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 (2025년 8월호)
조원태 뉴욕우리교회 목사
“이 땅의 떠돌이들에게 평화의 대륙을 꿈꾸게 해 주신 두 목사님”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한 조원태 목사가 송경용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장과 만나 문익환, 문동환 두 목사를 회상하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내가 만난 문익환 목사님
문씨 가문의 '문' 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나는 문씨 가문의 '문' 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20대 중반, 내 청춘은 문익환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혔다. 3년 동안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관련자들을 찾아다녔다. 신학교보다 깊은 배움이었다. 그분의 말과 삶은 내 안에 성서처럼 새겨졌다.
문익환 목사님의 신앙은 내 목회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7천만 겨레를 성도로 품은 그의 삶은 하나의 거대한 교회였다. 그 영향으로 뉴욕의 우리교회는 조국의 비무장지대를 첫 선교지로 삼았고, 청소년들은 매년 그 땅을 걸으며 통일을 위해 기도한다.
“자넨 젊은이가 줄기가 왜 이렇게 약해?”
한 번은 연세대 학생회관 화장실에서 처음 가까이 마주했는데, 목사님은 웃으며 말했다. “자넨 젊은이가 줄기가 왜 이렇게 약해?” 소년 같은 유쾌함 속에 용정의 기질과 명동 3.1민주구국선언의 결단이 함께 있었다. 감옥에서도, 골목에서도, 단상에서도 젊은이들이 그래서 그의 곁에 모였다. 연세가 들수록 생각은 더 젊어지셨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큰아들과 함께 통일의집 박용길 장로에게 세배하러 간 조원태 목사. 조원태 제공
늦봄 장례식에서 마지막 심부름
1994년, 한신대 학생회장이었던 나는 수유리 장례에서, 대학로에서 마지막 심부름을 맡았다. 모란공원에서 흙을 뿌렸고, 운구에도 함께했다. 1994년 이후에도 목사님 숨결이 내 안에 흐르게 된 은총이었다. 지금 나는 철원의 국경선평화학교에서 북녘을 바라보며 기도한다. 그분이 뿌린 씨앗이 자란 자리에서.
▲내가 만난 문동환 목사님
뉴욕 첫 목회 취임식에 오신 목사님
뉴욕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던 해, 문동환 목사님이 내 취임식에 오셨다. “십자가는 의인의 억울한 죽음으로 악을 드러내는 자리예요. 그 고통에 아파할 줄 아는 이들이 예수의 제자예요. 조 목사가 그 길 따라온 것을 나는 알아요.” 그 말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이제 6.15를 자네가 맡아주게”
며칠 뒤, 맨해튼의 식당 ‘금강산’에 나를 홀로 부르셔서 말씀하셨다. “이제 6.15(공동선언실천)를 자네가 맡아주게.” 나는 30대 중반, 버거워 송구하게 사양했지만 심부름이라도 하겠다며, 그 덕분에 자주 곁에 머물며 배울 기회가 있었다.
가장 깊이 남은 배움은 매주 함께한 요한복음 공부였다. 뉴욕과 뉴저지의 젊은이들과 2년 동안 공부했고, 91세의 목사님은 매주 원서를 읽어 오셨다. 언젠가 목사님 말씀이 기억난다. “상반신은 아직 청년인데, 다리가 말을 안 들어.” 댁으로 향하는 복도 끝까지 걸으셨던 뒷모습이 일생 떠돌이들 곁에 머무시던 모습으로 아직도 선하다.
“떠돌이는 정착한 사람보다 더 자유롭다”
“떠돌이는 정착한 사람보다 더 자유롭다.” 목사님의 말씀은 내 목회의 철학이 되었고, 추방위기의 서류미비자들을 위해 2017년 뉴욕에서 시작한 이민자보호교회(이보교) 운동으로 이어졌다. 떠도는 이들의 자유를 위한 교회, 그 뿌리는 문동환 목사님에게서 시작됐다.
2012년, 『바벨탑과 떠돌이』 출판기념회에서 내게 감히 서평을 맡겨 주셨다. 손이 떨렸지만, 영광이었다. 그 후, 문동환 목사님 내외와 함께한 뉴욕평화포럼, 그날 우리 교회를 채운 것은 “악을 보고 아파할 줄 아는 마음.” 그것이 곧 평화였다.
◇ 문동환 목사 추도예배를 집례하는 뉴욕우리교회 조원태 목사. 조원태 제공
문혜림 여사 별세 때 곁을 지키는 은총
2019년 목사님이 별세하셨을 때, 나는 뉴욕 한신동문회장으로 추도식을 섬겼고 이후 문혜림 사모님이 별세하셨을 때도 곁을 지키는 은총을 누렸다. 문씨 가문은 조국에 주어진 신의 선물이라 믿는다. 분단은 조국의 영토, 관계, 생각을 섬처럼 고립시켜 왔지만, 문익환 목사님과 문동환 목사님은 이 땅의 떠돌이들이 평화의 대륙을 향해 꿈꾸게 해 주신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그 뜻을 되새기고, 행동으로 잇는 일. 그 길에 함께하는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조원태 목사
뉴욕우리교회 목사. 한신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문익환 목사 장례때 운구를 했다. 노년의 문동환 목사와 미국에서 2년 동안 함께 요한복음을 공부하며 큰 배움을 얻었다.
조원태 목사 취임식 권면의 말 ― 문동환
조원태 목사의 취임식에서 권면의 말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는 주저했다.
목사 취임식에서 권면의 말이란 거의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한다 해도
대체로 그것은 마이동풍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목사마다 제 나름의 신학과 목회관이 있다.
취임식에 아무리 장광설을 한 대도
그것은 무의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원태 목사의 경우는 좀 다르다.
권면의 말이 필요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가 달포 정도 이 믿음장로교회에 와서 섬기는 동안
선임 목사는 물론이요
온 교회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설교나 기도나
교인들을 돌보는데 그렇게 만족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목회를 잘하시는데 무슨 권면이 필요할 것인가?
그의 경력을 보아도 부족한 곳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나와 조 목사는 어딘가 서로 기가 통하는 것이 있다고 느껴져서
성서를 통한 나의 선교관이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느껴져서
성서를 통해서 내가 깨달은 제자 직에 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다 예수님의 제자이다.
특히 목회자는 그렇다.
성서에서 제자란
스승이 사시고 가르치신 대로 사는 자들이다.
그 예수님의 선교의 핵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님은 어떻게 그것을 이룩하셨는가?
우리는 이것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후략)
(출처: 다음카페 문동환의 조각달
https://cafe.daum.net/moontonghwan/AoWD/116)
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