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도서관을 본관 동북쪽에 건축할 당시, 그 맞은 편에는 대강당도 곧 들어설 예정이었다. 본관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건물이 세워지는 것이 균형에 맞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중심에 서 있는 본관의 상징성과 권위가 한층 더 고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 말, 암울했던 시대 상황이 이러한 계획을 무산시켰다. 따라서 해방을 맞이하고 보성전문이 고려대학교로 승격된 이후에야 다시금 새로운 건물의 확충에 대해 고려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이전, 박동진은 인촌의 의뢰로 이 건물의 설계도를 준비하였다. 이 건물은 본관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서관(西館)으로 명명되었는데, 문과대학이 이를 사용하게 됨에 따라 책을 뜻하는 서관(書館)도 의미하게 되었다. 마련된 설계도에 따라 시멘트와 벽돌 등의 자재가 곧 반입되었고 대지의 정지작업도 완료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발발로 공사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사가 재개된 것은 고려대학교가 안암동으로 돌아온 지 3개월가량이 지난 1954년 5월이었다. 그 이듬해가 창립 50주년이니 서관 건축은 이를 기념하는 사업의 일환이 된다. 그러나 건물 모두를 1년 만에 완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본관 쪽을 바라보는 남북방향의 날개 부만이 먼저 완성되어, 1955년 5월의 50주년 기념식에서 증정되었다. 전체 규모는 2층 1,370m²(415평)였다. - 서관 1차 준공(1955) 후의 캠퍼스. 도서관 동쪽으로는 1956년 준공한 농과대학이 보인다. 서관은 이전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석조와 철근 콘크리트조가 혼합되었고 부축벽과 같은 소박한 고딕양식의 세부 묘사가 가미되었다. 한편, 나머지 부분의 공사는 1959년 5월 시작되어 2년 2개월 만인 1961년 6월에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서관은 6층 석탑을 포함해 총면적 5,491m²(1,664평)이 넘는 대형 건물로 자리매김한다. 서관은 본관이나 도서관과 같은 고딕풍 건물이지만 탑 상부에 올린 시계탑이 가장 특징이다. 그러나 이 탑에 실제의 시계가 설치된 것은 1964년 여름의 일이다. 시계 자체가 고가였을 뿐만 아니라 부품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등 기술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계에서 정오마다 흘러나오는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선율은 고려대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다. 서관의 전체 평면은 알파벳 E자를 닮았다. 대운동장을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라 하면, 그 뒤로 날개 셋을 뻗어낸 모양새이며, 우측 끝의 날개가 먼저 완공된 부분과 결합된다. 1961년에 확충된 각 부분은 평지붕이라는 면은 같지만 서로 층고와 층수를 달리한다. 즉, 정면부와 우측 날개가 3층, 좌측 날개가 4층, 중앙 날개가 2층으로 건축된 것이다. 1992년에는 정면부를 4층으로 증축하고 경사 지붕으로 처리하였는데, 이 건물은 현재 총면적이 7,373m²(2,230평)에 이른다. - 서관 2차 준공(1961) 및 시계 설치(1964) 후의 전경 - 현재(2021)의 문과대학서관 1층 평면도. 알파벳 E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1961년 서관이 완공된 것은 고려대학교 안암동 캠퍼스의 석조전 3개 동이 본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구성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게다가 너른 운동장이 석탑 실루엣의 전경을 이루며 비움의 공간을 제시한다. 이러한 구성은 강당 앞에 마당을 두고, 그 양쪽에 동재와 서재를 배치한 한국 전통의 교육기관인 서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고려대학교 석탑의 삼부구성에서 더 눈여겨볼 점은 도서관과 서관의 균형이 엄격한 대칭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변화와 다양성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 건물은 평면도 서로 다르거니와 각각의 탑이 마무리된 형식도 다르다. 앞서 봤듯, 도서관은 탑 상단의 여장 및 모서리에 부착된 터릿이 특징이며, 서관은 시계탑이 건물 전체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탑들은 본관을 바라보는 면의 모서리에 배치되어 본관을 호위하는 듯하다. 그리고 두 건물의 평면과 매스는 서로 간의 대응과 긴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본관의 중심성에 크게 일도 하고 있다. 이 같은 다양성 속의 일치, 혹은 일치 속의 다양성은 약간의 일탈도 거부하는 엄격한 좌우대칭의 권위주의로부터 진일보한 것으로, 이는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이 보여주는 일탈된 균형을 떠올린다. 요컨대, 서관 건축으로써 고려대학교 석탑의 삼부구성이 완성되었고, 이들의 스카이라인이야말로 고려대학교 캠퍼스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주요 인자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