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특별기고>

식민지역사박물관 <민주주의와 깃발>전 (2025년 9월호)

“광장은 학교였고, 우리는 서로의 교과서였다”
연대야말로 힘이었다

   

 
  민주주의에서 연대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연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우리는 거리에서 목격했다. 12.3 계엄이후 청년과 노동자, 농민과 시민, 남녀노소, 이들을 한데 얽혀 민주주의를 수호했다. 그들에게 광장은 학교였고, 서로는 서로의 교과서였다. 그중 응원봉을 들고 “다시 만난 세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청년들의 연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월간 문익환』이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개최한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회를 찾았다. 지난 겨울과 봄 ‘빛의 혁명’ 과정에서 청년들이 광장으로 들고 나온 수많은 깃발들이 바로 ‘연대’의 상징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였다. 
  청년 개개인들은 실제로 어떻게 연대할 수 있었는가도 궁금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연대야 말로 힘이다’라는 안내판 글귀가 ‘정말 잘 찾아왔구나’ 하는 확신을 주었다. 참관 도중 김승은 학예실장과 대화를 나눴다.
  ‘실제 흩어져 있는 청년 개개인들이 어떻게 서로 연대할 수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김실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청년들의 연대 통로는 온라인 공간이었습니다. SNS, 특히 X(옛 트위터)를 통해 이루어졌죠. 1인 또는 모임 대표가 집회 관련 의견을 올리면 다른 청년들이 댓글을 달아서 의견을 주고받는 형태로요. X 공간에서의 의견 개진은 타인을 향한 적극적 자기주장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반응을 타진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청년의 활발한 소통이며 연대였습니다. 소통 결과는 각자의 집회 방향과 방법에 피드백 했고요. 그들에게 직접 들은 피드백 속도와 참여 의지는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김 학예실장은 청년들이 그들만의 연대에 그치지 않았음도 강조했다. 탄핵 소추 당시 민주노총이 앞장서겠다며 집회 및 행진 공간을 만들어내자, 청년들이 환호했고, 남태령에서 밤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동안 들어주고 공감하며 지켜봐 준 농민들과도 뜨거운 마음을 나눔으로써, 청년들의 연대 의식이 기성세대로까지 확장되어 나갔다고 덧붙였다.
  이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의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를 추천한다. 전시물 하나하나 진중한 메시지를 번뜩이는 재치에 담았다. 민주주의와 연대가 무엇인가를 한눈에 캐치할 수 있다. 전시회를 담당하는 김승은 학예실장의 소개글을 게재한다.
  지난 5월 16일 개막한 전시는 8월 23일부터 시즌2로 전시가 진행중이다. <편집자주>
 

긴급전시행동, 518명과 함께 기록한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는 2024년 12월 3일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에 맞서 대통령 파면까지 123일간 이어진 시민 저항을 기록한 ‘긴급전시행동’이다. 전시가 열린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주도로 2011년부터 국내외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2018년 설립되었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뉴라이트 교과서 반대와 국정교과서 개악 시도 저지를 위한 역사운동을 벌였고, 이 박물관은 역사가 권력에 농단되는 것을 막아내자는 시민의 열망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식민지역사박물관과 민족문제연구소는 지금의 역사적 위기 속에서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문제에 ‘개입하고 발언하며 실천하는’ 주체여야 했다. 
 
‘당신의 민주주의를 기증받습니다’라는 작은 명함을 건네면서 광장의 시민들과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내면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졌다. 이 캠페인은 시민들이 단순히 물건 즉 시위용품을 기증하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신념, 실천을 박물관에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로 여기도록 했다. 

관심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25년 1월 23일부터 4월 14일까지 총 518명의 시민이 깃발, 피켓, 응원봉은 물론, 손으로 직접 만든 인형, 공예품, ‘뜨개질로 만든 피켓’ 등 2,300여 점에 달하는 물품을 기증했다. 박물관은 모든 기증자 518명을 전시의 ‘공동주최자’로 명시하여 역사 기록의 권한을 민주화하고, 소수의 엘리트나 전문가가 아닌 시민들 스스로가 역사의 중요한 주체임을 공식화했다. 
  
 
 
 
 
 

새로운 깃발, 새로운 연대

시위용품 가운데 가장 비중을 차지한 것은 깃발이었다. 이번 투쟁에서 등장한 깃발들은 과거와 질적으로 달랐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저항의 깃발이 공식적인 조직 또는 거대한 집단을 대표했다면, 2024-25년의 깃발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즉흥적이며, 때로는 가상의 공동체를 대변했다. 깃발들은 집단적 이념보다 개인의 정체성, 취미, 일상을 표현의 자원으로 활용했다. 기증 사연에 담긴 깃발의 의미에는 시민들의 누려온 일상, 민주주의의 파괴에 대한 공포와 분노, 그리고 고립감을 딛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헌신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모든 깃발은 저마다의 비장함과 세계관을 품고 있다. 

깃발은 광장의 익명성 속에서 ‘동지애’를 확인하고 연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했다. 시위 참여자들은 기발하고 독특한 깃발들을 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고 두려움을 극복했으며, 그 안에서 안전함을 느꼈다. 이는 거대한 광장에서 서로에 대한 환대하는 신호이자, 함께하겠다는 ‘연대의 약속’이었다.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저항의 역사와 마주하다 

전시의 구성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어제와 다른 날들, 어제와 다른 나들〉은 2024년 12월 3일부터 2025년 4월 4일까지 123일간 이어진 대규모 시민 저항을 타임라인 형식으로 보여준다. 이 기간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한강진 등 전국의 광장은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투쟁 공간이 되었고, 전시는 바로 이 123일간의 기록을 담았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가장 중심적인 이슈였지만, 광장의 ‘사회대개혁’ 요구는 8년 전과 달리 ‘지금 여기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다양한 목소리가 평등하게 울려 퍼졌음을 보여준다. 광장에서 ‘나’는 농민,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 전세사기 피해자, 일자리를 뺏긴 노동자, ‘폭도’로 악마화되었던 동덕여대 학생이었다. 8년 전에는 ‘나중’으로 미뤄졌던, 온갖 혐오와 차별, 불평등에 억눌렸던 이들이 서로의 존재 자체를 환대한 것이다. 오랜 투쟁의 역사를 알게 된 그들은 달려가 새로운 광장을 열었다. 

2부 〈광장은 학교였고, 서로의 교과서였다〉는 기존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촉발된 학습과 실천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간 현장들을 담았다. 시민연대자들은 자신을 ‘말벌 동지’라 부르며, 연대가 필요한 투쟁 현장으로 신속하게 달려가 지지를 표명했다. 이는 연대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전시는 사진과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연대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3부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동학농민혁명부터 독립전쟁, 4월민주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운동사 관련 사료들을 전시했다. 특히 2024-25년의 투쟁을 다루는 1부 맞은 편에 3부를 배치하여, ‘과거와 현재가 서로 마주 보는’ 듯한 시각적, 주제적 대화를 유도했다. 이러한 공간 배치는 관람객이 최근의 사건을 고립된 사건이 아닌, 억압에 맞서 싸워온 민중 저항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즉 2024-25년의 광장은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한 세기에 걸친 저항의 연장선에 있음을 보여준다.  
 

 
 
깃발전은 박물관의 선언이자 실천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민중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연대의 정신을 확장하며, 그 기록을 우리 사회의 공공역사로 남기겠다는 박물관의 선언이자 실천이었다. 이는 박물관이 과거를 박제하는 공간을 넘어, 현재의 역사 만들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정치적, 문화적 주체임을 증명하고, 기억 투쟁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한 시도였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자신의 소중한 시위용품과 기록을 기꺼이 내어준 시민들이었다. 박물관은 온전히 그 존재이유를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로 확인했다. 
 
 
※김승은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
식민지역사박물관과 문익환 통일의집 등 8개 작은박물관은 스탬프투어를 공동 운영하며 역사와 인권, 민주주의의 공간인 작은박물관들을 널리 알려나가는데 함께 힘쓰고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홈페이지 🔗https://historymuse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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