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쓰기의 원리론

성근에게

 

이제 풀어쓰기의 원리론에 발을 들여놓아 볼까? 글씨 쓰기의 대원리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것이지. 소리 나는 대로라는 건 소리 나는 순서대로 적는다는 말 아니겠니? 소리의 흐름을 따라 적는다는 말이지. 그것은 세로 적는 게 아니라 가로 적는다는 이야기지. 모든 소리는 그 가치가 같아, 평등이야. 상하의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지. 그것은 우리의 몸의 구조와도 일치해. 글을 쓰는 우리 팔의 움직임이 아래위로 움직이기보다는 옆으로 움직이는 게 자유롭고, 글을 읽는 우리의 두 눈이 옆으로 붙어 있을 뿐 아니라, 고개도 아래위로 움직이기 보다는 좌우로 움직이기 쉽거든.

옛날 이집트인들은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기도 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기도 하고, 위에서 아래로 쓰기도 하고, 아래에서 위로 거꾸로 쓰기도 했거든. 그러다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쪽으로 결정되어 버리지. 그 까닭은 메소포타미아의 상형문자의 발전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토판에다가 갈대를 비스듬히 찔러서 흙을 떠내는 것으로 글씨를 썼는데, 그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기가 쉬웠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도 아라비아어나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지. 이것은 쓰는 글씨가 손과 붓에 가려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안 좋아. 왼손잡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게 좋겠지만. 그러던 것이 언제 어디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이 흐르게 되었는가? 셈족이 쓰던 글씨가 지중해의 해운 통상권을 거머쥐고 있던 테니키아인들의 손을 거쳐 핼라에 전해지면서 바뀌었지.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발전해 가다 보니, 마침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문자 생활이 정착되었다.

그런데 한문의 영향권 아래 있는 중국과 한국과 일본은 순리를 따라 문자 생활이 낡은 틀을 깨지 못하고 아직도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가고 있거든. 세 나라 가운데서는 우리가 제일 바른 발전을 해가고 있는 셈이지. 잡지들 가운데 소위 전통을 자랑하는 권위지(?) 신동아, 월간 조선, 월간 중앙 정도가 세로 조판되어 있을 뿐, 거의 모두 횡서로 조판되게 되었으니까. 부수적인 신문들도 차츰 횡서난이 확대되어 가고 있고.

옆으로 물 흐르듯 소리 나는 순서를 따라 써 내려간다고 할 때, 우리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뭐냐고 하면, 받침이다. 받침은 흔히 음절을 닫아거는 것이라고 생각되거든. 흐름이 막힌 상태라 그 말이지. 자음이 음절을 막는 경우도 있지. 그러나 자음은 대부분 새 음절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야 해. 적어도 흐르는 말에서는.

앞에서 예를 들었던 “앉았소”는 받침의 이론에 따르면, 두 닫힌 음절에 한 열린 음절로 되어 있지 않니? 그런데 흐르는 말에서 이 말은 닫힌 음절 하나와 열린 음절 둘로 되어 있다. 닫힌 음절을 “안”이고, 나머지 “자쏘”이 두 음절은 열린 음절인 거야. “ㄴ”은 “아”라는 모음으로 시작된 음절을 닫는 자음이지만, “ㅈ”는 다음의 “아”를 여는 자음이지. “ㅆ”도 앞의 “아”를 닫는 음절이 아니라, 다음에 오는 “ㅗ”를 여는 자음이라고 해야겠지. “사람이”에는 닫힌 음절은 없지. “ㅁ”은 “라”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라”와 “이”사이에서 나는 소리 아니니? 그러니 “ㅁ”은 그 모음 사이에 써주는 게 이치에 맞는 거지. 여기서 “ㅁ”은 “라”를 닫는 소리가 아니라 “이”를 여는 소리이고. 이건 악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사 람~~ 이~~~”라는 악보에서 “람”은 입을 다문 채 허밍으로 세 박자를 불러야 하는데, 사실은 “사 라~~ 미~~~”로 불러야 하거든 . 아빠

1992.04.28

 

 글씨 쓰기의 대원리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면에서 종전의 종서에서 횡서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 글에서 받침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