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8월 <옥중의 늦봄>

🈷️ 17년간 6차례 구속…총 10년 3개월 수감생활

[6번의 감옥살이]
 

◇ 통일의 집에 전시된 문익환 목사 수의와 수번들


문익환 목사는 1976년 3월 2일부터 1993년 3월 6일 석방까지 17년 동안 6 차례에 걸쳐 구속되어 10년 3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첫번째: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유신체제 아래 이 암담한 침묵의 시대에 후세를 위해서 누군가 할 말을 했다는 기록이라도 남기자는 생각에서 재야인사들과 함께 3.1 민주구국선언 성명서를 작성하여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 으로 구속되었다. 1976년 3월 2일부터 1977년 12월 31일까지 22개월 동안 서대문에 있는 서울 구치소, 전주교도소, 안양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두번째 : 유신헌법 비민주성 폭로 성명서 발표
유신헌법의 비민주성을 폭로하는 “유신체제 6주년을 맞이하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형집행정지 취소 처분으로 재수감되었다. 1978년 10월 13일부터 1979년 12월14일까지 15개월 동안 서대문에 있는 서울 구치소와 안양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세번째 :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내란 음모죄”와 “계엄법 위반”으로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구속되었다. 1980년 국민연합 중앙상임위원회에서 “민주화 촉진 국민 선언”초안을 작성하여 함석헌, 윤보선, 김대중, 한완상, 서남도 등의 서명을 받아 발표하였다. 당시 신군부는 학생들의 시위를 구실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하여 5월 17일 배후 조종 혐의로 김대중을 비롯한 26명을 연행하였다. 1980년 5월 17일부터 1982년 12월 24일까지 32개월 동안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공주 교도소, 안양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네번째 : 민통련의장으로 연설, 집시법 위반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선동, 소요죄”로 구속되었다. 1986년 5월 민통련(민주 통일 민중 운동 연합)은 인천에서 개헌 추진 결성 대회를 열었으며 이후 자주적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정치 투쟁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당국의 탄압 속에서도 민통련 의장으로 강연 활동을 이어 나갔으며 1986년 서울대 5월제에 참석해 연설 도중 이동수 학생의 분신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경찰과 언론이 분신을 선동한 듯 왜곡하여 수배되자 바로 자수하였다. 재판을 거부하였으나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아 1986년 5월부터 1987년 7월 8일까지 14개월 동안 서울 구치소, 청주 교도소, 진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다섯번째: 평양 방문, 국가보안법 위반
1989년 3월 25일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났으며 귀국 후 바로 연행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전민련의 고문이었던 문익환 목사는 조평통(조국 평화 통일 위원회)의 초청으로 정경모, 유원호와 함께 일본을 거쳐 평양으로 갔다. 자주적 평화통일과 관련된 원칙적 문제에 대해 9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1989년 4월 13일부터 1990년 10월 20일까지 19개월 동안 안양 교도소와 전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여섯번째 : 분신정국 장례위원장 활동, 형집행정지 취소
여섯 번째는 대학생 중심 반정부 시위에서 10여 명이 분신, 투신자살, 2명이 백골단의 폭력으로 사망에 이르는 이른바 분신 정국에서 장례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여 형집행정지 취소로 구속되었다. 1991년 6월 6일부터 1993년 3월 6일까지 21개월 동안 영등포 교도소와 안동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글: 오남경>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과 사색을 위한 숲길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월간 문익환_8월 <옥중의 늦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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