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2) (2024년 3월호)

[→(1)에서 이어짐]

 

 권오헌의 통일 여정 

 

양심에 따라 활동하고 구속된 사람들…

▶‘양심수’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이건 어떤 정설도 아니고 제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마는 자기 양심에 따라 활동하다 구속된 사람을 양심수라고 합니다. 소수 이익이 아니라 다수 이익, 공동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활동 때문에 불이익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에 활동을 하다 구속된 사람을 양심수로 규정했죠. 일반적 개념으로 노동자들이 노동삼권을 얻기 위해 활동하다 구속되면 양심수입니다.

그런데 비전향장기수의 경우는 수십 년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기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왔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양심수라고 보는 거죠.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의 예전 기준으로 보면 가령 만델라 같은 사람은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양심수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양심수후원회가 규정한 것을 따라서 비전향장기수를 양심수로 보고 석방 운동을 벌였지요. 기독교, 불교, 천주교 인권위원회도 이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권오헌 선생님! 민가협 후원회장으로서 맹활약하시는 걸 영치금 받을 때마다 느낍니다. 역시 저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회장이었죠.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제게는 영치금을 보내지 마세요. 전 영치금이 많으니까요. 어려운 장기수들에게 한 톨이나마 더 보내도록 해주세요.” (문익환 옥중편지, 1992. 7. 27)
 
“얼마나 긴 세월이었습니까
김선명 총각 할아버지
43년이나 당신을 가둬둔 조국
얼마나 부끄러운 역사입니까”
(문익환의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할아버지께 바치는 시 <43년> 중)
 
◇ 문익환 시 <43년>의 육필원고
 
 

남북 합의 실천되었더라면…

▶활동 중 아쉬운 일이 있다면?
속상한 일은 최근 일이죠. 저는 시골 태생으로 학교도 초등학교밖에 못 다니고 농촌 사회 운동, 청소년 운동하고, 서울에 와서는 통일사회당에 가입해서 정당 활동도 하고 그러다가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이 됐거든요. 출소 후에는 양심수 석방 운동 이런 일만 쭉 했어요. 비전향장기수 분들은 앞서 말했듯 오직 통일을 위해서 자기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왔기 때문에 우리가 양심수로 규정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름은 양심수후원회지만 통일운동 단체가 됐죠.    

7.4 남북 공동 성명(1972)에서부터 6.15 공동선언(2000), 10.4 선언(2007), 판문점 선언(2018)까지 했잖아요. 그리고 9.19 남북군사합의(2018)도 했고요. 이걸 실천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통일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외세 눈치 보고 두려워서 그걸 실천 안 한 거예요. 군사적 대치 국면으로 치달은 요즘 상황이 제일 가슴 아프죠. 
 
◇권오헌 명예회장은 조금이라도 늦봄과 가까이 지내고자 수유동으로 이사왔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분단없는 통일국가’ 꿈꿔

▶그동안 쉼 없이 공부하고, 현장에서 뛰어왔는데 좌우명이 있으신지? 
시골에서 초등학교만 나왔으니까, 한문은 신문, 잡지 보면서 익히고, 70년대에는 일본어 번역서만 있어서 일어 공부하고, 또 군에서는 거의 미제를 사용했으니까 영어 기본서 사다가 공부했지요. 책 구하러 어디든지 가서 볼 정도로 열심이었고, 폐암 걸리기 전까지는 거의 책을 놓지 않았어요. 공부라는 건 끝이 없고 또 새로운 소식이 계속 나오니까요. 낮에는 현장 여기저기로 뛰어다니고 밤에는 글 쓰고 하면서 새벽 2시 전에 잔 일이 없어요.  

좌우명은 따로 안 정했는데 ‘바르게 살자’는 것 정도일까요. 꼭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없지만, 어떤 상황마다 곰곰이 생각해서 불이익이 있더라도 옳은 것을 취하자, 그렇게 살아왔어요. 또 어렸을 때부터 ‘분단 없는 통일국가’를 꿈꿨어요. 가능하면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공동체로서 다 같이 평화롭고 번영하는 그런 사회, 외세 간섭 없이 우리 민족끼리 통일되는 그런 사회를 염두에 둔 저의 활동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권오헌 회장이 그동안 공부한 책과 수기 원고로 가득한 안방 책장 
 
 

통일운동은 영속적인 과제

▶문익환 정신을 기리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옛날에는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다면 이제는 문 목사 정신의 현재성을 따져야 해요. 분단된 상황에서 통일운동은 아주 영속적인 겁니다. 여러 고비가 있더라도 언젠가 극복해야 할 우리의 민족적 과제이지 현재에 실망하고 있을 계제가 아닙니다. 같은 민족인데 한쪽을 절멸시켜서야 되겠어요. 통일까지 꾸준히 노력을 이어가야죠.     

<글: 박에바>

[참고자료]
권오헌(2023). 『추도사모음집: 비전향장기수 통일원로들의 영면에 붙여, 양심수후원회』. 양심수후원회
양심수후원회. 「후원회소식」 http://yangsimsu.or.kr

 
※권오헌 회장은-
1937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나고 자랐으며 일찍이 역사의식을 갖고 농촌 청소년 운동, 농촌 사회 운동에 가담했다. 상경 이후 1968년 통일사회당 정당 활동 및 1972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하였다. 반유신 활동을 이어가다 남민전에 가입하고 1979년 체포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3년 4개월을 복역했다. 석방 후 곧바로 남민전 관련자 석방 운동에 나섰고 1991년부터 18년간 양심수후원회 회장을 역임하며 많은 양심수의 석방과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을 주도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여러 투쟁 현장에 빠짐없이 나타났으며, 2023년 그의 삶과 투쟁을 담은 문집 『권오헌의 가려졌던 통일여정』(총 4권)을 출간했다. 폐암 4기 투병 중이지만 수유동 자택에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2000년 제11회 사월혁명상을 수상했다. 
 
 
◇권오헌 회장과 장기수 선생님들이 통일의 집을 방문했을 당시 자신의 붓글씨를 보여주며 담소를 나누는 박용길 장로 
 
 
◇권오헌 회장의 사진집 『살아온 발자취가 역사가 되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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