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하되 시간의 흐름을 살리려고 노력”
안녕하세요. 기록 보존의 이모저모를 탐색하는 보존연구실 601호입니다. 이번에는 ‘보존가’라는 직업과 일에 대해 탐색해 보려 합니다. 보존처리는 재료에 따라 금속, 도·토기, 석조(이상 무기질)와, 지류, 목·칠기, 직물(이상 유기질) 등으로 분류되는데 각 재료마다 보존가가 따로 있습니다.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는 2019년 문익환 방북 30주년 기념 전시를 준비하며 북에서 선물받은 자개병풍의 보존처리를 의뢰했습니다. 당시 보존처리를 담당한 나전칠기 전문가 배근혁 선생님은 현재 공직에 계시다고 하는데요, 병풍 수리 과정과 이직한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문화유산수리기능자 칠공 자격취득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자개병풍을 복원한 배근혁이라고 합니다. 나전칠기 명인이신 아버지(배명주, 나전칠기 공예가)의 영향으로 저도 문화유산수리기능자 칠공 자격을 취득하고 이 분야에서 10년 정도 일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에게 선물받아
▲보존처리한 병풍은 어떤 작품인가요?
문 목사님이 1989년 방북하셨을 때 김일성 주석에게 선물 받은 4폭 화조문 자개병풍으로 김학송 작가의 작품입니다. 고구려 평양성곽 위에 세워진 장대(최승대, 을밀대)와 누각(청류정, 평화정)을 배경으로, 각 폭에 꽃과 새가 장식된 병풍입니다. 병풍 틀에는 황동 경첩이 달려 있고, 각 판에는 자개와 옻칠로 섬세한 장식이 더해져 장인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선물받은 화조문 자개병풍(김학송 작, 1980년대말, 104*68cm). 2019년 파손부를 접합하고 옻칠을 새로 하여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토회 섞어서 깨진 부분 보수
▲처리 과정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복원방향은 완전히 새것처럼 만든다는 느낌이 아니라 파손부분은 보수하되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지우지 않도록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옻칠이 많이 일어나 있어서 다 긁고 새로 칠할까도 고민했다가 그래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도록 보수하는 쪽으로 의견을 돌렸습니다.
일단 모양을 잡으려고 친환경풀로 임시 고정하고 옻칠과 토회를 섞어서 깨진 부분을 보수했습니다. 알판과 틀이 분리되었는데 뒷판과 틀부분은 면을 깨끗하게 보수하고, 분리된 나무 조각과 옻칠이 일어난 곳은 너무 심한 훼손부를 제외하고는 보존 가능한 상태로만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깨진 나무조각을 붙이고 토회로 보수한 병풍 뒷면
◇사포로 결합부를 연마하는 배근혁 국가유산수리기능자(칠공)
파손상태 심해 고민 많아
▲작업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힘들었던 점은 생각보다 파손상태가 심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시간이 흘러서 광을 내거나 칠을 하는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가운데 판은 상태가 괜찮았으나 주위 틀이 부서지고 금속 장식들도 휘어서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보존처리는 새로 제작하는 것보다 좀 더 애를 먹게 되거든요. 또 탈락한 자개들이 색상을 맞춘 천연 자개여서 비슷한 자개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아주 불가능한 큰 어려움은 아니었어요.
◇파손된 병풍틀(왼쪽)과 알판이 분리된 모습(오른쪽)
▲보존가에서 공무원으로 이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코로나가 닥치면서 부침을 겪은 자영업자들이 많으셨을 텐데, 가구 업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외 주문도 다 막히고 가게 유지가 굉장히 어려워졌죠. 가구 만드는 것 말고 또 하나 조금 자신 있던 게 공부였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고, 합격해서 지금은 공직에 있습니다.
보존가는 체력과 집중력 요구
▲보존가와 공무원, 두 직업을 비교한다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보존가는 보람도 있지만 일거리가 일정하지 않고 체력과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때도 있고요.
공무원은 정해진 시간에 퇴근할 수 있어서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다만 행정 업무 특성상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박봉이 단점이죠. 나전칠기를 향한 애정을 마음 한구석에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커가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서 현재 일에 만족합니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요?
나중에 은퇴하면 구청 근처에 작은 공방을 열고 싶어요. 옻칠 소품을 만들거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식으로요. 제가 좋아하는 작업을 마음껏 하고 또 전통공예의 멋과 매력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정리: 박에바>
월간 문익환_<보존연구실6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