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9월<학자 문익환>

🈷️ 성서번역가 늦봄

“하느님은 이 일을 위해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거라고 믿었다”

 

◇ 『공동번역 성서』 번역하는 문익환 목사
 

자신의 생을 몽땅 투입한 8년간의 헌신

▲구약번역 책임위원
늦봄은 1968년부터 1976년 초까지 약 8년간 성서 번역에 몰두했다. 대표적인 구약학자로서 1957년부터 복음동지회 활동으로 성서 번역을 해 온 점을 인정받아, 신·구교가 함께 참여한 성서 공동 번역 작업에서 구약 번역의 책임위원으로 위촉되었는데, 늦봄은 이를 필생의 일로 생각하고 그의 생을 몽땅 투입했다고 회고했다. 
성서 번역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큼이나 주목할 만한 것은 늦봄이 어떤 기준과 방식에 따라 문장을 번역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론적으로 자세히 설명한 논문이 1974년 발표한 「히브리어에서 한국어로– 성서 번역의 문제점들」 이다.
논문 머리말에서 늦봄은, 10년 전 번역을 할 때는 ‘말’로 표현된 ‘문학적인 면’을 문제 삼고 있었지만, 이제는 ‘말’ 자체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깨달았다면서, 번역 이론 두 가지를 먼저 제시하였다.
 
◇어려운 히브리어에서 쉬운 우리말로 구약 공동성서 번역을 하고있는 문익환 목사
 

교회 밖에서도 통하는, 한국민 전체를 위한 번역

▲늦봄이 생각한 번역이란?
이를 축약하면 첫째, 교회 안에서만 통하는 말을 버리고 한국민 전체가 읽을 수 있는 번역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좋다, 나쁘다, 너그럽다 같은 쉬운 한국말이 있는데도 선, 악, 자비 같은 한자어들로 꽉 찬 성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번역 투를 말끔히 벗어 버린 극히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번역함으로써, 원저자가 첫 독자들에게 일어나기를 바랐던 반응에 가깝게 한국인 독자도 반응하도록 만드는 번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문익환 1974).

늦봄은 대학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쳤다. 히브리어 구문이 매우 간결하며 히브리인들 목소리는 강약과 억양에 따라 말뜻이 달라질 수 있음을 명확히 알고 있었기에, 과거의 잘못된 번역을 찾아내어 원문의 뜻을 정확히 반영한 번역을 할 수 있었다. 다음 사례가 그중 하나다.
 
 (잘못된 번역)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올바른 번역) 나는 샤론에 핀 수선화에 지나지 않는 걸요, 산골짜기에 핀 나리꽃에 지나지 않는 걸요
 

우리말의 바른 사용에도 큰 도움 되는 번역 원칙들

▲올바른 번역의 원칙들
위 논문의 내용 중 어느 한 부분도 가볍게 넘길 수 없지만, 오늘날 일반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습관을 교정하고 바른 ‘말’을 사용하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내용은 ‘히브리어 구문과 한국어 구문’ 부분이다. 이것은 서너 가지로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논문과 함께 살펴볼 사료가 하나 더 있다. 이오덕 선생께 쓴 여러 편의 옥중편지다. 여기에는 논문에 언급한 성서 번역 사례에 덧붙여 이해하기 쉬운 사례들을 추가로 언급하고 있다. 이에 옥중 편지 속 사례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1. 사건어는 동사로 풀어써야 자연스럽다

많은 명사는 사실 사건어입니다.  <중략> 신약에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받아라”라는 말이 있거든요. (죄, 용서, 회개, 세례) 이 네 명사는 모두 사건어입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우리말이 되려면, ‘죄를 용서받으려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든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가 되어야 합니다. ‘~의 한국에서의 체류 기간’ 같은 건 ‘~가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이 돼야지요. ‘체류’라는 명사를 ‘체류하다’는 동사로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옥중편지 1992. 5. 7) 

늦봄은 옥중에서 읽은 이오덕 선생의 책 『우리글 바로 쓰기 2』와 『우리 문장 쓰기』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발견하고 매우 기뻐했다. 
 
“동사가 많이 사용될수록 문장이 우리말다워진다”는 대목에 이르러 저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선생님이 이 주장을 펴가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구약 성서 번역의 경험에서 얻은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구약 성서 번역의 경험에서 얻은 결론과 완전히 같기 때문입니다(이오덕 선생께 보낸 옥중편지 1992. 5. 7). 


2. 관계어(영어의 전치사)도 동사로 바꿔야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A way to peace’, 여기서 to라는 관계어 속에도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평화에의 길’이라고 할 게 아니라, ‘평화에 이르는 길’이라고 해야 합니다. to라는 관계어엔 우리말에 ‘이른다’라는 동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옥중편지 1992. 5. 7). 

‘I go with him’이라는 말을 ‘나는 그와 함께 간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지요. 그런데 우리는 여러 가지 동사를 써서 문맥의 미묘한 색깔을 살리지 않습니까? ‘모시고’, ‘데리고’, ‘따라’ 등등 동사를 써야 말이 살아나죠(옥중편지 1992. 5. 8). 


3. 추상어를 사건어로 표현하는 것이 좋은 경우가 많다
 
악인은 벌을 받고 의인은 복을 받는다는 것이 구약 지혜문학의 틀인데, 이렇게 표현하면 사람은 악인이 따로 있고 죄인이 따로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게 아니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고, 의롭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거죠. ‘악하다’, ‘의롭다’는 추상어 속에도 사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동사로 표현해야 자연스러운 말이 된다는 걸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옥중편지 1992. 5. 8).


4. 영어와 일본어 말투를 우리말 어법에 맞게 사용하자
 
작년 범민족대회 구호가 뭔지 아세요? “하나의 겨레,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한 겨레, 한 나라”여야지요.<중략> 사실 “하나의”는 영어의 부정관사 a의 번역에서 온 것이 많습니다. “한 알의 밀알” 경우가 그 경우지요. “밀알 하나”도 아닙니다. 그냥 “밀알”이면 됩니다(옥중편지 1992. 5. 9) 
 
같은 번역 투의 말이라도 일본말로는 어법에 무리가 없는데, 우리말로는 어법에 안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 따르면”입니다. <중략> 우리말 “따르다”는 타동사 아닙니까? 그 앞에는 “을, 를” 토씨가 와야지요. “아버지를 따른다”고 하지, “아버지에 따른다”고는 하지 않으니까요.  <중략> “법에 따라”가 아니라 “법을 따라”지요. <중략> (“대변인에 따르면”이 아니라) “대변인의 말을 들어 보면”이 자연스러운 우리말 아니겠습니까?(옥중편지 1992. 5. 9)

이 외에도 늦봄은 히브리어에 없는 토씨 ‘이, 가’와 ‘은, 는’의 사용 구분, 토씨 ‘의’의 올바른 사용 등 ‘우리말’의 일상적 사용에 대해서 정교한 논리와 높은 식견을 보여주었다. 대표적 성서 번역가일 뿐만 아니라 언어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늦봄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성서 번역은 늦봄이 3.1 민주구국선언으로 수감된 후 이듬해 1977년 완성되어 발간되었다. 늦봄은 ‘성서 번역의 중책을 지게 됐을 때 하느님은 이 일을 위해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거라고 믿고 신학교에도, 교회에도 사표를 내고 달라붙었다’(옥중편지 1990. 6. 18). 내용의 40%가 시로 이루어진 구약을 번역하기 위해 시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는 늦봄. 그렇게 혼을 쏟아 부은 번역이었기에 이 역작은 이후 약 30년 가까이 사용되었고 북한도 문화어에 맞게 부분 수정만 더하여 1983~1984년 <성경전서>를 발행하였다.


<글: 조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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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문익환 옥중편지 (1992. 5. 7~9, 1990. 6. 18)
문익환 (1974). 「히브리어에서 한국어로 -성서 번역의 문제들」, 『신학사상』 7권,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문익환 (1999). 「히브리어에서 한국어로」 『문익환 전집 11권』 신학2. 사계절출판사
김형수 (2018). 『문익환 평전』. 파주: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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