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

수행비서 세진음향 임윤호 대표 (2024년 2월호)

“제가 잘할 수 있는게 음향…회사 문닫을때까지 후원”

 
 
◇지난 1월 13일 모란공원에서 열린 문익환 30주기 기념문화제에서 음향기기를 점검하고 있는 임윤호 세진음향 대표.  
 
 

25년간 각종행사 때마다 무보수 지원

학생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저는 민예총(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에서 기획을 담당했고 목사님 큰아들 문호근 형은 연출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결혼 후 차가 있었는데 저에게 호근 형이 당분간 아버님을 좀 모시라고 한 것을 계기로 목사님과 개인적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문 목사님은 그전까지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셨는데 제가 마침 목사님 댁 근처에 살기도 하고 날씨도 추워지고 해서 조건이 잘 맞아떨어진 거죠. 처음엔 당분간만이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목사님 돌아가실 때까지 모셔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두 달도 채 못 되어 목사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정작 수행한 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남들은 저보고 기사라고 했는데 목사님은 저를 소개하실 때 꼭 수행비서라고 얘기해 주셨지요. 저 이전에도 목사님을 모신 선배들은 꽤 있었는데 짧은 기간 일했는데도 마지막 수행비서로 남게되어 면구스럽기도 합니다.  

 

지금도 생생한 1994년 1월 18일

30년 전인데도 돌아가신 날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따라 아침부터 굉장히 서두르셨는데 제가 10분쯤 늦어서 목사님께 처음으로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장갑이며 시계며 놓고 나오셔서 제 시계도 빌려 차시고 점심식사 자리에 가셨지요. 그런데 한 시간 반 뒤에 본 목사님은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단시간에 변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새카맸습니다. 방에서 가부좌 틀고 단전호흡으로 다스린다고 하셔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30분도 채 안 돼서 “나 도저히 안 되겠어. 병원 가야겠어” 하셔서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얼른 달렸습니다. 그런데 응급실 들어가신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목사님이 다시 집으로 가겠다고 전에 없이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또 집으로 모셔다드렸죠. 도착 후 드신 걸 전부 게워 내시고는 “한 이틀 쉴 거니까 너도 가서 쉬어”라고 하셔서 “제가 아침마다 전화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게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사람을 대할 때는 굉장히 해맑고 천진난만했지만, 저하고 차로 이동하실 때는 여러 일들에 대한 고민, 다른 사람 걱정을 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당시 제가 느끼기에는 돌아가시기 전 그 며칠이 목사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짐작할 뿐입니다. 

 

이후 박용길 장로 수행비서로 2년

처음엔 목사님을 직접 가까이서 모셔야 된다는 생각에 솔직히 좀 겁도 났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곁에서 목사님, 장로님을 지켜봤는데 마치 신혼부부처럼 지내시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반갑게 포옹하고 뽀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살갑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보살피는 힘이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목사님 돌아가신 후에는 박용길 장로님을 2년 동안 가까이 모셨기 때문에 애틋함이 많이 남습니다.  
 
 

“난 퇴직금 두둑이 받은셈”

학생 때 노래패에 있었는데 노래는 잘 못해서 자연스럽게 앰프를 나르며 음향을 접하게 됐습니다. 하다 보니 스태프가 적성에 맞아서 음향회사를 조그맣게 시작했다가 계속하고 있습니다. 수행비서 일을 수락했을 때 월급이나 보수에 관해서는 정하지 않았는데 일 시작하고 목사님께 월급을 딱 한 번 받았습니다. 월급봉투를 근엄하게 주시는 모습이 진짜 사장님 같았죠. 25년째 사업하면서 목사님께 빚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분들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 봉급은 적었지만 퇴직금은 많이 받은 셈이지요. 여러 현장에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음향으로 의미있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앞으로도 회사 문 닫을 때까지는 계속할 생각입니다.
 
 
◇마석 모란공원 문익환 목사 묘소 앞에 서 있는 문호근과 임윤호. ⓒ박용수
 
 
◇문익환 목사 별세 직전 1994년 1월 일정을 정리한 기록으로 통일맞이 임윤호에게 팩스를 보냈다.(1994. 1. 20)
 
 
 ◇통일의 집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임윤호 대표
 
※(주)세진음향 임윤호 대표는 30년 전 문익환, 박용길의 수행비서로서 두 부부의 손과 발이 되었고, 현재는 현장에서 익힌 탁월한 감각으로 늦봄통일상 수상식, 마석모란공원 추모식, 통일의 집 정원콘서트 등 늦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에서 음향을 후원하여 사람들의 입과 귀가 되어주고 있다. 비무장지대에 자신의 음향 설비를 놓고 축하공연을 여는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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