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아라.

보라, 나라에게

 

조금 전에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데, 흰옷을 입은 신부가 수백 명이 줄을 지어 큰 홀에 나타나는 것이 보이지 않겠니? 얼마나 화려하고 찬란한지. 어쩐지 그 신부들 증에 보라도, 나라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보라”, “나라”, 이렇게 입으로 불러보다가 일어나 앉아 너희에게 편지를 쓴다.

정말 보고 싶다. 안아 보고 싶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너희들을 볼 날이 올지도 모르겠구나. 못 보는 동안 보라는 부쩍 더 크고 어른스러워졌을 것 같구나. 학교에 가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아는 것도 많아지고, 생각하는 것도 커지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귄다는 것도 좋지만, 많은 벗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는 일이 더 큰 일이다.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어 가는 거지. 알겠니?

나라의 재롱이 늘어간다는 소식은 할머니에게서 늘 들어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구나. 요새는 굴뚝 있는 집이 별로 없어서 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 보고 싶은 마음 하늘만 하게 라는 말이 알기 쉽겠지.

서로 사랑하면서 부쩍부쩍 크거라. 하하하하하하하 웃으면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할아버지 씀

 

봄길님

 

어제오늘 우리 집이나 수경이네 집 전화통에 불이 났었지요. 당장 내일이라도 석방되리라는 기대에 모두 들떠 있었죠. 나라고 어찌 기쁘지 않겠소? 작년 평양에 갔다 온 미완성 과제가 완성되어가는 걸 보는 거니까. 일 년 남짓 고생이랄 것도 없는 고생으로 남과 북의 막힌 담을 뚫으려던 일이 성취되는군요.

우리가 풀려난다는 것도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묶었던 국가보안법이 실제로 폐기되는 일이지요. 통일을 가로막는 저해 요인 가운데 우리 남쪽이 제거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 아니겠소? 이제 그게 실제로 폐기되는 거니까 이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

아버님의 병환을 보살펴드리다가 깨달은 걸 역사에서 깨닫게 되는군요. 인간의 실수마저도 하느님의 손에서 기적이 되는 걸 느꼈었는데, 역사에서도 그게 이루어지는군요. 날치기로 26개 법안을 통과시킨 민자당이 이런 식으로 역사 발전에 기여하게 되다니!

그런데 정부가 아직도 잘못 생각하는 게 있군요. 남북 교류가 잘 되면 석방하겠다는 거 아니에요? 그러는 게 아니죠. 석방함으로 남북 교류의 문을 연다는 적극적인 사고를 할 줄 모르는군요. 안타까울 뿐.

오늘 교회에서도 인사 많이 받았겠지요. 이만 총총.

 

당신의 사랑

 

 

손녀들에게는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아내에게는 곧 석방되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것 같다는 희망을 피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