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보존연구실 601호>
번역과 언어 보존: 갈릴리교회 설교집 번역자에게 묻다 (2025년 8월호)
번역을 통한 ‘언어 보존’은 가능할까?
갈릴리교회 설교집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태후 번역자에게 묻다
◇일본에서 출간된 갈릴리교회 설교집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초판(1978)과 재판(1987).
안녕하세요. 늦봄 아카이브 601호(가상공간) 보존연구실입니다. 얼마 전 제목만 보고 『보존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빌렸는데요, 문화유산 수리에 관한 내용을 기대했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생명공학자, 천문학자, 시인, 번역가, 문학연구자, 곤충학자, 진화 생물학자, 예술가, 다큐멘터리 감독, 은세공가 등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보존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토론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보존의 다양한 면면을 보게 된 것이죠. 특히 흥미를 끌었던 것은 고대 문학 번역자의 이야기였는데, 곧이어 ‘언어 보존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일본어로 출간된 갈릴리교회 설교집 47년 만에 번역
갈릴리교회 설교집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1978, 1987)는 일본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갈릴리교회’는 1975년 유신정권에 맞서다 강제 해직된 교수들이 모여 만든 모임입니다. 1975년 8월 17일 첫 예배를 드리고, 설교는 문동환, 문익환, 서남동, 안병무, 이문영, 이우정, 이해영이 담당했습니다. 이듬해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설교자 대다수가 투옥된 상황에서 일본인 쇼지츠토무 목사(일본기독교협의회NCC 총간사)가 설교 12편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 갈릴리교회 첫 예배 주보
초판이 출간된 지 47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는데요, 내년 3.1민주구국선언 50주년을 기념하여 국내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번역자 하태후 선생님(한신대 신학대학원 석사과정, 전 경일대 일문학 교수)을 서면으로 인터뷰했습니다.
왜 일본어로 발간되었나 궁금
▲귀한 자료를 한국어로 다시 읽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번역 작업 중 에피소드가 있다면?
가장 궁금했던 점은 설교집이 한국어로 발간된 것은 없고, 왜 일본어로 발간되었나 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일본인에 의해 발간되는 것이 가능은 하다고는 생각했다. 일본인은 가치가 있는 것이면 비록 그것이 악마의 작품이라도 번역하니까. 그런데 이유는 맨 마지막의 쇼지 목사님의 글을 읽고 알았다. ‘설교는 인쇄된 것, 초고 그대로인 것, 혹은 테이프 녹음 등 다양하지만….’ 이를 미루어 볼 때, 70·80년대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시간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문동환 설교 「기다리는 자의 삶」 초고와 해당 설교가 수록된 갈릴리교회 설교집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1978, 신교출판사)
- 사람은 다 기다리는 나그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기에. (문동환 설교 초고)
- 人は誰もが待っている旅人である。今日にまさる明日を待ち望みながら道を歩んでいる旅人である。(쇼지츠토무 번역·편집)
- 사람은 누구나 기다리고 있는 나그네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다리며 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다. (하태후 번역)
문익환 목사는 문학적, 안병무 교수는 학문적
▲설교자별 글의 특징이 있나?
우리가 작품을 번역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원작의 꼬불꼬불하고 오목조목한 부분이 번역에서는 무시되어 마치 아스팔트 까는 것처럼 평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일본어로 번역, 출판된 책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12편의 설교자 문체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는 명확하게 알기 어려웠지만, 그런데도 대체적인 특징은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문익환 목사님의 경우는 상당히 문학적이고, 안병무 교수님의 경우는 좀 학문적, 그리고 사회적인 뉘앙스가 풍겼다.
설교집은 쇼지 목사님 작품
▲한국어 원고가 존재하지 않는(또는 다음에 발견될 수도 있는)상황에서 번역하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았나?
이런 경우의 번역은 처음이다. 사실, 이 설교집은 어쩌면 쇼지 목사님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옮겨서 일곱 분의 설교를, 그분들이 하시고 싶은 말씀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줄거리, 즉 내용이 전달되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되었다고 하는 것은 문학작품을 한 번도 번역해 보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문익환 목사님의 한국어 설교는 다행히 전집에 수록되어 있어서 그분이 직접 지은 시를 그대로 옮길 수 있었다.
“원저자가 첫 독자에게 일어나기를 바랐던 반응에 가까운 반응이 우리의 독자에게도 일어나기를 번역자는 바라야 한다. … 번역문도 우리말로서 자연스럽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성서의 신앙은 우리의 생과 역사의 궤도를 돌리는 힘이 된다.” (문익환, 1974)
▲번역을 마치신 소감은?
이런 책을 내가 다시 한번 더 번역할 기회가 찾아올까? 나에게 이런 영광이 다시 한번 찾아올 수 있을까? 설교집을 번역하면서 나는 너무 행복했다. 진정으로 일본 문학을 공부한 보람을 느꼈다. 더불어 편저자이신 쇼지 목사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1970년대 초부터 한국 기독교인들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일에 깊이 관여하셨던 목사님의 인품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미래의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안병무, 이문영, 서남동, 문익환, 문동환, 이해영, 이우정, 이름만 들어도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우리가 평소에 존경해 마지않던 시대 선구자의 설교집이다. 바라건대, 이 설교집이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읽혀서 오늘날 기독교 쇠락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에게 크나큰 경종이 되며, 나아가 앞으로 한국의 기독교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바른 인식을 새로이 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다.
▲그 외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으면 한다. 안병무 교수님께서 ‘오늘의 설교 대부분은 현장의 그리스도를 은폐하고, 현장으로부터 눈을 감게 하며, 이천 년 전으로 되돌아가 관념의 세계로 도피하게 만든다’라고 하시면서,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현장의 그리스도, 오늘의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마음 깊이 새겨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할 뿐이다.
한국 독자에게 다시 돌아온 설교를 보존한다는 것은…
번역을 통한 언어 보존은 가능할까?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에밀리 윌슨은 번역할 때
‘본질을 온전히 보존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 진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딜레마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콜 피터는
번역물이 변하지 않는 절임(피클)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시간과 장소, 언어로 이동하는 변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피터, 2024). 문익환 목사 역시 성서의
시편을 번역하는 일은 재생(re-production)이 아니라, 재창조(re-creation)라고 강조했습니다(문익환, 1974).
애초에 언어가 다를뿐더러 언어 사용 역시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번역으로 온전히 보존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한계를 받아들이고, 원문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재료)를 선택하여 문장을 다시 지어냅니다. 그렇게 재창조된 언어는, 신기하게도 본래의 메시지와 울림을 간직하곤 하지요. 50년 만에 한국 독자에게 다시 돌아온 설교에는 어떤 본질이 보존되어 있을까요? 2026년 출간될 책에서 일곱 명의 설교자와 만나 직접 발견해 보세요.
<글: 박에바>
※역자 하태후
1993년 일본 바이코가쿠인대학교에서 일본 근현대 그리스도교문학을 전공해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7년부터 경일대학교에서 일본어문학을 가르치다 2022년 명예퇴직했다. 다수의 공역과 단독 역서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그리스도교 작품 선집 『담배와 악마』 가 있다. 2022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에 입학해 재학 중이다.
[참고문헌]
문익환(1974) 「히브리어에서 한국어로」 『신학사상』 제7호.
피터 N. 밀러(2024) 『보존이란 무엇인가』. 플레인앤버티컬.
월간 문익환_<보존연구실 6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