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전병용 신세 안 진 사람이 몇이나 될지”
-어느 민주교도관이 본 서울구치소
1992년 3월 9일, 늦봄은 여섯 번째 감옥에서 1976년 같은 날 서대문구치소로 들어가는 날의 모습을 봄길에게 전한다.
“그날 나를 맞이한 건 추위와 전병용 담당, 그리고 호기심에 찬 눈길이었죠.”
추위. 3월 9일의 교도소는 추위로 모두 움츠러들어 있다. 이곳에서 늦봄은 교도관들이 19공탄 난로 하나로 추위와 싸우는 애처로운 모습을 본다. 수감자들은 좁은 방에 7~8명이 지내니 추운 줄 모르지만, 교도관들의 겨울이란 처참했다.
전병용 담당. 전병용은 그날 늦봄이 들어간 9사 상 담당이었다. 그는 정치범들을 성의껏 보살펴 주는 의식이 뚜렷한 젊은이였다.
그는 고위 관리들의 관료적 작태, 말단 교도관의 열악한 근무 조건, 수감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 등의 불의함를 느꼈고, 직업적 타성에 젖어 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그를 보는 높은 사람들의 눈엣가시였다.
전병용은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서울구치소 교도관으로 근무한 14년 동안의 고백을 『감방별곡』-‘어느 민주교도관이 본 사울구치소’(1990.4.13, 도서출판공동체)에 담았다. 이 책은 통일혁명당의 실체, 인혁당 사형수 8인의 진실, 김지하 양심선언 반출 작전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교도소에서 쫓겨난 그는 민주화운동에 뛰어든다. 이제 친구이자 동지의 관계로 그의 집은 수배자들의 피난처가 되고, 수배자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그는 1987년 5.3인천 항쟁과 관련, 이부영, 장기표 씨 은닉 혐의로 구속되어 본인이 늘 사용했던 포승줄을 묶는 자에서 묶인 자가 되기도 한다.
늦봄이 봄길에게 쓴 편지의 마무리는 “정치적인 문제로 서대문구치소를 거친 사람치고 전병용의 신세를 안 진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였다.
<글: 박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