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보존연구실 601호>
슬라이드 필름에 담긴 청년 문익환 (2025년 4월호)
필름을 뚫고 30대 ‘청년’ 문익환이 짠~
◇헬기 앞에 선 군복차림의 문익환. 필름 표면이 훼손되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다.
안녕하세요. 늦봄 아카이브의 여러 재질별 사료에 대한 보존 방법을 고민하는 보존연구실입니다. 오늘 다룰 사료는 1950년대 30대 청년 문익환 목사가 직접 찍기도, 찍히기도 한 슬라이드(필름)입니다. 필름 조각 테두리를 마운트가 감싸고 있고 환등기에 넣고 영사하여 사진을 감상하는 것이 특징이지요. 명암을 그대로 표현하는 포지티브 필름이므로 빛에 비춰서 작은 필름 속 작은 이미지를 유심히 관찰하는 감성도 놓칠 수 없겠죠?
◇ 명암이 반대로 표현되는 네거티브 필름(좌)과 포지티브 필름인 슬라이드(우) 비교
30대의 문익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950년대 초는 미국 유학 중이던 티모시 문(Timothy Moon, 문익환의 영어 이름)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통역관으로 유엔군에 자원해 도쿄(유엔 극동사령부)와 판문점을 오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박용길 장로와 네 자녀의 일본 생활 모습, 그리고 1955년 유학 때 찍은 것으로 보이는 미국 풍경도 필름에 담겨 있습니다.
◇ 철제 상자에 담긴 슬라이드
◇ ‘성근 첫돌’이란 메모가 적힌 슬라이드
필름류는 ‘투명한 지지체에 감광유제를 도포해 만든 감광성 매체로서 보존성이 취약한 기록매체’입니다(지찬호 외, 2014). 소장하고 있는 슬라이드도 얼룩, 스크래치, 오염, 뒤틀림 등 다양한 훼손 유형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2022년 국가기록원 맞춤형 복제 지원 사업으로 슬라이드의 보존처리를 진행했습니다.
※문익환 슬라이드 보존처리 과정
슬라이드 앞뒷면 스캔(디지털화) → 마운트에서 필름만 분리해 세척 및 안정화 처리 → 필름 전용 보존 앨범에 보관 → 마운트에 검은 필름 장착 → 스캔한 필름 보정
◇보존처리 후 슬라이드. 마운트에서 필름을 분리하여 전용 보존용품에 보관하고 마운트에는 검은색 필름을 끼웠다.
▲영속성 보장과 원형 존중
보존 처리 작업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사료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시켜 ‘영속성을 보장’한다는 것과 처음 만들어진 상태를 임의대로 변형하지 않는다는 ‘원형 존중’, ‘최소한의(정당한) 개입’ 등입니다(김주삼, 2022). 때로는 원칙들이 서로 미묘한 갈등 관계에 놓이기도 하는데요, 이 슬라이드의 경우는 사료의 안전과 용도 회복을 중점에 두어 불가피하게 원형이 변형된 사례입니다.
미정리 상자에서 슬라이드 136개 발견
▲또 다른 슬라이드 상자 발견
원형을 이제 디지털로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에 빠지려 할 무렵, 미정리 상자에서 원형 슬라이드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슬라이드 136개가 꽂혀있었고 철제 상자와 비슷한 시기에 찍은 필름이었습니다. 훼손 상태는 심했지만 처음 보는 컬러 사진이 많아서 빨리 확인해 보고자 포토 스캐너를 이용해 직접 스캔해 보았습니다.
◇새롭게 발견한 원형 슬라이드 상자
▲스캔과 이미지 확인 작업
사용한 장비는 엡손 V850 스캐너입니다. 제공되는 필름 고정 장치에 먼지를 털어낸 슬라이드를 끼우고 PC 프로그램에서 설정을 하고(48비트, 6400dpi, 먼지제거 기능) 미리보기와 스캔을 진행합니다. 한 번에 12장이 가능하고 마운트를 제외한 필름 부분 이미지만 각각 저장할 수 있어 아주 편리합니다. 다만 작은 필름을 화면에서 볼 수 있도록 큰 비율로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장당 4분 정도로 꽤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국가기록원의 <기록물 디지털화 기준>에서는 해상도 4K UHD(1920×1080) 품질을 원하면 35mm필름 기준으로 2710dpi(3840×2560), 24 또는 비트로 스캔하고, TIFF나 JPG 파일로 저장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슬라이드 스캔(디지털화)
수 분을 기다린 끝에 사진과 같이 젊은 문익환의 다양한 모습을 이미지 파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코팅이 벗겨져 감광층이 드러나고 훼손이 진행된 필름은 자동보정 기능만으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밧줄 그물을 올라타는 포즈를 취하는 군복차림의 문익환(1950년대 초)
◇필름의 감광층이 드러나 훼손된 표면
▲어떻게 보존해야 하나
앞서 말했듯 필름은 민감한 매체이며 훼손되면 복구가 매우 까다로워 훼손을 늦추기 위해 적절한 환경에서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공기록물법에 따르면 필름은 온도 0±2℃, 습도 30±5%가 유지되는 시설에서 보존되어야 합니다. 영도(0℃)서고 시설을 갖추기 쉽지 않으므로 필름과 사진 전용 저온 유물장을 마련하거나, 위급한 상황이라면 국가기록원 같은 시설에 위탁 보관할 수도 있습니다.
추가 슬라이드는 어떻게 보존처리를 진행해야 할까요? 계획부터 세워야겠지요. 전문가의 의견도 구하고요. 하지만 오늘은 벌써 퇴근 시간이군요. 여러 전문가들의 자문과 도움을 기다린다는 말을 남기며 연구실 문을 닫겠습니다.
<글: 박에바>
[참고 문헌]
🔗
국가기록원 공공표준. 기록물 디지털화 기준. NAK 26:2023(v2.1)
김주삼(2022).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 책세상
🔗지찬호 외(2014). 필름류 기록물의 특성과 보존상태. 기록물 보존복원 제7호. 국가기록원
월간 문익환_<보존연구실 6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