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보존연구실 601호>
기증사료 붓글씨 두 점 보존처리 (2025년 3월호)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 601호 보존연구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문화재(문화유산) 보존 분야를 공부하는 박에바 연구원입니다. 수장고 안에 있는 사료를 재질에 따라 소개하고 더 나은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 고민하고자 연구실을 마련했습니다. 물론 가상의 공간입니다. 먼저 앞으로 자주 등장할 ‘보존’, ‘보전’, ‘복원’, ‘보존처리’ 라는 용어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보존(Conservation): 문화재의 안전한 보호 및 전승을 위해 행해지는 모든 활동과 조치. 가장 크고 넓은 개념
·보전(Preservation): ‘보존’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나 ‘예방 보존’적 의미가 더 크게 내포됨
·복원(Restoration): ‘보존’의 개념보다 더 적극적인 행위로 개입을 통해 어떠한 상태로 변경되는 것
·보존처리(Treatment): ‘보존’을 목적으로 행해지는 직접적인 조치, 구체적인 행위
오늘의 분석 대상은 붓글씨 2건 3점입니다. 모두 2024년 입수된 기증품이군요.
◇문익환 붓글씨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국은 하나다」 문익환 씀, 1991. 1, 71×33cm
같은 문구 두 점이 있는 이유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국은 하나다’라는 글씨는 문익환 시집 『옥중일기』에 첨부되어 있는 것인데 원본을 이제야 만났습니다. 전 삼민사 출판사 허인규 님이 기증해 준 덕분입니다. 그런데 같은 문구가 연도만 다르고 두 점인 것이 의아하네요. 문 목사님이 1991년을 통일염원 46년으로 잘못 표기하여 47년 버전으로 다시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씨는 46년 것이 맘에 들어 책을 찍을 때 6자를 7자로 짜깁기했다는 재미난 비화가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사료 상태를 보니 한지(순닥지)는 아니고 강도가 약한 화선지로 보입니다. 접힌 자국도 선명해서 뒷면에 전체적으로 종이를 덧대어 보강하는 작업, 즉 배접이 필수입니다. 배접지는 산(성)화를 막아주는 중성의 얇은 한지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감상 및 보관하기 좋게 테두리를 꾸며주는 것이 좋겠지요. 이를 장황이라고 합니다. 일본식 표현인 ‘표구’라는 말이 더 익숙할 수 있겠지만 조선 시대까지는 장황(裝潢) 또는 배첩(褙貼)이라고 했습니다.
봄길의 물얼룩진 붓글씨
다음 사료는 문익환의 시 「예수의 기도-2」를 박용길 장로가 쓴 붓글씨인데 이미 장황이 된 상태입니다. 벽면에 보관했다가 수해를 입은 듯 왼쪽에 물얼룩이 보입니다. 혹시 곰팡이나 다른 훼손이 있지 않을까 하여 나무틀을 해체해 보니 다행히 얼룩 외엔 없었습니다.
◇문익환 시 「예수의 기도-2」 붓글씨. 박용길 씀, 1987, 55×39cm
모듬살이연대에 누군가가 바자회 물품으로 가져왔다고 하는데 얼룩 때문에 판매 때 내놓지 못하고 보관하다가 기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피해는 안타깝지만 글씨를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한 고마운 얼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붓글씨에 사용하는 먹은 기름이나 소나무를 태운 재를 뭉쳐 만든 것이기 때문에 물에 번지지 않습니다. 종이를 물에 담가 물과 약품으로 얼룩을 지울 수도 있겠지만 글씨까지 색이 변할 위험이 있어서 재장황만 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장황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테두리의 꾸밈 천과 작품 뒤 배접지를 작품과 분리해야 합니다. 서화 문화재는 배첩할 때 가역성이 좋은 소맥전분풀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을 발라 풀을 녹이면서 조심히 떼면 감쪽같이 작품만 남길 수 있게 됩니다. 가역성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성질’을 뜻하는데 보존처리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오늘의 처리 방법이 완벽한 최종처리가 아님을 염두에 두고 후대 작업자가 반드시 현재 적용한 재료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셀로판 테이프나 문구·공업용 풀은 제거해도 자국이 남고 사료 자체도 훼손하기 때문에 특히 지류 사료에는 사용해선 안 됩니다!
실제 보존처리를 위해 서울 모처에 있는 전문가에게 두 점을 의뢰하고 구체적인 장황 형태나 재료를 결정합니다. 전시용이기 때문에 유리는 특별히 저반사 특수재질로 하고 유리와 글씨면이 맞닿으면 습기 등으로 훼손 될 수 있으므로 쫄대를 넣어 간격을 두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작품 뒷면에 배접지를 바르고 속틀에 잘 건조된 작품을 재단하여 붙이는 과정 ⓒ선광문화재보존연구소
◇새롭게 장황한 붓글씨 두 점 ⓒ선광문화재보존연구소
붓글씨가 전문가의 손길로 깔끔하고 반듯한 새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보존처리가 완료된 붓글씨 두 점은 <문익환 통일의집 기증기록전: 고마운 사랑아>에서 직접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2024년 7월까지). 이상으로 작품을 돋보이게 하고 보존력도 높여주는 지류 보존처리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이만 연구실 문을 닫고 다음에 새로운 주제로 다시 뵙겠습니다.
◇<문익환 통일의집 기증기록전: 고마운 사랑아>에서 전시 중인 붓글씨 기증품
<글: 박에바>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 (2018). 『보존처리 지침서』
월간 문익환_<보존연구실 6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