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

묘역봉사 모란공원사람들 (2024년 4월호)

늦봄처럼 춥다가도 봄길처럼 따뜻하게…
평화 통일의 빗장도 그렇게 풀리기를

모란공원 묘역관리-추모 봉사 ‘모란공원사람들’
 
 
◇2024년 3월 10일 모란공원 참배 후 한자리에 모인 ‘모란공원사람들’. 왼쪽부터 박성화, 김태봉, 이동희(3대 회장), 이항규(초대 회장), 박삼호(현재 회장), 최순옥, 신준식, 김동균, 박연숙, 마완근 회원. ⓒ황보반
 
 

회원들 모두 생전 늦봄 뵌 적 없어

『월간 문익환』의 〈나와 늦봄〉 코너에 글 한 꼭지 써 달라는 연락을 받고 당황했습니다. 저는 늦봄 문익환 목사님(이하 목사님)을 뵌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카톡 공지를 통해 확인해보니 우리 ‘모란공원사람들’ 회원 또한 생전의 목사님을 뵙고 강연을 듣거나 집회에 동참한 인연이 없었습니다. 
 
 

2003년 열사 묘소 참배로 시작

‘모란공원사람들’은 목사님께서 모란공원에 잠드시고 9년 후인 2003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화도에 거주하는 달뫼인 이항규 선생(이하 달뫼인 선생)께서 “우리 지역 모란공원에 민주통일노동열사 묘역이 있는데 내가 행하지 못했더라도 목숨 바쳐  장하신 일을 하신 그분들을 잊지 말고 가슴에 담아야 옳지 않겠는가”라고 하셨고, 이  생각에 공감하는 저를 비롯한 몇몇에게 “그 달 기일이 드는 열사 묘소에 흰 국화 한 송이 올리고 참배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당시 목사님 묘소는 북동향인데다 기일이 1월 18일이어서 눈 내릴 때가 많았습니다. 또 오르는 길이 경사가 심해 참배 오시는 분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비탈길의 눈을 쓸어내야 했습니다. 그때 달뫼인 선생께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봉분과 묘역의 눈도 쓸어냈습니다. 선생은 2004년 10주기 추도식에 북한 대표들이 목사님 묘소에 참배한 것과 언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커피 봉사를 한 것을 가장 뜻깊은 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달뫼인 선생은 『월간 문익환』에 이 이야기를 알리는 것조차 “내세울 일 아니다”라며 사양합니다.) 

저는 달뫼인 선생과 최순옥, 한대식, 이동희 씨 등 서너 명과 함께 매월 두 번째 일요일 참배를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두세 명이, 때론 혼자서 눈 덮인 묘역을 뛰어다닌 적도 있습니다. 
 
  

15주기 추도식 구십 노구의 박용길 장로 기억 생생

  
  

 ◇2009년 15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박용길  장로. ⓒ황보반

위 사진은 봄길 박용길 장로님(이하 장로님)께서 2009년 목사님 15주기 추도식에 참석하신 모습입니다. 전날 살짝 내린 눈은 추위를 더했지만 구십 노구에도 불구하고 꼿꼿하신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평생을 민주통일운동가로 여성운동가로 살아오신 봄길 장로님. 먼발치에서 뵙고 사진만 찍었지만 제가 아끼고 손녀·손자에게 자랑할 사진입니다. 

 

80대부터 40대까지 20년 이어온 봉사

목사님은 호가 ‘늦봄’이시라 묘소가 북동향으로 춥고 습한 기운이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2021년 4월 2일 건너편 언덕 남향받이에 새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장로님 돌아가시고 합장으로 모신지 10년이 지나였죠. 먼저 모신 정경모 선생님 묘 좌측에, 같은 날 유원호 선생님 내외분과 함께 모셨습니다. 양지바르고 따뜻한 곳에 함께 방북하셨던 정경모 선생님, 유원호 선생님과 장로님, 안순심 여사님께서 모두 함께 계시니 마음이 참 좋고 흐뭇합니다.

장로님! 목사님 호가 ‘늦봄’이라 유택조차 춥고 습한 곳이었나요? 장로님의 호가 ‘봄길’이니 10년 만에 따뜻한 곳을 가셨나요? 목사님 가신 후 30여 년, 더욱 어렵고 예측이 어려운 수상한 시절이긴 하나 평화의 길이 통일의 길이 열릴 징조인가요? 
초창기부터 함께한 최순옥 씨는 ‘소리 없이 봄이 오듯 극적인 반전의 기회가 올 것을 희망하고 늦봄의 뜻이 펼쳐져 평화통일의 빗장이 풀리리라’고 느낌을 말합니다.
우리 ‘모란공원사람들’은 지역의 작은 단체입니다만 20여 년을 이어왔습니다. 산수(傘壽-80세)의 달뫼인 선생이 연장자이시고 젊은 회원은 40대입니다. 미약한 힘이나마 끊임없이 이어지고 젊고 새로운 회원이 충원되어 자녀들과 함께 참배 오는 모란공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산속, 바위 아래, 모래를 밀치고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이 바다에 이르듯......

<글: 황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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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사람들 홈페이지 www.moran.or.kr

 
◇춥고 습했던 북동향의 문익환 목사님 구 묘역(2009. 1. 17.) ⓒ황보반 
 
 
◇2021년 9월 25일 목사님, 장로님 이장 시 추모객 명단 작성 및 체온 체크 봉사중인 ‘모란공원사람들’. 왼쪽부터 유병수, 김동균, 최순옥, 박성화, 황보반(필자 본인) 회원 ⓒ황보반
  
  
◇사)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2024총회에서 감사패를 받는 모란공원사람들(이동희 회원)
 
 
※ 모란공원사람들은 2003년부터 모란공원에 잠들어 계신 민족민주열사들의 묘역을 관리하고 추모행사를 지원하는 봉사단체이다. 가장 추운 1월에 열리는 문익환 목사의 기일 행사에서 커피, 어묵 때로는 주차 안내와 묘역관리로 추모객들을 따뜻하게 환대해 주며 보이지 않는 작은 손길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있다.

 
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