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땅에 묻고 나서


어머니를 땅에 묻고 나서



볼품없는 수염이지만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고 싶어졌습니다

어머니 무덤의 잔디라도 매만지듯

수염이라도 무시로 매만지고 싶어졌습니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몸에 난 건데

어디라고 칼을 대겠습니까

한 올 한 올 어머니의 숨결인데

이 손바닥에 온기가 남아 있는 한

코밑수염을 쓰다듬으며

어머니 보고 싶은 마음 달랠 겁니다

남누리 북누리 한누리 되는 날은

턱수염을 만지며 하염없이 울 겁니다

<1990.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