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목소리는 다 노랫가락이요 쏟아지는 눈물

우리 봄길님

 

나의 새해, 아니 우리의 새해는 축제였다오. 그러니까 그저께 (2일) 새벽, 서울 시민이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는 꿈을 꾸었으니까요. 마지막 장면은 장바닥 한가운데서 고은이가 한 가락 뽑자 김병걸 님이 이를 받아 멋지게 한 가락 뽑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군요. 김병걸 님에게 저런 노래 실력이 있다니, 놀라움으로 박수를 쳐댔거든요.

작년 설에는 안될 일도 된다 된다 하면 되고, 될 일도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안 되다는 증조모님의 목소리로 새해를 맞았는데, 그래서 남북 합의서까지 서명 교환했는데, 그것만은 된다 된다 하더니, 어느샌가 그것만은 안 된다 안 된다로 바뀌었군요. 안 된다 안 된다며 악쓰는 소리에 된다 소리가 묻혀 버릴 것 같지 않아요? 가만 있자. 귀를 막고 들어 볼까요? 암 그렇지. 그렇구말구. 된다는 소리가 묻혀 버린 게 아니군요. 그냥 악을 쓰지 않을 뿐이군요. 자못 은은하군요. 조금은 눈물겹지만.

우리의 가슴 들먹이듯 앞산 뒷산 어깨춤도 신명 나게 들먹이는군요. 들먹이며 번져오는 풀내음 막무가내군요. 소리 없이 다가오는 산 그림자, 역사의 마음인가요, 힘인가요? 우리의 벗은 발 푸근히 감싸주지요.

된다는 소리 사람의 목소리만이 아니군요. 앞산 뒷산의 목소리만이 아니군요. 그윽한 산 그림자의 가벼운 발소리만이 아니군요. 잠자리, 메뚜기, 뻐꾸기, 종다리도 그 소리군요. 소, 말, 개, 돼지, 토끼, 노루, 사슴, 다람쥐도 그 소리군요. 고꽹이, 호미, 낫, 지게, 사립문에 닫히는 소리도 그 소리군요. 

그렇다니까요. 정직한 소리는 다 그 소리라니까요. 그래서 그 소리는 노래가락이라니까요. 터지는 가슴, 쏟아지는 눈물이라니까요. 대포, 전차, 폭격기, 군함도 녹이는 사랑이라니까요. 평화라니까요. 모두 모두 어울려 춤추는 하나 됨이라니까요. 모든 더러운 것, 지저분한 것 거룩하게 덮는 송이송이 하얀 눈 아름다움이라니까요. 그래 된다니까요. 꼭 된다니까요.

이렇게 해서 1993년 계유년이 축제로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서는군요.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을 남긴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닭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1993년 새해에 목청을 뽑아주는군요.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세배하러 오나 기다려지는군요. 나는 설날 아침 아버님 어머님 사진 앞에 세배를 올렸다구요. 당신의 사랑 늦봄

1993.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