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현장탐방>
일본에 새겨진 동주와 익환의 흔적찾기(1-도쿄) (2025년 3월호)
80년 전 두 남자의 흔적, 커다란 울림으로 남다
💌편집장의 커버스토리
1942년 9월. 도쿄의 이층집 다다미방 동주의 하숙방에 늦봄이 불쑥 찾아옵니다. 폐병에서 회복해 도쿄신학교에 복학하려던 늦봄이 고향 동무를 찾아간 것이었죠. 태평양 전쟁 중인 도쿄. 징병의 걱정 속에서도 한 줌 희망을 얘기했던 조선의 두 유학생에게 이날의 상봉은 안타깝게도 생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80여 년이 흐른 2025년 2월, 동주를 사랑하고 늦봄을 추모하는 18명의 원정대가 이들의 흔적을 쫓아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동주의 하숙집엔 건물이 들어서고, 늦봄의 자취도 많이 사라졌지만, 그를 기억하는 마음은 여기저기 뿌려져 있습니다. 기억과 기억이 손을 잡고 더욱 단단해져 커다란 울림으로 남은 그곳, 동주와 익환의 일본 현지에 『월간 문익환』이 다녀왔습니다.
◇2025년 2월 23일, 릿쿄대 채플에서 윤동주 사망 80주기 기념식이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회’ 주최로 열렸다. ⓒ최병미
먼 곳을 갈 때마다 꺼내 드는 커다란 배낭 가방을 짊어지고 일본으로 향했다. 끙끙거리면서 도착한 도쿄는 서울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사람으로 붐비는 거리, 요란한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넘치는 골목을 거닐었다.
식민지 조선 반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넘어갔다. 어떤 이는 생활고에서 벗어나 삶을 찾기 위해. 윤동주, 문익환, 박용길이 그러했듯 어떤 이는 공부를 하기 위해. 그 이유는 이주한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했을 거다. 이 중에는 일본에 남게 된 사람도, 조선으로 돌아온 사람도 그리고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기다리며 잠시간 일본에 남기를 기약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 일본행에선 조선,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가난했지만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용기 냈던 이들이 꾸려온 이주와 연대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글: 기림>
일본어로, 한국어로 감동적인 시 낭독
▲릿쿄대 윤동주 80주기 행사
2월 22일 늦봄문익환념사업회 소속 인원을 포함하여 18명의 대인원이 릿쿄대학교에서 열리는 윤동주 80주기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에 모였다. 성공회 유시경 신부님과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회’가 주축이 되어 만찬과 80주기 행사를 준비해 주셨다. 행사 전날 저녁 만찬을 위해 번쩍이는 도쿄타워가 눈앞에서 보이는 성앤드류 성당에 모였다. 손에 손을 잡고 신부님의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나눴다. 일본인 참가자가 한 사람씩 윤동주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던 순간은 유독 특별했다. 자비를 들여 한국어 일본어로 된 윤동주 시 전편 낭독 CD를 제작한 아마누마 리츠코, 스미오 선생님 부부는 어떻게 약 40년의 세월 동안 이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는지. 그리고 “일본어 뜻은 몰라도 낭독하는 목소리에서 진한 감동이 전해진다”라고 현미 선생님이 표현하신 마츠오카 미도리 선생님의 시 낭독 시간도 있었다. 미도리 선생님과 식민지 조선, 윤동주까지 이어진 그 인연도 함께 들었다.
◇2025년 2월 22일 도쿄 성앤드류 성당에서 저녁만찬 ⓒ최병미
2월 23일 행사 당일. 기대 이상의 행사 규모에 한국인 참가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행사가 열리는 채플실이 남녀노소의 사람들로 가득 찬 것은 물론이고 앉을 자리가 모자라 많은 참가자가 채플실을 비추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강의실로 이동해야 했다. 2시에 행사가 시작됐다. 약 30분의 예배 시간이 끝나고 시 낭독 시간에 미도리 선생님, 문성근 선생님 그리고 송경용 이사장님 외 약 5명이 각각 한국어로, 일본어로 시를 낭독했다. 낭독이 이어질수록 눈물을 닦아내는 사람들이 주위에 보였다. 특히나 문성근 선생님이 문익환 목사님 시 ‘동주야’를 낭독하며 서두에 울컥하던 모습은 모두를 눈물짓게 했다.
◇2025년 2월 23일 릿쿄대학 윤동주 80주기 행사에서 문익환 목사 시 ‘동주야’를 낭독하는 문성근 배우 ⓒ최병미
너는 스물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 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 달 먼저 났지만
나한텐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가는 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 가지 않는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중략) ···
넌 영원한 젊음으로 우리의 핏줄 속에 살아 있으면 되는 거니까
예수보다도 더 젊은 영원으로
동주야
난 결코 널 형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니
―문익환 시 ‘동주야’ 중
릿쿄대 총장 강연도중 눈시울 붉히기도
2부 행사에서 릿쿄대학 니시하라 렌타 총장님의 강의가 있었다. 강의라곤 했지만, 약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그 시간은 니시하라 렌타 총장이 가진 재일코리안과 기억과 더불어, 윤동주라는 시인을 알려주었던 이제는 고인이 된 그의 절친한 친우 아키히코 야와타와의 추억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줄곧 친구와 즐거웠던 추억을 기억하며 개구지게 웃던 니시하라 렌타 총장님은 문익환과 윤동주와의 관계에 빗대어, 시 ‘동주야’를 읽으며 눈가를 붉히기도 했다. 각자 문익환의 마음으로 윤동주와 같은 친구를 떠올리며 지루할 수 없는 감동적인 강의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참가자들 마음속에 윤동주라는 인물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2025년 2월 23일 릿쿄대학 윤동주 80주기 행사 중 니시하라 렌타 총장 강의 ⓒ최병미
늦봄-봄길 사랑키운 시나가와 교회 등 찾아
▲우에노공원-윤동주 하숙집 터 방문
80주기 행사 참가 전후로는 도쿄에 남아있는 문익환 목사님과 박용길 장로님의 흔적을 찾았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봄 향기가 느껴지는 높은 하늘이 청량했다. 문익환 목사님이 한국전쟁 당시 통역관으로 일하셨던 UN극동사령부 건물을 찾아갔고, 박용길 장로님이 전도사로 일하며 문익환과의 사랑을 키워나갔던 시나가와 교회에도 찾아가 보았다. 두 분이 자주 찾으시던 우에노 공원에도, 윤동주가 릿쿄대학교에 다니며 ‘쉽게 씌어진 시’를 썼던 다다미방 하숙집 옛터도 다녀왔다.
◇문익환 목사가 박용길 장로와 자주찾던 우에노 공원. 2025년 2월 22일 동조궁 앞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다. ⓒ정희진
◇1945년의 시나가와 교회 신도들과 2025년 2월 24일 현재 교회의 모습 ⓒ김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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