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통일에 대한 명상(1)

어머님께

 

전번 접견 때 뵐 수 없어서 섭섭하기도 했지만 염려됩니다. 주일날 교회도 못 가시고 누우셨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아직도 기거를 못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우셔서 저의 소식만 손꼽아 기다리신다기에 서둘러 붓을 들었습니다. 의근에게 읽어 달라고 하시고 제 목소리를 듣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접견 소식을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지금 왕창 건강합니다. 엎드려뻗쳐를 35번 한다면 모두 놀랄 거예요. 이대로 가면 무서운 체력으로 겨울을 맞을 거예요. 체력으로 추위를 이겨 내려고 아침에 일어나 1시간 30분 정도 요가를 하고는 명상과 성서 읽기로 오전을 다 보냅니다. 점심 전후해서 30분 정도 나가 뛰고요. 그 후로 자기까지 틈틈이 방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점심, 저녁 음식을 앞에 놓고는 ‘이 음식이 제 몸속에서 정의를 세우는 하느님의 억센 힘, 하느님의 사랑의 뜨거운 체온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올리고 ‘쌀 한 톨, 피 한 톨’ 하면서 콩밥 한 톨 한 톨을 고소하게 씹어 갑니다. 그야말로 쌀 한 톨, 콩 한 알이 그대로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겁니다. 뱃속 깊숙이 들이마시는 공기의 단맛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지내 온 지난날이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요한 제 숨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명상에 잠길 수 있다는 것도 교도소 생활 아니고는 좀처럼 얻을 수 없는 기회라고 할 것입니다. 저번 편지에 제 작은 가슴에 하느님 마음이 울려오기를 기다리면서 성경을 읽고 명상하고 운동하고 잠자리에 드는 축복받은 생활 이야기를 올렸었지요.

그동안 제 가슴에 울려온 하느님의 마음은 첫째로 ‘땅이구나, 흙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온갖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을 다 받아들여 속으로 삭여서 풀뿌리, 나무뿌리들에게 진액을 공급해서 갖가지 꽃을 피우고 열매를 열게 하는 땅의 그윽한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하느님의 마음은 사랑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찢어지는 쓰라린 아픔 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 그러니 사랑이란 몸부림일 뿐인 거죠. 이렇게 써놓고 보니 싱겁군요. 사랑이란 말 해서는 안 되는 거군요. “난 너희를 사랑한다” 이런 말씀을 아버님, 어머님에게서 들은 일이 없거든요. 부모가 자식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그건 실상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부디 잘 잡수셔서 건강한 가운데 여름을 지내시다가 8월 접견 때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님의 기도에 감싸여 살면서.

 

아들 드림

 

봄길에게

 

오늘 새벽에 당신을 만났었죠. 그 꿈이 아쉬워서 오래오래 누웠다가 늦게 일어났지요. 지난번 접견 때의 그 신선한 아름다움이 봄길의 향기로 코끝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거죠. 30대의 젊음이 내 몸에 옮아온 것 같군요. 이 편지를 많은 사람이 보리라고 생각되어 이 정도로 우리의 젊음을 토로하고 이야기를 다른 데로 옮기기로 하겠소.

호근이가 돌아온 다음에 한 번 특별 접견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앞에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에서 하느님의 마음은 ‘흙이구나, 사랑이구나’라는 마음의 느낌을 적었는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사랑에서 났으니 사랑으로 돌아가리” 하는 나의 시구군요. 이건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을 나의 경험으로 다시 표현한 거거든요. 이렇게 나의 생각은 나의 시적인 감성보다는 몇 걸음씩 늦다는 걸 깨닫게 되는군요.

나는 나의 둘째 시집에서 통일된 조국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일이 있어요. 6월 접견 때 들려준 조국에 바치는 시도 그런 시지요. 그러면서도 통일하면, 나는 민족의 통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거든요. 물론 국토의 통일이 없는 민족의 통일이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데 요새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다가 갈라진 땅의 통일이 그것만으로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는 걸 깨달을 수 있었소. 또 한 번 이성적인 깨침은 시적인 느낌에 몇 걸음 뒤늦은 걸 알 수 있었어요. 우리의 국토, 이 땅은 우리를 낳아 길러 준 우리의 어머니인 거죠. 이 땅이 없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는 거니까요. 우리의 살과 뼈와 피는 이 땅의 진액이거든요. 그러니 이 땅은 그것 자체로서 우리 사랑의 대상이요 찬양의 대상이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땅, 이 국토가 허리가 묶여서 꿈틀거리고 있거든요. 우리의 아픔은 이 땅의 아픔인 거죠. 이 땅의 신음 소리가 곧 우리의 신음이기도 하구요. 이 국토는 전체가 5천만 전 국민의 것이죠. 다 같이 사랑하고 누리고 찬양할 권리가 있는 거죠.

그런데 남쪽에 있는 우리는 금강산을 즐길 수 없고 원산 명사십리에서 수영할 수도 없고 백두산에 오를 수 없는 거죠. 북쪽에 있는 동포들은 설악산을 즐길 수 없고 남해안의 절경을 볼 수 없는 거죠. 이 땅이 내는 온갖 복을 고루 누릴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이 같은 국토 위에 철조망을 치고 총부리를 맞대고 있어야 하는 일, 이건 이 겨레의 슬픔인 동시에 이 땅, 이 산천의 슬픔이기도 한 거죠. 이제야 겨우 국토의 통일이 민족의 통일과 함께 절실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와 동시에 조국의 통일 또한 중요한 뜻을 지닌다는 것을 나는 우리 바우의 목련꽃 웃음을 들은 후 얼마 지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소.

나는 우리 장손 바우의 목련꽃 웃음에서 조국의 노래를 들었던 거죠. 그 조국은 내일의 조국인 거죠. 이렇게 조국이라는 말에는 어제, 오늘, 내일의 역사가 담겨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조국의 통일은 갈라진 우리 역사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조국 통일은 갈라진 역사의 두 흐름을 합류시키는 일이죠. 맞서 싸우느라고 우리의 창조적인 힘을 파괴적으로 소모해 간 슬픈 역사를 청산하고 힘을 모아서 우리의 역사에 새로운 꿈과 창조적인 힘을 불어넣는 일이 바로 조국 통일이라는 말의 뜻인 것을 바우의 목련꽃 웃음소리를 듣고 얼마 지나서야 깨달았으니! 철학의 소재는 시라고 말한 하이데거의 탁견에 머리를 숙이게 되는군요.

요새 통일에 관한 집중적인 명상을 하면서 깨달은 것 또 하나! 최근 한국 근세사를 전공하는 사학자들 가운데서 일제 36년 민족사의 과제가 자주독립이었다면, 45년 이후의 민족사의 과제는 ‘통일’이라는 탁견을 피력하는 이들이 있지요. 그야말로 탁견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또 잘라 양분법으로 보는 것은 오늘의 문제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어제의 문제를 놓치는 잘못에 빠질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하죠. 동학(東學)에서 시작되는 근세사의 큰 사건들 하나하나에서 제시된 문제들과 끊어서 통일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 모든 과제가 통일 없이는 어느 하나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 그동안 쌓이고 쌓인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풀리기 시작하는 사건으로서 통일을 보아야 한다는 것, 그 사건 하나하나에서 표현된 민족의 염원을 외면한 통일은 민족과 조국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을 이제 뚜렷이 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군요.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죠. 일제 강점 하의 36년 민족사의 지상 과제인 완전 자주독립도 통일과 함께 비로소 쟁취되는 것이라고. 이제 겨우 통일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것을 민족사의 문맥 속에서 볼 수 있게 되었소. 물론 내일을 지향하는 민족사를 말하는 거죠. 통일에 관한 명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정말 아쉬운 것은 너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하는데 자료가 없으니.

다음으로 김명수 집사님께 전해줄 나의 위로의 말. 로마서 8장 마지막 두 절. 죽음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나타난 그 사랑은 결코 조 집사님을 버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믿고 용기를 내서 일어나시라고. 그것이 바로 조 집사님이 김 집사님에게 빌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려주시오. 조선출 목사도 그랬지만 사랑하는 짝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야 하는 무상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는지? 

담요 두 장을 내보냈고, 침낭, 편지도 찾아가도록 해 놓았으니까, 찾아다가 햇빛 보이고 드라이클리닝을 시켜 두시오. 요새는 단전 호흡법을 그만 주고 요가만 하는데, 서재에 있는 요가 교본을 넣어 주시오. 이제 느긋이 앉아 불어를 공부하고 싶으니까 불어 문법책을 넣어주시오. 내 서재에 영어로 된 문법책이 있기는 한데, 찾기 어려우면, 우리나라 말로 된 교과서라도 구해 주시오. 의근이 독일이 잘 안되면 카나다로 수속해 보면 어떨지? 아무튼 이번 기회에 독일어를 완전히 마스터하라고. 이제 불어까지 마스터하면 무서운 거 없지 뭐. 성근이도 등록하고 밤에 어학 공부라도 하면 어떨지? 친구들 따라 그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당신 붓글씨 계속해서 정진 정진하시오. 시에 담긴 느낌을 떨리는 붓끝에 모아 불길이 솟아오르도록 쓰는 일이 영원을 시간 속에서 사는 일이 되는 거니까.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의 가슴에 순수와 아름다움을 사랑으로 불 지르는 것인지?

당신의 늦봄

 

호근에게

 

여행이란 즐겁기도 하지만 굉장히 피곤한 거지. 그래도 많은 수확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네가 보내 준 엽서에서 그 편린을 볼 수 있었다. 금년 가을 한껏 날개를 펴보아라. 오페라가 아무리 이태리나 독일 것이라고 해도 우리의 관점, 우리의 느낌에서 무대에 올려야지. ‘아일랜드’는 참 감격적이었다. 어떻게 ‘가룟 유다의 부활’을 그런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는지? 오페라도 좋지만, 역시 연극이 좋은게 아니야? 희곡 창작에 좀 더 머리와 시간을 쓸 수 있었으면 하고 이 아비는 바란다. 오페라도 창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박재훈 씨가 부탁하던 성서에서 소재를 취한 오페라 대본도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일 같기도 하지만. 건용이는 언제 오는지?

 

동환에게

 

민중 교육에 관한 계획은 어찌 되었는지? 전과자들의 재생의 문제에 관심을 돌려보면 어떨는지? 사실 가장 암담한 사람들은 전과자들이니까, 거기서 민중 교육을 시작하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영미의 늘씬한 키 보고 싶구나. 공부도 그렇게 잘해서 일등이라니, 축하한다. 이제 방학도 곧 될 테니, 그럼 편지를 한 장 날려다오. 새벽의 집 식구들 모두 모두 건투를 빌어요.

안병무 박사 지압요법을 받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떨는지? 그 친구 그런 건 구질구질하다고 느낄 테지만, 그건 분명히 효과 있을 텐데. 박영숙, 안 박사는 내 동생이니까,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 주시오. 이제 저녁이 들어오니까, 이것으로 끝을 막아야 하겠군요. 다시 만날 날까지 모두들 기쁘게 기쁘게…. 평화의 새 나라 억만만세……

1979. 7. 9.

 

아내 조갑손 집사를 여읜 김명수 집사(한빛교회)에 대한 위로

어머니에게 하느님의 마음이 ‘땅(흙)’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얘기.

통일에 대하여 깊이 명상한 것을 자세히 서술.

불어 공부를 위해 문법책을 넣어줄 것을 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