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신기촌 사람들
“5번 버스가 다녀서 신기촌으로 종점이었거든” _고병선, 조영숙
양지원
게시일 2021.11.02  | 최종수정일 2022.08.25

5번 버스가 다녀서 신기촌으로 종점이었거든
 

 
구술자 : 고병선(미추홀구 공무원, 주안2동 출생 및 거주)
              조영숙(여주 출생, 용현동 거주, 문화활동가, 시인)
 
- 채록일 : 2018년 6월 14일
- 채록장소 : 학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실
- 채록자 : 이경희, 이명순


(조영숙) 이천에서 와서 거기서 잠깐 살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요.
(고병선) 잘 기억이 안나요?
(조영숙) 근데 우물 있었던 거 기억하고…….
(고병선) 우물? 어떤 우물? 우물이 한두 갠가?
(조영숙) 기계공고 맞은편 쪽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그거 말고는 기억 못 해 내가 어렸을 때니까…….
(고병선) 아 거기가 옛날에 라이타 공장 있었어. 기계공고 맞은편 쪽으로 라이터 공장 있었고 거기 우물이 있었어. 찬우물이라고 했나… 그쪽은 내가 살던 데서 떨어진 데고 미추1구역 지금 재개발하는데 그 주차장 큰 데 있죠. 한라아파트.
(조영숙) 동사무소 있는데…….
(고병선) 거기서 더 저쪽으로 주안 4동쪽으로.. 동사무소가 옛날에는 주안사거리 쪽에 있었잖아요. 그리로 옮긴 거야.

계속 주안에서 사셨어요?
(고병선) 주안에서 결혼하기 전까지 살고 결혼해서 잠깐 서구 좀 살고 서구 당하동
(조영숙) 그러면 태어나서 주안 2동에서 살았잖아요.
(고병선) 31년간 주안에서 살다가 결혼해서 한 4년 서구에서 살고 다시 신동아 남구로 온 거지.
(조영숙) 30대까지 주안에서 산거네.

추억이 많으시겠어요.
(고병선) 그 동네가 옛날에 완전 시골이었죠. 전부 논밭이었어요.
(조영숙) 거기에 조고만 야산 하나 있었잖아요.
(고병선) 야산? 어디 어느 쪽에?
(조영숙) 주안2동 쪽인데 그때가 어렸을 때라 거기 야산 하나 있었는데 거기 산소도 좀 있고 아주 나지막한 산이 있었어.
(고병선) 위치가 주안2동에 야산이 없었는데 주안2동이 아니고 주안3동 얘기하시는 거 아닌가? 세미산, 세미 마을, 세미 공원이 있어요. 주안3동이야.
(조영숙) 그때는 다 주안동 이라고 통칭을 했었잖아요. 그러니까 분할되고 나서는 내가 몇 동 인지를 잘 기억을 못해.
(고병선) 말산이 있었어요. 말산. 지금 그 부경아파트 라고 있어요. 한라아파트 부경아파트. 거기 말산이라고 있었는데 왜 그러냐면 그때 거기 말무덤이 있었다고… 큰 거 한 두 기.

말을 키우는 곳이 있었어요?
(고병선) 그건 모르겠어요. 지금 거기 다 밀어내고 아파트 지은거지.
(조영숙) 그건 말산이고 아까 말한 산은…….
(고병선) 세미산은 주안 3동쪽이야. 지금 어디냐면 명보주유소.
(조영숙) 명보주유소 맞아 명보주유소 쪽이야. 
(고병선) 그쪽에 세미산이라고 하나 있지 않나, 세미 놀이터 세미공원.

세 자가 아이 인가요?
(고병선) 그건 정확히 모르겠네.
(조영숙) 세미가 어떤 세민지 모르지?
(고병선) 모르지.
(조영숙) 그건 확인해봐야겠네.
(고병선) 거기 놀러 많이 다녔지. 우리 그 사촌 형이 자기 딸 이름을 세미라고 지었어. 그거 생각해 갖고 세미라고 지었어.
(조영숙) 거기 산소가 많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고병선) 그러니까 그쪽에 내 기억에는 거기서 많이 놀았는데 산소있는 건 기억이 안 나. 명보주유소 뒤쪽 거기가 세미산이야. 그쪽 어디에서 사셨구나~
(조영숙) 신기촌 거기 교회 하나 있잖아요. 신기시장 쪽에…….
(고병선) 중앙 통로에? 중앙통로 가기 전에?
(조영숙) 네, 큰길가에 있는 교회 바로 뒤편에 살았어요.
(고병선) 아~ 어딘지 알겠다.
(조영숙) 그러니까 거기로 놀러 다니고 그랬는데.
(고병선) 거기 어린이놀이터 있잖아요.
(조영숙) 네.

이 때가 언제쯤이에요?
(조영숙) 유년시절이지.
(고병선) 초등학교 1,2학년.
(조영숙)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까지.
(고병선) 내가 67년생이니깐 64, 65년도. 지금 그 인주로 자체가 꽤 젊잖아요.
(조영숙) 네네.
(고병선) 무슨 천이라 그랬는지 모르겠네. 승기천 인가? 승기사거리니까…….
(조영숙) 그때는 승기천이라고 안 했던거 같애.
(고병선) 나도 그 기억은 안 나고.
(조영숙) 새로 만든 이름인 거 같아요.
(고병선) 거기 그냥 천이 있었잖아요. 길게 독쟁이부터 내려오는…….
(조영숙) 네, 이름을 그때는 뭐라 그랬는지.
(고병선) 뭐라 그랬는지 기억이 안나.
(조영숙) 그 부분은 한번 알아볼 것 같아.
(고병선) 복개를 한 게 고등학교 때 한 거 같은데.
(조영숙) 80년대. 막아놨다가 그래서 그 도로가 넓어진 거잖아요.
(고병선) 네. 
(조영숙) 그러면 가족 관계 어떻게 되세요.
(고병선) 없어요. 부모님하고 삼 형제 내가 장남.

어릴 때 뭐하고 노셨어요?
(고병선) 우리 어렸을 때는 맨날 거기 냇가 나가서 고기 잡고 논에 가서 개구리 잡고…….
(조영숙) 그러면 주안초등학교 나오셨어요?
(고병선) 네.
(조영숙) 그때는 주안초등학교하고 용일초등학교하고 용현초등학교 그렇게 세 개밖에 없었잖아. 남구에.
(고병선) 그렇죠. 용일초등학교 오래됐고 그리고 내 동생이 남부초등학교가 나중에 생겼어.
(조영숙) 그건 후에 그건 90년대 초에…….
(고병선) 아닐걸. 남부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 내 바로 밑에 동생이에요. 걔가 70년생이야. 근데 걔가 3학년 때 아마 그리 갔을 거야. 11살.
(조영숙) 80년대 후반인가 그럼.
(고병선) 네. 80년대 중후반. 그때 거기 그 자리가 전부 다 논 바닥이었잖아요. 옛날에 그저 천 넘어서는 다 논바닥이었지.
(조영숙) 주안 초등학교에서 남부초등학교로 이렇게……. 
(고병선) 분교 비슷하게.
(조영숙) 거기서 멀다 그러면 용일초등학교로 둘로 나눠지고…….
(고병선) 용일초등학교는 거기까지 갈 일이 없지.
(조영숙) 왜냐하면 주안하고 용일초등학교 하고 가까이 있잖아요. 그래가지고 이게 주안에서 남부초등학교하고 용일초등학교 딱 가운데야.
(고병선) 학군 자체가 지금 초등학교도 기계공고 쪽은 다 용일초등학교고 옛날에 이쪽은 주안 다녔고.
(조영숙) 학익동에 있는 사람들도 다 주안초등학교 다녔나? 아닌데 그때는 문학초등학교 다녔지.
(고병선) 문학이 있었죠. 학익동에서 주안초등학교는 멀죠.
(조영숙) 나도 거기서 걸어서 한 4~50분 걸렸던 거 같아요. 어린 나이에 걸어서 가니까…….
(고병선) 꽤 되죠. 신기촌에서 주안초등학교까지요?
(조영숙) 네. 그 때는 길이 큰 길이 아니고 꼬불꼬불했어.
(고병선) 논길로 다니니까. 나는 우리 집에서 주안초등학교까지 15분.
(조영숙) 그렇죠. 바로 가운데 있으니까. 우리는 지나서 있으니까…….

같은 학교 다니신 거예요? 
(고병선) 그렇죠. 선배님. 우리 어머니도 주안초등학교 나오시고…….
(조영숙) 막내여동생이 남부초등학교 나왔거든. 나랑 아홉 살 차이나는데… 고등학교 가면서는 전혀 그런데 관심을 안 쓰잖아요. 공부하고 막 이렇게 하다 보니까. 시대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살았던 거 같아. 초등학교 때만 남은 기억이 있는 거죠.
(고병선) 초등학교 때 그 동네에서 놀고 뭐 하고 있지 중고등학교 올라가면서는 그 집에서 노는 게 없잖아요. 아예 노는 시간이 없었지 학교 왔다 갔다 하는데.
(조영숙) 저 뭐야? 그 보통 뭐 하고 노셨어 어렸을 때?
(고병선) 맨날 그거 저 학교 갔다 오면은 겨울에는 논바닥에서 공차고 그리고 저 봄, 여름에는 냇가 나가서 놀고, 봄 모내기할 때 거기 우리 외갓집이 논이 많았거든. 미꾸라지 잡으러다니고… 그게 놀이문화죠.
(조영숙) 거기 냇가에 장마 오면 넘쳐나잖아요. 우리들은 못 넘어 다니니까 그때 기억에 누군가가 거기서 그 비 오고 그러면 기다렸다가 애들을 이렇게 넘겨줬던 기억이나.
(고병선) 다리가 몇 개가 있었는데 무서워서 잘 못 다녔어 어렸을 때는…….
(조영숙) 그리고 여름에 놀 때는 다리 밑이 그늘졌으니까 거기서 놀다가 신발도 떠내려가고…….
(고병선) 맞아요. 거기서 많이 놀았지.
(조영숙) 가끔 세미산도 가서 노시고?
(고병선) 세미산이 가까우니깐 문학산이나 승기산보다 가까우니까…….
(조영숙) 그 쪽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소 아니면 뭐 건물 이런 거명칭 이런 거 있어요?
(고병선) 그때 당시에는 기억에 남는 데가 건물이나 문화공간으로는 아폴로극장이라고 있었잖아요.
(조영숙) 네, 중앙극장.
(고병선) 아폴로극장이었었지.

나중에 이름이 바뀌었나요?
(고병선) 나중에 이름이 바뀐 거지 중앙극장으로…….

거기 제일시장 있었나요?
(고병선) 네, 제일시장이 제일 컸지 깡도 있고… 우리 외갓집에서 아침에 일찍 호박 같은 건 따면 깡에다 갔다 팔고 그랬지.

신기시장보다 먼저 생긴 게 제일시장이에요?
(조영숙) 비슷하게 생겼을거야.
(고병선) 그거 모르겠는데 규모나 시설 면에서는 제일 시장이… 신기시장은 시장이라기보다.
(조영숙) 그때 신기시장은 좌판 벌려서 있었을 때고 제일 시장은 그나마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고병선) 맞아요. 쇼핑몰이라는 걸 또 갖추고 있었던…….
(조영숙) 네, 맞아요.

깡은 어떤 걸 말하는 거예요?
(고병선) 채소나 뭐 그런 깡(채소시장)이 있었어요. 깡이 열렸다는건 경매 하는 거지.

규모가 컸겠네요. 경매할 정도면…….
(고병선) 그 시장이 지금도 이렇게 빙 돌아서 있잖아요. 거기 부지가 꽤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부지가 엄청 크잖아요. 그 시장이 있었고 제일 시장이 있었고, 제일시장은 주안사거리진흥관 있었던 자리 있었죠. 저 옹진냉면 아시죠?

민주화운동센터 있는데요.
(고병선) 그 길이 주안 사거리에서 지금 보일러 지금 주안이 이렇게 돼 있잖아.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주안사거리 있는데 여기가 중앙극장 자리고 여기가 제일시장 수도사업소가 여기 있었고 진흥관이라는 중국집이 있었어요. 이거 엄청 오래돼서 나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어요. 하희라 작은아버지가 하던 데야.
(조영숙) 아~ 거기가…….
(고병선) 응, 이 길이 이 길이 쭉 넘어와 갖고 신기촌으로 가는 길이 도로였어. 이게 하나 그리고 도로가 없었어. 지금 시민회관 사거리에서 그 직선 도로 있잖아요. 그건 아예 없었거든. 그때 유일하게 다닌 버스가 5번 버스가 다녔다고…….
(조영숙) 네, 맞아요.
(고병선) 5번 버스가 다녀서 신기촌으로 종점이었거든. 요쪽에 제일시장이 또 있었다고. 지금도 제일시장이 있어요. 그리고 여기 여기가 자유시장 제일시장이 아니고 자유시장. 여기가 제일시장, 여기 시민회관. 큰 건 이 건물 하나밖에 없었지.

거기가 무슨 동이었어요?
(고병선) 주안동.
(조영숙) 주안동. 그러다가 1,2,3,4,5,6,7,8 나눠졌죠.
(고병선) 나눠진 건 모르겠어.
(조영숙) 남부초등학교 만들어질 무렵 1,2,3,4,5,6,7,8동으로 나눠진거야.
(고병선) 우리는 그때 어렸을 때고 우리가 뭐 어디 사냐 그러면 주안 살아요 그러지.

주안이 엄청 넓었구나. 그래서 남구를 주안구로 하자 그랬구나. 이유가.
(고병선) 큰 건물 생각나는 게 아폴로 극장하고 시민회관. 초등학교졸업식도 시민회관에서 했으니까…….
(조영숙) 맞아요. 학예회도 시민회관에서 하고…….
(고병선) 학예회도 거기서 하고… 그리고 그 저쪽 신기촌가면 진흥요업 큰 거 있었고.
(조영숙) 맞다. 진흥요업.

그게 한국도자기라면서요.
(고병선) 그 앞에 화장터 있었고 그쪽은 그것밖에 생각이 안나. 진흥요업. 주안 2동 지금 거기 금성연마라고 연마공장 있었고, 그러니까 그라인더나 숯돌 그런거 만드는 공장. 공장
이 그냥 주택가에 큰 공장에 있어.
(조영숙) 진흥요업 근처에 가 진흥요업이 워낙 컸잖아요. 진흥요업옆으로 화장터가 있었고 그 다음에 붙어 있는 게 신기시장이잖아.
(고병선) 그렇죠. 거기 지금 남부상가 있지요 거기가 아마 종점이었을 걸. 5번 버스 종점. 거기서 들어갔나. 
(조영숙) 처음에는 남부상가. 신기시장 맞은편 쪽에서 아까 제가 살았던 그 쪽이 종점이었다가 그 교회 앞에 거기가 종점이었다가 이게 이제 올라가서 용현동 거기까지 올라갔었다 근데…….
(고병선) 거기는 버스가 다니는 것만 봤지 어렸을 때 버스 탈 일이 없었거든요.
(조영숙) 그죠. 탈 일이 없죠.
(고병선) 종점이라는 게 어렸을 적 버스가 서 갖고 막 비포장인데다가…….
(조영숙) 질척거리는데 빠지고.. 진짜 내가 왜 기억을 하냐면 우리 아버지가 공무원이었어요. 그래 가지고 언니, 오빠는 학교가고 있는데 당신은 출근을 안 하고 거기서 (종점) 교통정리를 하시는 거야. 그러고 나서 애들 다 보내고 난 다음에
당신은 출근을 하셨거든. 애들이 학교 가려면 앞뒤 문을 못 타잖아요. 그러니까 그 창문으로 들어가는 거야.
(고병선) 그랬지.
(조영숙) 학교는 가야되니까 그거 안타면 안 돼.
(고병선) 주안초등학교까지 다 걸어 다녔는데…….
(조영숙) 중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은 그 차를 타고 동인천까지 가야 되는 거잖아. 
(고병선) 동인천이나 주안사거리 가서 갈아타고…….
(조영숙) 그러다 보니까 이제 학교가 늦어지면 안 되니까 꼭 비 오고 눈 오고 그러면 그 난리를 쳤어. 그랬던 기억이 나서 내가 정류장은 거기서 그렇게 옮겼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
(고병선) 그쪽에 정류장이 있었지. 정류장이 아니고 종점.
(조영숙) 그렇지. 눈에 선하네.
(고병선) 완전히 그냥 비포장 도로였지.

그 저기 쌍용아파트가 한국도자기 아니었어요?
(고병선) 거기가 진흥요업이지.
(조영숙) 맞아요. 거기가 진흥요업 자리예요.
(고병선) 한국도자기라 그랬나? 진흥요업이라고 아는데…….
(조영숙) 그때 진흥요업이 망한다 어쩐다 막 이랬잖아. 그래 가지고 그거를 정리를 한 대요. 그러면서 이사를 갔는데 아 거기가 한국도자기가 됐다는 거지.
(고병선) 언제쯤 이사 갔는지 모르고 기억이 안 나네.
(조영숙) 그게 그때 90년대 쯤 됐을 거예요.

어머니가 거기 안다니셨어요?
(조영숙) 우리 엄마가 80년대 다니셨으니까 70년대 다니셔서 그래서 알고 있지. 애들이 많아서 할머니를 또 모시고 있었거든. 아버지 옛날에는 공무원이 박봉이었잖아요. 생활이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그 진흥요업에 다니셨던 거
지.
(고병선) 옛날엔 여자들도 농사짓지 않았나.

근데 왜 없어졌어요. 굉장히 규모가 컸을 텐데…….
(조영숙) 그거는 알아봐야지. 우리는 건물이 있었고 거기에 뭐 이제 그쪽에서 주로 했던 게 뭔지 그런 것만 아는 거지.

오늘 매 시간마다 벨 올렸다하셨는데…….
(고병선) 사이렌 울렸죠.
(조영숙) 그거 기억해요? 4시 50분. 그 다음에 5시. 꼭 그 시간 되면 울렸잖아.
(고병선) 퇴근시간하고 점심시간. 우리집까지 다 들렸으니까…….
(조영숙) 그쪽 일대가 다 들렸죠.

집이 어디시라고 했죠.
(고병선) 주안2동.

꽤 멀리 들린 거네.
(고병선) 안 멀어.
(조영숙) 거기가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고병선) 건물이 없어서 그때 당시 전부 논바닥이라 다 들리지.
(조영숙) 다 들렸지. 나는 여기 세미산에서 놀다가 네시 오십분에 울잖아. 그러면 얼른 집에 가야지 그때 맞춰서 이제 집에 가자 이러고서는 애들 데리고 갔어요.

쌍용아파트랑 신기시장 가운데 길이 있잖아요. 문학동 넘어가는 길이 그 때 없었어요?
(조영숙) 없었죠.
(고병선) 없었어. 뚫은 거야. 그러니깐 지금 그 학익동에 그 뒤에 문학길이 옛날에 그 길이있었어. 뺑 돌은 거지. 그래서 거기는 비포장이고 완전 시골이었지.
(조영숙) 신기시장하고 진흥요업하고 딱 붙어 있었어요. 그래서 신기시장 고 뒤에 허름한 판잣집이 이런 게 있었잖아요. 판자촌 뒤에가.
(고병선) 돌산.
(조영숙) 응, 진흥요업에서 나온 깨진 그릇 집하장이잖아요. 거기서 소꿉놀이할거 골라서.
(고병선) 타일 주워갖고..멀쩡한 것도 있으니까…….
(조영숙) 네네.

거기 범죄자들 얘기하시는 거예요? 
(조영숙) 범죄자들은 저 학익동 넘어가면 바로 학익동이잖아요. 거기 학익동에 그 주먹 쓰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대.
(고병선) 거기 학익동쪽은 중국 사람들이 농사 많이 지었지.
(조영숙) 그래가지고 학익동 용현동 그쪽에 있는 사람들이 좀 힘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는 그쪽 동네로 가지를 않았네.
(고병선) 우리는 신기촌을 못 갔다니까. 그쪽 중앙통로 쪽에도 옛날에 허름한 집 있고 그럴 때도 잘 못 갔어.

아까 말한 판자촌은 딴 데죠? 범법자가 많았다는…….
(고병선) 그 동네 신기촌 일대에 그런 사람들이 유입이 됐었지.

어쨌든 농사짓는 사람 그쪽 토박이는 아니라는 거잖아요.그 사람들은 갑자기 조성된 거라잖아요. 판자촌은…….
(조영숙) 그 저기 신기시장이 처음부터 조성되어 있었던 거는 아니고
(고병선) 조성이라는 표현보다는 그게 자연발생적으로 못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다 시장이 된 거지.
(조영숙) 그 전에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제일시장. 그런 게 시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거지. 신기시장에 관련된 거는 자료조사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역사가…….
(고병선) 거기는 신기시장 자료조사 하려면 그 쪽 챔피언체육사에 구의원 했던 분 있어 중앙 통로에 챔피언체육사. 초입 왼쪽. 그분들이 오래됐고 장승덕 의원님도 거기서 젊을 때부터 사신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토박이지. 타지에서 들어 온 사람이 많지.
(조영숙) 전에 모습은 어떤가를 알아봐야 될 것 같아요.
(고병선) 그 기억은 전혀 안나. 신기촌은 잘 안 갔으니까…….
(조영숙) 머리가 아프고 그러면 항상 시장가서 한 바퀴 돌고 오는데 사람들이 그래서 전통시장을 좋아하나봐.
(고병선) 지금도 그렇지.
(조영숙) 교회 관련해서 기억나는 거 있어요?
(고병선) 기억이 안 나요. 교회 안 다니고 성당을 다녔지.
(조영숙) 주안1동 성당.
(고병선) 우리 어머니가 처녀 때부터 다닌 데지.

성당 다니시면 크리스마스 때나 이런 데 그 행사 같은 거 좀 크게 하면 또 재밌는 일 있죠.
(조영숙) 다 갔죠.
(고병선) 하죠. 먹을 거 주니까… 귤도 주고.

부활절에도 가고.
연극이나 이런 것도 하나요?
(고병선) 그런 건 참여 안하고 먹으러 가는 거지.
(조영숙) 행사할 때 이브날 가고 크리스마스날 가고 그랬지.
(고병선) 아마 감리교회가 오래됐을 거야. 중앙감리교회.
(조영숙) 중앙감리교회. 그게 그 신기시장에 있는 거 아니야?
(고병선) 아니에요.
(조영숙) 여기 위에 동네는 잘 몰라요. 주안역 방면은 잘 모르고.
(고병선) 시민회관 우측으로…….
(조영숙) 네, 그쪽으로…….
(고병선) 좌측은 성당인데.
(조영숙) 네 잘 모르고 아래쪽만 아는 거지.
(고병선) 서문통닭 오래된데 아니에요.
(조영숙) 서문통닭이 84년도엔가 생겼어요.
(고병선) 그거 밖에 안돼요? 아닐걸.
(조영숙) 내가 은행에 82년도에 입행을 했는데 그 후에 생겼거든.
(고병선) 우리 아버지가 전기구이를 나 초등학교 다닐 때 사 오고 그랬는데…….

인현이 오래됐대요.
(조영숙) 인현통닭.
(고병선) 인현통닭? 거기까지 가서 사 올 리가 없는데……. 
(조영숙) 서문 생긴 건 내가 은행에 거기 주안에 인현통닭 갔었거든.
(고병선) 인현통닭이 나 초등학교 때부터 있는 줄 알았는데 70년대 중반부터…….
(조영숙) 아니에요. 80년대 이후. 82년도에 내가 이제 입행해서 근무 할 때 그때 거기 막 수리하고 있었거든.
(고병선) 제일 오래된 짜장면 집이 진흥관이었어. 지금은 없어졌어. 난 그 기억은 그 진흥관은 어렸을 때 내가 좀 초등학교 때 간 기억이 나 오래된 중국집 한 40년 이상 된 건데 지금 없어졌지.

우리 진흥관은 선배들이 잘 데려가더라고 오래됐다고…….
진흥관에서 음식 드셔보셨어요.

(고병선) 짜장면이지.
(조영숙) 하얀짬뽕?

하얀짬뽕 요즘은 많은데 90년대 갔으니까…….
(고병선) 거기는 하얀짬뽕 했지. 사천짜장도 유명했고…….

그런 게 흔하지 않을 때였어요. 차이나타운도 하얀짬뽕 없앨 때였어.
(고병선) 지금은 없어졌어. 작년인가? 재작년부터 없어진 거 같아.
(조영숙) 작년? 그렇게 오래 있었어요.
(고병선) 작년인가 없어졌을 거야. 이전한 것도 아니고 없어진 거더라고…….
(조영숙) 문학산 갈 때 그때는 레이더망이 있어서 거기까지 못 가게했잖아.
(고병선) 우리는 문학산이라고 안했지. 배꼽산이라고 했지. 거기는못 올라갔지.
(조영숙) 그 근처도 못 갔잖아. 도로만 왔다 갔다 했지.
(고병선) 거기는 초입 레이더기지 아래쪽 마을인데 거기까지 밖에 못 갔지.
(조영숙) 거기 성황당이 하나 있었잖아요.
(고병선) 성황당?
(조영숙) 그 학익동인가 문학동에서 그 산 올라가는 쪽으로 문학초등학교 있는 데서…….
(고병선) 몰라 그 쪽에서 그 주변에 지형은 기억이 안 나. 왜냐면 자주 간 데가 아니니깐, 기억이 안 나고 어쩌다 사촌형들하고 칡뿌리 캐러 가고 거기 뭐 약수터가 있는 것도 몰랐고문학산에 있는 지금 예비군 교장 있는 걸 우리는 그거를 문학산 이라고 그랬어. 승기산 있잖아요. 그거를 우리는문학산이라고 그랬거든.
(조영숙) 나도 거기를 문학산이라고 그랬어. 거기 통틀어서 문학산이라고 그랬는데…
(고병선) 레이더 있는 산을 배꼽산이라 그랬고. 그게 원래는 문학산이지. 그 저기 그 밑에 있는 산이 승학산이고 거기 약수터간 기억은 나고 소풍도 거기로 갔거든. 약수터 밑에 계곡있는데 닭고기집이랑 다 술판이었어.
(조영숙) 그 영양탕집 있는데 그쪽?
(고병선) 아뇨, 산을 딱 넘어가면 승학산을 넘어가면 팔각정 있는 데서 밑으로 쭉 내려가면 옛날 약수터가 있어요. 그 운동기구도 지금 있고 그렇더라고 가끔 가보면 거기가 계곡이야. 근데 거기가 전부 다 옛날에는 보면 이렇게 뭐 저기 좌판있고, 소요산 이런데 처럼 그렇게 냇가 옆에 그런 식으로 있었어. 다 없어진 거지 약수터 밑에 그런 게 있었어요.
(조영숙) 성황당이 문학초등학교 근처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 성황당 자리가 문학산 위쪽으로 해서 거기에 이렇게 표지가 되어 있더라고. 거기가 성황당이라고 그래 근데 이게 그때 당시는 산 하나를 두고 똑바로 안 가고요 이렇게 돌아서 갔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 그랬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바로 큰 길이 뚫려서 옮겨진 거 같아.
(고병선) 간 기억이 안 나.
(조영숙) 남동 염전이 있었잖아요.
(고병선) 네.
(조영숙) 거기는 갔었어요?
(고병선) 거기는 좀 컸을 때 갔어 중학교 때. 친구가 그쪽 남촌에 살아갖고 한번 놀러 갔었지.
(조영숙) 중고등학교 어느 정도 커야 거기를 가지. 갈 때 거리가 좀 있어서…….

걸어서?
(고병선) 걸어서 갔는지 안 갔는지…….
(조영숙) 거기 차가 안 다녔잖아.
(고병선) 4번 버스 있었지.
(조영숙) 22번 타고 다니긴 했는데 그게 뭐…….

거기 남촌동 4번 버스가 그렇게 오래됐어요.
(조영숙) 제일 오래 됐어요. 뱅글뱅글 돌아 가지고 동인천까지 갔잖아.
(고병선) 그 때는 4번 버스를 그 친구 살 때 한번 탔는데 탈 일이 없었지. 주안사거리에서 버스타고…….

남촌동에서 7~8년 살았는데 거기서 4번 타고 동인천 출근하는데 한 시간 걸렸어.
(조영숙) 근데 그 차를 놓치면 학교를 지각을 하니까 기를 쓰고 그 차를 타고 그랬지.
(고병선) 그 옛날에 있던 진흥요업하고 화장터 사이에 길이 있었잖아요.
(조영숙) 네 작은 길이었죠.
(고병선) 그게 인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그리로 가면 신비가 있었어.
(조영숙) 신비 마을이었어요.
(고병선) 외숙모가 인제 신비 사람이거든. 그래서 어렸을 때 저녁에 초저녁에 그 길을 가는데 그렇게 무서워 거기가 여우고개도 있었고…….
(조영숙) 옛날에 거기 그래서 그런 얘기들이 많이 있었지.
(고병선) 화장터에 지나가야 되지.

여우고개가 지금은 어디에요?
(고병선) 내 기억에는 저기 같아. 진흥요업하고 쌍용하고 그 사잇길이 약간 언덕이 졌잖아요. 거기 같아.
(조영숙) 그랬겠지. 근데 거기가 화장터랑 같이 있으니까 자연히 나온 거 아닐까요? 옛날에는…….
(고병선) 무서우니까…….

여우가 그런데 가있잖아. 공동묘지 같은데…….
(조영숙) 신비마을이 산처럼 돼 있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거기 가끔 지나가다 보면 이런 거 산소도 조금 몇 개 있을 거고.
(고병선) 아니 많았어.

왜 신비마을이라고 불렀어요?
(조영숙) 그냥 그렇게 불렀어요.
(고병선) 신비라고했지. 마을도 안 붙였어.
(조영숙) 그래서 거기 아파트도 신비아파트잖아. 여우고개두 한 번 알아봐야 되잖아.
(고병선) 거기가 숲이 우거져가지고 낮에도 좀 깜깜했어.
(조영숙) 산이라 그런 거 같아. 근데 거기 그 신비마을 그쪽에 당근밭이 있었잖아.
(고병선) 당근 밭? 여기저기 많았지.
(조영숙) 사람들이 대부분 당근 재배를 많이 했는데 나는 그게 신기거기 교회 위쪽으로 용현동 쪽으로 그쪽에 밭이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엄청 많았어.
(고병선) 중국 사람이 양배추 농사했지. 학익동이 그랬더라고.
(조영숙) 중국인들이 일해주고 그랬었던…….

양배추가 그렇게 일찍 들어왔어요?
(고병선) 몰라, 중국 사람들이 거기 양배추 농사짓고 그랬어. 똥지게 퍼다가 날르고…….
(조영숙) 당근하고… 가까이 시장도 있고 그러니까 갔다가 팔려고… 거기 시장 거기도 우물이 하나 있었거든. 교회하고 그 중국 사람이 재배하는 그 논 밭 근처에…….
(고병선) 어렸을 때 보면 우물이 이렇게 조그만 동그란 그런 소규모 우물 얘기 하시는 거잖아요. 근데 어렸을 때는 밭 한가운 데 가보면 이거(학산 사무실) 반 만한 규모로 석축을 싸 갖고 큰 웅덩이 같은 게 있었어. 그런 데서 놀고 그랬어. 형들은 막 다이빙하고…….

저수지처럼 물대는데 아니에요?
(고병선) 이 사무실 반 만하게 있어서 샘이 나와서 형들이 돌멩이 같은 거 던지고 잠수해서 꺼내오고 그랬어.
(조영숙)어딘지는 기억이 나요?
(고병선) 어렸을 때 그런 데가 있었는데 그쪽 주안 3동쪽이었던 것같애.
(조영숙)여기가 숭의4동이잖아요. 주안 3동에서 수봉산 바로 밑에 그 쪽으로 다 넘어오는 길에…….
(고병선) 거기 언덕이야.
(조영숙)잘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래서 농사짓고 그러려면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저수지가.
(고병선) 잘 모르겠네.
(조영숙) 주안에서 숭의동 넘어오는… 그때 논밭에다가 물을 주고 이렇게 했었다고 그러더라고.
(고병선) 어렸을 때 내 동선이 주안동 그리고 지금 남부초등학교야. 그리고 그 외 이제 좀 멀리 가면은 형들하고 승학산 간다든지 용현동 쪽은 거의 안 넘어가고 왼쪽으로도 거의 안갔어. 동양장 저 쪽은 거의 안 갔어.
(조영숙) 주안동 쪽에 기억이 많겠네.
(고병선) 겨울에는 논밭에서 노는 거야. 밭에 작물 없고 그러니까 논밭에서 공차고…….
(조영숙) 그 저기 뭐야? 학교 가려면 겨울에 낱가리 쌓아놨잖아요. 그 낱가리 속에 들어가서 놀아 봤어요?
(고병선) 겨울에 공차고 그러면은 거기 짚 몇 개 빼 갖고 그 안에 아지트를 짓는 거지. 학교가는 길에는 그게 없었어요. 학교가는 길에는 다 주택가였어.
(조영숙) 우리는 논밭을 건너서 와야 되니까… 놀기는 거기서 놀으셨네.
(고병선) 집 바로 나와서 2~3분 걸으면 거기니까 그 냇가가 나오니까… 그 때 당시엔 큰 건물이 없어 갖고…….
(조영숙) 허허벌판이었으니까…….
(고병선) 큰 거라야 진흥요업하고 화장터 있었고 뒤쪽은 주택가였었고…….
(조영숙) 초등학교 앞에 다 주택가였고 부자동네였었잖아요.
(고병선) 거기 단독주택 옛날에는 주안2동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

굉장히 부자였나봐.
(고병선) 아버지가 좀 있었지.

아버지가 왜요?
(고병선) 아버지 고향이 동춘동이에요. 83년, 84년? 2~3년 후에 거기서 보상을 받았다고…….
(조영숙) 그때도 동춘동도 남구에 속해 있었다가 나중에 나눠졌잖아요.

그 때도 동춘동이었어요?
(고병선) 그 때 동춘동이었지. 연수동, 동춘동.
(조영숙) 그러니까 그게 연수구로 갈라지면서 동 이름을 그대로 가져 간거네.

연수동이 넓어서 연수구로 했나보다.
(고병선) 연수동 동춘동이 남구에 있는 동 두 개. 그리고 선학동 청학동 다 있었어. 91년 당시 내가 들어왔을 때도 거기는 유배지였어.
(조영숙) 아니 왜 그러냐면 거기가 떨어져 있잖아. 주안이 중심지였잖아. 주안에서 바깥으로 나가져있는 그 지금 무슨 교회에 있을 걸. 이마트 앞에 있는 교회.

순복음교회요?
(조영숙) 응, 순복음교회. 거기부터가 도심에서 벗어난 외곽지역이었는데 거기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해서 분권이 나눠지고 그러면서 이제 거기가.
(고병선) 주안은 옛날에 잘 사는 동네였는데 완전 구도심이 돼 버린거야.

연수구가 연수구가 된 게 연수동이 넓었나봐요.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남구를 주안구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잖아요. 이유가 있는 거야. 주안이 넓고…….
(고병선) 주안동, 용현동, 도화동, 학익동.

남구 명칭 제안이 미추홀구랑 주안구 두 개가 나온 거예요. 결국 미추홀구가 된 건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주안이 넓으니까 연수동이 연수구로 가지 않았으면 연수구가 됐을 것 같애. 근데 계양구에는 계양동이 없어요. 연수구에는 연수동이 있잖아.
(고병선) 관공서에서 자기들끼리 지은 거지 뭐.
(조영숙) 신비마을 건너가 남촌리라 그랬었던 거 같은데 그러다가 남촌동이 된 거죠?
(고병선) 신비마을 건너 저쪽으로죠.
(조영숙) 워낙 그 쪽에는 땅이 다 논밭이었고 사람이 별로 안 살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계속 수영을…….
(고병선) 그쪽 바운더리를 다 남촌이라고 했죠.

어디서부터 지금 현재 어디서부터?
(고병선) 지금 문학경기장 있죠. 경기장 그 뒤로는 다 남촌이라고 했거든요.

지금 남촌동이 줄어든 거네.
(고병선) 남촌이라는 데가 있나?

지금 남촌동이 어디냐면요, 지금 남동 IC 출구 옆동네.
(고병선) 그쪽이야 거기 다 낚싯대 있고…….
(조영숙) 세무서 뒤쪽으로…….

거기도 아냐. 남동구 초입에 왼쪽에 조그만 그 동네만 남촌동이라 그랬는데…….
(고병선) 바닷가 쪽까지 였을 거야.
(조영숙) 거기 전체가 남동구일거야.

조금씩 줄어든 거야. 남동구 까지 다 연결이 되겠구나. 남동구도 원래 남구였잖아요.
(고병선) 그렇죠.
(조영숙) 연수구, 남동구.
(고병선) 두 개 다.

남구가 엄청 넓었던거네. 주안구라 할 만하네.
(조영숙) 주안이 아니었으면… 워낙 주안 동네에 밀집되어 있었기때문에 더 이상 발전할 게 없었지.

만수동 이런 데도 다 남구였을거 아녜요.
(조영숙) 그 때는 주안역하고 제물포역 밖에 없었잖아요. 나중에 하인천역 생긴 거죠.
(고병선) 주안역하고 제물포역 주변이 번성했지.

제물포역이 종점이었어요?
(조영숙) 네.
(고병선) 인천역도 있었지.
(조영숙) 인천역은 나중에 생겼지.
(고병선) 그거는 진짜 오래된 얘기네. 그 제물포역 주변에 있는 수봉산 있잖아요. 그 쪽에 부자들이 많이 살았어.

맞아요.
(조영숙) 지금도 그렇잖아요. 아주 고급 주택이 많잖아.

우리 사돈이 거기 사는데 엄청 부자더라구요.
(조영숙) 거기 기억이 나는 게 커다란 저수지가 동그랗지도 않고 거긴 저수지가 유선형에 길을 따라서 있었고 그 집에 포도나무가 거의 다 있었던 거 같아. 어린 마음에 먹고 싶잖아. 근데손 닿지는 않고 지나가면서 침만 흘리고 갔었던 기억이 나. 여기 숭의동 여기 이쪽에는 김윤식 선생님이 거기서 어렸을 때 사셔가지고 그 얘기를 들으면 진짜 재밌어. 오랫동안 그쪽에서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고병선) 주안이 중심지 역할을…….
(조영숙) 그 때는 주안이 중심지였죠. 그 때는 인천 시청도 주안에 있었잖아요. 지금 그 보건소자리. 거기가 시청이었다가 시청이 중구로 이사한거지.
(고병선) 그건 몰라.
(조영숙) 아버지가 거기 다니셔서 알지. 거기 있다가 배다리 쪽으로 시청이 중구로 이사하면서 내가 거기를 놀러 갔었거든 아버지 얼굴 보러…….
(고병선) 어렸을 땐 관공서에 대한 관심이 있나.
(조영숙) 아버지가 공무원이셨으니까 관공서하고 친하고 또 은행하고 친했어요. 아버지 심부름을 하다 보니 그런 행정 쪽으로 많이 알게 된 거지.
(고병선) 옛날 남구청 자리가 시청이었구나.

그래서 미추홀구로 할 만하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시청도 여기 있었고…….
(조영숙) 주안이 다 중심지였다니까.

지금 시청이 옛날 남구청에 있었다고요?
지금 보건소 있는 데가 시청이었고 그다음에 남구청이었대요.

(고병선) 난 그때 남구청 거기 있을 때 발령 났어.
(조영숙) 그랬겠죠. 한참 후니까 그때는.
(고병선) 91년도에 남구청이 여기로 이사 왔거든.
(조영숙) 아마 그랬을 거야. 여기 학교가 계산동으로 이사하면서 남구청이 이쪽으로 온 거지.

그때 당시에 유명한 사람 없었어요?
(고병선) 어렸을 때 유명한 사람 누굴 알아.
(조영숙)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들었다거나…….

황신혜가 인천 출신이라던데…….
(고병선) 백옥자도 인천출신인데.

황신혜가 인하공전 다녔잖아.
(고병선) 백옥자가 주안초등학교 나왔어. 우리나라 아시안게임 투포환 선수인데 백옥자 있었어. 유명한 사람인데 우리 어머니하고 친구야. 백옥자하고 주안초등학교 동창이야.

그 분 만나신 적 있으세요?
(고병선) 없어요.
(조영숙) 몇 년생이셔?
(고병선) 우리 엄마가 76이니까. 70년 방콕 아시안게임 74년대 테헤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68세 밖에 안 됐어? 주안초등학교 나왔는데.
(조영숙) 지금 현재 68이라고? 그럼 50년생이야.
(고병선) 우리 엄마하고 초등학교 같이 다녔다고 들었는데… 인천출신 투포환 선수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조영숙) 유명한 사람들 좀 알아봐야 되겠다. 유명한 정치인이라던지…….
(고병선) 정치, 그건 알 수가 없지.
(조영숙) 그래도 이렇게 겹쳐지는 기억이 많아서.
(고병선) 같은 동네니까.

두 분이 대화가 잘 통하시네요. 같은 지역에서 같은 시대를 사신 거니까…….
(고병선) 어렸을 때는 진짜 시골이잖아요 시골. 주안동하고 신기촌사이는 완전히 그냥 논밭이었잖아. 전부 다. 지금 로얄아파트 있는 자리니 전부다 논바닥이었었는데…….
(조영숙) 주안2동 이쪽에만 조성(개발)이 되었죠.
(고병선) 그렇죠. 시민회관 주변으로…….
(조영숙) 그러니까 시민회관이 만들어졌고 시청이.
(고병선) 옛날에는 단독주택 좋은 주택들만 있었는데 지금 빌라가 다 들어섰지.

추수 때나 명절 때 동네잔치나 그런 거 있었어요?
(조영숙) 그런 건 없었지.
(고병선) 그런 건 없었고 정월대보름 때면 동네 청년들이 얼굴에다 까맣게 칠하고 오곡밥 얻으러 다니고 그랬어요. 오곡밥하고 나물 같은 거 엄마가 이렇게 내다 주고 그랬어.

쥐불놀이라고 하는 거예요. 저도 해봐서 알아요.
(조영숙) 논밭에서 하는 거야. 보름날이 되면 음식을 해 가지고 조그만 창문을 열어 놔요. 그러면 집어다 먹게…….

맞아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고병선) 그러면 형들이 양동이에다가 밥 얻으러 다녔어. 축제 같은 건 없었어.
(조영숙) 옛날에 문화행사는 없었지. 기껏 가야 아폴로극장 가서 영화 보는 게 다야. 그래도 그때 당시 나는 아버지가 이제 공무원이셨으니까 그때 박물관이 자유공원 밑에 있었어요.
(고병선) 지금도 있는 거 아니에요. 이사갔나?
(조영숙) 지금은 이사갔어요. 그때 박물관도 갔었지 도서관도 갔었지. 그때 했던 것들이 지금 내가 생활하는 것들이더라구.
(고병선) 초등학교 4,5학년 때, 5,6학년일거다. 자유공원에 식구들끼리 놀러가고 그랬지.
(조영숙) 자유공원에 많이 놀러갔지.
(고병선) 그 때 놀이기구가 거기 있었으니까…….
(조영숙) 수봉공원에서 제일 많이 놀았지.
(고병선) 수봉공원은 잘 안 올라가고…….
(조영숙) 나 어렸을 때는 수봉공원은 잘 안 올라가고 문학산 일대에서만 놀았어.
(고병선) 수봉공원은 놀이기구가 자유공원에 있던 거 옮겨서 나중에
(조영숙) 나중에 옮겼지. 우리 애들 어렸을 때…….

어린 시절 사진 같은 거 있으세요?
(조영숙) 소풍가서 찍은 거 있잖아.
(고병선) 있나 모르겠네.

소풍은 어디로 갔어요?
(고병선) 맨날 거기야. 가는 날마다 비 오면 산에 나무 자르다 용대가리 잘랐다고…….
(조영숙) 우리 저 약산사 거기도 갔었는데…….
(고병선) 우린 안 갔어.

왜 용대가리 잘랐다 그래요?
(고병선) 용이 승천하느라 비 온다고 맨날 소풍 갈 때 이런 전설이…….
(조영숙) 그 용일초등학교는 갈 때마다 비가 와 가지고 맨날 문제잖아. 근데 우리 주안초등학교는 소풍날 비가 왔던 적이 한번도 없었어. 와서 비가 왔다가도 소풍갈 시간이 되면 해가 쨍하고 뜨는 거야. 그래 가지고 소풍을 한 번도 연기하거나 그래서 안 가 본 기억이 없어.
(고병선) 용일초등학교는 맨날 비 온다고…….
(조영숙) 거기는 맨날 애들이 잠 못 자고 그랬다는데…….
(고병선) 맨날 승학산 걸어서 진흥요업 앞으로 이렇게.

도시락은 뭐 싸가셨어요?
(고병선) 김밥 싸갔죠. 사이다하고… 물병에다 물 담아 가고…….

김밥이 (역사가) 오래됐군요.
(조영숙) 그 때는 김밥에 몇 개 안 넣었잖아.
(고병선) 그 때는 가족이 다 갔어.
(조영숙) 나는 나만 갔어.
(고병선) 왜냐하면 이모 쪽 식구들이 다 주안에 사니깐 사촌들이 또래가 비슷하니깐 이모들하고 할머니랑 다 와갖고 그늘에 돗자리 깔고

우리 시골에 살 때 보면 운동회 같은 거 하면 동네 잔치였어.
(조영숙) 운동회 때는 그랬는데 소풍 갈 때는…….
(고병선) 소풍갈 때도 할머니 할아버지 쫓아오고 그랬어.

날 잡을 때 잘 잡아야 돼. 농사일 바쁠 땐 안 돼. 어르신 다 노는 거야 구경하고…….
(조영숙) 그게 재밌었지. 운동화 할 때. 아무튼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운 게 뭐에요. 어렸을 때 아니면 뭐가 다시 있었으면 좋겠다.
(고병선) 현재에 만족해.
(조영숙) 아니 그래도 왜 그때 이런 게 있었는데.

있는데 그런 거 같은 거 없어 있잖아.
(고병선) 냇가 없앴잖아. 그런 거 그런 거 있었으면 거기 지금 휴식공간으로 얼마나 좋아. 수변공원같이 해 놓고… 그때 당시는 그게 최선책이었겠지. 그때는 지금 보면 그런 거 없앤게 참 아깝더라고 거기서 고기 잡아다가 먹고 그랬으니까…….

지금 그 자리가 지금 뭐예요?
(고병선) 지금 인주로. 인주로를 덮어버린 거 아니에요.
(조영숙) 그거는 복개를 다시 못하고 승기촌 그쪽만 살린 거잖아.
(고병선) 다 뜯어내야 돼 사실은… 어렸을 때는 거기가 주 놀이터 여름에는 주 놀이터가 거기였지. 비 한번 딱 오고 나면은 물고기가 더 많아 그럼 거기 고기 잡으러 다니고 그랬어 형들하고.

많이 잡아 가지고 뭐 하셨어요?
(고병선) 잡아 갖고 먹기도 하고 그 땐 집집마다 닭도 기르고 그랬잖아요. 닭모이 주고 개구리 잡아서 닭 주고 그랬지 뭐.
(조영숙) 그 저기 뭐야? 남동염전에서 잡은 것들이 있잖아요. 남동염전에 가서 뭐 안 잡았어요?
(고병선) 나는 고향이 주안이지만 어렸을 때 동춘동에서도 살았잖아. 2년 이상을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그쪽 동춘동에 염전가면 뭐 맨날 낚시하고 동죽 잡고 할아버지 마차 타고 바다에 나가고 그랬었는데 할아버지가 LNG 기지 있는데다가 그물을 1km 치고 좀 마차 두 대 타고 가서 거기서 생선같은 거 걷어다 우리 친할아버지 신포동에 다 팔았지.
(조영숙) 그 때는 신포동에 어시장이 좀 크게 형성돼 있었죠.
(고병선) 몰라요. 그건 모르고 일본 애들이 많아 갖고 생선 비싼 거는 걔네들이 다 사먹었어. 농어민어 같은 거 걔네들 걔네들이 할아버지도 그물에서 고기 잡아다가 거기 다 갖다팔고 그랬지.
(조영숙) 거기 횟집이 많잖아.
(고병선) 그 저 안에 경남 횟집이나 뭐 이런 데가 다… 거기 가보면노인네들 엄청 많잖아요. 옛날 노인네들 그 생각에 오는 거야. 양지 부대집도 그렇고… 됐죠.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