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
성서 번역 곽노순 목사(2) (2024년 2월호)
문 목사 투옥과 귀국 후 재회
“성경 번역 끝날 때까지는 참여 말자” 약속
▶문 목사의 3.1민주구국선언에 놀라지 않았나?
아니! 여기 있을 때 박정희 시대였으니 우리 성향은 야당이었겠지! 부글부글 끓었지. 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세상이 잘못 돌아가면 가만히 볼 수가 없지. 그런데 우리가 노는 시간에 말했어요, 성경 번역 끝날 때까지는 참여하지 말자고. (미국에서 3.1민주구국선언과 구속 소식을 들은 곽 목사는 시카고 한국일보에 ‘국민은 어디 있느냐’라는 글을 대문짝만하게 써서 항의를 표시했다.)
◇미국에서 김대중 전대통령과 함께한 곽 목사.
문, 100% 순수 어린아이가 늙어서까지 순수를 지킨 유일한 케이스
(곽 목사는 문 목사와 마찬가지로 이익과 관련되거나 정치적 활동에 빨려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확고한 신조를 밝혔다) 문 목사님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순수’ 그 자체야. 100% 순수를 지닌 어린아이가 늙어서까지 순수를 지킨 유일한 케이스야. 얼마큼 순수하냐 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관여치 않으셔, 50대에 사모님과 손 붙잡고 다니기 시작하셨어. 프린스턴에서 먹었던 시리얼을 먹고 싶은데 아직 국내에 안 들어왔을 때라 방앗간에 가서 곡물을 찧어 가지고 먹었던 분이지. 세상 눈치를 안 보려니, 순수에는 용기가 따라야 해. 시골의 순수한 소년 하나가 도랑물에 돌을 하나 던졌어. 근데 저 아래 흙탕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걸 여러분들이 지금 해야 해.
◇젊은 시절 곽노순 목사. ⓒ곽노순
10년 만에 문 목사 재회, 종로서 한잔
▶문 목사님과 다시 만남은?
89년에 입국 허락이 되어서 종로5가 술집에서 10년 만에 문 목사님을 만났어. 그 사이에도 편지 연락은 있었지. 문동환 박사 부인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소통하고 그랬지. 그날 술집에서 술이 여기(목)까지 차 가지고.
문 목사 제자는 나 하나밖에 없어. 그 전부터 어려운 것 있으면 아이디어는 저한테 물었어요. 나의 자랑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제시하라면 나는 10분의 1초도 안 걸렸어. (몇 가지 말씀이 이어졌다. 문 목사의 물음에 날카로운 의견을 제시한 비화, 이익이 아니라 옳고 그름밖에 관심 없는 성향, 그런 본인에게 학생들이 붙였던 별명 '면도칼' 등등. 잠깐 살다 가는 삶인데, 속지 말고 소년 소녀 때의 철학대로 살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씀까지.) 소년 소녀 때의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간 사람이 문익환. 그가 역사의 도랑을 우연히 만난 거지. 역사를 휘적거려 보고 싶은 게 아니고.
“난 문 목사를 잘 모시지 못한 불효자식”
▶문 목사님을 왜 좋아하셨나?
내가 좋아한 게 아니라 문 목사님이 날 사랑한 거지. 학생들이 하나도 안 갈 때 내가 유일했는데, 외아들이니까 별수 없지. 인연 그건 천상에 가서 물어볼 일이야, 하하.
신학교 입학 후 조직신학 창조론을 가르치던 박봉랑 박사가 나더러 빅뱅을 설명해 줄 수 있냐고 그러데. 내가 30분 준비해서 1시간 발표했는데 한신 역사상 학생들이 모두 스탠딩 오베이션(기립 박수)을 했어. 이런 경우처럼 교수들의 러브콜을 많이 받았지만, 나는 조직신학과 구약 중에서 어디를 택할까 하다가, 조직신학은 ‘노가리’를 까야 하고 구약은 구체적인 텍스트를 갖고 하니까 이쪽을 선택했지, 문 목사님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러나 문 목사님이 하나뿐인 애제자로 여겼는데, 내가 잘 모시지도 못했으니 불효자식이지.
◇곽 목사의 책 ‘우주의 파노라마’의 첫 페이지는 문익환 목사를 향한 헌정문이다. 그는 “문 목사님은 나한테 구약을 가르치면서도 내가 너무 아깝다고, 물리학을 계속하든지 철학과로 가라고 학생 때 그러셨어. 그 생각이 나서 이 책은 문 목사님께 바친다고 썼어” 라고 설명했다.
현재 근황과 인생철학
◇성서번역 시절 사진을 보고 있는 곽노순 목사.
“순수를 지키고 살아야”
(문 목사님 가족과의 일을 회고하다 곽 목사는 자신의 철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갔다.)
장자는 한마디로 하면 빈 배야. 뱃사공은 말이 험해서 배가 부딪치면 서로 이 새끼 저 새끼 욕하는데, 배에 아무도 없으면 욕하는 뱃사공도 없다고! 이 인생을 빈 배로 가라는 것이 장자야. 노자는 물가에서 끌어 놓은 배야. 물결 따라서 흐르라는 거야, 예수도 그렇게 흘렀고. 목적을 세우고 하는 게 아니라 착한 마음으로만 response하고 가면 천당 감이야. 한마디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데, 순수를 지키고, 매 순간 이익이냐 불이익이냐를 따지지 말고, 아예 머릿속에서 그거 하는 프로그램을 지우란 말이야.
▶그렇게 살기가 너무 어렵지 않나요?
어렵지 않지. 왜냐하면 예수보다 더 어려울 수는 없기 때문에 다 쉽다고 얘기하는 것이야. 되는대로 흘러서 십자가까지 갔지.
자연의 리듬에 맞추고, 정직해야
▶문 목사가 편지에서 칭찬했던 에피소드는?
곽노순 박사의 짤막짤막한 글들을 몇 편 읽으면서 그의 신앙이 신학적으로 틀이 잡혔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군요. 나는 그에게 자연 과학과 자연 종교의 맥락을 밝혀주기를 기대했었는데 투철한 성서의 신학을 때로는 노장 철학으로 조명하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또렷이 표명하네요. 서릿발 날리는 칼날이 숨어 언뜻언뜻 보이지 않는 곳이 없는 준엄한 문장이기에 가끔 비치는 은유들이 한껏 빛을 발하는군요. (문익환 옥중편지 90. 4. 30)
그거 삼국유사에 있는 스님 얘기야. 눈이 펄펄 오는 날, 강당에 모인 제자들이 선생님이 안 오니까 가서 강의 시간이라고 알려줬어. 중이 말하기를,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왜 내가 말을 해야 되냐”라고 답했어. 자연 만물이 말하고 있는 거야, 자연의 리듬에 맞추면 모두 다 천당 감이야. 근데 자연의 리듬은 1초도 안 보고 전부가 신문, TV, 인터넷 보는데, 거기에서 거짓말이 거짓말을 해.
(곽 목사는 한국사회의 거짓말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특히 돈 받고 시험문제를 출제한다든지 추천서를 자기가 직접 쓰는 것과 같은 교육계의 거짓말은 한국에서만 있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공자 논어에서 인의예지를 말할 때 정직하라는 게 없었던 것이 원인이라며, 미국에서 초등학교 때 조지 워싱턴의 정직을 배우는 것과 비교했다) 세상이 하나로, 공동체로 되려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게 honesty(정직)야.
30년째 제자들에 수학, 천문학 가르쳐.
▶요즘 근황, 가르치는 일은?
가르치면서 노는 거지. 30년째 쫓아오는 신학 제자들이 있어서, 2주에 한 번씩 수학이나 천문학, 양자역학을 가르쳐. 그게 내 본업이니까, 내가 (통일의 집)문영금 관장을 수학 가르칠 때부터 지금까지. 중고등학교 때의 수학을 나이들어서도 계속 공부하면, 다 그 때로 돌아가. 그렇게 뇌를 쓰면 늙을 수가 없지. 바로 그 때의 건강으로 돌아가는 거야. 중3 고1 정도의 수학이면 돼, 거기에 인류가 살아온 지혜가 반짝 반짝이고 있어.
수학 배워야 호기심과 건강, 합리적 사고 가능
키신저가 100살일 때 장수 비법을 물으니 끊임없는 호기심이래. 순수한 호기심이라야 돼. 미국의 우리 살던 동네에서 출근할 때 사람들이 바쁘게 가잖아. 그런데 길 건너서 거위 아비가 새끼 데리고 가면 모두가 나와서 구경해. 또 황혼을 보면 모두 가다가 멈춰 서서 봐. 20년 사는 동안 뒤차가 빵빵거리는 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합리주의가 있어서 그런 거야. 한국은 계몽주의를 거치지 않고 껑충 뛰어서 산업화를 경험한 거지. 사물을 합리적으로 보는 틀이 망가져 있어.
물리학도에서 신학도로
▶이과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신학으로 전환 계기?
그건 비밀이지. 생애에 재난을 당했기 때문에 산기도부터 다니면서 하느님이 진짜 있으면 경험하게 해달라고 했지. 부흥회도 쫓아다녔지. 그러다가 3개월 동안 매일매일 기적을 체험했어. 하늘이 시퍼렇게 살았다고 인식했고, 그 후로 두 가지를 못 하게 되었어. 죄를 지을 수가 없고, 내일을 걱정할 수가 없어. 어느 날 내 팔자가 어떤지 알려고, 전화번호부 펼쳐 아무 데나 손가락으로 찍을 테니까 그게 내 상태라고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딱 찍었지. 그러고는 펑펑 울었어. 신학이 어떤 건지 모르고서 한신대학을 간 거야. 첨단 이성적인 물리학을 하고 나서 아주 왕 보수 기독교인이 된 거야. 교수진이 제일 좋다는 건 나중에 알았지.
(면도칼이라는 별명대로, 곽 목사는 ‘맞느냐 틀리냐?’ 이것만을 기준으로 따지고 행동하는 분임이 분명했다. 기독교가 술을 금지한다는 건 잘못된 해석이라 지적했다. 제사장이 제사를 집행할 때 술을 먹지 말라고 예수가 말씀하신 것이며, 시편에 포도주 추수를 찬양했는데 안 먹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과거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술과 담배를 하지 말자고 한 것은 그때 나라 빚이 많아서 금지 운동을 할 때 기독교가 동참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짚었다. 목사님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마지막으로 ‘문익환은 순수 그 자체’라는 말씀을 다시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글: 조만석>
“맞냐? 틀리냐?가 나의 판단기준”
▶교계의 비판과 곽 목사의 응답
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어떤 일에서든 ‘맞냐? 틀리냐?’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곽 목사는 미국 목회 시절에 교계와 부딪친 일도 많았다고 한다. 몇 가지 사례다.
1.비판: 당신은 예수를 믿나? 노자를 믿나?
응답: 너희는 예수가 유럽 편인 줄 알지만, 중동 사람이다. 중동 물건을 유럽에서 소화하기 위해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효소로 활용하지 않았느냐, 나는 동양의 토양(노자)을 효소로 삼아 예수를 먹고자 한 건데 왜 안 되느냐?
2.비판: 너희 교회는 전부 부자들만 있지 않나?
응답: 야! 부자가 천당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데 부자에게 기회를 안 줘야 하는 거냐?
3. 비판: 너희 교회는 전도 안 한다며? 땅끝까지 전도하라 하지 않았나?
응답: 나는 동북아시아에서 왔다. 한 바퀴 돌아 끝까지 왔다. 여기가 마지막인데 어딜 가느냐? 나는 final frontier에 전도한다. 그게 뭐냐고? your heart, my heart이다
※ 곽노순 목사는-
문익환 목사의 한신대 제자다. 1938년 서울 출생으로 수학과 물리를 좋아해 연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한신대 신학과로 다시 입학하여 문 목사에게 배웠다. 미국에서 신학 석사와 하트포트신학대학원 박사 과정 1년을 지낸 후 한국에 와서, 문 목사와 함께 공동성서 번역에 참여하게 된다. 4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가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미국 체류 중,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으로 문 목사가 구속되자 석방 요구 항의문을 발표했고, 이후 미국을 방문하는 민주 인사들을 지원했다. 이 때문에 귀국이 불허되어 10년 이상 목회하며 머무르다 89년에야 귀국, 목원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강의하며 신학 연구를 해 왔다. 동양 노장사상을 깊이 연구한 목회자로, 한국적 토착 신학을 열어가는 ‘해탈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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