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1988년 2월 26일 새벽 1시 10분, 2명의 남성이 집으로 가던 한 여성(변씨)의 팔을 붙잡고 강제 추행을 시도했습니다. 그 중 한 남성(신씨)은 피해자에게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고, 저항하던 변씨가 혀를 깨물어 절단시키게 되면서 강제 추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혀가 잘린 신씨 측에서 해당 여성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고, 강제 추행의 피해자는 가해자로 법정에 서게 됩니다.
변씨는 1심 공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판결문에서는 변씨가 술을 마셨고, 가정불화가 있었다는 등 사건과 무관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성차별적 통념에 기대어 유죄를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한편 강제 추행의 가해자이자 혀에 상해를 입은 신씨에 대해서는 그가 어린 나이이며 술기운에 기대 강제 추행에 이르게 되었다고 언급하며, 성폭행을 정당화하고자 했습니다. 여기에서 신씨의 '술기운'과 변씨의 '술기운'에 다른 도덕적 평가가 이뤄졌음이 드러납니다. 또한 강제추행 행위는 혀를 '약간' 깨물어서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단에 이르게 한 것은 '과잉방어'라는 주장이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정당방위를 입증받기 위해서는 기습적으로 양팔을 포박당해 강간 위험에 처한 여성이 저항의 세기를 조절하여 강제 추행 행위를 중단시키고, 이후 '약간' 깨물린 가해자들로부터 벗어났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여성신문은 창간준비호인 '0호'에서 안동 사건의 진위, 판결문에 드러난 왜곡된 성관념 등을 2면에 걸쳐 상세히 다루었습니다. 성폭력 및 여성에 대한 왜곡된 사회 통념이 드러난 중요한 사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안동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주로 사건을 가십 기사로 다루거나, '정조'의 훼손을 위주로 다루던 상황에서 여성신문은 피해자의 입장을 전하고, 사건에서 드러나는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이같이 안동 사건에 대해 통상적인 언론 보도와는 달리 여성신문만의 시각으로 했던 기획 보도는 앞으로도 사회 인식 체계 전반에 깊게 박힌 성차별적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할 것임을 알리는 기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