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봄길님

 

오늘 수경이, 문 신부님 재판이 그렇게 좋았다고 해서 내 마음이 정말 좋군요. 석간을 보니까 이홍구 씨 증인 신청은 취하했더군요. 뭐가 그리 떳떳지 못하지요? 자기가 통일원 장관으로 있는 동안 벌어진 일에 왜 당당히 나와서 말을 못 하는 건지. 수경의 수기가 잡지 세 군데나 실려서 대인기군요. (『다리』,『옵저버』,『신동아』) 『월간 중앙』과 『월간조선』에서도 빠질 수 없을 텐데. 아무튼 썩 좋은 일이지요.

요새 문동환 고희 기념 논문집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한(완상) 박사와 문 박사 대담이 참 좋군요. 그 대담을 읽다가 내가 처음 들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놀랐어요. 1976년에 박형규 목사가 같이 서명하고 같이 징역을 살았어야 하는데, 빠진 걸 가지고 양심의 고민까지 했었다는 걸 듣고는 정말 놀랐어요. 그만큼 가까이 지내는 사인데, 한 번쯤 그런 이야기를 박 목사가 내게 할 법도 한데, 그런 이야기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성명서 등사된 것을 한 부 일부러 내가 갖다줄 정도로 그는 우리의 동지였는데, 왜 박 목사가 서명자 명단에 빠졌을까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박 목사는 오래 징역을 살다 나왔기 때문에 일부러 뺀 것이 아니었던가 싶군요. 징역을 사는 박 목사 생각을 하면서 내가 시를 세 편이나 쓸 정도로 그는 운동가로서는 나의 대선배라고 생각했거든요.

또 하나 놀란 것은, 이것은 동환이가 한 번쯤 나한테 이야기했을 법한 이야긴데, 「3·1 민주 구국 선언」은 내가 기초했고 모든 걸 내가 했다는 걸 사실대로 털어놓은 것이 동환이었군요. 성서 번역 때문에 나는 빠지기로 약속되었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그러면 누가 한 거냐는 것을 추궁받았을 때 그 약속은 안 했으니 모두들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난 요새 76년 이후 나의 걸어온 길을 회고하다가 내게 남아 있는 전근대적인, 봉건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어요. 그동안 꽤 여러 번 항소 이유서나 상고 이유서를 썼는데, 그게 다 호소였거든요. 민주 시민이라면 주장해야지 왜 호소냐 이거죠.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최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도 그래요. 귀양 가서 사약을 내리는 임금에게 소를 올리는 것과 뭐가 다르냐 이거죠. 아들들을 뻔찔나게 감옥에 집어넣는 박정희에게 아버님이 편지를 자주 쓰셨지요. 그 아버님의 모습에서 그런 옛 충신들의 모습을 보곤 했는데, 그게 나한테도 있었군요.

물론 아버님이나 나는 옛 충신들의 의식과는 다른 의식으로 행동했죠. 우리는 주권자로서 수권자에게 무엇이든 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민주 의식에서 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것이 호소의 형식이 되면 그건 민주적이기보다는 봉건적인 사고의 표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악한 관원이 귀찮아서라도 과부의 억울한 일 풀어준다는 예수님의 비유에 나타나 있는 심정과도 같은 것인지 모르겠군요. 악한 관원의 입을 통해서 정의를 세우는 일이기도 한 행위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몸에 배어 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또 하나 돼지를 기르면서도 말씀을 해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나에게 옮아온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돼지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데 하물며 사람이랴!’는 생각이 나에게는 있어요. 돼지는 들어도 조직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들으려야 들을 수 없고, 듣는다고 해서 깨닫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겨우 알게 된 것 같군요. 만각 선생이지요. 듣든 안 듣든 깨우쳐 주는 것이 우리 국민 된 도리라는 게 아버님의 철학이었고, 그게 또 내 철학이 되어 있었군요.

김경재 교수가 나의 법정 진술을 잘 정리해 주었군요. 황인철 변호사님의 쾌유 소식은 정말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군요. 병곤 씨의 쾌유 소식이 곧 전해지기를 빌고 빌고 또 빌 뿐. 오늘은 이만.

 

당신의 늦봄

 

 

문동환 고희 기념 논문집을 읽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다는 얘기, 자신에게 전근대적인 태도가 남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는 얘기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