나는 이제야 그걸 알 것 같군요. 나는 이 영원한 슬픔이 잠깐 내 방을 찾아왔다 간 다음, 내 방 왼쪽 벽 앞에 노랑 담요를 접어 슬픔이라는 손님이 언제라도 와서 앉으라고 빈자리를 만들어 놓고 그 자리에 마주 앉아도 보고, 그 자리에 내가 앉아도 보곤 해요.

 

이 

나 혼자만의 방

왼쪽 벽 앞에 담요를 접어

빈 손님 자리 하나 마련해 놓으니 

외롭지 않으이

눈만 감으면 숨소리만으로 앉아 

몸을 흔드시는 당신

우리는 말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군요 

사랑하는 아내 아들딸도

바우도 보라도

눈물겨운 벗들도 못 들어오는 

이 방에

당신만은 소리 없이 들어오시는구려 

반가운 손님이여

아 — 당신의 이름 ‘슬픔’이여

내가 마지막 세상을 하직할 때도

당신만은 나를 떠나지 않으리

 

 

난 요새 틈틈이 타고르와 서정주를 읽는데, 타고르의 시적인 감성에 감탄하기는 하면서도 어쩌면 그리도 인도의 슬픔이 그의 시에는 묻어 있지 않을까, 이상한 느낌이 드는군요. 그의 시는 인도인보다는 서구인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는 아침 해의 빛나는 눈빛이 풀 이파리를 위해서 춤을 추는 것은 보는데, 해의 마음이 풀 이파리들 밑에 슬픔으로 고여 있는 것을 못 보고 있는 것 같군요.

그의 시에 비하면 동주의 시들에서는 민족적·우주적 슬픔의 울림이 번져 나오는 것 같군요. 서정주의 시에도 「자화상」, 「문둥이」, 「무등을 보며」, 「국화 옆에서」 등 상당히 짙은 슬픔을 읊은 시들이 있긴 한데, 동주의 민족적·우주적 슬픔의 가락에 비해 시적인 가락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요. 「자화상」이나 「문둥이」는 자조하는, 병적이기조차 한 가락마저 들려주고 있어요.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부르짖은 비명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에서 절망할 수조차 없는 슬픔, 절망도 그 앞에 가서는 한낱 감상이 되어 버리는 슬픔에 부딪혀야 인생을 알고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일까요!

호근이, 은숙이 공부에 재미를 붙인다니 정말 기쁘군요. 이제 할아버님도 오셔서 바우 동무를 해주시면 할머님도 짐을 덜게 되실 테니까, 내친김에 대성해 가지고 오는 것이 좋지요. 무대 예술에 관해서 나 같은 아마추어가 읽어 눈을 열 만한 책이 있으면 보내 달라고 하시오. 무대 예술이 아니라도. 정말, 제3세계의 문학 작품을 좀 구해 보내 주었으면 좋겠소.

성심이 돌아올 날이 가까워 오면서 상당히 몸이 달았겠군요. 의근이도. 의근이 정말 본 지 오래구나. 성심의 부모님께 문안 전해라. 

아버님은 금주 중에는 뵙지 않을까 하고 기다렸더니, 아무래도 내주에 가야 뵐 것 같은 느낌이군요. 좋은 소식 보따리를 가지고 오시어 터뜨려 주실 것을 믿고, 걸기대(乞期待).

동환의 식구들 파이팅. 영혜의 의젓한 사진 특히 기뻤고.

 캐나다, 미국에 있는 모든 동지들에게 뜨거운 슬픔을 선물로 보냅니다. 우리 모두 모두 조국의 슬픔 앞에서 목놓아 울면서 모든 것을 쓸어 보내고 하나가 되는 기쁨을 찾지 않으시렵니까? 사람은 진정으로 슬플 때만 순수할 수 있고 강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민족의 밝은 내일을 위해서 다 같이.

 

김 (재준) 목사님

 

익환이는 건재합니다. 슬픔과 함께 무척 자란 것 같습니다. 아직도 어린애라서 자라는 것이 좋군요. 인제 귀국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영환이, 예학이도 왕창 슬퍼져야 산이 무너져 내릴 거다. 달현이네, 성수네, 미국에 계시는 용준 형님네, 뉴욕의 큰이모님네 등 모두 모두, 로마에 있는 (구)삼열네 식구, 시카고의 곽노순 박사네, 독일의 이양구 목사, 부르고 싶은 이름들, 꿈에 찾아와 주기를 빌면서…….

 

늦봄

 

첫 번 감옥에서 기쁨을 인생의 본질이라 느꼈고 , 두 번째 감옥에서 눈물을 주제로 연작시를 지었는데, 세 번째 감옥에서 슬픔의 깊이를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