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이웃 아카이브 탐방>

경기도 과천 선종완 기념관 (2024년 2월호)

깊은 숲 영란처럼 향기롭게 살다 간 그의 삶
성서학자이자 번역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경기도 과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에 있는 선종완 기념관 
 
 

어린애처럼 순수한 신부님

 
“우린 서로를 존경했지요. 선종완 신부님은 어린애처럼 순수한 분이었습니다. 내가 어지간하면 사람을 쉽게 칭송하는 성미가 아닌데 선 신부님만은 예욉니다. 선 신부님의 부음을 교도소에서 들었는데 마지막 임종에도 가보지 못해 한이 되는군요.” (주간여성, 1990. 1. 21)
 
『공동번역 성서』(1977)의 구약 번역 위원 3인 중 가톨릭 대표였던 선종완(라우렌시오) 신부에 대한 문익환 목사의 인터뷰이다. 선 신부는 완역본 출간을 한 해 앞두고 간암으로 선종하여 9년간 번역에 매달린 결과물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교인의 암 투병 소식을 듣고) “아, … 왜 모두 그래야만 할까…. 하늘나라에서 뵙자고 전해줘. 그리고 선 신부님 묘에 비석을 하나 세워줘. 그 비석에 이렇게 새겨줘. 
<선 신부님 말씀> ‘하느님도 인제 한국말을 제대로 하시게 되었군요’ 그리고 그 옆에 성경을 한 권 놓고 유리로 뚜껑을 해 덮고 <문익환 드림>이라고 해주고….”
(아버님 문익환 목사의 단식, 문호근 記, 1977. 6. 1)

 
 
선 신부는 공동번역 착수(1968) 전에 한국천주교회 최초로 1955년부터 단독으로 가톨릭 성서를 번역하기 시작하여 『제1편 창세기』(1957) 출간을 시작으로 1963년까지 총 13편(바룩서까지 17권)을 출간했다. 자금은 메추라기 사육 사업을 벌여 마련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는데 그의 소원은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성서를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문 목사도 복음동지회에서 한국 개신교 신학자로서는 최초로 『새로옮긴 신약성서: 마태의 복음서』(1961)를 출간했으니 두 사람의 성서번역에 대한 열정이 꼭 닮은 듯하다. 
 
 
◇1993년 2월 통일의 집 앞에서 선종완 신부의 제자 말씀의성모영보회 수녀들과 함께한 문익환 목사
 
 

말 없는 늦봄보다 더 말이 없는…

선종완 신부에 관한 기록을 늦봄 아카이브에서 찾아보니 문익환 목사가 성서 번역하던 시절 가족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속초로 향한 비행기가 안개 때문에 강능으로 되돌아가서 자동차로 2시간 반 달려 왔다오. 푹 쉬고 이제 곧 작업이 시작될 거요. 나는 선 신부님과 한 방에 있는데 거의 혼자 말을 해야 하는 형편. Energy를 절약해야겠오.” 
(설악여관에서 문익환이 박용길에게 보낸 편지, 1968. 7. 15)
 
 
◇번역위원들과 함께 간 설악여관에 도착해서 문익환이 박용길에게 쓴 편지(1968. 7. 15)  
  
 
“여기까지 쓰는데 선 신부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나가 하루 일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약을 잡수시면서 정양을 하시라는 의사의 말인데 시험 삼아 나와서 오늘 내일 일해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 하는 척하다 들어왔는데 두고 보아야 알겠습니다.” 
(문익환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1974. 2. 4)

말이 없는 문익환 목사보다 더 말이 없는, 정양이 필요한 몸 상태인데도 번역 일을 계속 이어나가는 선종완 신부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기록이었다. 아키비스트의 섣부른 직감에 따르면 이런 사람은 기록을 많이 남긴다! 선 신부가 남긴 기록이 궁금해져 그가 설립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과천본원)의 ‘선종완 기념관’을 찾았다. 그의 ‘딸’ 중 한 명인 글라라 수녀의 안내를 받았다.
 
선종완 기념관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2015년에 깊은 숲 영랑처럼 향기롭게 살다 간 그의 삶을 기리고 본받고자 설립된 공간이다. 1층 전시실에는 선 신부의 일대기와 수도회의 발자취를 나타내는 기록이, 2층에는 성서 번역 관련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선종완 기념관 웹사이트)
  
 
◇선종완 기념관 1층 전시실 모습
  
 

‘창세기 1장 1절’ 고민의 흔적

성서학자이자 번역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기록된 「창세기」(단독번역) 1장 1절 원고가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동번역 성서와의 번역 차이도 눈에 띈다. 
 
(맨 처음에 → 시초에 → 비로삼에 → 비로슴 → 비로삼 →) 비롯음에 천주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창세기 1장 1절, 선종완 역)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창세기 1장 1절, 공동번역 성서)
 
 
◇『창세기』(1957, 선종완 역)의 1장 1절 육필원고. 성서의 처음 한 단어를 두고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955년 단독 번역 작업부터 1976년 (문 목사 구속 후) 홀로 구약 번역을 마무리하기까지 20여 년에 걸친 번역 원고의 분량이 상당할 텐데 보존상태가 궁금했다. 글라라 수녀의 말에 따르면 원본 원고는 항온·항습 및 방화 설비를 갖춘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전시실에 재현한 것처럼 원고 낱장을 중성인 한지로 엮은 책에 일일이 끼워 보존 중이라고 한다. 수녀회는 2020년 설립 60주년을 맞아 미출간본을 포함한 선 신부의 성서 번역 기록을 집대성하여 육필원고 영인본 41권을 펴냈다(단독 번역 24권, 공동번역 성서 12권, 미출간 신약 원고 5권). 주요 기록은 마이크로필름으로 마이그레이션(다른 매체로 보존)해 놓았기 때문에 필요시 디지털 기록으로 확인하고, 수장고 출입 및 원본에 대한 접근은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선 신부의 ‘딸’들이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과 애정의 크기만큼 기록을 소중히 하고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종완 역 성서(가운데)와 육필원고 영인본(책꽂이 위), 한지 책 사이에 보존된 육필원고 재현(책꽂이 아래) 
 
 

공동번역 곽노순 목사의 편지도

2층 전시실 한쪽에는 공동번역 성서 관련 전시가 꾸며져 있었는데 얼마 전 만난 곽노순 목사의 편지가 있어 반갑게 읽어보았다. 성서 주제별로 정리한 카드는 독서카드를 활용한 문 목사의 단어장을 떠오르게 했다. 
 
 
◇선 신부의 성서 주제별 카드(좌)와 문 목사의 히브리어 단어장 카드(우) 
 
 
◇선종완 기념관 2층에 마련된 『공동번역 성서』 관련 유물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선물 받은 『선종완_ 깊은 숲 영란처럼 향기롭게』를 읽어보았다. 공교롭게도 문 목사와 같이 설악여관에 도착한 그날 선 신부가 보낸 편지가 실려있었다! 번역위원들은 공동작업을 하기 위해 주로 혜화동 가톨릭대에서 모였는데 때로는 거제도 한신대 이사장 자택, 과천 수녀원, 설악동 여관을 찾기도 했다고 한다. 
 
설악산에서 7월 15일 저녁 7시에. 자매 여러분! … 길가에는 노란 초롱꽃 같은 것이 죽 피어 있고, 또 어떤 때는 온 벌판이 같은 꽃으로 덮여 보기 좋았습니다. 고요하고 서늘하니 두 주일 동안 공부가 잘될 것 같습니다. … 사흘에 한 번씩 편지할 것입니다. … 그동안 날씨가 좋아야 (수녀원 이전 공사) 일이 잘될 터인데 장마 날씨같이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습니다. … 자매들, 신공 잘하고 재미있게 지내기 바랍니다. 선 신부 
 
 

늦봄 아카이브와 얽혀있는 기록들

설악여관 79호실에서 과묵한 선 신부를 보며 문 목사는 ‘대화할 에너지’ 분배 전략을 세우고 있는데, 정작 선 신부는 궂은 날씨에 집 짓느라 고생하는 수녀들을 향해 이렇게 다정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늦봄 아카이브 밖에서 서로 얽혀있는 기록을 만나니 내용이 더욱 다채롭고 재미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라는 문 목사의 말은 여기 아카이브에도 적용된다. 

<글: 박에바> 

[참고문헌]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편(2015). 『선종완_ 깊은 숲 영란처럼 향기롭게』
옥성득(2020). 『대한성서공회사 3』
한국일보. 『주간여성』(1990. 1. 21) 
 
◇관람을 마치고 무차 한 잔과 함께 받은 『선종완_ 깊은 숲 영란처럼 향기롭게』(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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