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입성 1주년

봄길님께

 

오늘이 내가 평양에 입성한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군요. 당신이 튕겨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날 뻔했군요. 그 정도로 나는 요새 경락과 홀몬 내분비의 관계를 규명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지 모르겠네요. 토요일 피를 뽑아갔으니, 며칠 지나면 나의 갑상선의 상태가 밝혀지겠지요. 이번에 병이 나서 갑상선에 이상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경락과 홀몬 내분비 기관의 관계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 관계가 규명만 되면, 이건 정말 엄청난 수확이지요. 이건 분명히 규명될 거라는 확신이 섰어요.

이번 평양에 갔다 온 것이 민족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후세의 사가들이 밝혀줄 일이겠지만, 갔다 와서 병이 남으로써 경락과 임파선 관계를 규명하게 되었고, 이제 홀몬 내분비까지 규명해 낸다면, 나의 평양 방문은 의학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되는군요. 이건 통일 문제를 푸는 것과는 전혀 다른 면에서 인류에게 작지 않은 공헌을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북한 동포들의 집에 나와 수경의 사진이 걸려 있다는 말을 듣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과 함께 우리 둘의 사진이 걸려 있다는 건 무얼 말하는 걸까요? 김일성 부자의 사진이 주체사상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우리 둘의 사진을 어떤 체제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자유와는 담을 쌓고 사는 얼어붙은 북한 사회에 자유의 봄바람을 날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거, 이건 정말이지 너무너무 엄청난 일이군요.

작년 오늘 평양 비행장에 내릴 때는 그냥 무덤덤했었다구요. 김 주석을 만나서 그쪽의 통일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어느 정도인가? 얼마나 유연성이 있는가? 이런 것들이나 타진하고 온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갔거든요. 이 정부가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리라는 것은 생각 못했구요. 이재오 동지가 나의 방북이 탄압을 몰고 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말을 했지만, 난 그걸 그리 크게 염두에도 두지 않았거든요.

나의 방북이 고르바초프-부시의 말타 회담,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맞물려 돌아가리라는 것도 생각 못 했던 일이구요. 난 어제 신문에서 북한이 일방적인 군축을 선언하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미 정부 측 말을 읽고는 아무래도 봄바람이 거꾸로 북쪽에서 불어올지도 모른다는 나의 예감이 맞아떨어진 것 같아서 좀 씁쓸하면서도 희망이 보이는 것 같이 기뻤군요.

내일이면 오늘 한빛교회 예배 소식을 듣겠군요. 작년에는 26일이 일요일이었고 부활절이었는데, 올해는 25일이 일요일이군요.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라는 나의 말이 북쪽 사람들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던가 보죠. 이 구절을 공동 성명에 넣을 것을 제안한 것이 그쪽이었으니까. 종교는 현실 정치와 역사와는 무관한, 아니 정치,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만드는 아편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종교관을 뒤바꿔 놓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편 아닌 종교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죠.

내년 3월25일까지 역사는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 손 모아 기도하면서.   

 

당신의 늦봄

 

방북 일주년을 맞으며 느끼는 여러 가지 소회를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