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익환_<아카이브 5주년>
아카이브 5주년 기념 최초 공개 기록 (2025년 12월호)
‘문익환이 DJ에게…’
1만 6,000여 명 아카이브 방문
평균 참여시간은 2분 36초
옥중편지 가장 인기 아이템
통계로 보는 온라인 늦봄 아카이브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온라인 사이트(archivecenter.net/tongilhouse)가 2020년 12월 1일 개통한 이래 만 5년이 되었다. 구글 통계를 살펴보니 5년간
누적 방문자 수는 1만 6,000명에 달했고
평균 참여 시간은 2분 36초였다. 방문자들이 어느 페이지, 메뉴에 가장 많이 머물렀는지 궁금했다. 메인페이지를 제외하고
조회수가 높은 순위는 ①옥중편지 모두 보기(날짜별), ②개인에게 보낸 편지(수신자별), ③사료설명서: 옥중서신·사진첩, ④연보, ⑤월간 문익환 기사 목록 순이었다. 구축부터 운영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아카이브센터▲(https://www.archivecenter.net/)에 감사를 전한다.
◇2020년 12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늦봄 아카이브 누적 방문자 수는 1만 6,000여 명이고 평균 참여 시간은 2분 36초이다. (구글 애널리틱스)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 옥중편지 모두 보기(날짜별) 페이지
그동안 이용자들이 조금 더 쉽게 기록을 접하도록 『월간 문익환』과 같은 콘텐츠로 기록을 소개하는 것에 주력했다. 그러다 보니 문익환과 박용길 편지 외에 업로드한 기록물이 콘텐츠에 소개되는 기록에 한정되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5주년을 맞아 심기일전하여 하드(디스크)를 탈탈 털어 미공개 기록을 공개한다. 지면 관계상 몇 가지만 소개하지만, 더 많은 기록은 온라인 아카이브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글: 박선정>
“김대중 선생님, 수일 내로 김영삼 씨를 만날 것 같은데…”
1. 1983년 문익환이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
“김대중 선생님. 김영삼 씨가 퇴원하면서 낸 성명서입니다. 이렇게 김영삼 씨는 이번 단식을 통해서 자신의 설 자리와 자세를 뚜렷이 세울 수 있어서, 한국의 민주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것 같습니다. … 수일 내로 김영삼 씨를 만날 것 같은데, 그때 저는 「민주 국민 협의회」는 더 이상 밀지 말 것과 8.15공동성명과 함께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협의체의 발족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문 목사는 미국 망명 중인 김대중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1983년 5~6월,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독재에 맞서 23일간 단식한 사건을 언급하며 더 큰 민주 협의체를 발족할 것을 제안한다. 이후 양김은 8.15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창설한다. 문 목사는 1990년 3월 3일 쓴 옥중편지에서 그때 일을 회고하며 공동성명은 자신의 문장이며, 두 지도자의 한계가 아쉽다고 밝힌다. 사건 당시의 생생한 기록과 수년 후 과거를 평가하는 두 기록을 함께 살피는 재미가 있다.
◇문익환이 1983년 6월 단식을 마친 김영삼을 언급하며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
“할아버지 빨리 나으세요! 통일은 금방 올거예요”
2. 1989년 ‘감옥병’ 앓는 문익환을 격려하는 방명록
문 목사는 감옥에 가는 일을 ‘민족사의 대학원’ 입학이라 칭하며 1~4학기(수감)까지는 말 그대로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했다. 그러나 1989년 3~4월, 평양 방북으로 5번째 갇혔을 때는 몸도 마음도 상할 대로 상해 혹독한 ‘감옥병’을 앓는다. 12월에는 문 목사의 퇴원치료 요구 농성이 일어났고 그때 격려 메시지를 담은 방명록도 작성되었다. 한 장 한 장 살피다 보니 메시지에서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져 건강을 염려하는 글이다.
“철저한 무염식 바랍니다.”
“문 목사님의 건강을 아침마다 기도로 아뢰고 있읍니다.”
다음은 통일의 희망과 염원을 담은 글이다.
“할아버지, 빨리 나으세요! 통일은 금방 올거예요.”
“목사님 우리의 통일은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읍니다.”
그리고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비장한 감성이 담뿍 묻어나는 선언문이다.
“문 목사님의 의로우신 큰 뜻 조국통일의 횃불로 살아 온 겨레의 가슴을 적시고 있읍니다. 저희 청년학생들도 목사님의 마음과 함께 힘차게 살아가렵니다.”
◇1989년 12월 수감 중인 문 목사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쓴 격려 방명록
마치 대본처럼 써내려간 면회일지
3. 박용길, 문성근이 쓴 문익환 면회록(1986. 5. 20~1987. 3. 27)
◇박용길, 문성근이 작성한 문익환 면회록
박용길 장로는 메모하고 기록을 모으는 습관이 있어 아키비스트에게는 아주 고마운 존재다. 문익환, 박용길의 삼남 문성근은 기억력이 아주 좋아 재판 참석 후 재판 중 발언을 술술 써 내려갈 정도였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이 기록한 면회록이라니, 최고다! 박용길은 면회하면서 짧게 메모하는 스타일이고, 문성근의 기록은 배우답게 ‘(크게 웃으며)’ 같은 행동지문까지 되살려내 마치 대본을 읽는 느낌을 준다. 수감자 문익환이 읊고 면회자가 받아쓴 시들도 곳곳에 등장한다.
신학자-목회자로서의 문익환 엿보기
4. 문익환 신학·설교 노트 모음(1950~1970년대)
아카이브에서 그간 민주화 운동이나 수감 관련 기록을 많이 소개해 왔는데 신학자, 목회자로서 문익환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신학 강의 및 설교 노트 모음이다. 설교는 중부교회(1957~1964), 한빛교회(1965~1968) 것이 주를 이루고, 강의록은 한신대(1955~1968) 재직 시절 작성한 구약학, 예언서, 욥기·시편·이사야서 강해 등이 있다. 기타 논문 초고 노트까지 합하면 약 70권이나 된다. 기록을 공개하고 업로드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암호와 같은 강의록을 풀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신학 후배들과 목사님들, 도와주세요!
◇문익환이 남긴 설교, 강의 노트 약 70권이 아카이브에 보존되어 있다. 문 목사의 육필노트는 해독과 텍스트화가 필요하다.
‘성실한 기록인’ 봄길의 기록들
5. 박용길의 회고 원고(1990년대 추정)
박용길의 손글씨는 정갈하고 가독성이 뛰어나 읽는 맛이 있다. 또 문장이 간결하고 생생해 쉽게 읽힌다. 200자 원고지에 또박또박 적은 박용길의 삶은 사건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1944년 만주국 만보산 신혼시절, 해방과 3.8선을 넘은 사연, 1970년대 갈릴리교회, 방북 후 감옥에 간 일까지 다양하다. ‘헤여지다’, ‘슲음’ 등 현대 맞춤법과 다른 표기도 남아있다. 성실한 기록인의 흔적을 보노라면 뭔가 남기고 싶은 마음이 덩달아 생긴다. ‘봄길박용길체’로 오늘의 기록을 남겨보면 어떨까? 서체는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웹사이트(
unificationhouse.com)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박용길이 쓴 만보산에서의 춥고 고생스러웠던 신혼시절
<월간문익환_아카이브5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